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4

대륙전쟁의 시작
  키라이스트와 루이스, 아레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에이라나가 나누어준 스크롤을 이용해 워프한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에, 엘프 마을?”
  루이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루이스의 말을 듣고 휘안이 중얼거렸다.
  “여기가 엘프들이 사는 곳이야?”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는 휘안. 하지만 그런 휘안의 반응과 다르게 키라이스트들은 멍할 뿐이었다.
  “어, 어떻게 엘프 마을에...”
  루이스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딱 잘라 말했다.
  “이전에 하이엘프 무리를 구해준 적이 있었지.”
  딱 잘라 거짓말 하는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에게 딱 잘라 말하고 엘로카에게 지정받은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생활하기로 했던 것이다.
  어느 화려한 커다란 회의실에 한 중년인이 앉아있었다.
  “큭큭큭, 드디어 우리 데프론 제국이 리샨 대륙을 통일할 때가 왔다!”
  중년인의 이름은 바로 레우드 폴 데프론. 바로 현 데프론 제국의 황제였다. 데프론 제국은 갑자기 나타난 그랜드소드마스터 둘의 존재가 껄끄러워 발호를 주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그랜드소드마스터 둘이 없어졌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아툰 제국의 공작가의 후계자 둘과 후작가의 후계자 한 명이 사라진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데프론 황제의 말에 데프론 제국의 그랜드소드마스터인 아프콘 공작이 말했다.
  “폐하, 그럼 저희 데프론 제국의 대륙 통일의 첫 제물은 어디로 삼으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데프론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우리 제국 옆에 붙어 있는 오르칼 왕국을 칠까하네.”
  그 말에 아프콘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르칼 왕국 따위 한 방에 밀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허허허, 아프콘 공작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허허허!”
  하지만 데프론 제국은 이 결정을 죽도록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데프론 제국의 발호! 무려 120만 대군을 앞세우고 온 대륙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때는 겨울 초. 데프론 제국이 제물로 삼은 곳은 바로 데프론 제국의 옆에 있는 오르칼 왕국이었다.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하나같이 오르칼 왕국의 패배를 직감했다. 그 발호로 오르칼 왕국의 대회의실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어허... 데프론 제국의 10만 대군이 우리 오르칼 왕국을 침공했소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오르칼 국왕은 심히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르칼 왕국은 그렇게 군사력이 강하지 않았다. 군사 전부를 모아봐야 4만, 그리고 그중 1만은 수도나 다른 나라들을 견제해야 했기에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라고 해봐야 고작 3만, 징병을 한다 해도 겨우 6만이었다.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았고 현 오르칼 국왕은 백성들을 위하는 국왕이었다. 그렇게 국왕이 한탄을 하고 있을 때 한 귀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데프론의 10만 군사를 막지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모두들 얼굴이 환해졌다. 일어선 이는 바로 카프라스 크논! 바로 대륙에서도 뛰어난 군사로 이름이 나 있는 카프라스였다. 하지만 데프론 제국에도 뛰어난 군사는 많았다. 오르칼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카프라스였기에 모두는 그래도 조금의 희망은 가지고 있었다.
  오르칼 국왕도 카프라스가 나선다고 하자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그런 그를 보고 카프라스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데프론 제국의 잡졸 따위는 한 방에 쓸어버리고 오겠습니다.”
  그 말에 오르칼 국왕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몇몇 귀족들은 그런 카프라스 백작을 보며 허세를 부린다고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카프라스 백작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지략가들이 많은 데프론 제국의 정예부대를 앞두고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허세를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카프라스 백작은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카프라스 백작이 자신이 훈련시킨 병사 5,000명을 모아왔다. 그중 2,000명이 기마병이고 나머지는 전부 보병이었다. 그런 그들을 제국의 선두에 세운 카프라스 백작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오르칼 왕국의 2만 5천의 정예부대가 따랐다. 카프라스 백작은 그렇게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이 향하는 국경으로 갔다.
  국경선에 있는 성 중 가장 큰 성인 아르텐 성. 그곳에 카프라스 백작이 지도를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대가리 굴릴 줄 모르는 것들! 진짜 이쪽으로 오고 있나?”
  카프라스의 입에서 독설이 튀어나왔다. 카프라스 백작이 보고 있는 곳은 바로 매복하기 힘든 지형이었다. 대륙에서 보자면 아주 당연한 경로였다.
  하지만 카프라스 백작에게는 너무나도 미친 짓이었다.
  “미친놈들, 이렇게 넓은 곳으로 오면 적군을 대비하기야 쉽겠지. 하지만 그만큼 적에게 노출된다는 것도 생각 못한 건가? 누군지 몰라도 데프론 제국의 군사는 대가리를 굴릴 줄 모르나 보군.”
  대륙의 지략가들이 한 발 먼저 내다본다면 카프라스 백작은 열 발을 먼저 내다보는 인물이었다.
  데프론 제국의 병사를 이끄는 인물은 바로 그랜드소드마스터로 이름 높은 아프콘 공작이었다. 그는 자신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겨우 오르칼 왕국 따위가 자신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국경지대를 코앞에 두고 병사들을 푹 쉬게 해 주었다.
  척후병과 설마 이런 곳에서 기습을 할 것이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병력은 적군의 세 배에 달했다. 그렇게 아프콘 공작은 안일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병사들은 강행군에 지친 피곤을 풀기 위해 푹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밤은 점점 깊어져갔다. 보초병들도 꾸벅꾸벅 조는 새벽. 이상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를 마신 병사들은 완벽하게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경지에 기사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아파콘 공작은 눈을 번쩍 떴다. 공기가 조금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뭐, 뭐냐? 이 안개는?”
  아파콘 공작이 천막을 걷으며 나왔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 즉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은 아프콘 공작의 목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뛰어나왔다. 그렇게 공작과 기사들은 완벽하게 곯아떨어진 병사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놈들! 전시에 이렇게 안일하게 잠이 들다니!”
  공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공작의 말에 대답한 것은 병사들이 아니었다.
  “미친놈, 자기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방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주제에 뭔 개소리냐? 결국 병사들의 몰살만 찾아왔잖아?”
  꽤 젊은 사람의 목소리. 하지만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공작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모두 죽여라!”
  갑자기 전방에 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오르칼 왕국의 병사들이 튀어나와 곯아떨어진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아파콘 공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이 함성소리에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병사들은 뭐란 말인가? 그런 아파콘 공작을 보며 남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꼭 비웃음처럼 들렸다.
  “병신 같은 놈! 이런 허접한 수법에 걸려들다니! 하긴, 매복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넓은 곳으로 와서 수면초가 퍼지기 쉽게 해준 건 너무도 고마워.”
  그 말과 동시에 아프콘 공작을 향해 마법사들이 다가왔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아주 다급하게 보였다.
  “공작 전하! 이 안개에는 수면초 성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의 마나라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피해갈 수 있겠지만 보통 병사들에게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것보다 십만에 가까운 수면초를 이렇게 퍼트리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인데.”
  안개는 완벽하게 걷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병사들은 완벽하게 곯아떨어져 있었다.
  공작이 분노하며 말했다.
  “이놈! 무슨 짓을 한 거냐!”
  그 말에 남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아, 간단한 수법을 사용했을 뿐이야. 안개가 당신네 병사들만 있는 곳에 퍼지게 조치를 취했거든?”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10만 병사들을 한꺼번에 잠재울 양의 수면초를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안개를 풀어놓는다 해도 그것이 바람이 불어 퍼지면 끝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지형은 안개가 끼는 지형도 아니었다.
  아프콘 공작이 소리쳤다.
  “네 이놈! 이름이 뭐냐!”
  그 말에 남자가 말했다.
  “나? 카프라스.”
  그 말에 공작이 흠칫했다.
  “네놈이 오르칼 왕국의 병사들을 이끄는 총지휘자?”
  그 말에 카프라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정답!”
  “으드드드득! 죽여주마!”
  그렇게 말한 아프콘 공작이 카프라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카프라스는 놀라운 속도로 그것을 피하며 말했다.
  “큭큭큭, 10만 병사를 날려먹은 당신들의 멍청함에 경의를 표하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프라스가 또다시 엄청난 소리로 말했다.
  “오르칼 기사단은 여기 아프콘 공작과 데프론 제국의 수뇌부를 향해 돌격하라!”
  그 말에 또 다시 함성이 울려 퍼지며 기사단이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아악! 카프라스! 이 놈! 죽여 버리겠다!”
  그렇게 소리 지르며 아프콘 공작이 카프라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공작님! 위험합니다! 아무리 공작님께서 그랜드소드마스터라 하더라도 3만의 병사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입니다!”
  “크윽.”
  마법사의 말에 분을 삭인 아프콘 공작이 말했다.
  “...탈출한다.”
  그 말에 옆에 있던 기사가 소리쳤다.
  “기사들은 길을 뚫어라! 탈출한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말에 올라타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카프라스 옆에 나타난 흑의인이 물었다.
  “저대로 놔둬도 될까요?”
  그런 흑의인을 보며 카프라스가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저들이 갈 곳에 아주 화려한 선물을 준비했으니.”
  그 말에 흑의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편 탈출을 시도하던 데프론 제국의 수뇌부들과 기사들은 병사들의 밀집이 극히 적은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거의 오르칼 왕국의 포위에서 벗어났을 때쯤 카프라스가 갑자기 나타났다.
  “여~ 왜 이렇게 늦게 온 것이지?”
  그 혼전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텔레포트 스크롤이라도 있을까?
  갑자기 카프라스가 앞을 가로막자 아프콘 공작이 소리쳤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카프라스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아프콘 공작.
  그런 공작을 보며 카프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선물을 주려고. 자, 잘 받아.”
  그렇게 말하고 카프라스가 검은 구체 하나를 던졌다. 그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데프론 제국의 수뇌부들.
  쾅!
  그 검은 구체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 충격과 함께 수뇌부들 앞쪽에 있던 이들이 날아가 버렸다. 아프콘 공작도 순간 휘청거렸다. 하지만 폭발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쾅! 쾅! 쾅! 쾅!
  무려 네 번의 폭발이 더 일어났다. 그리고 그 폭발에 살아남은 이는 겨우 아프콘 공작뿐이었다. 그것도 아프콘 공작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쉬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것을 보며 카프라스가 감탄했다.
  “역시 그랜드소드마스터라는 이름은 그냥 딴 것이 아닌가?”
  “커억, 쿨럭.”
  하지만 아프콘 공작은 그런 카프라스의 칭찬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 마나가 역류하며 온몸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마법이 아니었다. 그저 갑작스럽게 터진 폭발이었다. 아프콘 공작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찢었다.
  그런 아프콘 공작을 보며 혀를 차는 카프라스. 자신 같았으면 저 꼬라지가 났으면 혀 깨물고 죽을 것이다. 싸움에서 패했다면 당연히 죽어야지, 왜 목숨을 부지하는가? 그 생각과 함께 아프콘 공작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
  “쯧쯧쯧, 한심한 놈.”
  그렇게 중얼거린 카프라스 백작이 성으로 향했다.
  이 날의 전쟁에서 데프론 제국은 10만의 병사를 잃었다. 그에 비해 오르칼 왕국의 피해는 300명도 되지 않았다. 데프론 제국은 첫 싸움부터 치욕스러운 패배를 한 것이다. 생존자는 아프콘 공작 한 명.
  이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대륙은 경악할 뿐이었다.
  * * *
  숲에 오두막 하나가 있었다. 그 오두막 앞에는 은발과 은안의 여인이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여인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첫 전쟁에서 패배라? 그것도 10만 대 3만의 싸움에서 전멸? 멍청한 것들.”
  하지만 나름대로 오르칼 왕국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는 오두막 옆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벌써 겨울인가?”
  에이라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벌써 이곳에 온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데프론 제국은 대륙에 전쟁을 선포했고 첫 제물로 오르칼 왕국을 삼았다. 하지만 결과는 데프론 제국의 전멸이었다. 그것 때문에 데프론 제국의 발호가 주춤했다.
  그렇게 에이라나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남궁휘안이 돌아왔다.
  휘안의 양손에는 토끼가 한 마리씩 들려있었다.
  “여~ 아침 잡아왔어.”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엘프들에게 걸리면 잔소리 엄청 들을 걸?”
  휘안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은 다음 입을 열었다.
  “말도 마, 끔찍하니깐.”
  그렇게 말하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휘안이었다. 에이라나는 피식 웃었다. 두 달 전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에이라나 일행이 엘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외각 지역에 오두막을 준비했던 엘로카. 그리고 대충 짐을 정리하던 다섯 사람 앞에 로카나가 나타났다.
  로카나가 에이라나를 보며 물었다.
  “에이라나 님, 에이라나 님이 말한 그랜드소드마스터는 어디 있죠?”
  그 말에 빙긋 웃은 에이라나. 그리고 에이라나는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쪽에는 바로 휘안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로카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카나는 아직 어린 인간이 그랜드소드마스터라고 생각하자 적잖이 놀랐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로카나는 그것에 더욱 위화감이 들었다.
  로카나가 휘안에게 다가갔고, 휘안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볼일 있습니까?”
  그 말에 로카나가 말했다.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에?”
  갑작스러운 로카나의 말에 멈칫하는 휘안. 그런 휘안을 보며 로카나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대도를 뽑았다.
  그 대도를 보며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몸집에 안 맞는 칼이야.”
  로카나의 대도는 커도 너무 컸던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를 가볍게 무시하며 로카나가 커다란 대도를 휘안에게 들이밀었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휘안이 땀을 삐질 흘리며 에이라나에게 물었다.
  “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결투 한번 해. 그녀는 이 대륙에서 최강의 검사라고 불리고 있으니깐.”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강의 검사?”
  휘안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루이스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파괴의 로카나?”
  그 말에 로카나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난 파괴의 로카나라는 칭호를 무지하게 싫어한다.”
  그 말에 루이스가 찔끔했다. 엘프를 보고 파괴의 칭호를 붙이는 건 너무도 이상했다. 하지만 로카나의 도술이 워낙 패도적이고 강맹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혀를 차는 에이라나였다.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휘안이 입을 열었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검사라...”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의 대결 요청을 받아들이죠.”
  에이라나가 어느새 구경 온 엘프들에게 말했다.
  “여~ 저 둘이 부딪치면 적어도 옛날에 내가 일으킨 숲 초토화 사건보다 더한 게 일어날걸? 일단 난 그때 소드마스터 최상급이었지만, 저 녀석은 그랜드소드마스터거든? 그리고 로카나도 더 강해졌을 것이고.”
  그 말에 엘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급기야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런 엘프들을 무시하며 로카나와 휘안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움직인 건 휘안이었다.
  휘안은 로카나에게 달려들어 롱소드를 휘둘렀다.
  챙!
  그런 휘안의 롱소드를 자신의 대도로 막아버리는 로카나. 휘안은 그런 로카나를 바라보다가 검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검이 빠른 속도로 로카나를 압박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카나는 그것을 차근차근 잘 막았다.
  그리고 그랜드소드마스터들의 대결에 루이스와 아레인, 키라이스트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에이라나는 그것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키라이스트가 질문했다.
  “누나, 누가 이길 것 같아?”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생긋 웃어주었다.
  “휘안.”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로카나는 대륙 최강의 검사잖아? 아무리 휘안 형이라 해도.”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수들의 싸움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은 마나량과 깨달음이다.”
  키라이스트와 루이스, 아레인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며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에이라나는 그런 세 사람을 보고 피식 웃은 다음 말을 이었다.
  “로카나는 어느 것 하나 휘안을 따라가지 못해. 심지어 검술의 완성도도 로카나보다는 휘안이 훨씬 높아.”
  그 말에 세 사람은 휘안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눈에는 보였다. 조금씩 밀리고 있는 로카나의 모습이 말이다.
  로카나는 자신을 가볍게 밀어붙이는 휘안을 보며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도를 크게 휘둘렀다. 휘안과 거리를 벌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거리를 벌린 다음에도 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리고 바람의 칼날들! 바로 도풍!
  하지만 휘안은 그 도풍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그 도풍은 휘안의 뒤에 있는 숲을 날려먹었다.
  “크아아아악! 나무들이!”
  “오~ 신이시여!”
  “흑흑흑... 나무가!”
  엘프들은 절규했다. 하지만 그런 엘프들의 절규를 무시하는 로카나와 휘안이었다.
  “쯧... 나무 좀 날아갔다고.”
  휘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죽일 듯한 엘프들의 눈빛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엘프들을 무시하고 휘안이 중얼거렸다.
  “강하잖아?”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이 검강을 끌어올려 그것을 로카나에게 날렸다. 일명 탄검강! 탄검강 다발을 보며 로카나가 도를 휘둘렀다. 도풍을 사용할 때부터 도강이 서려 있던 로카나의 검이었다.
  쾅! 쾅! 콰가가가강!
  엄청난 폭음. 휘안은 막을 줄 알았다는 듯 히죽 웃은 다음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잔상을 일으키며 로카나에게 돌격했다.
  로카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옛날에 에이라나와 대결할 때 에이라나가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이영환휘!
  엄청난 속도로 잔상을 남기며 돌격한 휘안이 어느새 로카나의 뒤를 점했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쾅!
  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로카나가 그것을 막았다. 그렇지만 휘안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월광섬검.”
  엄청난 쾌검. 갑작스러운 쾌검에 당황한 로카나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후웅!
  견제 받은 휘안이 검을 회수하고 물러났다. 서로 떨어진 그들이 다시 서로를 노려보는 양상이 되었다.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움직임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휘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로카나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로카나는 도를 꽉 쥐며 휘안과 대치했다.
  그렇게 잠시 후.
  로카나가 자세를 낮추고 도를 자신의 등 뒤로 넘겼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기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휘안도 검으로 그녀를 가누었다.
  “타앗!”
  로카나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로카나가 힘껏 검을 내질렀다. 어마어마한 바람과 함께 무시무시한 탄검강이 휘안을 노리고 들어갔다.
  “월광.”
  휘안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에이라나의 최고 초식 천마가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을 이용해 전방위로 공격을 가하는 공격이라면 휘안의 월광은 로카나가 사용한 탄검강처럼 엄청난 절삭력을 가진 공격이었다. 다시 말해 힘을 한곳으로 집중시킨다는 소리였다.
 쾅!
  로카나의 공격과 휘안의 월광이 부딪쳤다.
  “쿨럭!”
  로카나는 충격에 의해 마나가 역류해 그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휘안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물론 충격은 있었지만 아주 큰 충격은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세 사람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파괴의 로카나가 깨졌다. 그것도 아직 24살밖에 되지 않은 인간에게. 너무도 놀라웠다.
  숲이 파괴되었다며 절규하던 엘프들도 경악했다.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검으로는 최강이라 생각했던 로카나가 인간에게 쓰러진 것이다. 대륙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짓을 저지른 휘안은 로카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로카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정말 강하군요, 이곳에 와서 당신만큼 강한 검사는 처음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활짝 웃는 휘안. 휘안은 로카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로카나도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정말 대단한 인간이군요.”
  그렇게 말한 로카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를 들고 터벌터벌 걸으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 로카나를 쳐다보던 휘안이 활기차게 말했다.
  “배고프다! 식사 준비하자!”
  그렇게 말하며 휘안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토끼 몇 마리를 잡아 왔다. 하지만 휘안은 그것을 도로 놔줄 수밖에 없었다. 휘안이 잡아온 토끼를 보며 눈을 부릅뜬 엘프들이 그에게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귀여운 동물을 잡아먹을 생각을 하죠?”
  “당장 놔주세요!”
  그 말에 휘안은 눈물을 머금고 토끼를 놔준 것이다. 그리고 엘프 마을의 식사를 보고 소리쳤다.
  “내가 무당이야, 도사야? 아님 소림의 중이야? 왜 풀 쪼가리만 먹냐고!”
  휘안에게 있어 엘프들의 습성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는가? 아무리 자연을 아낀다고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광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륙에서 살아온 이들은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휘안은 가끔씩 토끼를 잡아 자기 혼자 배를 채우곤 했다. 물론 들킬 때마다 엘프들의 엄청난 잔소리를 감당해야 했지만 말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공터.
  그곳에서 에이라나가 은아와 흑아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에이라나는 한참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에이라나가 멈칫했다. 그 멈칫한 시간에 흑아에게는 무시무시한 마기가, 은아에게는 살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에이라나가 외쳤다.
  “천마!”
  쾅!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강!
  천마를 이검류로 시전!
  “제, 젠장!”
  시전 도중 밸런스가 무너져 에이라나의 내공과 마나가 역류해버렸다. 에이라나는 입에서 피를 한 움큼 뱉어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지금 에이라나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천마를 쌍검으로 시도하다니.
  천마 자체가 일격필살 같은 기술이었다. 아마 중원에서 초식 중 천마가 최강의 초식일 것이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감히 그런 초식의 데미지를 두 배로 끌어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아.”
  역류하는 마나와 내공을 진정시킨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질렸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뭐냐? 그 무지막지한 검술은?”
  바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였다.
  그런 실피드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냅둬!”
  그리고 에이라나가 다시 검을 꽉 쥐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실피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그런 불안정한 기술을 몇 번만 더 사용하면 생명에 지장 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실피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천마를 시전했다. 하지만 역시나 다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론으로는 완벽했다. 그리고 다른 천마검법, 천마권각법 등 천마가 남긴 무공들은 모두 이검류로, 그것도 각각 다른 기운으로 사용가능했다. 하지만 천마무공의 비기! 천마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만큼 초식 천마는 신비로운 초식이었다.
  실피드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자꾸 시도한다면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지켜본 결과 절제도 할 줄 아는 에이라나였다. 그저 에이라나를 힐끔 쳐다본 다음 한숨을 쉬며 그녀를 다시 바라보는 실피드였다.
  휘안은 에이라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 끈질김은 너무도 무섭다.
  중원에서 이검류를 사용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서로 다른 검술을 펼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같은 검술을 사용한다면 그만큼 집중력도 필요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것을 기능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지만 너무도 놀라웠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검을 휘두르던 에이라나가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하아.”
  이어 한숨을 푹 쉬는 에이라나.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왜 그래?”
  그런 휘안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불완전해.”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휘안.
  “불완전? 완벽하던데?”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아니, 밸런스가 어긋나있어.”
  에이라나는 고개를 갸웃하는 휘안에게 말했다.
  “나랑 붙자.”
  “에엑! 싫어!”
  “닥치고 검 뽑아.”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흑아와 은아를 뽑아들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다급하게 검을 뽑는 휘안. 에이라나가 먼저 검을 휘둘렀다.
  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휘안에게 막힌 흑아를 바라보던 에이라나가 바로 은아를 휘둘렀다. 휘안은 흑아를 쳐내며 에이라나에게서 떨어졌다. 에이라나가 다시 달려들었다.
  에이라나와 검을 부딪쳐본 휘안은 에이라나의 검이 묘하게 빈틈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빈틈이란 것을 일부러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웬 걸? 바로 에이라나의 방어가 뚫리며 그녀의 목 언저리에 휘안의 검이 들어왔다. 그 결과에 휘안도 놀랐다.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봤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정말 빈틈이 많구나.”
  그런 휘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에이라나가 말했다.
  “하지만 이론으로는 완벽해. 조금씩 수련하며 맞춰 가면 돼.”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휘안도 검을 집어넣었다.
  에이라나의 이검류는 완벽한 게 아니었다. 빈틈이 많았다.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지는 에이라나의 몫이었다.

    폭풍전야
  키라이스트는 긴장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그다 들어와 있는 곳은 에이라나가 설치한 진 안 에어라나가 이 안에서 일주일을 버티라고 건량과 함께 무작정 집어 넣어버린 것이다. 빠져나가는 방법도 모르니 일단 일주일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된 키라이스트였다. 그는 지난 몇 잘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매일아침 일찍 일어나서 검술을 연마 하고 진 안에서 수많은 검사들과 싸웠다. 그런 후 운기조식을 하고 밤에는 에이라나에게 엄청 얻어터졌다. 그것도 목검이 아니라 주먹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키라이스트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캉!
  키라이스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단검을 쳐냈다. 그리고 돌멩이를 하나 주워 단검이 날아오는 쪽으로 던져 버렸다.
  퍽!
  “끄악!”
  키라이스트는 돌멩이에 마나를 살짝 주입했다. 그 덕에 엄청난 속도가 붙은 돌멩이는 단검을 날린 자에게 적중했다. 에이라나가 이전에 몬스터들과 싸울 때 돌멩이를 던져 오우거의 머리를 박살낸 것을 보고 일순 멍해졌던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이였다. 그렇기에 그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물론 에이라나가 던진 돌멩이의 위력과 자신들이 던지는 돌멩이의 위력은 확실하게 차이가 났다.
  ‘쳇, 역시 그 정도 위력은 안 되나?’
  그렇게 중얼거린 키라이스트는 자신의 돌멩이에 맞고 쓰러진 남자를 향해 돌격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피하며 뒤쪽으로 검을 내질렀다.
  캉!
  지금 키라이스트가 상대하는 이들은 전부 중원 무림의 이류무사! 그만큼 키라이스트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뜻이였다. 키라이스트는 자신의 검을 막은 이를 노려보며 검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의 검에서 오러가 길게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오러가 나타나자 키라이스트의 검을 막고 있던 이는 그대로 두쪽이 나버렸다. 키라이스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전방 위에서 나타난 적들의 공격을 피했다. 실로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몇 달 전의 키라이스트라면 흉내도 낼 수 없었던 움직임이다. 그동안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가 가르쳐준 그대로 풍운보를 착실하게 훈련했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런 다음 나타난 적을 쭉 둘러보았다. 방금 키라이스트가 처리한 적까지 합치면 7명. 그중 한 명은 절명했고 나머지 한 명은 전투 불능산태. 그러면 남은 적은 모두 다섯이었다. 키라이스트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치켜세웠다. 그것을 본 적들도 검을 꽉 움켜쥔 체 키라이스트를 노려보았다. 잠시 대치하던 그들은 눈짓을 주고받음과 동시에 그에게 달려들었고 키라이스트 역시 그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라이스트는 그들의 앞으로 달려가 발을 크게 구른 다음 높이 점프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으로 착지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촥!
  한 무사의 목이 떨어졌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키라이스트는 그대로 몸을 숙여 주먹으로 또 다른 무사의 턱을 후려졌다. 무사는 쿤 충격에 비틀거렸다. 그런 무사를 무시하며 전후좌우 사방에서 자신을 노리며 달려드는 검을 모며 키라이스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검세를 키라이스트는 모두 피한 듯했다. 하지만 스치듯 흘러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검은 어쩔 수 없었다. 키라이스트는 옆구리를 내어준 채 그대로 검을 내질러 좌우에서 달려드는 두 명의 무사를 베어버렸다. 그리고 팔꿈치로 남은 이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꺼억!”
  그는 신음을 토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동시에 키라이스트 역시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깊이 베인듯했다. 한숨을 푹 쉰 키라이스트는 상처에 에이라나가 비상 시 쓰라고 준 약을 발랐다. 진을 나가서는 몰라도, 진 안에 있는 이상 이 상처는 실제의 상처처럼 아픔을 느꼈다. 약을 바르고 잠시 쉰 그는 다시 일어서서 숲을 행해 걸어갔다. 키라이스트의 앞에 커다란 공토가 나타났다. 이제 그곳에 들어온 지도 일주일째다. 그가 막 이 지긋지듯한 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때였다.
  “지긋지긋할 만치 오래 기다리게 하는군.”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키라이스트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공터 중앙을 쳐다보니 그곳엔 한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윤기 있는 흑발에 새카만 심연 같은 흑안.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는 키라이스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누...나?”
  그의 말에 흑발의 에이라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가 비웃으며 말했다.
  “난 네 누나가 아닌데? 그리고 난 너같은 놈 모른다.”
  그렇게 말한 그가 검을 뽑았다. 그러자 검에서 무시무시한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는 키라이스트.
  “난 마교의 소교주 하유현, 너를 시험해주겠다!”   
  그렇게 외친 환상 속의 유현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헉!”
  놀란 키라이스트가 본능적으로 유현의 검을 막았다. 어느새 오러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보통이라면 엄청난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는 것으로 끝날 공격, 아니 대륙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유현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환상이라지만 에이라나에 의해 자신이 중원에 있을 때 모습과 능력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키라이스트는 유현의 검을 받아내자마자 바로 큰 충격을 받고 날아가 버렸다.
  “커억!”
  그는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바위에 부딪혔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유현은 다시 검을 휘둘러왔다.
  쾅!
  기겁하며 피하는 키라이스트. 하지만 유현은 쉴 틈 없이 키라이스트를 계속해서 몰아 붙였다.
  쾅! 쾅! 콰가가가가가가강!
  이건 싸움이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유현이 키라이스트를 가지고 노는 양이었다.
  “크윽!”
  키라이스트는 속에서 마나가 역류하는 바람에 계속 피를 토했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면서도 유현은 그저 히죽히죽 웃을 분이었다.
  “에이~ 생각보다 훨씬 약하잖아? 그만 죽어라.”
  비웃는 듯 싸늘한 어조로 말한 유현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순간, 키라이스트가 다시 유현의 검을 막았다.
  쾅!
  "크윽.“
  힘겨운 듯 신음하는 키라이스트응 보며 유현이 다시금 눈을 반짝였다.
  “제법인데?”
  물론 이대로 힘겨루기를 한다면 결과는 볼 것도 없이 키라이스트의 패배였다. 키라이스트는 무시미시한 압박감 때문에 이미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그때 귓가로 에이라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려!]
  그에 키라이스트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무시하며 귓가로 목소리가 전해졌다.
  [적을 베는 데 망설임을 가지지 마!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환영의 빈틈을 찾을 수있어!그는 완벽한 내각 아냐! 그를 베! 그는 내가 아냐!]
  에이라나가 계속 카라이스트에게 전음을 날렸다 키라이스트는 그녀가 에이라나와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다가 엄청난 오러 블레이드의 압박을 가하고 있어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라나의 전음을 듣고 정신을 차린 키라이스트는 유현을 자세히 바라다 보았다. 그러자 조금씩 유현이 에이라나보다 부족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키라이스트의 눈이 빛났다.
  ‘적을 베는 대 망설임을 가지지 마라!’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검을 꽉 쥔 키라이스트. 그러자 갑자기 검에서 뿜어지던 오러가 더 밝은 빚을 내기 시작했다. 검날을 타고 넘실거리던 오러가 서서히 검의 형태로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키라이스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바로 오러 블레이드였다.
  쾅!
  그이 검과 맞닿은 유현의 검이 튕겨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뿜어진 키라이스트의 오러 블레이드 때문이었다. 키라이스트는 그 상태로 바로 유현의 허리를 양단해버렸다. 유현 또한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히죽 웃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키라이스트는 그것을 채 보지 못했다. 그대로 탈진해 쓰러졌기 때문이다.
  키라이스트가 쓰러진 것을 본 에이라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루이스, 아레인 역시 쓰러져 있었다. 어쨌든 셋 다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서기는 했다.
  “제정신이냐? 마지막에 하유현을 등장시키다니, 내들 잡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휘안이 어이없다는 듯  타박 하자 에이라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건 나도 심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별생각 없는 듯한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런 실전이 아니라면 벽을 단시간에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당당한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휴 ... 네가 그럼 그렇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대륙은 어떻대?”
  에이라나의 물음에 휘안이 말했다.
  “실피드 말로는 아툰 제국과 로코 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한다고 하더군. 그리고 나머지 왕국들도 전쟁에 돌입한데.”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말했다.
  “좋아, 일주일 후 엘프 마을을 떠난다.”
  에리라나는 오드막 밖으로 나갔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중얼 거렸다.
  “흐음, 전쟁이라...... .”
  휘안은 침대 위에 누어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빨리 깨어나.”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명상에 들어갔다.
  에이라나는 엘프 마을 면두리의 오두막에서 나와 엘프 마을로 걸어갔다. 에이라나가 나타나자 마을 여기저기서 엘프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에이라나는 곧바로 그중 한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 엘프의 이름은 로카나. 토나카는 묵묵히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이라나의 기척을 느끼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입니까?”
  에이라나가 엘프 마을에서 지내는 몇 달 동안 그녀가 이렇게 직접 로나카의 집으로 찾아온 적이 없었다.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로나카를 바라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로카나, 이번에 인간들의 전쟁에 참여할 생각 없어?”
  그 말에 로카나가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뭔가를 짐작했는지 반문했다.
  “저보고 인간의 전쟁에 참여하라는 말입니까?”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강요하는 건 아니고, 그냥 묻는 거야.”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모카나가 되물었다.
  “에이라나 님은 어느 쪽에 살고 하십니까? 데프콘? 로코? 아님 아툰?”
  에이라나가 다시 답했다.
  “내가 말 안 했던가? 저 녀석들 아툰 제국의 고위 귀족들의 자제야.”
  고위 귀족이라고만 했지만 사실은 실권자들의 자제다. 물론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로카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툰 제국의 편에 선다는 뜻이군요.”
  그 말에 에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데프론 제국을 좋아하는 드래곤은 지금 아무도 없지.”
  그 말에 로카나가 에이리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에이라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넌 잘 모르겠지만 레니스가 그러더군. 데프론 제국이 가넝이가 부었는지 최근 몇 십 년 동안 지들이 대륙 최강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고. 드래곤도 무시한다던 걸? 그래서 열 받은 드래곤들이 데프론 지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모양인가 봐.”
  사실 드래곤들을 그런 짓은 잘 안 한다. 인간들의 나라를 망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에게 오는 이득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워낙 싸가지(?) 없는 정책을 펼치며 드래곤 까지 무시하는 데프론 제국을 보며 열 받은 몇몇 드래곤들이 데프론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제국이 겁 없이 대륙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데프론 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는 거의 전부 드래곤들이 한둘씩은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들은 현재 데프론 제국의 대륙전쟁 선포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이제 구실이 생겼으니 멸망만 시키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드래곤들은 데프론 제국의 멸망을 기회 삼아 이번에 한 판 제대로 유희를 들길 생각도 하고들 있었다. 최근 몇 백 년 동안이나 이렇게 큰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라샨 대륙의 평화기라고 해야 하나? 그랬기에 이번 전쟁은 역사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전쟁이라면 아무리 아툰 제국이라도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지사. 에이라나의 말을 모두 들은 모카나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에이라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전쟁을 통해 생각지 못한 발전을 얻을지도 몰라.”
  에리아나의 생뚱맞은 말에 로카나가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 에이라나는 그녀의 반응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로카나, 넌 인간들의 전쟁에 관여한 적이 없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로카나. 로카나 여태 살아오면서 직접 싸운 존재는 기껏해야 소수의 강자들과 몬스터들뿐이었다. 대규모 인간들의 전쟁에는 참여한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인간이 왜 그렇게 빠르게 발전을 하는지 알아?”
  그 말에 로카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인간이 빠른 발전을 이운다는 것은 인정하는지 별 대꾸는 없었다. 그랬다. 인간은 너무도 발전이 빠른 존재였다. 성장도 빠르다. 그리고 늙기까지 한다. 엘프들은 죽을 때에도 인간으로 친다면 삼십대 정도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인간은 죽을 때가 되면 꼬부랑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엘프들보다 발전이 빨랐다. 물론 인간 전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대다수를 제외하고서라도 소수의 인간들은 정말 대단했던 것이다. 에이라나가 덧붙여 설명했다.
  “엘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인간에게는 간한 욕망이란 것이 있어.”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던 에이라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욕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전쟁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로카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는 인간들이 얼마나 속되고 욕망이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도. 하지만 그런 행동은 로카나, 아니 엘프들이나 다른 유사인종들에게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인간들의 힘의 원천이기도 해.”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로카나와 눈이 마주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 욕망으로 인해 일어나는 전쟁이란 것은 검사에게 있어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
  로카나가 이 대목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수없이 몰려오는 적들에게 검을 이용하면 검사로서 한 단계 발전할 수도 있지.”
  그럴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로카나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망설이듯 그녀에게 평소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에이라나 님은 아직 성룡이 되신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런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군요.”
  로카나의 말에 뜨끔한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말했다.
  “아니, 뭐...... .”
  ‘전잰의 내 삶 자체가 전쟁 그 자체였으니...... .’
  속으로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였다.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던 로카나가 다시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에이라나 님의 말대로 한번 인간들의 전쟁터라는 곳으로 가보죠.”
  로카나의 말에 표정이 밝아진 에이라나가 말했다.
  “고마워.”
  에이라나의 말에 로카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도 뭔가 발전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로카나에게 에이라나도 따라 웃어주었다.
  데프론 제국은 오르칼 왕국을 공격하고 난 뒤, 사실상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특별한 명분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다른 여러 나라에서 비판을 들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침공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오르칼 왕국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단 남의 나라를 침공한 후 공성을 하니 못한 채 대패했다면... 어느 정도 피해보상을 해주는 것이 대륙에서는 일종의 관례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렇데 않으면 그 나라는 모든 나라에 신용을 잃었다. 참 이상한 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패를 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데프론 제국을 향해 오르칼 왕국에서는 너무도 어이없는 피해보상을 요구해왔다. 바로 4,000만 골드를 변상하라는 것! 그 정도면 제국의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돈이었다. 그렇기에 협상을 한다, 뭐다 해서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그 정도 보상을 할 바에는 그냥 오르칼 왕국을 공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을 신용을 잃을 수 없다는 아프콘 공작의 말에 없는 것으로 되었다. 수많은 외교관들이 달려들어 어찌어찌 보상금액을 3,000만 골드로 낮추기는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금전적으로 무시무시한 피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 3,000만 골드를 데프론 제국에서는 백성들의 세금으로 돌리고 백성들을 짜내고 있었다. 귀족들은 돈을 하나도 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그렇게 오르칼 왕국에 의해 데프론 제국의 발호가 주춤했다. 제국은 아프콘 동작의 부상과 예상외의 병력손실 때문에 전쟁 시기를 조금 늦춘 데프론이었다.
  키라이스트와 루이스, 아레인은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빨리 준비해.”
  에이라나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에이라나는 옆에서 검을 손질하고 있는 휘안을 바라본 뒤 밖으로 나갔다. 자신이 설치한 진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에이라나가 밖으로 나가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벌써 돌아갈 때가 되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는 키라이스트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기산은 원래 그런 거야, 천천히 가는 것 같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 바로 시간이야.”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바라보는 세 사람. 그런 세 사람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는 시간 속에 언젠가 이별이 있기도 마련이지.”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향해 루이스가 말했다.
  “아무리 이별이 있다 하여도... 놓치기 싫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 그 놓치기 싫은 것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루이스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인생이란 게 다 그렇게 말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그렇게 말한 휘안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자신도 밖으로 나갔다. 그런 휘안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루이스였다.
  대륙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수많은 나라들이 병사를 징병하고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어떤 나라는 강제징병을 하는 곳도 있었다. 전쟁에 가장 많은 병사를 모은 것은 역시 세 제국이었다. 아툰 제국이 75만, 로코 제국이 80만, 데프론 제국이 110만, 그리고 각 세 나라를 지지라는 나라들을 합치면 총 군사의 수는 500만이 넘어갔다. 그야말로 역사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숫자의 군사들이었다.  하지만 아툰 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그 군세보다도 어느 특별한 존재들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흑안의 검사와 은빛 가면의 여검사, 즉 에이라나와 휘안의 행보였다. 지금 같은 시기에 그랜드소드마스터 둘은 어마어마한 전력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나라가 그 두사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아툰 제국에서는 그 두사람의 안건에 대해서는 느긋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흐음... 데르나 공작,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그 다섯 사람이 귀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아툰 황제의 말에 데르나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예, 며칠 뒤에 돌아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아툰 황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 제국 중 우리나라가 가장 병사 수가 적기는 하지만...우리나라에는 세 명의 그랜드소드마스터가 있소이다.”
  기쁜 기색을 채 숨기지도 않고 말하는 황제의 말에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말대로다. 그랜드소드마스터. 이 호칭은 정말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소드마스터의 검풍처런 칼바람을 일으켜 적을 베는 것이 아닌, 직접 오러 블레이드를 내쏘는 그랜드소드마스터는 정말 엄청난 존재였다.  오러 블레이드의 위역은 검풍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엄청난 마나를 잡아먹기는 하지만 그 정도를 감수하지 못한다면 그랜드소드마스터의 이름이 운다. 그랜드소드마스터는 혼자서 그야말로 수천의 병사들도 거뜬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수가 가장 적음에도 불구하고 아툰 제국의 수뇌부들은 모든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륙이 폭풍전야든 말든 에이라나와 휘안은 어제나와 마찬가지로 천하태평이었다. 심지어 같은 일행이 된 로카나 또한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야말로 태평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아레인이 말했다.
  “두 사람은 곧 전쟁이 일어나는데 정말 태연하네?”
  그런 아레인의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긴장하리?”
  에이라나의 말에 아레인이 말했다.
  “어느 정도 긴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말이 맞았다. 아무리 그랜드소드마스터라도 전쟁 앞에서는 어느 정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 두사람은 천하태평이었다. 아레인의 말을 휘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았다.
  “뭐... 정신력이 강해지면 그런 사태가 눈앞에 닥쳐와도 어느정도 태연할 수 있어.”
  차분하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모두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런 일행의 시선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에이라나와 나는 무인이야. 툭 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강자들과 많이 싸웠지. 내 손에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도 많아서 얼마나 죽였는지 나도 몰라...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말이야. 그리고 에이라나가 있던 곳은 더욱 살벌한 곳이기 때문에... 에이라나는 손에 피 마를 날이 없이 살았거든...”
  휘안의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휘안과 에이라나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휘안의 말은 사실이었다. 에이라나와 휘안이 중원에 있을 때는 무림맹, 사황련, 마교까지 이렇게 세 분파가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고있었다. 특히 무림맹과 사황련은 자주 충돌을 해왔고 마교 내에서도 에이라나는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암살을 시도하는 이들 때문에 매일 피를 보고 살았다. 그렇게 그들이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야~ 이거 엄청난 미녀가 두 명이나 있는데?”
  “호오~ 그러게? 오늘 참 운 좋군.”
  이런 장면에서 흔히 나올 법한 대사가 에이라나 일행에게 들려왔다. 그쪽에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웬 불한당들이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에이라나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탐욕스러운 시선은 특히 에이라나와 로카나에게 강렬하게 향하고 있었다. 거친 생황을 하는 용병들에게 있어 여행자로 보이는 에이라나 일행은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고른 상태라는 걸 알지 못했다.
  “헤이! 이쁜이들! 우리가 합석해도 될까?”
  한 사내가 느끼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휘안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합석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휘안은 저런 종류의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겁대가리 없는 날건달들은 호위무사가 없으면 늘 자신들의 일행에게 찝쩍대곤 했다. 그리고 뭣 모르는 후기지수들도 여러 찝쩍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들은 대부분 뭘 모르는 새파란 애송이들이나 강호에 처음 나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신들의 문파나 가문을 믿고 설치는 이들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그들의 마지막 행보는 거의 땅바닥과 인사를 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휘안의 말에 용병 한 명이 얼굴을 팍 찡그러며 말했다.
  “어디서 계집애 같이 반반한 얼굴을 가진 사내새끼가 형님들 말씀에 말대꾸를 하는 거야!”
  “흐흐흐... 얼굴은 꼭 기생오라비처럼 생겨가지고...”
  “그러고 보니 순 애새끼들밖에 없잖아?”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어린 에이라나 일행을 보며 그들을 비웃었다.  저런 멤버로 여행을 하다고? 그것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 말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일행의 실력을 모르느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여기에서 로카나만 해도 홀로 수천의 병사들을 상대 가능했다. 그리고 휘안은 자그마한 소왕국 하나는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강했다. 에이라나? 그녀는 출생부터가 드래곤이다. 그것도 자신 또래의 드래곤보다 배는 강한 드래곤. 나머지 셋도 초급이긴 하지만 엄연한 소드마스터이니 이 정도면 어디 가서도 밀리기는커녕 군대라도 상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용병들의 말에 아직 어린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이 울컥해서 검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먼저 나선 이가 있었으니.
  “이런 것들은 어딜 가나 있나 보군.”
  바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에이라나였다. 그러자 그런 에이라나의 눈부신 미모에만 정신이 나간 용병들이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우리 같은 멋진 남자들은 보기 힘든 텐데?”
  그런 용병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개소리.”
  그 말에 용병들이 멈칫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휘안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나 보다. 중원에서도 저건 개 지랄을 떠는 것들이 넘쳐흐르더니... 이런 곳에도 저런 쓰레기들이 있기는 하네?”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에이라나가 다음에 취할 행동은 자신은 잘 안다. 아니, 그전에 용병들이 취할 행동은...
  “이 계집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죽고싶나!”
  그런 그들을 보며 로카나가 말했다.
  “처리할까요?”
  로카나의 말에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완전히 폐인을 만들어버리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퍽!
  다음 순간, 순식간에 용병들 앞에 나타난 에이라나는 여관 바닥을 한 손으로 짚은 채 몸을 틀어 발뒤꿈치로 한 용병의 턱을 가격하고 있었다.
  “크억!”
  그 용병은 턱뼈가 으깨지면서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뭐, 뭐야!”
  “어, 어떻게!”
  갑작스럽게 에이라나가 자신들의 동료의 턱을 완전히 아작 내버리자 당황했다. 그런 에이라나의 체술을 보며 일행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란 듯한 일행을 향해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라나는 검술이 아니라 권각술도 검술보다 조금 떨어질 뿐이야. 한마디로 저 녀석을 나랑 권각술로 붙어도 될 정도로 강해.”
  한마디로 만능 살인병기라는 소리였다.
  “체, 체술이 뒤어난 줄은 알았지만 그런 어이없는...”
  아레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도 여러 번 얻어터진 적이 있다. 에이라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한 명, 한 명 용병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땅바닥에 눕는 용병들은 하나 같이 뼈가 탈골되어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이것만 봐도 한 번 기분이 상한 에이라나가 얼마나 성격이 더러워지는지 잘 보여주는 한 예가 되리라. 용병들을 눕혀버린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실력은 개뿔도 안되는 것들이 꼭 쌩지랄을 떨어요.”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는 자리로 와서 태연하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앉았다. 숨결조차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다른 일행은 그저 에이라나의 작품에 무어라 말 한마디 못한 채 어색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이라나 일행이 엘프 마을에서 나와 숲을 벗어나는 데는 일주일 정도가 걸렸고, 그사이 그들은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처리해가며 수련까지 덤으로 했다. 물론 몬스터 처리는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의 몫이었다. 실전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진 속에서의 싸움과 에이라나의 비무에서 뼈저리게 실감한 그들이었기에 기회가 날 때마다 검을 휘두르는데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것이 가장 큰 발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새 아투 제국에 진입해 있었다. 지금 대륙은 하나의 커다란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피바람이 불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 모두는 한시라도 빨리 수도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에이씨, 진짜! 저것들 확 다 죽여 버릴까?”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다시 나타나는 산적 무리 때문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도진 에이라나였다. 녹림이 있던 중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만에도 두세번씩 나타나는 산적 무리 때문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폭발 직전인 에이라나를 보며 한숨을 푹 쉰 휘안이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대륙 전체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때기 때문에 흉흉하다고, 이런 시기에 산적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소리쳤다.
  “이건 심하잖아!”
  소리를 버럭 지른 에이라나가 눈앞에서 낄낄 거리며 얼쩡거리는 산적들을 보며 말했다.
  “저것들 내가 죽인다, 비켜.”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를 보고서 얼굴을 찌푸리며 산적들에게 달려들려던 아레인이 움질하며 비켰다. 에이라나는 살벌한 눈으로 산적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산적들이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저 여자가 우리에게 덤빌 모양인데?”
  두목으로 보이는 이의 말에 그 뒤에 서 있던, 대략 30명 정도 되는 부하들이 낄낄거렸다.
  “그러게요, 두목. 빨리 뺏을 거 다 뺏고 저 여자들은 우리산채로 데리고 가지요?”
  한 부하의 말에 산적 두목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럴까? 크흐흐... 정말 얼굴은 최고로군.”
  그런 산적의 말에 에이라나가 히죽 웃었다.
  “네놈들... 절대 곱게 안 죽인다. 안 그래도 매일 나타나는 떨거지들 때문에 짜증나서 미치겠는데... 스트레스 좀 풀자.”
  예쁜 얼굴로 살벌하게 말하는 에이라나의 말에 산적들이 다시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정말 맹랑한 계집이군! 하긴! 계집은 앙칼진 것도 좋지!”
 그런 산적 두목의 말에 에이라나는 속된 말로 뚜껑이 열렸다.
뻐억!
  에이라나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가 다음 순간 산적들 앞에 나타나 발로 그들의 머리를 갈겨버렸다.
  “허억!”
  “하하하! 다 죽었어!”
  그 이후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폭력. 그녀는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듯 신나게 산적들을 패기 시작했다. 지난번 용병 때와 마찬가지로 신나게 산적들을 두들기는 에이라나를 보며 말리지도, 응원하지도 못하는 휘안을 제외한 일행.
  “하아.. 저 녀석을 불쌍하네.”
  한참 만에 일행의 심정을 대변하듯 휘안이 중얼거렸지만 일행이 무슨 생각을 하든 에이라나는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뿐이었다.
  현재 화약고가 되어버린 리샨 대륙.
  심지어 드래곤들마저도 이 흥미로운 전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드래곤들 중 하나인, 실버 드래곤 에이라나. 에이라나는 아툰 제국을 돕기로 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툰 제국 고위 귀족들의 후계자들인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수도로 향하던 중 날이 어두워지자 숲에서 야영을 결정한 일행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에이라나, 휘안, 로카나,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이 그들이었다.
  “내일이면 수도에 도착하네?”
  키라이스트가 손에 쥔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쑤시며 말했다. 그러자 루이스가 대답했다.
  “긴장된다...”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물었다.
  “아직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해?”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전쟁이잖아. 사람을 죽이는데... 어떻게 긴장 안 할 수 있어?”
  키라이스트의 말에 루이스와 아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에이라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사람이란 그런 거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같은 동족을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지.”
  에이라나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세사람. 그런 세사람을 향해 휘안이 말했다.
  “에이라나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사람은 악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한 거야. 그렇기에 인간이란 생물이 개성적인 거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들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잠시 말을 멈춘 휘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악한 사람의 대부분이 권력층이라... 이런 전쟁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런 휘안을 향해 에이라나가 냉소하며 말했다.
  “특히 귀족들이나 권력층들은 짜증나 죽겠어, 앞에서는 위선자처럼 떠들어대지만 꼬 뒤는 구리구리하단 말이야. 자신들이 반드시 옮은 줄 알고 착각하는 것들.”
 에이라나의 말에 귀족인 세 사람이 움찔했다. 그러자 그런 에이라나를 툭 치며 휘안이 말했다.
  “너도 마교의 소교주였잖아?”
  그 말에 에이라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하지만 무림맹 것들이랑 다르게 천마교인들은 순수하기는 하지, 너희 정파는 앞으로 위선자처럼 떠들지만 뒤어서 하는 짓은 우리 천마교보다 더 악질적이잖아? 그리고 다 음흉해가지고서는...”
  그 말에 휘안조차도 입을 다물었다. 에이라나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휘안을 모벼 에이라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장로들에게 뒤통수 얻어맞아 이렇게 된 나도 그다지 할말은 없지만.”
  에이라나의 자조적인 미소를 보며 휘안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복수할 거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잔인해 보이는 미소였다.
  “글세... 만약 갈 수만 있다면 받은 것에 이자를 더해 철저하게 파멸시켜야겠지?”
  그 미소에 휘안은 온몸에 섬뜩함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은 비단 휘안뿐만이 아니었다.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 로카나까지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휘안이 잊고 있었다. 에이라나가 전생에 마교의 소교주였다는 것을. 그가 얼마나 강한 정신력과 복수심을 가진 자인지, 받은 것은 반드시 배로 돌려준다는 마교의 인물임을 그는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황궁 속 던전
  아르키아 공작이 저택으로 들어서는 다섯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버지.”
  키라이스트가 반갑게 부르며 아르카아 공작에게 다가갔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품에 안은 아르카아 공작이 키라이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따.
  “어서 와라, 키라이스트.”
  아르카아 공작이 그렇게 말하며 아들인 키라이스트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부드러운 백금발에 초록색 눈동자가 너무도 아름다운 자신의 아들. 그런데 그런 아들의 기세가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채고 절로 감탄사를 터트린 아르카아 공작이었다. 아들의 기세는 소드마스터의 그것이었다. 키라이스트뿐만이 아니었다. 키라이스트의 친구인 루이스와 아레인까지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든 것 같았다. 아르카아 공작이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셋을 모두 소드마스터로 만들다니, 대단하이!”
  아르카아의 말에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뭐, 더 강해지게 만들 수있었는데 애들 엄살이 심해서요.”
  그 말에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가 동시에 몸을 떨었다. 다음번에는 그녀가 자신들을 강하게 만들겠다며 절벽에서 던져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인 아르카아 공작은 허허허 웃다가 문득 에이라나 뒤에 있는 로카나를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분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르카아 공작이 다음 순간 흠칫 굳었다. 바로 로카나의 뾰족한 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가 자신이 아는 그 누군가와 너무도 비슷했다는 것에 더 놀랐다.들까지 오는 연드색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깊은 숲보다 더욱 깊은 금안을 가진 검사! 등에 자신의 몸보다 큰 대도를 매고 있는 그녀! 그것이 바로 세간에 알려진 파괴의 로카나와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르카아 공작을 보며 에이라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쪽은 로카나라고, 대륙의 그랜드소드마스터 중 한 사람입니다.”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아 공작이 소리쳤다.
  “여, 역시!”
  아르카아 공작의 외침에 로카나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카나라고 합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듯 한마디를 한 로카나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짓던 아르카아 공작이 말했다.
  “마침 오늘 황궁에서 파티가 열리기로 했는데 다같이 가면 되겠구나.”
  그 말에 에이라나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전쟁이 코앞인데 파티가 되나요?”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아 공작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전쟁에 대해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떨쳐버리자고 하는 파티 아니겠는가?”
  그런 아르카아 공작의 말에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곳에서 귀족이 저쪽에서는 무림맹이나 다름없구만.”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말했다.
  “왜 또 무림맹을 걸고 넘어져?”
  그의 말에 에이라나가 휘안을 비웃으며 말했다.
  “하는 짓이 꼭 똑같잖아? 정사대전 같은 거 일어날 때면 꼭 잔치 같은 걸 열었잖아? 그래서 뒤통수 얻어맞은 적이 한두 번인가? 뭐 다구리에 장사 없듯이 물량으로 밀어붙여 이기기는 하지만.”
  그런 에이라나의 빈정거림에 휘안은 또 할 말을 잃었다. 역시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끼어들지도, 말리지도 못하는 주위 사람들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말싸움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찬아온 정적을 깬 이가 있었으니.
  “전 파티에 안 갑니다.”
  로카나가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런 로카나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래, 가지 마. 누가 가라고 했냐?”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로카나 님은 안 가네요?”
  그런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대답했다.
  “인간들이... 그것도 콧대 높은 것들이 널린 곳에 가고 싶겠어? 그들은 이종족을 노예로 쓰는 것들이야. 로카나가 가면 피바람이 불걸?”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로카나의 몸에서 시퍼런 살기가 피어올랐고 그 살벌한 기세에 응접실에 있던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물론 에이라나와 남궁휘안을 제외하고 말이다. 휘안이 그런 로카나의 살기를 보며 말했다.
  “자, 로카나 진정해요, 진정.”
  그런 휘안의 말에 숨을 들이마신 로카나가 살길ㄹ 진정시키며 말했다.
  “전 안 갈 겁니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담을 삐질 흘린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누나랑 형은 갈 거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내가 왜?”
  그 말에 키라이스트는 당황했다.
  “아, 안 갈 거야?”
  “내가 왜 가야 하는데?”
  “왜, 왜 안 가?”
  “귀찬으니까.”
  키라이스트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에이라나의 태도에 같이 응접실에 있던 루이스와 아레인도 당황했다. 루이스가 휘안을 보며 물었다.
  “형, 형도 안 갈 거예요?”
  그 말에 휘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랑 에이라나는 그런데 체질적으로 안 맞아서 말이야.”
  그런 휘안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안 돼! 같이 가자!”
  갑작스러운 키라이스트의 돌발 발언에 에이라나가 슬쩍 호기심이 동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잠시 후 다시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싫어.”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이번에는아레인이 물었다.
  “왜 안 가는데?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말했지? 체질적으로 그런데 안 맞는다로. 그리고 너희는 왜 날 그렇게 못 데려가서 안달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셋은 일제히 당황했다. 그리고 머리를 맞대고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에이라나 누나를 못 데려가서 안달이지?’
  ‘흐음~ 이유가 뭘까?’
  ‘크흠... 이유라고 하면...’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세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누나의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
  참 솔직한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에이라나의 이마에는 십자 마크 하나가 빠직 생겨났으며, 어느새 손바닥에는 장풍을 모으고 있었다.
  “그 입 닥쳐!”
  퇑!
  “끄악!”
  “켁!”
  “커억!”
  장풍은 당연히 세 사람에게 날아갔다. 로카나는 장풍을 보며 놀라워했지만 휘안은 그런 세 사람의 말에 큰 소리를 내며 웃을 뿐이었다. 뭐, 웃다가 에이라나에게 얻어터지고 말았지만.
  귀족들의 파티는 화려하다. 특히 황궁에서 열리는 파티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황궁 중앙홀에서 열리는 이번 파티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날려버리자는 의미의 파티였고, 아툰 제국의 황제가 직접 연 성대한 파티였다. 잘 보이려는 지방 귀족들까지도 부랴부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파티 준비에만 무려 한 달이나 걸린 성대한 파티였고, 이 파티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바로 베일에 싸여있는 두 사람, 에이라나와 휘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정작 그런 두 사람과 같이 왔어야 할 키라이스트와 루이스, 아레인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파티가 열리는 구석에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린 솔직하게 우리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맞았어...”
  에이라나에게 맞은 게 너무도 서러운 나머지 울고 있는 두사람. 그런 키라이스트와 아레인을 본 루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평소보단 덜 맞았잖아?”
  하지만 그렇게 말한 루이스도 잠시 후 절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루이스와 키라이스트의 얼굴은 좋게 말하면 예쁘장하게 생겼고 나쁘게 말하면 여자처럼 생겼다. 그리고 아레인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요즘 유행하는 미소년이랄까? 키라이스트와 루이스는 드레스를 입혀 놓으면 여자애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그런 세 사람이 침울해하고 있자 주위에 있던 남녀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두근거렸다.  특히 남자들은 루이스와 키라이스트를 보며 마음이 두근거리는 자신들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게 세 소년이 침울해 하고 있을 때였다.
  “오빠, 왜 그렇게 침울해하고 있어?”
  루이스의 쌍둥이 동생인 루리아와 친구인 에르인이 다가왔고, 에르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꼭 얻어터진 강아지처럼 왜 그렇게 구석에 찌그러져서 침울해 하고 있어?”
 에르인의 물음에 루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얻어터진 거 맞아.”
 그 말에 루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에르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너희들을 패?”
  에르인의 말에 세 사람은 머뭇거렸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얻어터진 걸 말하는 게 무슨 자랑이겠는가, 부끄러운 일이지. 그렇게 머뭇거리는 세 사람 대신 대답을 해준 것은 정말 의외의 사람이었다.
  “내가 저 녀석들 팼다? 불만 있냐?”
  이 파티에서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에르인과 루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 보았고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도 놀란 듯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처음보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은빛과 검은빛이 조화를 이루는 소매가 길고 바지 통짜가 넓은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그 바지 위에 치마 같은 것을 겹쳐 입고 있었는데, 그 치마는 한쪽이 붙어 있지 않고 길게 찢어진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럿은 무림풍이기는 했으나 그것을 대륙인들이 알 리가 없었다. 허리에는 은빛 검과 흑빛 검을 차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흑선과 은선을 차고있는 사람, 그녀는 바로 은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가 세 사람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아까 전부터 하는 꼬라지를 봤는데 참 가관이더라?”
  에이라나의 말에 세 사람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 세 사람을 무시하며 루리아가 말했다.
  “와~ 오랜만이에요.”
  루리아의 말에 에르인도 물었다.
  “아르카아 공작님 말로는 파티에 안 온다던데요?”
  에르인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세 녀석이 좀 와달라고 하도 매달리기에 왔는... 짜증만 날 뿐이다.”
  에이라나의 말에 땀을 삐질 흘리는 루리아와 에르인이었다.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림맹 연회보다 수십 배는 화려하네.”
  바로 휘안이었다. 휘안의 목소리에 루리아와 에르인의 시선이 휘안쪽을 향했다. 그 역시 에이라나와 같은 중원식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입은 것은 에이라나가 만들어두었던 남자 옷이었다. 일종의 연회복이었는데, 은빛 실크로 만들어진 옷으로 휘안의 흑발과 흑안에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런 휘안을 본 루리아와 에르인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휘안은 저 처자들이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갸욱거렸다. 그때 아레인이 물었다.
  “그런데... 왜 드레스 안 입고 와?”
  눈치 없는 아레인의 물음. 그 말에 휘안이 다시 킬킬거리기 시작했고 에이라나는 빙글 몸을 돌리며 웃는 맟으로 아레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응? 뭐라고?”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리고 있는 에이라나. 그 살기에 역시 찔끔한 아레인이 말했다.
  “아니에요...”
  그 쿨하고 당당한 아레인을 저 모양 저 꼴로 만드는 에이라나와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주위 사람들.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 루이스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활기차게 말했다.
  “그나저나 처음 보는 모양의 옷들이네요? 그래도 참 잘 어울령ㅅ.”
  루이스의 말에 휘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고향에서 입는 옷들이거든.”
  하지만 에이라나는 투덜거렸다.
  “쳇, 나도 저 옷 입으려고 했는데...”
  에이라나가 입고 있는 옷은 전생에 하유현이 입던 옷과 많이 비슷했다. 남자 옷도 아니고 여자 옷도 아닌 중성적인 스타일의 옷이지만 굳이 여자 옷이냐, 남자 옷이냐 따지면 여자 옷에 가까운 옷이 지금 에이라나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여성스러운 아음다움이 강한 에이라나의 얼굴에는 절대로 휘안이 입고 있는 남자 옷은 전혀 안 어울렸던 것이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아서라, 옛날에도 안 어울렸던 옷 지금은 더 안 어울리지.”
  그 말에 얼굴을 찌푸지는 에이라나 였다. 저 말의 뜻은 ‘암자였을 때도 안 어울렸던 옷인데 여자 됐으니 오죽 안 어울리겠냐?’라는 무척이나 심오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 에르인, 루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호오~ 귀찮아서 안올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더니만, 왔구나?“
  그때 아르카아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에이라나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당연히 아르카아 공작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인자한 얼굴을 한 할아버지였다. 은빛 머리카락에 인자한 은빛 눈동자. 특히 그 은빛 눈동자는 조금 놀란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에이라나도 눈을 크게떴다. 모습은 많이 달랐지만... 자신이 아는 그 누군가의 기운과 판박인 기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의 모습에 놀라고 있을 때 에르인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엘로난 님.”
  황궁수석마법사 엘로난! 그는 9서클 마스터에 대현자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대륙에 단 세 명뿐인 9서클 마법사였다. 에르인은 마법사였고, 엘로난은 그녀에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평소에 사람을 꺼리는 성격 때문에 황궁의 자신의 연구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 엘로난이 오랜만에 파티에 나왔으니 에르인은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평소라면 인자하게 웃어주었을 엘로난이 에이라나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의아한 일행이었다. 한참만에 그런 엘로난을 향해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아툰 제국의 수석 마법사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허허허... 에이라나야, 난 세간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만든 그랜드소드마스터가 너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대화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굳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이라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해요?”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엘로난... 아니, 엘란카넌은 엄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허! 그럼 손녀는 이 할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단 말이냐?”
  어느새 남궁휘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야! 에, 에이라나. 그럼 이 사람이...”
  휘안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외할아버지셔.”
  쿠궁!
  에이라나의 폭탄 발언에 아르카아 공작과 휘안 그리고 나머지 다섯의 얼굴은 굳고 말았다. 아툰 제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엘로난 후작. 그의 손녀가 바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에이라나의 할아버지였다니! 모두가 그 놀라운 사실에 경악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전 엄마가 없는 고아예요, 할아버지는 몇 년 전 제 외할아버지였다는 것이 밝혀지신 분이고요, 전 이때까지 고아로 자란 사람이에요, 알겠죠?”
  에이라나는 작은 목소리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엘란카넌에게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란카넌은 어이없다는 듯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기 멀뚱히 우리를 구경하는 애는 어떡하고?”
  엘란카넌이 가리킨 곳에는 휘안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에이라나와 엘란카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휘안을 바라보며 에이라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녀석을 제 정체를 알아요. 그리고 할아버지를 봤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마나를 느끼고 할아버지의 정체를 단박에 눈치 챘을걸요?”
  그말에 엘란카넌이 휘안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휘안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인사하던 휘안을 쳐다보던 엘란카넌이 중얼거렸다.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구나?”
  그 말에 막 인사하고 고개를 들어 올리던 휘안도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나 기분이 좋던 에이라나도 굳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엘란카넌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왜? 내가 단번에 저 아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 놀라우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엿다. 그런 에이라나를 본 엘란카넌이 싱긋 웃으며 에이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건 저 아이의 몸속에 돌고 있는 마나와 공기 속에 스며든 마나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란다. 저 아이는 인간이면서도 이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르지. 그것 때문이란다. 보통 내 나이쯤의 고룡이 되면 다 알 수 있는 있지.”
  그 말에 에이라나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혹시 자신도 이세계의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 들킨 것이 아닐까? 에이라나는 불안한 눈으로 엘란카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500년 동안 살아오면서 아주 잘 느꼈다. 드래곤이 어떠한 존재인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존재, 그리고 자신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본질은 인간이었다. 정생에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엘란카넌이 자신을 보며 차갑게 말할까 봐 무서웠다.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것을 들킬까 봐 무서웠다. 에이라나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버리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엘란카넌.
  “에이라나야, 왜 그러느냐?”
  의아하게 묻는 에란카넌을 보며 정신을 차린 에이라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고아예요 그리고 되도록 저랑 남인 것처럼 행동해주시면 좋겠어요, 아르카아 공작이랑 그 애들한테는 제가 잘 말할 테니.”
  에이라나의 말에 엘란카넌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쩝, 이 할아비랑 같이 행동하지 않겠다는 거냐? 그건 아쉽구나. 그리고 에랴나니스가 네가 고아로 유희를 설정했다고 하면 난리를 피울 것이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지금 난 하유현이 아냐... 에이라나야.’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에이라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자신은 더 이상 하유현이 아니라고. 그래도 남자에 대한 미련은 못 버리는 에이라나였지만 말이다.
  에이라나가 엘란카넌과 이야기를 하고 키라이스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 다섯이서 이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에이라나를 발견하고는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런 다섯 사람을 보며 휘안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
  휘안의 물음에 아레인이 말했다.
  “아니, 에이라나 누나가 엘로난 님의 손녀라는 것에 꽤 충격이었거든.”
  그런 아레인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나도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몇 년밖에 안 됐어.”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엘로난 후작님이 자신의 자식은 모두 죽고 손녀만 하나 남았다고 했었지?”
  그런 루이스의 중얼거림에 에이라나는 속으로 삐질 땀을 흘렸다.
  ‘엄마가... 죽어? 그럼 이번 유희때 우연히 엄마를 만나면 무시하고 나만 아는 척하겠다, 이 말이잖아?’
  설마하니 에랴나니스의 설정을 미리 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 했던 에이라나였다. 그리고 엘란카넌의 철저함에혀를 내두르는 에이라나 였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에이라나가 다섯 사람을 보며 말했다.
  “내가 할아버지의 손녀라는 것은 잠시 동안 입 다물고 있어, 아르카아 공작님이 그런 거 말하고 다닐 타입도 아니니... 너희만 조용히 하면 되겠네.”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루이스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딱 잘라 말했다.
  “귀찮아서.”
  에이라나에게 있어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에이라나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휘안을 제외한 일동. 그러다가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하긴, 작위도 귀찮아서 마다하는 사람이니...”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제야 네가 나란 사람을 좀 이해하는 구나.”
  그렇게 중어거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 키라이스트. 그때 일행에게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루리아는 금발에 녹안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고는 에르인을 콕콕 찔렀다. 에르인도 그 사람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는 바로 아툰 제국의 황태자 였다. 갑작스러운 에르인의 인사에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의 시선이 모두 에르인이 인사한 쪽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키라이스트들의 또래의 소년이 어색한 표정으로 일행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툰 제국의 황태자는 키라이스트들과 동갑인 18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황태자 전하.”
  그들은의 인사에 아르카스 룬 아툰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친구인데 그런 인사는 접어두지?”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황태자의 말에 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보는 눈이 있든 없든 늘 당당한 두 사람이 있었으니.
  “아~ 이 사람이 아툰 제국의 황태자야?”
  바로 에이라나와 휘안이었다. 휘안은 눈앞의 미소년을 보며 감탄했다. 황태자의 외모는 키라이스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에이라나도 아르카스를 보며 중얼거겼다.
  “뭐야, 아직 애잖아? 키라이스트랑 별로 나이차도 없어 보이네?”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아르카스를 보며 말했다.
  “이봐, 황태자. 내가 아무한테나 고개 숙이지 않거든? 좀 뻣뻣해도 이해 좀 해줘.”
  처음부터 반말을 사용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아르카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18년을 살아오면서 저런 타입의 여자는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르카스를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하하하... 원래 좀 저런 사람이니 이해 좀 해주세요.”
  루이스의 말에 황태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루이스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루이스. 원래 그런 사람? 이 말이 조~금 기분 나쁜데 말이야. 나랑 살짝 면담 좀 할까?”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세차게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격렬하게 찰랑거렸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별 감흥 없는 눈빛으로 루이스의 머리칼을 덥석 잡더니 음산하게 중얼거였다.
  “오래 살고 싶으면 말조심해야지, 안 그래?”
  “하하... 그, 그렇죠.”
  “그치? 히히히히히.”
  에이라나의 차가운 눈을 보며 루이스는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저 이상한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런 루이스를 구해준 것은 휘안이었다.
  “네 성격이 뒤틀린 건 맞으니 애 머리좀 놓지 그러냐?”
  “씹! 죽을래?”
  에이라나가 휘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중에 유일하게 에이라나와 말싸움이 가능한 휘안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그렇게 대치하는 두 사람을 보며 아르카스가 분위기를 환기 시킬 졈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보다, 그거 들었어? 우리 황궁에서 던전 하나가 발견됐다는 거 말이야.”
  그 말에 으르렁거리던 에이라나와 휘안도 관심을 가지며 고개를 들었다.
  “헤에~ 황궁에서 던전이 나와요?”
  높은 직책을 가진 이에게는 그래도 존대를 하는 휘안이 아르카스에게 묻자 아르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해다.
  “네, 그것도 아주 엄청난 크기의 던전이죠, 저희도 그런 것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적어도 수천 년은 된 것처럼 보였어요.”
  아르카스의 말에 아레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던전이 수천 년 이상 보존되는 것이 가능한가요?”
  아레인의 말에 아르카스가 말했다.
  “엘로난 후작님의 말로는 수천 년 전의 건축 문양이라고 하던 걸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대단위 보존 마법이라도 걸려 있나?”
  “그렇다더군요.”
  에이라나의 작은 중얼거림에도 충실히 대답하는 아르카스. 그런 아르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드래곤이 만들었나? 아님 인간 고위마법사들이 모여서 만들었나?’
  아르카스의 말에 의하면 던전은 엄청난 크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던전 전체에 보존마법을 걸려면 어마어마한 마나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인간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황태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얼마 뒤에 그 던전에 사람을 보낼 생각이죠.”
  그런 황태자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던전이 어디 있어요?”
  “황궁 외각에 있는 큰 정원에서 발견됐지. 다행이 그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렇게 말하는 아르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나도 거기 가도 되나?”
  그 말에 아르카스가 멈칫했다. 그리고 당황한 눈으로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 키라이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거길... 간다고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호기심이 동하네?”
  “던전이라면 무슨 무덤 같은 거 아냐?”
  휘안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했다.
  “나도 갈래.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아르카스가 당황하며 말했다.
  “저, 위험할 텐데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스릴 넘칠 것 같은데?”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던전을 뭘로 보는 거야? 그리고 엄청난 던전 같다잖아. 위험해!”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야, 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어?”
  에이라나의 말에 멈칫하는 키라이스트.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넌 가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는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기 바로 에이라나야, 은빛 가면의 여검사!”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도 말했다.
  “이 녀석은 누가 걱정해야할 만큼 약한 녀석이 아니니까, 걱정 마.”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반박도 할 수 없는 키라이스트였다.
  에이라나는 황궁에 발견된 던전에 들어갈 것이라고 아르카아 공작에게 말했다. 그 말에 잠시 당황했던 아르카아 공작은 에이라나를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국 허락했다. 그리고 덧붙여 엘로난과 에이라나의 관계도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던전이 있다는 황궁 안 정원으로 찾아간 에이라나. 에이라나와 휘안을 제외한 로카나도 꼽사리 끼어 있었다. 던전이 있는 곳으로 간 에이라나는 문득 사람이 아무도 없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왜 사람이 아무도 없다냐?”
  분명 엄청난 인원수가 가기로 한 듯한데 말이다. 그렇게 의아한 듯 중얼거리는 에이라나의 말에 대신 대답한 것은 낭랑한 목소리였다
  “엘로난 후작님과 아르카아 공작님이 소수인원만 가도록 손을 쓴 상태입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서 열두 사람이 있었다. 아르카스와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 루리아, 에르인. 그리고 마법사 넷과 검사 두명이 보였다. 검사 둘은 소드마스터급의 검사였다. 그리고 마법사 넷은 모두 6서클급 마법사, 거기에 에르인도 6서클 마법사에 루리아는 중급 정령사라면 이건 실로 대단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수가 줄었다?”
  에이라나의 중얼거림에 휘안이 물었다.
  “원래 100여명정도가 가기로 하지 않았나요?”
 휘안이 아르카스를 보며 묻자 아르카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랜스소드마스터 두명이 간다면 그렇게 많이 갈 필요가 없다고 결정이 났거든요.”
  그 말에 휘안이 말했다.
  “정확하게는 세 명이죠.”
  “예?”
  휘안의 말에 아르카스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아르카스를 보며 아레인이 말했다.
  “저기 에이라나 누나 뒤에 있는 사람을 보세요”
  그 말에 아르카스가 로카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10강 중 한사람인... 로카나?”
  아르카스의 말에 키라이스트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로카나에게로 향했다. 로카나는 자신에게 오는 시선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지만 뭐라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놀라고 있을 때 에이라나가 말했다.
  “자자, 그랜드소드마스터가 둘이든, 셋이든, 빨리빨리 들어가자고.”
  그 말에 아르카스가 말했다.
  “자~ 그렇죠, 그럼 들어갈까요?”
  그런 아르카스의 말에 막 던전문을 열라고 마법사에게 말하려고 하던 에이라나가 멈칫 했다. 그리고 아르카스를 보며 물었다.
  “이봐”
  “예”
  “너 황태자 아니냐?”
  “그런데요?”
  “황태자가 직접 던전에 들어가?”
  “...”
  그 말에 아르카스가 침묵했다. 마법사들과 기사들도 아르카스에게 반말을 쓰는 에이라나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다가 문득 황태자가 직접 던정에 들어간다는 말에 놀라 눈으로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무시하는 아르카스가 물었다.
  “전 들어가면 안되나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어 던전이잖아 황태자께서 위험한데 가면 쓰냐?”
  그 말에 아르카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제가 황태자라고 차별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저랑 동갑인 키라이스트들도 같이 가지 않나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야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 저 세녀석은 소드마스터고 에르인은 6서클 마법사 루리아는 중급정령사 잖아? 그런데 넌 뭐야?”
  그 말에 아르카스가 침묵했다. 그러다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저도 소드익스퍼드중급의 하급정령을 부릴 수 있습니다만...”
 하지만 그런 아르카스의 말은 기각되었다.
  “어중간한 능력으로 들어가려고? 절대 안 돼”
  그런 에리아나의 말에 기사들도 말렸다.
  “전하, 전하께서 직접 던전데 들어가시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주위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참아주십니요! 저희 모두 죽습니다.”
  하지만 아르카스는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나도 휴식이 필요하다! 나도 갈 거요!”
  그 말에 에리아나가 슬쩍 얼굴을지푸리며 말했다.
  “넌 휴식하러 위험한 곳으로 기어 들어가냐?”
  그 말에 휘안이 태클을 걸었다.
  “너도 그 말할 처지는 아니잖아. 심심하다고 무림맹 한가운데로 들어와 깽판 친 적이 한두 번이냐?”
  그 말에 이번에는 에이라나가 침묵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대 그일은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에이라나가 침묵하자 아르카스가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랜드소드마스터가 셋이나 있고 경들이 있는게 뭐가 위험하겠어요? 그대들은 자신의 능력을 못믿는 겁니까?”
  그 말에 마법사와 기사들이 당황했다.
  “그, 그건 아니지만...”
  그들은 키라이스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서 황태자를 말릴 수 있는 것은 황태자 또래의 친구들인 키라이스트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라이스트들은 그들의 도움어린 시선을 외면했다. 자신들도 아르카스를 말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얼굴이 더욱더 하얗게 질려갔다. 하지만 그들을 포함한 에이라나... 총 열 다섯 명의 인원이 황궁에서 발견된 던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던전을 여는 것은 마법사들이 담당했다. 마법사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하자 순간바닥이 열리면서 안에 계단 같은 것이 만들어 졌다. 잔디 바닥의 계단이 바로 던전 입구였던 것이다. 던전 입구를 보며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초라하군”
  던전입구의 감상이 끝낸 에이라나가 먼저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휘안도 내려갔으며 로카나도 따라갔다. 다른 일행 역시 허둥지둥 세 사람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던전 안은 생각했던 것조다 어둡지 않았다.
  “아주 돈을 처발랏구만.”
  에이라나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던전 안이 아둡지 않은 이유는 바로 라이트스톤 때문이었다. 엄청난 수의 라이트스톤 때문에 길이 어둡지 않았다. 엄청난 수의 라이트스톤 때문에 길이 어둡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아르카스도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로군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끼익 ...쾅!
   갑자기 쇳소리와 함께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일행 모두가 뒤를 돌아 보았을 때는 이미 입구가 막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들어왔으면 ... 목숨을 내 놓을 각오를 해라 이건가?”
  그 말에 일행의 표정이 굳자. 그런 그들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뭐,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이 앞을 가르키며 이내 말을 이었다.
  “봐 문이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다.
그런 문을 보며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그러면 던전으로 들어가 볼까?”
  애이라나가 가장 먼저 문을 향햐 다가가자 그런 에이라나의 뒤를 일행이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발자국 채 딛기도 전에 에이라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젠장! 처음부터 이게 뭐야!”
  그렇게 소리친 에이라나가 은아를 뽑아 내질렀다.
  카앙!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엄청나게 커다란 물체가 에이라나를 덮친 것이다. 갑작스러운 쇳덩이의 등장에 모두가 놀랐다. 이미 눈치 채고 있던 로나카와 휘안은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에이라가 으나로 쇳덩이를 쳐냈다. 쇳덩이는 그대로 날아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후...
  쿵! 쿵! 쿵! 쿵! 쿵!
  정확하게 엄청난 육중한 무게의 다섯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하게 큰 물체 다섯 개가 나타났다. 그 물체는 본 마법사 중 한 사람이 기겁하며 외쳤다.
  “아, 아이언 골렘!”
  아이언 골렘은 돌로 만들어진 스톤 골렘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를 가지고 있었고 만드는 대 사용되는 강철 또한 무시무시한 강도를 사졌다는 전설상의 골렘이었다. 그런 아이언 걸렘의 팔을 여유롭게 쳐낸 에이라나가 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저거... 무지하게 단단한데.?”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는 다음 순간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여섯 기의 아이언 골렘 중 하나와 싸우기 시작했다. 휘안과 로카나도 각각 한기의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남은 골렘 세 기는...
  “파이어 볼!”
  “파이어 스피어!”
  “아이스 볼!”
  “아이스 스피어!”
  마법사들과 검사들이 합세하여 츠리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골렘 세 기와 치열하게 싸우는 일행. 그리고 그런 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쪽도 있었으니...
  “우와~ 이거 강도 장난 아닌데? 검기로는 소용도 없겠어!”
  휘안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거 완전 현철 같잖아?”
  현철은 순수한 쇠만을 모아 어마어마하게 압축한 유일하게 흠집을 줄 수 있는 철의 이름이었다. 단지 흠이 있다면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었다. 마년한철은 현철과 강도가 비슷하고 무게가 가볍가면 현철은 어마어마한 강도를 자란하는 대신 무게가 무겁다. 뭐 오리하르콘과 드래곤 본으로 되어 있는 은아보다 강도가 더할 리는 없지만 말이다.
  “우에~ 이녀석들 무지무지하게 단단해!”
  은아가 투정을 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은아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닥쳐!”
  그렇게 은아를 조용하게 만든 에이라나가 은아에 내공을 주입하였다. 그러자 나타나는 은빛 검강!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쪼개져라!”
  콰가가가가가가강!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바로 검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아이언골렘은 바로 반쪽이 나버렸다. 아무리 강도가 높다 해도 에이라나의 검강에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휘안이나 로카나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언 골렘을 처리한 세 사람은 바로 마법사들이 세 기의 골렘과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에이라나와 휘안은 골렘을 향해 지강을 날리기 시작했다.
  쩡! 쩡! 쩡! 쩡! 쩡!
  무시무시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골렘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골렘들을 향해 각각 검을 내지르는 휘안과 에이라나. 그리고 그 검에 의해 생성된 탄검강이 골렘들을 향해 직격했다.
  쾅!
  그리고 정확하게 골렘의 허리를 양단하는 은빛 검강과 청은빛 검강! 쓰러진 골렘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마나석 처리해!”
  그러자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골렘의 마나석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마 조사단이 왔다면 상당수가 죽었을 테지만 에이라나와 휘안, 로카나의 합류로 첫 관문은 너무도 허무하게 통과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에이라나오 로카나, 휘안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살 떨리는 첫 번째 관문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신 사납게 초반부터 덩치 산만 한 것을 내보내고 있어.”
  에이라나가 이제는 작동이 멈춘 골렘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런에이라나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 로카나와 휘안을 제외한 일동.
  “정말 이거 보고 짜증만 날 뿐이란 말이야?”
  키라이스트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휘안이 말했다.
  “저 녀석이 저런 녀석인거 이제 알았어?”
  그렇게 말한 휘안이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해서는 망설이는 기색도 하나 없이 살짝 문을 밀었다.
  끼이이이익!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다음 순간, 놀라 휘안은 그래오 검을 내질렀다.
  캉캉캉캉!
  바로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암기 다발이 그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수십의       암기다발을 피한 휘안이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기관이랑 함정 같은데?”
  그런 휘안의 말에 멈칫한 에이라나가 얼굴을 팍 찡그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젠장, 전문가는 아무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다음 관문이 뭔데? 아까 보니 트랩 같던데?”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랩 맞아. 하지만 전문가가 없잖아?”
  그말에 키라이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하니 함정 같은 것이 나올 줄을 몰랐다. 여기 있는 마법사들은 전부 마법적인 뭔가를 처리하기 위해 온 것이지 이런 고난위도의 트랩을 처리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에이라나가 문 너머에 있는 길을 빤히 노려보더니 말했다.
  “할 수 없다. 휘안. 가서 트랩 같은 거 다 쳐부수고 와!”
  그 말에 휘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왜?”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너는?”
  “귀찮아.”
  귀찮다는 말에 휘안이 에이라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잠시 후 키라이스트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뭐, 그래. 내가 처리하지.”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을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괜찮겠어요?”
  루이스의 물음에 휘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내가 직접 가는 것도 아닌데.”
  “에?”
  휘안의 말에 루이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루이스에게 한번 웃어준 휘안이 허리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뽑았다. 그리고 그 롱소드를 그대로 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일자 통로로 던졌다. 그런 휘안의 행동에 에이라나를 제외한 모두가 당황했다. 잠시 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던 검 통로 끝에서 멈풔 섰다. 그리고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그 검에 검기가 덮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전하던 검은 다시 휘안에게로 회전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기어검이었다. 이기어검은 심검의 단계로 검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검 끝에 닿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함정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든 함정을 발동시키고 돌아온 검이 휘안 앞으로 돌아오자 그런 검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좋아, 발동하는 곳 모두 기억했어. 가자.”
  검이 회전하는 동안 트랩이 발동하는 조건을 모두 기억한 에이라나가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한 번으로 끝난 트랩도 있겠지만 다시 영구적으로 작동되는 트랩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영구적인 트랩은 모두 에이라나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게 박살을 내버렸다. 그렇게 일행은 무사하게 트랩으로 이루어진 통로를 빠져나왔다. 이 던전을 만들었을 이가 통곡할 만큼 너무도 쉽게 말이다.
  던전은 커도 너무 컸다. 별다른 위험은 없었지만 던전은 3일 동안 헤맨 일행이었다. 그 사이 몇 번 커다란 위험이 있기는 했지만 에이라나와 휘안에 의해 모두 그 위기를 넘겼다. 로카니조차 위험했던 일을 여유 있게 넘기는 두 사람이었다. 던전 한족에 쭈그려 앉아 육포를 뜯어먹으며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무슨 던전이 이렇게 넓어?”
  그 말에 옆에서 빵을 먹던 로카나가 말했다.
  “생각보다 위험한 던전 같습니다, 넓기도 넓고요.”
  “그건그래.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어.”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남은 육포를 입 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자, 빨리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서 나가자고!”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충식사를 마치고 물을 마시던 일행도 그런 에이나라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지난 3일과 다르게 별 위험이 없는 던전인지라 일행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에이라나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곧이어 일행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사기?”
  휘안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기운은 마기와 비슷했지만 그것보다 더욱 기분 나쁜 기운이었다. 바로 죽은 자의 기운.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좀비인가?”
  그 말에 아르카스가 중얼거렸다.
  “황궁 밑에 좀비들이 있었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르카스를 무시한 에이라나가 고래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 기운... 어디선가 느껴본 듯하단 말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교에서는 강시도 사용하잖아? 그 강시의 기운과 좀비의 기운이 비슷한 거겠지.”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휘안, 하지만 에이라나는 달랐다.
  “뭐, 뭣? 강시!”
  그 말에 에이라나의 표정이 굳었다.
  “서, 설마!”
  에이라나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 없다. ‘그것’이 이 세계에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익숙한 느낌은 전생에 마교에 있던 ‘그것들’과 너무도 똑같은 기운이었다. 에이라나가 굳은 표정을 짓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휘안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왜 그러냐? 무슨 문제...”
  하지만 휘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100여마리의 좀비들이 그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휘안은 좀비를 처음 보기에 패텽하게 중얼거렸다.
  “이야~ 좀비라는 것도 강시랑 비슷하게 생겼구나.”
  휘안이 책에서 본 좀비는 살이 썩어문드러졌으며 걷는 것도 흐느적 거리며 걷는다는 내용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좀비는 쪽바로, 반듯하게 사람처럼 걷고 있었으며 살도 썩어문드러지지 않았다. 의아한 건 휘안과 에이라나를 제외한 일행도 마찬가지 였다.
  “응? 데스나이트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좀비들이 왜 저렇게 질서정렬하게 움직이지?”
  마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아레인이 말했다.
  “그래봤자 좀비는 좀비지요”
  그렇게 말한 아레인이 검을 뽑아 들고 달려 나갔다. 좀비에게 굳이 오러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아레인이었다. 하지만...
  깡!
  좀비는 아레인이 내지른 검을 그저 한 손으로 막아냈다.
  “뭐, 뭐야?”
  좀비가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검을 막자 황당한 표정을 짓는 아레인. 이어 좀비에게 검이 막혔다는 것에 울컥한 아레인이 오러 블레이드를 검에 주입하며 검을 크게 내질렀다.
  “좀비따위가!”
  까가가가가가가강!
  “커억, 뭐야!”
  그 천하의 오러 블레이드에도 좀비는 태연하게 자신의 몸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한손에 있는 날카로운 손톱을 치켜세우며 아레인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기겁한 아레인이 검으로 그 손톱을 막았다. 그래... 막았는데...
  쾅!
  “커억!”
  좀비의 손톱을 막자마자 엄청난 힘을 느낀 아레인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 아레인!”
  소드마스터인 아레인이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자 모두가 당황했다. 휘안도 그것을 보고    경악을 할 때였다.
  “여, 역시! 혈천강시들이구나!”
  에이라나가 기겁하며 외쳤다. 그 외침에 굳어버린 휘안이 에이라나를 보며 외쳤다.
  “왜 여기서 혈천강시가 나와?”
  그 말에 에이라나가 굳은 표정으로 혈천강시 백여 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저것들은 ... 혈천강시들이야.”
  그 말에 휘안이 말했다.
  “그건 마교의 비급으로 만들어지는 강시들이잖아! 그런데... 왜, 왜 여기에?”
  “나도 몰라! 지금 그것보다 더 시급한건 저것들 처리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입술을 깨문 휘안이 말했다.
  “너희들! 물러서! 저것들은 소드마스터가 상대할 것들이 못돼!”
  그 말에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 피가 고여 있던 아레인이 물었다.
  “휘, 휘안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아레인의 말을 대신 한건 바로 잔뜩 굳어있는 표정을 한 에이라나 였다.
  “말 그대로다, 저거 너희 같은 새파란 애송이들이 상대할 것이 못 된다.”
  그 말에 루이스가 반발했다.
  “저희도 싸울 수 있어요, 못 베는 것이 거의 없는 소드마스터라고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루이스를 보며 말했다.
  “입 닥쳐!”
  그 기세에 움찔한 키라이스트들. 그런 키라이스트들을 보며에이라나가 말했다.
  “못 베는 게 거의 없어? 진짜 어이없구나. 지금 아레인 꼴 보고도 몰라? 검강을 사용했는데 혈천강시에게는 흠집 하나 내지 못했어.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에이라나의 차가운 말에 루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세사람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못 베는게 거의 없는 게 너희라면 저건 그 못 베는 것 중 하나다. 그 따위 정신 상태로 검을 들 거면 검 당장 놔! 겨우 소드마스터 정도 됐다고 기고만장하나 본데, 저건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그랜드소드마스터도 베기 힘든 괴물들이다. 그런 괴물들 앞에서 달랑 소드마스터라는 이름 하나 들고 달려들었다간 죽기밖에 더하겠어?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달려들든가, 안 그럴 거면 입닥치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라.”
에이라나의 독설에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봤다, 저런 에이라나의 흥분한 모습은. 그리고 이런 독설도 처음이었다. 자신들이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바람에 저절로 분함이 치밀어 오르는 세사람이었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휘안이 안쓰러운 눈으로 말했다. “지금 에이라나는 너무 흥분해서 그런거니 실망하지 마라, 저건 에이라나가 있던 곳에서도 비급으로 전해 내려오는 방법으로 만든 혈천강시란 것인데... 검강으로도 벨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단다, 그런 게 100마리나 있으니 나나 에이라나도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 건 마찬가지거든... 까닥하면 목숨이 위험하니까 에이라나는 이런 전투 앞에서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극도록 꺼려해. 너희들이 위험해지면 저절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그런 독설을 퍼부은 거야. 악감정은 없어.”
그렇게 말해준 휘안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에이라나의 말처럼 저것들에게 덤빌 생각은 하지마라. 다시 말하지만 저건 너희가 상대할 괴물들이 아니니까. 너희는 그저 방어만 해줬으면 해. 나랑 에이라나, 로카나가 어떻게 해볼 테니.”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아무 말도 못하는 일해이었다. 그때였다!
  “온다! 휘안, 로카나 준비해!”
  에이라나가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혈천강시를 보며 외쳤다. 그 외침에 이미 도를 뽑아 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혈천강시들을 노려보던 로카나가 앞으로 튀어 나갔으며 휘안도 검을 봅아들고 달려 나갔다. 에이라나도 흑아를 뽑아 들어 던졌고, 흑아에 은빛 검강이 서리며 혈천강시들 사이로 날아갔다. 바로 이기어검을 사용한 것이었다. 에이라나는 은아에 심검을 담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혈천 강시들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눈을 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으로 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유현이 아닌 에이라나로, 실버 드래곤 에이라나로 리샨에서 자신의 진정한 검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검술을 펼치는 에이라나는 강했다. 그렇게 에이라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용해 혈천 강시들을 상대해 나갔으며 그것은 휘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눈앞에 이때까지 알고 있던 검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뒤집을 검술들이 펼쳐졌고 가공할 위력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에이라나와 휘안이 얼마나 강한디 그 선을 정해놨던 이들은 그 선을 지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까지 봐왔던 두 사람의 능력은 장난이었다는 듯 어마어마한 검술들을 펼쳐내며 혈천강시들을 상대해나가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었다.
  캉!
  에이라나가 이제는 30여 기쯤 남은 혈천강시를 바라보며 검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검에 혈천강시가 주르르륵 밀려나갔다. 그런 혈천강시를 향해 에이라나가 발을 내질렀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혈천강시의 뱃가죽이 뒤집혔다. 에이라나는 그대로 혈천강시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로카나도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혈천강시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 로카나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그런 에이라나와 휘안도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로카나에 비하면 자잘한 상처뿐이었다. 에이라나가 외쳤다.
  “혈천강시들을 한 곳으로 모아! 한 방에 끝낸다!”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혈천강시들을 던전 구석으로 몰기 시작했다. 로카나와 휘안도 에이라나를 따라 혈천강시들을 구석으로 몰았다. 그렇게 모인 30여 기의 혈천강시들을 본 에이라나가 날아다니며 혈천강시들을 상대하던 흑아를 불러들였다.그리고 양손에 검을 꽉 쥐었다. 흑아에는 시커먼 마기가... 은아에는 은빛 빙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 두 검을 들고 에이라나는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천마!”
  바로 에이라나의 최강의 공격기였다. 천마는 어마어마한 검강다발을 만들어내며 혈천강시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가가가가각가가강!
  그리고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천마에 직격당한 혈천강시들은 그대로 걸레가 되었다. 하지만 에이라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젠장! 쿨럭!”
  아직 미완성 쌍검으로 펼치는 천마를 사용해 내공이 역류하는 바람에 피를 토한 것이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놀라 에이라나를 부축하며 말했다.
  “야, 괘, 괜찮아?”
  그 말에 에이라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안 괜찮아.”
  혈천강시. 50여 마리만 있어도 웬만한 거대문파를 아작낼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전력을 겨우 세사람이서 막았다. 그러니 무사할 리가 없었다.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은 에이라나가 엉망이 된 속을 다스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개 같은... 씨발! 왜 저걸들이 저기 있는 거야?”
  오랜만에 들리는 에이라나의 걸쭉한 입담.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휘안이 그 말을 받았다.
  “그건 내가 더 궁금해.”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왠지... 안으로 들어가면 더 위험할 것 같지 않아?”
  “그럴 것 같다.”
  그렇게 말한 휘안도 철퍼덕 주저앉으며 소모된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로카나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상처를 돌보며 쉬기 시작했다. 그런 세 사람 곁으로 키라이스트들이 다가왔다.
  “괘, 괜찮아?”
  키라이스트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를 돌아보며 말했다.
  “엉?”
  에이라나가 자신을 돌아보자 움찔하는 키라이스트였다. 아직도 에이라나의 독설이 머릿속에 남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한숨을 푹 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 던전... 도대체 뭐야?”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다가와 말했다.
  “마교인이 여기에 넘어왔던 것이 아닐까?”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하지만 혈천강시들을 만드는 법을 아는 건 장로들 이상 가는 권력자들 뿐이야. 그런   권력자라면 대륙에서 이미 유명해졌을것이 뻔하고...”
마교의 장로라고 하면 현경의 경지 정도는 되어야 해먹을 수 있는 직책인 것이다. 그런 장로가 리샨 대륙에 넘어왔다면 그는 엄청 유명해져야 정상. 그냥 조용히 리샨 대륙에서 죽치고 앉아 죽었을 리는 만무하니까. 그렇게 휘안과 에이라나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계속 들어갈 건가요?”
  어느 정도 마나를 회복한 로카나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런 로카나의 말에 고민을 하던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따.
  “응, 혈천강시가 나왔어. 확이해봐야겠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당신들은 돌아가야 할 거야”
  에이라나가 아툰 제국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들어왔는데 여기서 발을 뺄 수는 없죠.”
  “다시 말하지만 위험해져도 안 구해준다 그리고 여기는 너희들 능력으로 턱도 없는 곳이야.”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스가 웃으며 말했다.
  “피해 다니는 것 정도야 가능합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아르카스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에이라나는 신경 끄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운기에 들어가려는 휘안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다가 출발하자.”
  “알았어.”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은 그대로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갔다.
  밤이 되었다. 던전 안이라 밤인지, 낮인지 잘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으로는 밤이 된 것 같았다. 모두가 잠이 들어 있었고, 에이라나만이 혼자 깨어 있었다. 전생에서부터 이어지던 버릇이었는데... 근 500년 만에 그 버릇이 나와 그다지 손질할 필요도 없는 흑아와 은아를 손질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손질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은아가 물어왔다.
  -주인, 긴장했어?
  그 말에 피식 웃은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긴장했어”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이번에는 흑아가 말했다.
  -주인과 지내면서 주인이 긴장하는 건 처음 보는군.
  그런 흑아의 말에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휘안은 안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난 느껴져, 그것도 선명하게... 저 너머에서 밀려오는 마기가...”
  그런 에이라나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던 은아가 자신의 정신체로 나타나 에이라나 옆에 조그려 앉았다.
  -주인은 어떤 존재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잔잔하게 만드는 은아의 백은 색 눈동자를 보며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존재긴, 드래곤이지.”
  마지막 드래곤이라는 말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었지만 혹시 깰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은아가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인은 다른 드래곤과 다른 것 같아.
  그런 은아의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다르지.“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면 안돼?
  은아가 에이라나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은아의 손을 잡은 에이라나가 자신의 볼에서 은아의 손을 떼고 말했다.
  “다음에... 다음에 말해줄게”
  그런 에이라나의  행동에 은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살며시 눈을 감고 에이라나에게 기대었다. 에이라나가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아가 에이라나의 품에 기대고 있을 때였다.
  움찔!
  일어나는 루이스가 갑자기 움찔했따. 그리고 부스스한 눈으로 일어났다. 일어나는 루이스를 은아가 볼을 부풀리며 노려 보았다. 그런 은아의 귀여운 행동을 보며 웃은 에이라나는 은아를 쓰다듬으며 돌려보냈다. 그리고 일어나는 루이스를 보며 말했다.
  “좀 더 자지 그러냐?”
  그 말에 놀란 루이스가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안 잤어요?”
  그런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이 안 와서.”
  루이스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에이라나 옆으로 와서 아까 은아가 있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검을 손질하고 있었나 봐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검 같은 손질이 필요하나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이번에는 흑아를 닦으며 말했다.
  “습관이야.”
  “검을 손질하는 건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만...”
  “내 말에 토 다냐?”
  “아뇨...”
  에이라나가 슬쩍 루이스를 노려보며 말하자 루이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이윽고 침묵을 깬 것은 루이스였다.
  “아까 휘안 형이 말하던데, 그 괴물들은 에이라나 누나가 있던 곳에서 비술로 만드는 괴물이라면서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어떤 곳에이요?”
  그 말에 검을 손질하던 에이라나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강자존, 양육강식.”
  “네?‘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가지고 약한 자는 죽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있던 곳이야.”
  물론... 천마교 안에서 사는 평범한 농민들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지만... 검을 든 무사라면 누구나 이 강자존을 다르게 되어 있었다.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살벌한 곳이네요.”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게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그리고 ... 그곳에서 난 죽은 존재이기도 하지.’
  뒷말을 삼킨 에이라나가 흑아를 검집에 꽂으며 말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루이스는 알고 있었다. 에이라나와 휘안이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루이스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 수 있느면 가고 싶지.”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말했다.
  “전 누나가 안 갔으면 좋겠어요.”
  “뭐?”
  에이라나의 당황한 음성에 루이스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전 누나가 그저 우리 곁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묵묵히 배시시 웃고 있는 루이스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얼굴로 멋지게 웃어봤자 계집애로밖에 안 보여.”
  “커억!”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상처 입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자신이라면 전생에 이런말을 한 상대에게 검을 들이 밀었겠지만 루이스는 그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신선하게 느껴진 에이라나였다. 잠시 잠이 깼던 루이스는 에이라나 옆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고 에이라나도 그 상태로 잠에 빠져들었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기 위해서 였다.
  다음 날, 제일 먼저 일어난 아레인은 에이라나 옆에서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잠들어 있는 루이스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다정한(?) 모습에 속이 뒤틀린 아레인이 루이스에게 다가가 그런 루이스를 에이라나 옆에서 끌어내버렸다. 잠자는 도중에 아레인이 자신을 끌어내자 루이스는 영문도 모른 채 잠에서 깨고 말았다.
  “뭐야? 왜 깨워?”
  루이스가 잠에서 깨어난 것 때문에 불쾌한 표정으로 아레인을 노려보며 말하자 아레인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왜 네가 누나 옆에서 자는 거야!”
  아레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아레인의 말에 루이스가 아차 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제 잠시 잠에서 깼는데 그때 누나랑 얘기 했거든, 그러다 옆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그게 왜?’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아레인에게 반문했다.
  “그런데 그게 왜?”
  루이스의 반문에 아레인이 당황했다. 자신도 왜 그것에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아니 저... 그게 있잖아...”
  그런 아레인을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왜 남의 잠을 이유도 없이 깨우고 그래?”
  그렇게 투덜거리며 루이스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앉아서 자는 바람에 굳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앉은 해로 자서 그런지 온몸이 굳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굳은 몸을 풀고 있자 일행이 한두 명씩 깨기 시작했고 일어난 이들은 마법과 정령을 이용해 씻기 시작했다. 에이라나 역시 앉아서 자는 바람에 굳은 몸을 풀었다.
  우드드득!
  에이라나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시원한 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
  마지막으로 기지개를 켠 에이라나가 루리아를 보며 말했다.
  “야, 좀 씻겨줄래?”
  그 말에 루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운디네를 불러 에이라나를 씻겨주었다. 그러자 에이라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일행을 볼러 모았다. 이 일행 중 거의 리더 격을 맡고 있는 에이라나의 부름에 모두가 모여들었다. 그런 일행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아마도 다음 방이 마지막 방일 거야.”
  어제 기감을 퍼트려 다음 방을 샅샅이 뒤져본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뭐가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가?”
  그런 휘안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데스나이트.”
  그 짧고 간결한 말에 일행이 잠시 침묵했다. 잠시간 침묵 후...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이번에는 데스나이트 100여 명이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 였다. 어제 그 괴물 같은 언데드 백 마리가 나왔다면 오늘은   데스나이트 100명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키라이스트의 망상을 에이라나는 깨주었다.
  “아니, 다섯명으로 보이는데?”
  그 말에 일행은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에이라나의 말에 완전히 굳고 말았으니...
  “그랜드소드마스터급 다섯 명.”
  휘안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길 수 있을까?”
  그 말에 한숨을 푹 쉰 에이라나가 말했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안 되면 내 모든 마나를 개방하면 될 거야.”
  그 말에 로카나가 물었다.
  “아직도 숨기고 있는 힘이 있으셨습니까?”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어제 내가 사용한건 내 힘의 반밖에 안돼.”
  그 말이 정답이기는 하다. 에제 에이라나는 내공만 사용했지 마나를 사용한게 아니니까.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과 로카나를 제외한 일행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이 여검사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그런 일행을 무시하며 에이라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자. 지긋지긋한 던전도 끝이다.”
  어제에 비해 많이 침착해진 에이라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걸어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던전의 마지막 방은 그저 커다란 연무장이었다.하지만 그것은 중원식 연무장이지 리샨 대륙의 연무장이 아니었다.
  “역시... 이 던전은 중원인이 만들었나?”
  휘안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문 반대편에는 건물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강력한 마기가 느껴졌다. 연무장을 가운데 두고 문과 건물이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엥? 손님이 왔나?”
  웬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한 늙은 노인이 건물에서 나왔다. 그 모습에 일행은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에이라나와 휘안은 긴장을 더할 뿐이었다.
  “응? 너희들은 뭐 하는 아이들이기에 이 던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느냐?”
  늙은 노인의 물음에 루이스가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는 누구이기에 이 던전 안에 있으신가요?”
  그 말에 백발의 노인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노부는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란다. 마천검이라 불렸지.”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천검?”
  이곳을 지킨다는 말에 모두가 긴장하고 노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노인이 입은 옷이 이전에 봤던 에이라나와 휘안이 입은 옷과 비슷하다는 것을 개닫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크크크큭. 설마, 설마하고 있었는데 정말 천마교의 오대장로였던 사람이 나올 줄이야.. 그것도 천마를 보필하던 제 초대 장로들이 말이야.”
  에이라나가 두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인자하게 웃고 있던 노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웃는 낯으로 물었다.
  “허허허... 여아는 누구이기에 천마교를 알고 오대 장로까지 알고 있느냐?”
  그런 천마교의 초대 장로들 중 한 사람... 마천검 살강이 물어왔다. 그런 마천검 살강을 보며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천마교 제14대 소교주였던 하유현이라 불렸던 사람입니다.”
  그가 일단 천마교의 제 초대 잘로 중 한 사람이었기에 완벽하게 반말은 하지 않는 에이라나였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마천검 살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마교 14대 소교주란 말인가??”
  그 말에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14대 소교주였지, 지금은 소교주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잖습니까?”
  그 말에 살강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14대 소교주였다? 그건 상관없고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지 노부는 그게 더 궁금하군.”
그런 살강의 말에 에이라나가 무시무시한 살기를 피우며 말했다.
  “당신의 빌어먹을 자손이 내 출생이 고아라는 것을 들먹여 날 소교주의 자리에서 끌어낸 것도 모자라 내 몸에 칼까지 꽂아 이것에 오게 되었단 말이다!”
  분노가 폭발해버렸는지 더 이상 말도 높이지 않고 에이라나가 마기를 뿌리며 번뜩이는 눈으로 살강을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움찔한 살강. 그런 살강에게 남궁휘안이 재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그는 고아 출신으로 마교의 소교주까지 오른 자이지만... 마교 장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해 이 리샨 대륙에 환생한 이입니다.]
  그 말에 살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휘안을 쳐다보다가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배신으로 죽었는데 화생했다라.......”
  그 말에 에이라나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휘안에게 대충 설명을 들었나 본데... 난 장로들에게 아주 악감정이 많아, 당신은 그 빌어먹을 장로들 중 살가의 조상이니까 당신이 좀 내 분 좀 풀어지게 만들어주라? 응?”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살강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무리 소교주라 하나 노부를 이기겠다? 그리고 자네는 아직 자신이 소교주라는 것을 밝히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 말에 에이라나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몸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그렇게 마한 에이라나가 연무장 위로 올라와 흑아를 뽑으며 말했다.
  “내가 마교의 소교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대가는...”
  에이라나가 천천히 연무장 위호 올라오는 마천검 살강을 보며 씹듯이 말했다.
  “살강... 당신의 죽음이다.”
  쾅!
  그 말이 끝나는 순가 에이라나는 딸을 박차고 바로 살강에게 흑아를 내질렀다. 에이라나가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움푹 파여 들어갔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흑아를 내질렀다. 그곳에는 진듯한 마기가 서려 있었다. 그 엄청난 쾌검에도 살강은 침착하게 대응해가기 시작했다.
  까가가가가가강!
  검은 검강과 검은 검강의 격돌! 그리고 어느새 마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낸 에이라나의 머리색과 눈동자 색은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로의 검이 격돌하자 에이라나의 검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천마변검!
  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살강 장로의 어깨를 파고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 살강 장로가 이번에는 살가의 검술로 막았다.
  마천유검.
  하지만 그것은 살강의 실수였다.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환검을 사용했던 것이다.
  천마환검...천마천환검!
  아직 미숙하기는 하지만 에이라나는 천 개의 환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천마환검에 이숙했던 것이다. 천마환검이 극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천개의 환검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천 개의 환검을 보며 살강이 경악했다. 저 천 개의 환검 모두가 진짜였기 때문이다. 살강이 다급하게 호신강기를 생성시켰다. 하지만 날카로운 환검들은 그럼 호신강기를 두른 살강에게 깊고 얕은 상처를 천여개 만들고 사라졌다. 에이라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바로 살강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퍽!
  머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살강이 그대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마교 초대 장로 중 한 사람인 살강을 처리한 에이라나가 묵묵히 살강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씹듯이 말했다.
  “죽진 않았군.”
  그 말과 함계 살강의 살과 뼛조각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살강의 머리를 재생했다. 그 엽기적인 장면에 모두가 헛구역질을 했지만 에이라나는 담담할 뿐이었다.
  “그렇다면...이번에는 진짜로 죽어라!”
  그렇게 검을 내지르는 에이라나.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살강이 다급하게 말했다.
  “누부가 졌네! 그만둬!”
  “닥쳐! 죽어!”
  에이라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천마를 사용해버렸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마가의 검강다발이 살강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살강이 외쳤다.
  “으악! 살려줘!”
  그리고 그 외침 그대로 사강을 살아났다. 갑자기 나타난 네 개의 그림자가 에이라나의 천마를 막았기 때문이다.
  바로 초대 장로들인 마천창, 마천도, 마천권, 마천장이 나타난 것이다. 각각 검술, 창술, 도술, 권각술, 장법에 능한 일대다섯 장로들이 모두 등장했다. 그런 다섯 장로의 등장에도 에이라나는 콧웃음을 치며 더욱 살기를 끄러낼 뿐이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마천장 산간이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이, 우리들 중 가장 강한 살 장로를 이기다니...”
  “닥치고 죽어!”
  “...”
  에이라나의 살벌한 말에 침묵하는 네 장로, 그리고 마천창 참성이 살강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자네 도대체 소교주에게 무슨 짓을 했게에 저렇게 열 받아 있는 갠가?”
  그런 참성의 말에 살강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억울해! 난 그저 싸운 거 말고 죄 없어! 난 머리통도 터졌단 말이야!”
  “살 늙은이, 네놈이 뭔가 잘못을 했기에 저 소교주가 화난거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마천도 귀하삭 살강을 추궁했다.
  “에잉~힘만 세고 댈갈통은 안돌가는 병신 같은 노인네.”
  마천권 한산도 살강을 욕했다. 하지만 살강은 노발대발할 뿐이었다.
  “난 잘못 없어!”
  그런 다섯 장로의 작태에 노한 에이라나가 소리쳤다.
  “닥치고 죽어라! 마천검 살강! 마천창 참성! 마천도 귀사! 마천권 한산! 마천장 산간!   이빌어먹을 노인네들!”
  그런 에이라나의 반응에 참성, 귀사, 한산이 살강을 밟기 시작했다.
  “이 병신 같은 늙인이야! 얼마나 열 받았으면 저런 반응을 보여! 도대체 무슨 짓을 했냐니까!”
  “커억! 나, 난 아무 짓도 안...”
  에이라나는 자신을 무시하고 지들 할 말말 하는 초대 장로들을 보며 화가 폭발했다.
  “캭! 이 개 같은 노인네들이 누굴 처 무시하고 지랄이야! 씨발! 내가 당신들 후손 때문에   이꼬라지 됐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씨발! 다죽어!”
  쾅! 과가가가가가가강!
  “까울!”
  “노인에게 검을 휘두르다니!”
  “어른 존경할 줄 모르는 놈!”
  “...”
  반응도 가지가지였다.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마천장 산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로들의 작태에 에이라나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보통 이러면 장도들도 마주 공격을 할 텐데 그들은 에이라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자리에 주저앉은 에이라가 연무장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찍으며 외쳤다.
  “젠장! 젠장! 젠장!”
  도대체가 복수할 마음이 안 들고 분이 안 풀려 답답할 뿐인 에이라나였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쌩 난리를 떨던 장로들도 조용해졌다.
  퍽퍽퍽퍽!
  수십 번을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찍은 에이라나의 주먹은 피떡이 되어 있었다.
  “이런 젠장할!”
  너무도 분한 나머지 에이라나의 눈에서는 분함에 의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휘안은 지금 에이라나가 처한 상황을 중원어로 장로들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한편 연무장 반대쪽에 있던 건물 에이라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도 못하는 중원...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중원에 있는 오대장로들을 향하는 복수심 때문에 편할 날이 없는 에이라나였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치 않게 초대 장로들이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 장로들은 자신을 진지하게 상대해주기는커녕 복수심을 싹 가시게 만드는 행동을 할 뿐이니 에이라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라나는 손에 상처를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안자 있었고, 그런 에이라나에게 다가갈 생각을 못하는 일행이었다.
  ‘난 어디를 향해 복수를 해야 할까?’
  에이라나가 속으로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우리 후손들이 14대 소교주를 죽여서 소교주가 환생했단 말인가?”
  마천장이 이해한 듯 물어오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시 태어나 복수할 마음이 많이 가진 줄 알았는데... 저 정도로 분이 남아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휘안이 안쓰러운 눈으로 에이라나를 보여 말했다.
  “저 빌어먹을 노친네들 때문에 그 분함마저도 가셨다.”
  그 말에 다섯 장로가 움찔했다.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는 에이라나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많이 쓸쓸해 보였다. 에이라나는 멍하니 연무장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되새기시작했다. 전생부터... 후생까지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되새긴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 처절하게 살아왔구나, 전생에는 고아로... 그리고 권력투쟁으로... 지금은 장로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에이라나가 씁쓸하게 웃었다.
  “참 처절하구만.”
  그때 뒤에서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살강이었다. 그런 살강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뭐야?”
  에이라나의 날카로운 반응에 살강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나이도 많은데 처음처럼 존대하면 안 되는가?”
  “나도 나이로 따지면 500살이다.”
  “허허허... 그래도 내가 더 오래 살았지 않는가?”
  “귀신이 무슨 나이 타령?”
  에이라나의 말에 살강이 입을 다물었다. 에이라나는 그런 살강을 무시하며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는 살강. 잠시 후 그가 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에이라나에게 내밀었다.
  “자, 받게나.”
  그것은 하나의 책자였다. 에이라나는 그 책을 빤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뭐야?”
  그런 에이라나의 물음에 살강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천마게서 마지막으로 남긴 무공이자 우리가 지키고 있는 물건 중 하나이기도 하지.”
  그 말에 에이라낙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살강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따.
  “천마의 마지막 무공? 그런 걸 왜 나한테 주지?”
  에이라나의 말에 살강이 방긋 웃으며 말했따.
  “자네는 마교의 소교주이지 않는가?”
  그 말에 코웃음을 친 에이라나가 말했다.
  “옛날이야기야.”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도 살강은 방긋 웃으며 억지로 에이라나의 품에 책자를 떠넘겨주었다. 에이라나는 그 책자와 살강을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에이라나에게 방긋 웃어준 살강이 말했다.
  “이것으로 우리의 사명은 끝났다.”
  그렇게 말하던 살강이 잠시 뜸을 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부탁할 게 있다네.”
  살강의 말에 에이라나가 살강을 쳐다보았다. 그런 에이라나를 마주보며 살강이 말했다.
  “우리는 잠시 후 소멸할 것이네. 사명이 끝났으니 이제는 성불을 해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중원 땅을 밟아보고 싶다네.”
  그렇게 말하고 말을 잠시 멈춘 살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의 유품만이라도 우리의 후손에게 전해주면 안 되겠는가?”
  그런 살강의 말에 에이라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중원으로 가는 방법을 모를뿐더러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난 당신들의 후손을 모두    죽여 버릴 거야.”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살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자네는 그 현 장로들이라는 것들을 제회하고는 우리의 후손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네.”
  그 말에 에이라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살강이 말했다.
  “자네의 마음은 깨끗해, 그렇게 악한 이가 아니야.”
  그런 살강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웃기지도 않는군. 이렇게 보여도 천마교의 소교주였다고.”
  “허허허... 마음이 깨끗하고 착한 것과 천마교의 소교주라는 직책은 아무 상관없다네.”
  그 말에 에이나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잠시 후 입을 열며 말했다.
  “난 중원으로 가는 법을 몰라.”
  그 말에 살강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네, 길이라면 천마도가 안내할 것이야.”
  “천...마도?”
  살강의 말에 에이라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보아하니 천마와 관련된 물건 같은데 자신이 아는 한 천마와 관련된 물건은 교주에게 내려지는 천마검과 소교주에게 내려지는 천마소검이 다였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살강이 말했다.
  “천마께서 남긴 일도이검 중 하나인 일도라네. 마천도 그 늙은이가 가져올 거야, 천마께서 남긴 마지막 무공에 도술이 들어가니 자제에게 꼭 필요할 것이야.”
  잠시 한숨을 쉰 살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무공은 항마의 능력도 있다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당하군.”
  “그리고 마교의 무공에 있어 천적과도 같은 무공일 게야.”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살강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가야 할 때가 된 듯하이.”
  살강이 뒤돌아 본 곳에는 각각 마천창, 마천도, 마천권, 마천장이 서 있었다. 특히 마천도의 손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대도가 하나 들려 있었는데, 범상치 않은 기울을 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천마도인 것 같았다. 도의 손장이는 천마검과 천마소검과 같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박혀 있었고 도신 또한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런 물건이 어떻게 눈앞의 적을 파괴하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도였다. 마천도가 도집과 같이 천마도와 함께 넘기자 에이라는 그것을 묵묵히 받아 들였다. 생각보다 더욱 엄청난 무게에 당황했지만 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에이라나가 천마검을 받아 들자 다섯이 장로들은 각자 사진의 무기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다섯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이 조금씩 희미해질 때... 갑작스럽게 다섯 사람이 에이라나에게 큰 절을 하더니 입을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위대한 천마교의 소교주 앞에 천마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외친 후에야 다섯 사람은 완전하게 사라졌다. 성불을 한 것이다. 그런 다섯 사람을 묵묵히 쳐자보던 이에라나도 묵묵히 다섯사람이 있던 자리에 장로에 대한 예를 취하며 말했다.
  “다섯 장로도 죽어서도 천마의 축복기 있기를...”
  그 모습이 너무도 엄숙해 보여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대륙전쟁
  아툰 제국의 황궁은 지금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던전 탐사에 황태자가 같이 따라간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평소에 황태자의 엉뚱함을 알고 있던 황제도 이번 일만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머리를 부여자고 끙끙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황태자를 찾아 던전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쿵! 쿵! 쿠구구구구궁! 쾅!
  정원에 있던 던전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한 무리의 사람이 올라왔다. 그들은 모두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던전 탐사팀이었다. 그들은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문 앞에 가득 모여 있는 사람을 보고 은발의 여자가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이것들은 또 뭐하는 것들이야!”
  바로 에이라나였다.
  짜증이 절정에 이른 듯한 에이라나의 목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그런 에리아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아르카스 전하가 일주일 동안 안 보여서 그런 것 같은데?”
  그 말에 에이라나가 황태자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야! 네놈 때문에 이렇게 소란스럽잖아!”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스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으윽! 저라고 일주일 동안 던전 안에서 헤맬지 알았습니까?”
  “닥쳐!”
  일행의 대화를 들으며 모두가 기겁했다. 감히 황태자에게 네놈이라느니 닥치라느니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에이라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등에는 엄청난 크기의 대도를 짊어지고 있으며 허리에는 두 개의 검을 달고 있는 에이라나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티격태격 되는 일행에게 아르카아 공작이 다가왔다.
  “모두 무사한가?”
  아르카아 공작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아르카스에게로 향했다.
  “무사합니다.”
  아르카스가 대표로 말했다. 그런 아르카스를 보며 아르카아 공작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 혹여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십니까.”
  “에이라나 님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아르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얼굴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소름 돋는다. 그딴 호칭으로 부르지 마라.”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에이라나 양?”
  “죽고 싶지?”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스가 삐질 땀을 흘렸다. 왜 저렇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키라이스트들이 누나, 언니라 부르는 것도 왠지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에이라나는 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친놈 취급 안받으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르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너랑 나는 그냥 모르는 사람이야.”
  “커억! 너무해요!”
  아르카스의 외침에 에이라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가?”
  그 반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르카스였다. 아르카스 공작이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그래, 에이라나야. 던전 안에 뭐가 있던?”
  아르카아 공작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검을 들며 말했다.
  “이 녀석이요, 아직 사용한 적은 없지만...”
  던전을 나오는 동안에는 천마도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도는 아직 다루는 게 미숙할 뿐만 아니라 던전 안으로 들어갈 때 모든 트랩을 파괴한 상태고 천마도가 에이라나에 손에 들어옴에 따라 던전 내 모든 괴수들이 에이라나의 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던전 끝 방에 남아 있던 50마리의 혈천강시들도 에이라나의 명을 따르게 되었다.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아 공작이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게 다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리고 그나마 이것도 제 건데요?”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아 공작 옆에 있던 한 늙은 마법사가 헛기침을 하며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아툰 제국의 땅...그것도 황궁 아래에 있던 던전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그런 걸 어떻게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것인가요?”
  그런 마법사의 말에 에이라나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과 로카나를 제외한 던전에 들어갔던 모든 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에이라나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호라~그딴 식으로 나오시겠다?”
  에리아나의 말투가 싹 바뀌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아르카아 공작이 늙은 마법사를 째려 보았다. 에이라나가 화나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르카아 공작을 무시하고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던전 위에 있는 땅은 모두 내 거잖아?”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던전의 주인은 이제 나야. 저 안에 있는 모든 괴수들이 내 명을 따르고 있어. 그리고 저건 천마교의 천마와 오대장로들이 만든 건데 천마교의 소교주였던 내 것이 아닌가? 그럼 그 위에 있는 땅들도 전부 내 것이란 소리지.”
  그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이의 표정이 굳었다. 늙은 마법사가 얼굴을 붉힌 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던전이 당신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왜 당신 것이란 말이오!”
  그런 마법사의 말에 에이라나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붙어볼래? 이 던전 안에 있는 괴물들이랑?”
  이건 거의 제국에 선전포고라고 봐도 무방한 말이었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모두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일이 커지자 아르카스가 나섰다.
  “에이라나 누나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더 이상 그녀를 도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던전 안에는 그랜드소드마스터조차 베기 힘든 괴물들이 50마리나 있습니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아요! 싸우면 저희 제국은 큰 타격을 입고 말 것입니다.”
  아르카스의 말을 듣던 휘안도 태클을 걸었다.
  “큰 피해가 아니라 황궁이 초토화될걸? 안에 보니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아이언 골렘도 한 100개는 되는 것 같더라? 그밖에 기타 등등 하면 큰일 날 거야.”
  휘안의 말에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게 무슨 소린가? 아이언 골렘? 소드마스터들도 베기 힘들다는 그 괴물 같은 골렘들이 100개나 된단다. 그리고 그랜드소드마스터조차 베기 힘든 괴물 50마리는 또 뭔가? 그런 휘안의 말을 거드는 이가 있었으니...
  “그리고 이쪽은 그랜드소드마스터가 셋이나 된다고.”
  바로 에이라나였다. 사람들의 얼굴이 또 굳었다. 에이라나와 휘안이 그랜드소드마스터인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르키아 공작에 말에 의하면 파괴의 로카나도 있지 않은가? 모두가 에이라나를 도발한 늙은 마법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마법사는 당황했다.
  그때...
  “허허허...장난은 그만 하려무나.”
  사람들 사이로 한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나타났다. 바로 엘로난이었다. 에이라나는 그런 엘로난을 보며 말했다.
  “장난으로 보여요?”
  “아니.”
  에이라나의 말에 바고 고개를 젓는 엘로난이었다. 그런 엘로난을 보며 에이라나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엘로난은 그런 에이라나를 잘 다독여주었다. 자신의 손녀는 뒤틀리면 이 나라의 황궁을 정말 초토화시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엘로난이 에이라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나라에 큰 타격이 생긴다면 데프론 제국에 좋은 꼴만 되지 않느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도 그러네요, 왠지 그 데프론이란 곳은 재수가 없어서 빨리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엘로난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푹 쉬려무나.”
  “네.”
  엘로난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흐응~왠지 할아버지 술수에 말려든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에이라나였다.
  나이는 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자신보다 훨씬 커다란 도를 등에 짊어진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여인의 실제 나이는 500살, 정확하게는 501살이었다. 물론 그 나이는 발설하지 않은 채 인간들 틈에서는 25살이라는 나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바로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산을 오르는 내내 자신의 머릿속에서 수다를 떠는 세 존재 때문에 짜증이 치밀고 있었다. 이전마냥 두 존재가 아니라 한 존재가 더 늘어난 것은 바로 천마도 역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검이었기 때문이다. 천마도는 정신체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신체라는 것이 은아 못지않게 수다스러운 정령이었다.
  -꺄르르르르~그래서 말이지~.
  그것도 어린애였다. 어린 여자애! 천마는 무슨 생각으로 이 따위 정신체를 검에 부여했을까? 천마의 마지막 무공인 천마도검법에는 천마도에 대한 것도 나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천마가 이 세계에 와서 만든 도로 세 개의 신물 중 가장 강한 무구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중원으로 들어가기 전 이 세계에서 만든 천마도와 천마도검법의 무공서를 두고 간다.
이것들을 손에 넣는 이는 나처럼 우연히 이 리샨 대륙으로 들어온 중원인 중에서도 천마교의 교주이거나 소교주일 것이다. 물론 다른 이가 들어 와서 오대장로들을 제압한다면...이것들을 가져도 좋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된다. ...나는 정말 우연치 않게 오대장로들과 함께 리샨 대륙에 차원이동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우리의 처지를 깨닫게 되고 다시 중원으로 넘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던전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리치를 만났다. 그 리치와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리치에게 혈천강시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리치는 흑마법과 우리의 기술로 현철강시들도 만들게 되었다. 운명을 초월한 나는 수천 년을 살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대장로들은 죽고 말았으니 난 리치에게 부탁해 이들을 데스나이트로 부활시켰다. 그러던 중 나는 이 세계의 신이란 작자와 만났고 결국 혼자서 중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마음으로는 이 세계에 있고 싶었지만...오대장로들의 만류에 의해 할 수 없이 중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의 권능으로 만든 천마도와 내가 마지막으로 남길 천마도검법을 장로들에게 맡겼다. 만약에...나의 후인이 오면 그에게 주라고... 천마도검법은 천마검법, 천마권각법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다만 도를 이용하고 역시 천마를 제외한 모든 초식이 다르다. 하지만...이 천마도검법은 모든 천마교 무공의 묘리가 담겨있으며 항마의 기운까지 있기 때문에 천막의 무공들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무공일 것이다. 후인이여...만약 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천마도가 알아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추신: 후인에게는 미안하지만...이 검에는 깃들어 있는 정령이 있으며...그 정령은 엄청난 수다쟁이다. 정말 미안하다. 이런 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신물 중에서는 가장 강한 무구이다.
  -천마-]
  “크윽! 결국 천마 그 사람도 이 빌어먹을 녀석이 너무 수다쟁이라서 이걸 버리고 갔다는 거잖아!”
  에이라나가 다시 한 번 천마의 편지를 떠올리고는 뒷목을 잡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확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천마도를 뽑은 게 잘못이었다. 천마도는 바로 에이라나가 마음에 든다며 스스로 그녀에게 종속되어버린 것이었다. 에이라나도 처음 천마도를 뽑았을 때는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무려 천마가 남긴 도였으니까.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마도를 뽑았다.
  -하아아아아암~누구야? 날 깨운 게?
  그리고 검을 뽑자마자 천마도의 정령 천이 나타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천의 모습은 은아와 비교해도 전혀 뒤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귀여웠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에이라는 휘청거렸다. 좀 흑아처럼 멋진 정령을 생각했는데 저런 게 나오자 조금 허탈한 에이라나였다. 그러나 천마도는 흑아와 은아에 절대 뒤지지 않는 칼이었다. 에이라나가 천을 보며 말했다.
  “내가 너의 주인 될 사람이다.”
  그 말에 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물었다.
  -막에서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어?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소교주였어.”
  -소교주?
  끄덕.
  천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야?
  “에이라나.”
  그 말에 잠시 고민하는 천은 그러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 주인 될 사람은 예쁘니까 내 주인 해.
  그 말에 잠시 에이라나가 당황했다. 무슨 시험이라도 치를 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은아 때보다 더욱 쉽지 않은가?
  -나 천마의 앞길을 막는 자를 베던 멸마(滅魔)의 도 천마도의 정령 천이 눈앞의 에이라나를 주인으로 인정한다.
  그 말과 함께 천이 에이라나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은아와 흑아와 같은 계약에 에이라나가 조금 당황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에이라나의 왼쪽 손등에 검붉은 빛의 동그란 마법진 모양의 문신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런 문신을 보며 에이라나가 천을 보고 중얼거렸다.
  “원래 에고소드랑 계약하면 다 너처럼 문신 새기냐?”
  그 말에 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알기로는 무신에게 축복받은 무구들만 그렇게 된다고 알고 있어. 하지만   무신에게 축복받은 검은 마신이 만든 나랑, 재수 없는 신성제국에 있는 싸가지 없는 신선의 창 셀린이란 년이랑, 행방을 알 수 없지만 수호의 검 루사크라는 녀석이 전부야.”
  그 말에 에이라나가 물었다.
  “그 검에는 모두 정령이 있고 그 정령들은 인간의 형태와 동물의 형태가 있고?”
  그 말에 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네? 어떻게 알았어?”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흑아, 은아. 너희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들이다?”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천.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는 흑아와 은아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햄! 이제야 알았어, 주인?
  -그런 거에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자신들의 검에 관심 좀 가지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너희들이 먼저 말해줬어야지.”
  그 말에 흑아와 은아가 입을 다물었다. 천은 검붉은 눈동자를 크게 ㅡ며 말했다.
  -으에~저것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것들이야?
  그 말에 은아가 말했다.
  -너랑 같은 무신의 축복을 받은 쌍둥이 검이다.
  -네 녀석과 쌍둥이가 되는 것은 사절이다.
  -흐엥~너무해~.
  “...잘 논다, 잘 놀아.”
  서로 티격태격하는 은아와 흑아를 보며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하자 천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건 언제 태어난 녀석들이야?
  그 말에 에이라나 말했다.
  “몇 백 년 안 됐어.”
  그 말에 천은 얼빠진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것이 천과 에이라나, 흑아 은아의 첫 만남이었다.
  결국 에이라나는 계속 되는 천과 은아의 수다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캭! 더 이상 못 참아! 집어넣어 버리겠어!”
  그렇게 외친 에이라나가 오른손을 왼쪽 손등에 얹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게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살려줘!
  오른손에 숨어 있던 검붉은 문신이 활성화되면서 천을 봉인 시켜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쪽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헉! 주인! 제, 제발!
  하지만...역시 볼에 은백색 문신이 생성되더니 그대로 빛을 발하면서 은아를 봉인시켜버렸다.
  -끄아아악! 주인 너무해~!
  “이제야 조용해졌군.”
  -너무도 조용해서 눈물까지 나려고 한다.
  흑아가 에이라나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 흑아의 말을 들으며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산에 온 이유가 천마도검법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니 일단 나와 있는 도법을 완벽하게 익혀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검붉은 색이 도는 검신을 가진 천마도를 어깨에 걸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이 산에 있는 몬스터들 씨가 마를 것이 분명했다.
  데프론 제국의 발호는 처음 오르칼 왕국의 침공의 실패로 잠시 주춤하고 말았다. 하지만 주춤했을 뿐이지 110만의 대군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프라스 이 자식, 죽이고 말테다...”
  이제 그 이상한 폭발 공격에 당한 상처는 완치가 되었다. 마법과 신관들의 힘에 의해서였다. 아프콘 공작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카프라스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자신이 7서클 마법사에 당한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데프론 제국은 110만 중 20만 이나 되는 대 인원을 오르칼 왕국을 침공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아프콘 공작도 오르칼 왕국으로 쳐들어가 카프라스의 목을베고 바로 다른 전선으로 가기로 한 상태였다.  아프콘 공작은 20만 대군을 대리고 오르칼 왕국을 침공해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90만의 대 인원도 5만을 남겨두고 모두 전쟁에 나선 것이다.
이것으로 대륙은 크게 셋으로 쪼개져 싸우게 되었다. 데프론 제국과 아툰 제국 그리고 로코 제국. 이렇게 세 나라가 주축이 될 것이다. 그중 아툰과 로코는 불침공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겁대가리 없이 대륙전쟁을 선포한데프론 제국. 하지만 데프론 제국은 몰랐다. 인간의 나라를 박살내는 것은 큰일이 없는 이상 금지되어 있는 드래곤의 사회에서 이 일을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용병으로, 나라의 귀족으로, 떠돌이 검사나 마법사 모험가로써 재수 없는 데프론 제국에 칼을 갈고 있던 드래곤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데프론 제국은 꿈에도 몰랐다.
  “데프론 제국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아툰 제국의 중앙회의실. 그곳에 수많은 귀족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데프론 제국의 일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 특이한 것은 나라의 소드마스터들과 고위마법사들이 모두 모였다는 것이었다. 뭐, 전시에 나라의 최고 무장들이 모인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중에는 특이하게도 휘안도 섞여 있었다. 키라이스트들과 같이 앉은 휘안이 대륙지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데프론 제국과 동맹국인 왕국은 모두 넷입니다. 로코 제국의 동맹국은 모두 셋이고 저희 또한 셋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대륙에 존재하는 10개의 왕국들이 모두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왕국들은 그저 중립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회의진행자의 말에 아툰 제국의 황제가 말했다.
  “일단 데프론 제국과 로코 제국 그리고 우리 제국의 거리는 상당하니 대륙 중앙쯤에서 싸우게 될 것 같군.”
  그 말에 회의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아마도 이곳이 최후의 결전지가 될 것입니다.”
  “신성제국도 역시 중립인가?”
  신성제국. 모든 사람들이 신을 믿고 있는 곳으로 이곳은 왕이 없다. 왕 대신 교황이 있으며 교황은 모든 신들에게 지목을 받은 이였다. 교황이 전쟁 같은 데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방관만 할 뿐. 이런저런 회의가 진행되며 회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리고...일단 로카나 님과 에이라나 님, 휘안 님에 관한 문제에 대해 거론하겠습니다.”
  “응?”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휘안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내도록 고개를 숙이고 있던 휘안이었다.
  “에...알던 세 분께 작위를 내려야...”
  “그건 사절입니다.”
  작위를 내린다는 진행자의 말에 휘안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런 휘안을 보며 진행자가 당황했다.
  “전 작위에 관심 없습니다. 로카나나 에이라나는 더더욱.”
  그 말에 회의 진행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저희 제국군에서 활동하시려면 작위가...”
  “로카나는 인간들의 전쟁을 통해 실전경험을 쌓으러 나왔으며 저와 에이라나는 키라이스트들을 돕기 위해 아툰 제국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위는 필요 없습니다.”
  작위를 빌미 삼아 자신들을 제국의 그늘 아래에 둘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키라이스트였다.
  그런 휘안의 완강한 태도에 진행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이건 다음번에 이야기하기로 하죠 그리고 저희 제국의 던전 안에 있는 수호지기들을 어떻게 전쟁에 상ㅇ할 수 없겠습니까? 특히 그 오러 블레이드도 없다는 50명의 수호지기들...”
  언데드라고 말하기에는 뭐했기 때문에 수호지기라고 명분을 세우는 진행자였다. 그런 진행자를 보며 휘안이 역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제 권한이 아닙니다, 에이라나의 권한이지요. 그리고 아마 그것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휘안의 말에 진행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진행자를 보며 휘안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것들이 사용할 위인이 아니죠 그리고 만약에 통제권을 잃는다면 그  괴물들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괴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사실 전쟁에 혈천강시들이 사용되는 게 꺼려지는 휘안이었다.
  휘안은 혈천강시들의 사용을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거절했다.
  그리고 회의가 거의 끝나갈 즈음.
  “흠...그런데 왜 에이라나 양은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나? 휘안 경? 분명히 참석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 같은데...”
  아툰 황제가 물어왔다. 그 말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라나는 크랄 산맥으로 갔습니다.”
  “헉! 크, 크랄 산맥!”
  “그 몬스터들의 산맥에 왜...”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까지도 놀란 표정을 지었으니 크랄 산맥이 위험하긴 한가 보다.
  “그, 그곳은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위험하지 않겠는가?”
  황제의 말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수련을 하러 간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녀석을 위협할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드래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휘안의 말의 끝으로 회의는 끝이 났고 모두가 해산했다.
  돌아가는 마차 안에는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 그리고 휘안이 앉아 있었다. 루이스가 말했다.
  “후우~에이라나 누나는 도대체 언제 올까요?”
  그 말에 휘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도검법의 초식을 대충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오겠지.”
  그런 휘안을 보며 아레인이 말했다.
  “쳇, 그렇게 강하면서 더 강해지려는 이유가 뭘까?”
  아레인의 말에 휘안이 말했다.
  “후후...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해지고 싶은 법이야. 안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렇게 말한 휘안이 자신의 검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달빛이 비치는 밤. 흑발에 흑안의 소년처럼 보이는 이가 커다란 호수 위에 서있었다. 날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바로 무림인들이 말하는 수상비였다. 화경의 경지에 올라야 사용할 수 있는 수상비를 유유히 펼치는 이는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 그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뭔가를 느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왔구나. 그럼 나도 검 대신 그것을 시험해볼까?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바로 외쳤다.
  “라이트닝 오브 스톰!”
  8서클 전격 마법을 시동어만으로 외친 그! 그리고 무시무시한 전격이 호수 위흫 덮쳤다.
  파지지지지지직!
  무시무시한 파란색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 괴수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쿠오오오오오오!
  그것을 들으며 흑발의 존재! 바로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왔구나! 이 호수에 사는 타크스!
  타크스는 뱀 모양을 하고 있는 몬스터의 일종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큰 몬스터였다. 주로 바다나 커다란 호수에 서식하는 이 몬스터는 몸 자체가 보물 덩어리라 잡으면 그래도 대박이 터진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만큼 위험한 몬스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휘안에게 있어 타크스는 그저 마법수련을 하기 좋은 샌드백(?)일 뿐 이었다. 휘안이 손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블리자드!”
  그러자 휘안의 의지와 함께 엄청난 냉기가 모였다. 빙결의 의지라 불리는 블리자드였다. 자신의 손에 생성된 블리자드를 보며 휘안이 씨익 웃으며 그것을 타크스에게 날렸다. 그러자 타크스가 있던 호수가 그대로 얼어버렸다.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블리자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냉기였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자신을 얼리는 냉기에 타크스가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런 타크스를 향해 휘안이 외쳤다.
  “크레이지 윈드!”
  쾅! 콰가가가강!
  광풍이 불어와 타크스를 때렸다. 그 광풍에 타크스의 얼어있던 부분은 그대로 깨져버렸으며 살갗은 찢겨져 나갔다. 너무도 손쉽게 타크스를 처리하는 휘안을 보며 한 존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군, 웬만한 성룡보다 강해.”
  바로 엘로난이었다.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인간은 노력한 만큼 강해지는 존재니까요.”
  그런 휘안을 보며 엘로난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자네처럼 강한 인간은 나도 처음이라네.”
  그런 엘로난을 보며 휘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라나가 수련을 떠난 뒤 엘로난이 자신에게 제안해왔다. 자신에게 마법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당연히 그것을 수락한 휘안에게 엘로난은 그날부터 바로 고위 공격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휘안이 가지고 있는 마나는 인간의 그것과도, 용언마법과도 다르지만 의지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의지만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휘안에게 엘로난은 직접 마법을 보여주며 익히게 했다. 그 결과 이제 휘안은 모든 서클의 공격마법이 사용 가능했으며 슬슬 보조 마법을 가르칠 생각인 엘로난이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제자이기에 엘로난도 재미가 들었던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는 휘안을 보며 엘로난이 물었다. 아니, 엘로난으로서 물은 게 아니라 엘란카넌으로서 물은 것이었다.
  “물어볼 게 있다네.”
  그런 엘란카넌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휘안. 그런 휘안을 보며 엘란카넌이 말했다.
  “우리 에이라나...전생에는 어땠는가?”
  쿵!
  휘안은 그 말에 돌이 된 것처럼 굳었다. 잠시 동안 숨도 멎었으니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 엘란카넌을 보며 휘안이 물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후후후...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라네, 난 오래전 영혼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지. 그렇기에 보통 드래곤들보다 영혼의 기운에 민감하네.”
  그렇게 말을 잠시 멈춘 엘란카넌이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에이라나와 처음 만났을 때였지. 난 에이라나를 보고 놀랐네. 에이라나는 몸은 드래곤의 것이었지만 영혼은 아직 인간의 것이었네.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강한 의지를 가졌으며 드래곤의 육체를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강한 영혼이었지. 자네처럼 인간의 영혼으로는 드래곤의 육체의 힘을 견딘다는 건 불가능하지. 드래곤은 잠재능력이 거의 신에 필적하거든. 그 잠재능력이 자라면서 밖으로 표출되는 거라네,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너무 놀랐어, 단번에 알아차렸지 인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드래곤으로 환생한 것이란 걸. 뭐 지금은 완벽한 드래곤의 영혼으로 각성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을 끝낸 엘란카넌이 물었다.
  “자, 에이라나는 전생에 어떤 인간이었나? 내가 느끼기엔 에이라나의 영혼이 아직 인간이던 시절의 느껴지는 영혼의 향이 자네에게 스며 있는 영혼의 향과 똑같아. 자네가 있던 곳은 에이라나가 있던 곳이었겠지.”
  그런 엘란카넌의 말에 휘안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에이라나의 전생은 이번에 에이라나가 설정하고 있는 유희와 같습니다.”
  “고아였단 말인가?”
  “예, 지금의 폴리모프한 에이라나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남자였겠지?”
  “네.”
  엘란카넌은 에이라나가 처음 폴리모프 했을 때의 반응이 생각났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휘안은 에이라나에 대해, 아니 하유현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엘란카넌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음 엘란카넌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내 손녀가 전생에 죽은 이유가 배신 때문이라니...”
  엘란카넌의 눈에는 은은한 분노가 맺혀 있었다. 그런 엘란카넌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더 자세한 건 에이라나에게 물으면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휘안의 말에 엘란카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네. 난 언젠가 에이라나가 스스로 입을 열 때...그때 듣겠네.”
  그런 엘란카넌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에이라나에게 천마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마도?”
  “예, 이곳으로 말하면 ‘다크 이스타’라는 칼입니다.”
  휘안의 말에 엘란카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에이라나가 황궁의 던전에서 들고 온 게 다크 이스타란 말인가?”
  그 말에 고개를끄덕인 휘안이 말했다.
  “정확한 명칭은 천마도입니다.”
  그런 휘안의 말을 들으며 엘란카넌이 말했다.
  “그 검은 다른 차원과 이 리샨은 잊는다는 검으로 전해지는데...거의 9,000년 전 생신 검으로 알고 있다네.”
  엘란카넌의 말에 휘안이 말했다.
  “그 검의 전 주인이 바로 에이라나가 있단 마교의 시조 천마입니다. 던전 안에는 저보다 강한 다섯의 마교 장로가 있었습니다.”
  살강 외 다섯 천마교의 장로들의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휘안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에이라나와 거의 같은 급이라고 보면 된다. 휘안의 말을 들은 엘란카넌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라나가 그 중원이란 곳으로 다시 갈 수도 있다는 소리군.”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휘안은 엘란카넌이 에이라나를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휘안의 착각이었다.
  “흐흐흐...그렇담 내 손녀을 죽인 그 빌어먹을 것들을 죽이러 나도 가볼까?”
  그 말에 휘안이 순간 휘청거렸다.
  ‘손녀나 할아버지나 똑같군.’
  하지만 휘안은 몰랐다. 그녀의 어머니인 에랴나니스라는 존재는 엘란카넌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말이다.
  오르칼 왕국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오르칼 왕국은 지난 몇 달 동안 8만의 대군을 모은 상태였다. 하지만 상대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두 배 반 정도밖에 차의 안 난다고 하지만...8만과 20만은 완벽하게 다른 숫자였다. 그리고 이번에 역시 그랜드소드마스터와 8서클 마법사가 두 명이나 오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에야말로 오르칼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 여러 나라에서 생각했다. 오르칼 왕국은 그저 작은 소왕국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르칼의 카프라스 공작을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번 일로 카프라스 공작은 백작에서 두 단계나 위인 공작의 직위를 하사받았다.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말이다.  오르칼 왕국군 8만 중 5만의군사가 그의 훈련을 받은 정예병이었다. 오합지졸 20만 명 따위는 절대 무섭지 않은 카프라스 공작이었다.
  “큭큭큭큭...그 병신 같은 놈이 이번에는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보구나.”
  카프라스는 또 다시 온다는 아프콘 공작을 마음껏 비웃고 있었다.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쳐들어오는 아프콘 공작의 깜찍하고(?) 귀여운(?) 행동에 웃음이 나는 카프라스였다.
  “아니, 너무 쉽게 죽이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미없겠군. 명색이 대륙 십강 중 한 사람이 너무 허무하게 죽으면 쓰나, 큭큭큭. 고마운 줄 알아라, 아프콘. 내 이번에 특별히 너만 살려주마. 큭큭큭. 그래, 너만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아프콘 공작만 살려 보낼 생각을 하는 카프라스였다.
  은발의 소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도를 휘둘렀다.
  서걱!
  대도는 몬스터 중 물리적인 힘이 가장 강하다는 자이언트를 그대로 두 조각내버렸다. 그것으로 보아 소녀는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녀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검을 뽑아 왼손에 든 소녀가 자세를 취하더니 대도와 검을 동시에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쾅! 콰가가가가가강!
  가공할 만한 은빛 강기 다발! 그 위력에 주위의 모든 몬스터들이 쓸려가 버렸다. 엄청난 수를 자랑하던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소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잠시 서 있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것으로...대충 모든 초식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군.”
  소녀는 바로 에이라나였다. 천마도검법의 초식을 모두 익힌 에이라나는 피식 웃으며 천마도와 은아를 검집에 꽂았다. 그렇게 에이라나는 잠시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더니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워프를  시전했다. 이제 데프론 제국과의 전쟁만이 남은 것이었다.
  그렇게 에이라나가 데르나 공작가의 저택에 워프를 시전할 때, 데르나 공작가에는 휘안,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이 전부 모여 있었다.
  “내일이면 출전인데...누나는 언제 올까?”
  키라이스트가 휘안을 보며 물었다. 키라이스트의 물음에 차를 마시던 휘안이 말했다.
  “글쎄, 오늘쯤 올 거야.”
  그런 휘안의 말을 듣고 루이스가 물었다.
  “휘안 형과 에이라나 누나는 저희와 함께 움직일 건가요?”
  루이스의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나 에이라나는 명령을 받는 건 딱 질색이거든.”
  휘안의 말에 아레인이 말했다.
  “그럼 그랜드소드마스터 셋이 한꺼번에 움직이게 되는데...윗사람들은 그걸 썩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런 아레인의 말에도 휘안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거랑 나랑 뭔 상관? 싸워주는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에이라나와 붙어서 생활하다 보니 휘안도 조금씩 에이라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 휘안의 말을 들으며 세 사람이 삐질 땀을 흘릴 때,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들리자 키라이스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 말에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라나 님께서 방금 막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휘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으며 세 사람은 얼굴이 밝아졌다.
  “나가자!”
  아레인이 먼저 외치며 말하자 루이스와 키라이스트가 우르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휘안이 중얼거렸다.
  “사랑이라...”
  그렇게 중얼거린 휘안이 피식 웃으며 남을 차를 마셨다.
 에이라나는 간편한 바지에 면옷을 입고 등에는 천마도를, 허리에는 은아와 흑아를 차고서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저택 현관 앞에 있는 그녀의 온몸에서 절대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세 사람은 에이라나가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오셨군요.”
  그런데 그 세 사람보다 먼저 로카나가 에이라나에게 다가갔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아아. 그래, 초식에 익숙해지느라 고생 좀 했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로카나를 보며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에이라나의 말에 로카나가 보기 드물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알아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로카나가 드디어 벽을 깬 것이었다. 거의 1,000년 만에 그랜드소드마스터 상급의 검사의 탄생이었다. 휘안과 에이라나는 원래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었으니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 로카나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시간 나면 나 좀 상대해줘.”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세 사람의 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키라이스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에이라나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보아하니 내일 출전한다며?”
  바로 전쟁 이야기를 꺼내는 에이라나를 보며 좀 쓴웃음을 짓는 세 사람이었다.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말했다.
  “네, 에이라나 누나와 휘안 형...그리고 로카나 님은 저희와 같이 갈 것 같아요.”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윗대가리들 명령 들으면 짜증나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거야.”
  그 말에 루이스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아프카레아나큰 후작님과 에이라나 누나, 휘안 형 그리고 로카나 님...우리 제국에 소드마스터가 무려 넷이나 되는구나.”
  아레인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데르나 공작가에서 하루를 쉰 에이라나는 키라이스트들과 함께 황국으로 향했다. 키라이스트들은 아르카스 황태자와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다시 말해 황태자가 이끄는 군대와 같이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사실 황태자과 전쟁터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황태자가 자신도 가겠다고 완강히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엘로난에게 부탁해 위험에 처하면 바로 황궁으로 워프되는 반지를 받기까지 해 결국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위험은 황태자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자동적으로 반지가 판단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그랜드소드마스터가 셋이나 붙어 있기도 했다.  병사 20만에 그랜드소드마스터 셋! 그리고 소드마스터 넷과 7서클 마법사 셋, 8서클 마법사 하나! 거기에 황궁 기사단 중 다섯 개의 단과 그밖에 귀족들이 이끌고 온 기사단과 함께 아르카스 황태자가 출전하게 되었다.
  에이라나와 휘안, 로카나는 아르카스 옆에서 혀를 찼다.
  “쯧쯧쯧...저것들은 무겁지도 않나? 어떻게 무식하게 저런 걸 입고 있지? 기사란 족속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그들이 말하는 것을 바로 아르카스 황태자 바로 뒤를 따르는 한 개의 기사단을 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르카스가 말했다.
  “기사에게 있어 갑옷은 전쟁에서 자신의 보호해주는 중요한 것이자 검과 같이 자존심이고 한 것입니다. 기사로서 상식 아닙니까?”
  그 말에 슬쩍 얼굴을 찌푸린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흰 저런 병신 같은 짓 하지 마라, 휘안이 가르쳐준 무공은 저딴 철 쓰레기 따위를 걸치면 사용하기 힘들어지는 무공이니까.”
  그 말에 루이스가 말했다.
  “그런 건 저희도 느끼고 있어요.”
  루이스의 말에 아레인이 말했다.
  “왜 저딴 걸 걸칠 생각을 했었지? 옛날에는?”
  소드마스터들과의 싸움이 아니라면 칼에 맞지 않은 자신이 있는 세 사람이었다. 그런 세 사람을 향해 아르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갑옷을 입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마스터들과의 싸움에서는 말이야.”
  그런 아르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어차피 오러만 있어도 갑옷은 그냥 종이나 마찬가지고, 움직이기 힘들기만 할 뿐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는 아르카스였다. 그러고 보니 에이라나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득 에이라나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라고?”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이라노야.”
  이라노는 대륙에서 상업이 가장 크게 발달한 나라였다. 그리고 덧붙여 이라노는 네 명의 인간 그랜드소드마스터 중 용병왕 카스의 고향이기도 했다. 이라노에는 지금 15만의 병력이 있었는데 그들 혼자서 데프론 제국의 동맹국인 미렐 왕국을 막고 있었다. 두 나라의 병력을 모두 합하면 50만. 그곳은 상당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진 나라였기에 엄청난 수의 병력을 투입한 것이었다. 이라노와 동맹관계에 있는 아툰은 약 20만 군사를 이라노에 지원했다고 한다.
  3주째 진군하고 있는 아르카스가 이끄는 아툰 제국의 군대는 20만이나 되는 대군이 평지를 이용해 유유히 진군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산 하나만 더 넘으면 전장에 도착하게 될 만큼 전장과 가까워져 있었다.
  “척후병을 보내서 기습에 대비합니다. 그리고 모든 병사들을 푹 쉬게 하는 겁니다.”
  막사 회의실에서 한 귀족이 말했다. 이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건 반대야. 모든 병사들이 아니더라도 한 부대 정도는 깨워서 망을 보게 해.”
  바로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의 말에 병사들을 쉬게 하자고 했던 귀족이 당황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3주일 동안의 강행군으로 병사들이 지쳐 있습니다, 한 부대라도 깨어 있다면 모든 병사들이 마음을 놓고 쉴 수가 없습니다.”
  그 귀족의 말에 역시나 주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아무리 척후병을 보낸다 하더라도 일직선으로 쭉 밀고 오면 피해가 커! 그러느니 차라리 한 부대를 쉬지 않게 하는 게 더 나아.”
  에이라나의 말을 듣고 다른 귀족이 말했다.
  “하지만 기습한다는 보장도 없었잖습니까. 여태 기습을 한번도 하지 않았고...그리고 마지막 날에 기습에 대한 경계를 강하게 할 것이라 생각할 게 분명합니다.”
  “아니, 온다.”
  그 귀족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도 확신에 찬 에이라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에이라나가 아르카스를 보며 말했다.
  “오늘 분명히 올 거야, 그럴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어. 뭐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냥 자게 놔두든가.”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귀족들 모두가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무려 그랜드소드마스터이기 때문이다. 에이라나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아르카스를 뒤로하고 루이스가 말했다.
  “오늘 제가 이끄는 부대가 기습에 대비할게요.”
  그 말에 몇몇을 제외한 귀족들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기습을 대비할 때 병사들이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명목도 있지만, 혹시 자신이 이끄는 부대가 기습에 대비할지 몰라 걱정이 되어서이기도 했다. 기습에 대비하게 되면 기습이 온다면 그만큼 병력도 잃을 분더러 제대로 쉬지 못하니 공을 세울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에 있었다. 모든 귀족이 환한 표정을 지을 때 키라이스트와 아레인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밤이 깊어갔다. 루이스가 이끄는 부대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주위를 경계하느라 바빴다. 에이라나가 나무 막대기고 장작불을 쓰시며 말했다.
  “쯧, 전시에서도 공을 세울 생각만 하다니...세상은 어디나 똑같은가 보군.”
  키라이스트와 아레인은 각각 자신들의 부대를 보느라 루이스의 부대가 있는 곳으로 오지도 못했다. 로카나와 휘안은 잠이든 상태였다. 에이라나가 자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두 사람 다 살기가 느껴진다면 바로 검을 뽑아 들고 반응할 이들이지만 말이다.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귀족은 그런 존재이니 할 수 없죠. 더 높은 공을 세워서 더 높은 직위를 원하는 이들이랍니다.”
  “넌 그 직위 정점에 서서 이런 곳에 관심이 없겠네?”
  “하하하...”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가지고 싶은 것도 다 가질 수 있고 말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어색하게 웃고 있던 루이스가 멈칫했다. 그런 루이스의 반응에 에이라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응? 왜 그래?”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말했다.
  “저도...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 게 있답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더 높은 권력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고...그만한 집안이라면 못하는 게 거의 없을 것인데?”
  그 말에 루이스가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당신은 가질 수 없잖아요...’
  어느새 루이스는 에이라나를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아직 모르는 듯하지만...키라이스트, 아레인 그리고 아르카스까지도 에이라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에이라나를 좋아한다고 자각한 사람은 자신뿐이었지만. 루이스는 에이라나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으면서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에이라나라는 상대의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에이라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봤자 에이라나는 농담취급을 하거나 아예 상대를 안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한 루이스가 씁쓸하게 웃자 에이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가 이어질 때쯤.
  “전투준비!”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 말에 훈련이 잘된 병사들이 바로 검을 뽑아 들고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원래 루이스의 말을 들어야 했지만 위엄 섞인 에이라나의 말에 전투준비를 하게 되었다. 에이라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어둠 속을 노려보며 말했다.
  “적군의 방향은 동남쪽! 숫자는 5,000명 정도! 움직임으로 봐서는 정예부대다!”
  날카롭게 하나하나 말하는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전투에 관해서 난 그 감각이 누구보다 감이 발달해 있거든.”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천마도를 뽑아 들며 말했다.
  검붉은 빛의 도신이 세상에 드러나며 그 어느 것이라도 찢어발길 듯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천마도를 뽑아 든 에이라나가 병사들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병사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루이스도 그런 에이라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무 방해 없이 맨 앞으로 온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왔다.”
  그 말과 함께 수풀 속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이미 철저하게 대비라고 있는 아툰 제국 측 병사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에이라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힘들게 이쪽까지 왔는데 재미도 못 보고 죽게 되어서 참 슬프겠군.”
  말을 마친 에이라나는 바로 천마도를 내지르면 외쳤다.
  “천마폭격!”
  초식과 함께 무시무시한 강기다발이 폭격되다시피 5,000명의 병사들을 덮쳤다.
  쾅! 콰가가가가가강!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괴물!”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외쳤다.
  “다 쓸어버려라!”
  그 말에 아툰 제국의 병사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와아아아아아!”
  갑작스러운 사태에 기습 병사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아툰 제국 병사들의 창, 칼에 맞아 픽픽 쓰러져갔다. 그렇게 데프론 제국의 기습공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그렇게 일이 수습될 즈음.
  “얻어맞기만 하는 건 딱 질색이다.”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얻어맞은 건 아니지만 공격 받은 건 사실이었다.
  “야, 휘안.”
  에이라나가 소란에 의해 깬 휘안을 불렀다. 그러자 어느새 전투준비를 모두 끝낸 것처럼 보이는 휘안이 다가왔다.
  “아아...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런 두 사람의 분위기에 루이스가 당황했다.
  “두 사람 뭘 하려고...”
  그런 루이스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에이라나가 데프론 제국 진영을 한 번 치고 오자신다.”
  그 말에 루이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무리 두 사람이 강하다 해도 그쪽에는 수십만의 대군과 수만의 기사들이 있어요! 위험해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흥, 그 따위 어중이떠중이 검사들 따위로 우릴 상대할 수는 없어.”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뒤돌아서자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가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거고, 위험해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내 앞길을 막는 것은 쳐부수고 간다, 방해되는 것은 치워버리면 그만이야!”
  그렇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루이스의 말에 이번에는 휘안이 말했다.
  “미안, 우린 엄청 빠른 속도로 갔다 올 거거든. 넌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가자.”
  “응.”
  “자, 잠깐!”
  진짜 가려는 듯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루이스가 당황하며 말렸다. 하지만...
  “어?”
  두 사람은 이미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바로 경공술을 이용한 것이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거리를 달려가는 두 사람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루이스를 보며 잠시 나왔던 로카나가 말했다.
  “두 사람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니 그냥 기다리기나 해라.”
  그렇게 말한 로카나도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오로지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을 본 루이스만이 얼이 빠져 있을 뿐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휘안이 물었다.
  “그런데 가서 어느 정도 날뛰다 돌아올 거냐?”
  휘안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몰라, 대충 귀찮아질 때쯤 튀기로 하지. 여기저기 불 지르는 것도 좋을 듯하고 말이야.”
  에이라나는 적군은 군량에 불을 지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흐음...조금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
  그런 휘안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사실 나도 조금 긴장은 된다.”
  아니, 에이라나는 긴장이 아니라 흥분이었다. 피의 바람이 불 것 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는 바로 에이라나일 것이다.
  에이라나와 휘안은 데르나군 근처에 다가가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기척을 지우는 은밀한 신법을 전개하며 숨어들기 시작했다. 에이라나는 천마도를 의식 속에 넣은 상태였다. 천마도처럼 큰 도를 가지고 있어봤자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은밀하게 진영 깊숙이 숨어든 에이라나와 휘안. 에이라나가 전음으로 말했다.
  [군량 찾아보자.]
  그 말에 휘안이 되물었다.
  [태우게?]
  [쿡쿡쿡...오랜만에 불꽃놀이나 구경하자고.]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와 휘안은 군량미가 있을 법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찾았다!]
  수많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곳을 휘안이 발견했다. 뒤에는 군량으로 보이는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휘안이 전음으로 말했다.
  [흐음, 100명은 되는 듯한데?]
  그런 휘안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냥 지풍으로 머리를 뚫어버리자고.]
  보통 저런 병사들은 디슬립 마법이 걸려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슬립은 통하지 않았다. 과격한 에이라나의 말에 고개를저은 휘안이 말했다.
  [차라리 혈도를 잡자.]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각각 100여 명의 병사의 혈도에 지풍을 날리는 두 사람. 지풍들은 정확히 혈도를 집어 입과 움직임을 봉쇄해버렸다. 100여 명의 병사들이 그대로 굳어버리자 에이라나와 휘안은 밖으로 나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눈을 부릅뜨는 병사들에게 에이라나가 생긋 웃어주곤 중얼거렸다.
  “살라만다.”
  그러자 에이라나 옆에 불꽃으로 만들어진 도마뱀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 앞에 있는 식량을 모조리 태워줘. 그리고 다 태운 다음 정령계로 돌아가.”
  그렇게 명령한 에이라나는 이번에는 곯아떨어진 병사들을 보며 시원한 선물을 날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마빙결격!”
  이는 천마도검법에 있는 빙계열 초식이었다. 마기에 차가움이 물들어 상대에게 타격을 준 다음 바로 다음 타격으로 상대를 얼려버리는 강력한 초식. 하지만 빙 속성 내공을 가진 에이라나가 사용하자 무시무시한 빙공으로 변해버렸다. 빙결격이 병사들 주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로 인해 주위는 난장판이 되었다.
  쾅!
  “끄아아아아악!”
  “뭐, 뭐야!”
  “적인가?”
  그렇게 소란이 일어난 후...
  쾅! 콰가가가가가강!
  마구 강기를 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커억!”
  병사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차가운 눈으로 베고 또 벨 뿐이었다. 에이라나와 휘안의 검강 다발에 거의 수십의 병사들이 쓸려나갔다. 휘안은 수내부들이 있는 쪽으로 가 검강 다발을 날리기도 했다. 그 바람에 수많은 귀족들이 죽어나갔다. 에이라나는 당황하는 기사들이 있는 쪽에 강기를 날리는가 하면 마법사들이 있는 곳에도 날렸다.  신나게 날뛰던 두 사람이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밀려드는 병사들을 보며 혀를 차준 다음 경공술을 이용해 진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빠져나가면서 강기를 날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만 병사들이 있는 곳에 달려들어 두 사람이 처리한 병사 수만 해도 1만을 가볍게 넘겼고 기사들 또한 수백이 죽었다. 마법사들 또한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갔으며 특히 귀족들이 많이 죽어나갔다. 더불어 어마어마한 군량도 날려버렸으니 데프론 제국의 피해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소왕국 중에서도 가장 커 거의 왕국이라 불리는 오르칼 왕국. 하지만 소왕국은 소왕국일 뿐이었다. 그런 오르칼 왕국을 침공하기 위해 20만의 대군과 아프콘 공작이 나섰다.  저번의 패배를 씻기 위해 선봉에 선 아프콘 공작은 저번에 당했던 술수에 당하지 않게 신중, 또 신중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르칼 왕국의 국경과 며칠 남지 않을 곳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야영을 결정한 후에도 그들은 척후병을 보내는 등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르콘 공작은 병사들에게 하루 동안 편히 쉬게 만드는 한편 마법사들을 시켜 수면초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두!
  막사 안에 있는 아르콘 공작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에 아르콘 공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말발굽소리였던 것이다. 당황한 아르콘 공작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저것들을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아!”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기마병들이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악!”
  “크억!”
  “케에에엑”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잘 자고 있던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은 갑자기 쳐들어와 오르칼 왕국의 병사들에 의해 모두 도륙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척후병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달려온 오르칼 왕국의 병사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으로 더욱 큰 추가타를 날리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카프라스 였다. 7서클 마법사인 카프라스가 세간에 알려진 7서클 마법이 아닌 8서클 마법을 섞어 쓰는 것을 보고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카프라스을 본 아프콘 공작의 눈이 뒤집어졌다.
  “네 이놈!”
  아프콘 공작의 말을 타고 달려오자 히죽 웃은 카프라스가 말했다.
  “전군 후퇴!”
  사령관이 직접 전투에 참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카프라스는 그런 상상을 깨고 직접 전투에 참전했다. 아프콘공작은 도망가는 5,000명의 기마병을 보고 바로 오러 블레이드를 날렸다. 오러 블레이드가 5000명의 기마병을 노리고 다가가는 순간!
  싱긋!
  카프라스가 검을 뽑아 그런 오러 블레이드를 내려쳤다... 그것을 보고 모두가 비웃었다. 감히 그랜드소드마스터가 날린 오러블레이드를 검으로 막으려 들다니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쾅!
  카프라스의 검에 맞은 오러 블레이드는 굉음을 내며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쿡쿡쿡. 파이어 오브레인.”
  그 광경에 굳어 있는 이들에게 카프라스가 선물을 하나 보냈다.. 바로 7서클 마법이 파이어 오브 레인, 불의 비였다... 쏟아져 내리는 불의 비를 보며 병사들은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재빨리 물속성 마법을 뿌리기도 하고 캔슬을 사용하며 파이어 오브 레인을 막기 바빴다... 카프라스는 아프콘 공작을 향해 생긋 웃어준 다음, 뒤돌아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카프라스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아프콘 공작이었다... 오르칼 왕국의 기습에 그 날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데프론제국의 병사들이었다... 그때부터 데프론 제국의 진격이 눈에 띠게 줄었다. 기습을 대비해서 였다... 기습 때문에 좁은 길이나 산길로 가면 어김없이 매복되어 있는 병사들에 당했고, 좀 안심이 된다 싶으면 오르칼 왕국의 기마병들이 쳐들어와 진영을 휘저은 다음 가버렸다...그렇게 병사들의 피로는 계속 누적되었으면 탈영병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사기도 계속해서 바닥나기 시작했다.모두가 카프라스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에이라나와 휘안이 데프론 제국에 입힌 피해를 보며 모두가경각했다. 할 말도 잃었다. 설마하니 반대로 쳐들어가 적군에게피해를 입힐 생각은 꿈에도 몰랐던 그들이었다..가장 큰 기동성도 그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 듯했다..에이라나가 말했다.
  “하루에 한 번씩 쳐들어가서 깽판 치고 올까?”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말했다.
  “그건 위험해요”
  에이라나의 기각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에이라나의 입지가 많이 강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기습 건을 들먹이며 하루 종일 귀족들을 비꼬아주었다...그러던 중 에이라나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아르카스를 보며말했다.
  “마중 나오셨다.”
  에이라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아르카스..
  “무슨 말이십니까?”
  “아, 마중 나왔다고”
  그렇게 아르카스와 에이라나가 이야기 하고 있을 때, 한 귀족이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다.
  “지금 데프론 제국에서 이라노의 이스 성을 공격하는 병력25만을 돌려 이쪽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이라노의 요새 이스 성! 이스 성은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요새로 자연적 위치에다 성병게 8서클 방위 마법이 걸려 있는 뚫기 힘든 성이었다. 그런데 성 주위를 도랑으로 메우고 있는 그 성을 공격하는 반을 빼돌려 아툰 제국을 마중 나온 것이다...
  “이 말이었습니다?”
  아르카스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성 방어하기 바쁜 이라노에서 우리 마중 나오겠냐?”
  그렇게 대화하는 도중에도 병사들은 전투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아레인이 말했다...
  “거, 너무 표정이 느긋한 거 아냐?”
  그런 아레인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뭐, 나에게는 죽음이 익숙하니까.”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레인. 그런 아레인에게 싱긋 웃어준 에이라나가 말했다.
  “죽음을 한번 겪어본... 자들은... 죽음이 두려워하는 법이 없지.”
  그리고 죽을 에리라나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웃은 다음 에이라나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없어졌다. 대신 날카로운 눈으로 적을 도륙하는 한 무사의 모습만남게 되었다...그렇게 계속 진격하던 아툰 제국의 병사들은 넓은 평원에서데프론 제국의 25만 병력과 맞붙게 되었다...수적으로는 저쪽이 훨씬 앞서고 있었지만 그랜드소드마스터가 셋이나 있는 아툰 제국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그렇게 서로가 대치를 하고 있을 때, 데프론 제국에서 한 무리의기사단이 앞으로 나왔다...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이가 소리쳤다.
  “우리는 데프론 제국의 폭풍의 기사단이다! 그대들의 기사단에게 기사단 대결을 신청한다!“
  기사단 대결은 가 군을 대표하는 기사단이 나와 싸우는 대결로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결이기도 했다. 폭풍의 기사단은 데프론 황실 기사단 중 하나로 기사단장이 소드마스터 중급으로 유명한 기사단이기도 했다...그런 데프론 제국의 폭풍의 기사단을 보며 아툰 제국의 황실 기사단에 속한 이글 기사단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아르카스에게 허락을 구하는 이글 기사단의 기사단장 역식소드마스터 중급의 경지였다. 그렇게 아르카스가 허락을 하려고할 때였다...
  “아니, 내가 가서 쓸어버리고 온다.”
  옆에 가만히 있던 에이라나가 나서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에이라나에게 향했다...
에이라나는 움직이기 편한 바지에 움직이기 편한 윗옷을 입고 있었다. 무장이라고는 등뒤의 커다란 대도와 허리에 찬 두개의 검이 다였다...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아르카스가 말했다.
  “위험합니다, 이번 일은 이글 기사단에 맡겨두는 게 좋겠는데요?”
  하지만 아르카스의 말은 에이라나에 의해 기각되었다.
  “겨우 이딴 일로 전력을 낭비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저 따위 녀석들 때문에 내가 위험해진다고?”
   에이라나가 오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아르카스가 입을 다물었다...
이글 기사단장이 나서며 말했다.
  “에이라나 님이 뛰어난 검사인 것은 맞습니다만... 이번 일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이글 기사단이 물러섬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완강했다.
  “내가 간다면 가는 줄 알아.”
  “저희가 가셌습니다.”
  말싸움이 계속되자 결국 에이라나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입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내가 하고 싶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너희에게 명령 받을 의무는 없어.”
  스산한 살기까지 뿌리면 하는 에이라나의 말에 이글 기사단장이움찔했다.
  “하, 하지만.......”
  “닥치라고 했다.”
  에이라나의 눈이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아크라스가 무슨 일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얼른말했다.
  “그, 그럼 에이라나 누나가 나가기로 하죠.”
  그 말에 잠시 이글 기사단장을 노려보던 에이라나가 뒤돌아서서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에이라나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자 기사단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에이라나의 살기는 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앞으로 걸어가는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말했다.
  “흐음, 도와줄까?”
  “됐어.”
  단호한 에이라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한 휘안이 말했다.
  “에이라나가 하고 싶다면 시켜주는 게 좋을 겁니다, 괜히 따지다시피 하지 말고요.”
그렇게 뼈 있는(?) 말을 하며 휘안이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왜 에이라나가 나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몸을 풀기 위해나가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휘안이었다. 뭐, 몸을 풀기위해 나가는 게 맞기도 했다...에이라나는 걸어가는 도중 은빛 가면을 썼다. 바로 그녀에게은빛 가면의 여검사라는 별명을 주게 된 가면이었다...폭풍의 기사단은 안 나오고 웬 여자가 자신들에게 걸어 나오자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
  하지만 아툰 제국 쪽은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폭풍의 기사단장이 말했다...
  “저 여자를 잡아오게”
  그러자 한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말을 타고 다가오는 기사 한 명을 보고 에이라나가 말했다.
  “싸움에서 가장 큰 적은 눈앞의 적이 아니라 바로 방심이지.”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그대로 검을 살짝 휘둘렀다. 그런 에이라나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들. 하지만 잠시 후........
  촤악!
  에이라나에게 다가가던 기사가 그대로 반 토막이 나버렸다.
  무형검기.
  보이지 않는 검기가 기사를 반 토막을 낼 것이다. 에이라나가 검 하나를 더 뽑자 은빛 검과 흑빛 검에서 강기가 흘러나왔다. 은빛 검강에 둘러싸인 흑아와 은아. 잠시 후 흑아레 있던 검강의 색깔이 검은 색으로 변하며 마기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개의 기운을 사용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 로카나를 제외한 모두가놀랐다. 키라이스트들은 이미 한번 이에라나의 검은 강기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이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폭풍기사단이 경악했다. 그런 기사단을 향해 에이라나가 무슨 말인가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는 사라졌다.
  “...싸움 앞에서 방심한 자... 죽어라 .”
  팟!
  에이라나가 사람짐과 동시에,
  촤악!
  바로 기사단 앞에 나타난 에이라나가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에리라나는 걷고 있었다. 그리고 인가(드래곤이지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악!”
  또 한 기사가 죽었다. 기사들이 굳은 얼굴로 에이라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런 기사들 하나하나를 죽일 뿐이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기사단장이 소리쳤다.
  “크윽! 죽어라!”
  촤악!
  하지만 그 순간 소드마스터 중급인 기사단장 또한 단 한방에 죽어버렸다. 그것을 보고 폭풍의 기사단이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공포가 사위를 잠식해갈 즈음이었다.
  “시작이군.”
  휘안이 중얼거렸다. 마교 교주 천마무공들에는 별명이 있었다. 부르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별명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바로 죽음의 전주곡. 마교의 무공들은 잔인하다. 특히 마교 교주의 무공들은 더더욱. 그 무공을 본 상대들은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 무공 자체의 성향이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마교를 중원 공동의 적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마교를 지켜주는 방어벽이 되기도 했다. 상대흫 곱게 죽이지 않는다. 잔인하게 피떡을 만들어서 죽이는 것이 마교의 무공이었다. 천마무공들에게 당한 이들은 죽을 때까지 춤을 추다가 죽는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무공들이 펼쳐지면 그것을 보고 죽음의 전주곡이라 불렀다. 휘안의 중얼거림에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형, 무엇이 시작된다는 거야?”
  키라이스트를 제외한 아르카스와 루이스, 아레인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죽음의 전주곡.”
  그 말에 네 사람 모두가 멈칫했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말을 되씹었다.
  “죽음의... 전주곡?”
  “그게 뭐야?”
  그런 네 사람을 보며 휘안이 물었다.
  “너희... 에이라나 검술의 진면목을 본 적 있냐?”
  그 말에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 면목?”
  그 말에 휘안이 말했다.
  “에이라나의 검술에 당한 자는... 죽을 대까지 춤을 추거던.”
  휘안의 무덤덤한 말에 잠시 얼굴이 굳은 네 사람. 그러다 아르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 설마요...”
  그런 아르카스를 보며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보면 알겠죠.”
  로카나 또한 휘안의 말을 듣고 에이라나의 모습을 자세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이라나의 검로가 점점 잔인하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기질 또한 사납게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휘안의 말처럼 에이라나의 검에 맞는 순간 폭풍의 기사단이 춤을 추는 듯 검로에 끌려 다니기 시작했다. 그 잔인한 모습에 그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모두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다만 휘안만이 덤덤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폭풍의 기사단이 있던 곳은 한편의 지옥도가 된 것처럼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한 소녀가 묵묵히 서 있었다. 그 지옥도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너무도 깨끗한 은발을 나부끼는 소녀. 가면을 쓰고 있어 그 표정은 알 수 없었으나 이 지옥도 앞에서 담담히 있는 것을 보면 보통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바로 바로 이 지옥도를 그려낸 에이라나 였다. 에이라나의 너무도 깨끗한 모습은 눈앞의 지옥도와 괴리감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에이라나는 무심한 눈으로 데프론 제국 쪽을 바라보았다. 데프론 제국은 방금 본 장면에 의해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몇몇 병사는 헛구역질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에이라나가 생긋 웃어주었다. 해맑은 미소였지만 데프론 군의 얼굴에는 사신의 웃음처럼 보였다. 에이라나가 은아와 흑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등 뒤에 있는 천마도를 뽑아 들었다. 검붉은 빛의 검신을 가진 천마도가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런 천마도를 한번 쳐다본 에이라나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강!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칼바람이 불어 데프론 제국의 맨 앞에 이는 병사들을 쓸어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에이라나가 데프론군으로 달려들며 아르카스에게 전음을 보냈다.
  [진군시켜!]
  그 말과 함께 아르카스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전군 돌격!”
  그와 함께 에이라나의 전음에 휘안과 로카나가 검을 뽑아들고 튀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20만의 대군이 달려 나갔다. 에이라나의 무시무시한 검술을 견식한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래도 굳어 있었다. 그리고 아툰군이 그대로 밀고 올라오자 당황하며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있었다.
  “맞서 싸워사! 수는 우리가 더 많다!”
  귀족들이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칼에 맞아 쓰러져 가는 병사들을 다독이려고 노력했지만 세 그랜드소드마스터 덕분에 그것도 무산되었다. 조금씩 물러나는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멈칫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그녀의 몸에서 검은색 마기가 피오오르기 시작했다. 그 마기는 하나씩 천마도로 모이더니 무시무시한 기운을 뿌리기 시작했다.  에이라나가 그대로 검을 내지르자 수많은 탄검강 다발이 데프론의 병사들을 쓸고 지나갔다. 그것을 보고 데프론군은 더더욱 전의를 잃어갔고, 결국 후퇴하기 시작했따. 하지만 후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을 때 해야 피해가 적은 법이지, 아무렇게나 후퇴하면 피해가 큰 법.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은 데프론 제국군은 아툰 제국에 변변한 피해도 주지 못하고 수만의 병력을 잃고 말았다.
  “대단하군요.”
  전투 후 이스 성으로 가기 전 전리품들을 수거하며 아르카스가 말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에이라나 옆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폭풍의 시가단을 처리한 것도 모자라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공격할 타이밍까지 만들어주다니, 놀라워요.”
  아르카스의 수다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시끄러워, 그만 좀 떠들어.”
  슬쩍 얼굴을 찌푸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아르카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아프카스를 한번 쳐다본 에이라나가 입을 열었다.
  “빨리 이스 성에 입성이나 하자, 이런데 시간 끌지 말고.”
  에이라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르카스가 일을 서둘렀다. 잠시 후, 노획물 수거가 끝나자 모두가 다시 이스 성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스 성에 도학한 아툰 제국의 병사들과 귀족들을 환대하게 맞아주는 이스 성의 성주. 그들 또한 이곳으로 오면서 데프론 제국군을 대파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기분이 더더욱 좋은 상태였다.
  데프론 제국군은 병사들을 재정비하고 있었기에 아툰 제국의 병사들이 성에 입성하는 것을 넋 놓고 구경만 해야 했다. 기습할 기미가 보인다면 그랜드소드마스터들이 나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아툰 제국군이 입성하는 것을 보고 있을 때였다.
  슈우우우우웅!
  퍽!
  갑자기 화살 한 대가 날아왔다. 그것을 보고 모두가 굳었다. 그 화살을 맞은 것은 귀족이었다.
  슈우우우웅!
  퍽!
  다시 한 발. 그리고 잠시 후,
  슈우우우웅!
  퍽퍽퍽!
  이번에는 세 발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한 마법사가 마법으로 안력을 키워 소리쳤다.
  “으, 은빛 가면의 여검사가 화살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 말과 마지막으로 에이라나가 날린 화살에 맞아 죽어버린 마법사였다.
  에이라나는 해츨링 때 심심풀이로 엘프마을에서 궁술도 배웠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교에서 봤던 궁술로 수련해 엄청난 명사수가 외어 있는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이번에는 병사의 창가 칼을 빼앗았다. 그리고 창과 천으로 활을 만든 다음 칼을 천에 매달아 당겼다. 보통 때 라면 부러질 창이 마나의 의해 탄성이 생겨 그대로 구부러졌다. 에이라나는 그대로 칼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검강이 생성되었다.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그것을 놨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이때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며 검이 데프론 제국군의 진영에 떨어졌다.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검에 의해 타격을 입은 데프론 제국군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화살의 밥이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안심이 된 에이라나도 성으로 입성했다 데프론 제국군은 그런 그들에게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툰 제국군이 도착하자마자 이스 성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가 문제였다. 총 35만명이라는 병력이 방어를 하게 되었지만 이 35만의 병력이 이스 성에 묶여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데프론 제국이나 데프론 제국의 동맹국을 공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에 성 이라는 장점만 있을 뿐, 아직까지는 병력 수에서 크게 떨어지는 아툰 제국과 이라노군이었다. 하니만 그렇게 큰 걱정은 없었다. 그랜드소드마스터가 셋이나 되었기에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바로 전면전으로 가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각이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이번에는 휘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쌔가 빠지게 뛰어다녀야 하잖아?”
  절대 싫은 에이라나와 휘안이었따.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당황하여 회의가 막혀버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더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 그리고 치고 빠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상대도 여기 있다는 건 그들 역시 이곳에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을 뜻하니까.”
  에이라나의 말에 아르카스는 자신이 너무 조바심을 냈던 것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마지막으로 에이라나는 몇 주 동안의 진군으로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래도 회의 분위기도 엉망이 되자 아르카스도 알 수 없는 한숨과 함께 자신이 배정된 방으로 갔다.
  에이라나는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신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눈을 감은채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에이라나가 슬쩍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방문 앞에 있는 기척을 느끼며 말했다.
  “들어와라.”
  그 말과 동시에 방 앞에서 머뭇거리던 기척이 멈칫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루이스였다. 에이라나는 침대 위헤서 가부좌를 풀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밤늦게 웬일이냐?”
  깊은 밤이었다. 에이라나도 조금 있으면 잘 시간에 루이스가 찾아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따.
  “잠이 안 와서요.”
  그런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넌 잠 안온다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냐?”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잠시 멈칫한 루이스가 물었다.
  “잘...거에요?”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따
  “그럼, 밤엔 자야지 놀러 다니냐?”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애가 안 그러더니 요즘 따라 왜 그래?”
  에리라나도 최근 들어 루이스가 자신의 주위에 자주 붙어 있으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 첸 상태였다. 처음에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런 경향은 심해졌다.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다가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냥요...”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팍 얼굴을 찡그렸다.
  “넌 그냥으로 사람 귀찮게 만들어?”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모습으로 물었다.
  “제가... 귀찮아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계속 달라 붙으니 귀찮아.”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루이스가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다면 죄송해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루이스를 보며 말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어릴 때도 너처럼 귀찮게 따라다니던 녀석이 있었으니까.”
  그 말에 루이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군데요?”
  ‘혹시 키라이스트?’
  이렇게 생각하던 루이스는 다음 에이라나의 말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레니스 오르 폰트레스.”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는 레니스 공작이 키라이스트의 집에서 며칠 머물렀다는 것을 기억했다.
  루이스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불꽃의 마검사 레니스 오르 폰트레스가... 에이라나 누나를 좋아했었다고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귀자고 하기에 멋지게 밟아주었지.”
  그 말에 루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레니스는 자신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에 들리는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는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너도 날 좋아하되, 사랑하지는 마라.”
  그런 에이라나의 냉정한 말에 루이스가 멍하니 물었다.
  “알고... 있었어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했잖아? 레니스가 너처럼 날 따라다녔다고.”
  에이라나는 루이스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눈치 첸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루이스의 행동을 에이라나가 반길 리 없었다. 근처에서 누나, 언니 이렇게 하는 것은 이제 일일이 대꾸해 주는 게 귀찮아서 그려려니 하고 있었다. 싫어도 자신의 성별은 여자니까. 하지만 영혼은 남자이기에 당연히 자신은 남자라는 정체성이 강했다. 아마 윔급 드래곤이 된다면 남자로 폴리모프해서 다닐 것이다. 그러니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힘든 에이라나였다. 루이스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하면... 사랑하면 안 될까요?”
  그런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안 된다, 그건 기각이다.”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루이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죠? 왜 안 되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휘안형을 사랑해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저었다.
  “난 사랑하는 사람 따위는 없어.”
  그 말에 루이스가 악을 쓰듯 말했다.
  “그럼! 그럼 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루이스와 시선을 맞추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왜냐고?”
  루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내가 고아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 말에 멈칫한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난 10살 때 스승님의 훈련 속에 살면서 불필요한 감정을 자제하는 법을 배웠지. 게다가 고아 시적, 사는 데 정신이 팔려 난 많은 감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지, 그리고 훈련 중 몇 개의 감정들은 완전히 지워져버렸고, 다시 말해... 몇몇 감정은 완전히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
  그 말에 루이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사랑이란 감정도 머리로 지워버렸지, 뭐 언제 살아날지도 모르지만 거의 가망 없다고 봐. 그렇기에 사랑은 이해하고 있어도 내게는 찾아오지 않는 거지.”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해하겠냐? 난 사랑을 못해.”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알고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감정은 중요한 것을 제회한 모든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이런 말을 하면서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에이라나였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리고 신이 지성을 갖춘 이들에게 내린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드래곤들도 서로를 사랑한다. 그들에게도 사랑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란 축복을 받지 못한 에이라나였다.   가족애라는 것은 있지만 이성에 대한 사랑은 없는 에이라나였다.  어느새 루이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대! 절대 포기 안 할 거예요!”
  그렇게 외친 루이스가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포기하라니까.”
  무른 일인지 루이스는 하루 만에 침울해져버렸다. 그런 루이스를 보며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없었다. 다만 휘안만이 무슨 이유에선지 한숨을 푹 쉬고 있었다. 한편 에이라나는 이스 성에서 가장 높은 탑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에이라나 곁으로 휘안이 다가왔다.
  “...어제 루이스가 고백이라도 하던?”
  휘안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휘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녀석 왜 저래?”
  “내가... 미리 잘랐어.”
  그 말에 휘안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냉정하군.”
  “...계속 날 좋아했으면 루이스만 힘들었을 거야.”
  “나머지 사람들은?”
  “...”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레인, 키라이스트... 그리고 아르카스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 아르카스는 별 상관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다.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친한 이들이 생긴다는 건 이래서 좋지 않구나.”
  그 말에 휘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나 무연은 뭐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의 두 사람은 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지만 이 녀석들은 아니잖아.”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는 휘안이었다. 에이라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긁적이던 휘안이 물었다.
  “고백하면 어떻게 할 거냐?”
  “글세...냉정하게 거절해야 하지 않을까?”
  에이라나의 말을 들으며 휘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 녀석을 보고 있자면 가끔씩 슬퍼지는 휘안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이 없는 이 녀석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가까웠기에 더욱 안타까운 휘안이었다. 휘안이 중얼거렸다.
  “너무 메마른 감정을 가지는 것도 좋지 않아.”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냐? 전생의 환경이 이렇게 만든 거야.”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탑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휘안이 중얼거렸다.
  “쳇, 난 아직도 널 좋아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휘안의 중얼거림을 에이라나는 듣지 못했다.
  오르칼 왕국의 무적의 군대... 그리고 소마검, 마뇌, 월광검. 아프콘 공작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겨우 5일이다. 5일 마에 20만 대군이 격파 당했다. 생전 듣고 보도 못한 이상한 병사운용으로 말이다. 생존자는 저번처럼 자신 혼자뿐이었다. 아프콘 공작은 지난3일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5일 전, 20만 아프콘 공작이 이끄는 데프론 제국의 20만 대군은 오르칼 왕국의 국경선에 도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습으로 인해 3만 정도의 병력을 잃었다지만 아직17만의 대군이 있었다. 때문에 금방 오르칼 왕국을 밀어버릴 기세로 오르칼 왕국의 국경성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엄청난 수성 능력을 보이는 오르칼 왕국의 군대였다. 성문을 공격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성문이 열리며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에게 병사를 잃은 것이 잊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성문이 활짝 열리자마자 기마병들이 튀어나와 병사들 사이를 마음껏 휘저은 다음 들어가기도 했다. 특히 기마병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돌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라 방어만 하던 오르칼 왕국이 3일재 되던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밤에 기습을 와서 한바탕 데프론 제국의 진영을 휘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4일째 되던 날에는 전면전까지 치르게 되었다. 적은 200명으로 이루어진 기사단 하나가 정말 믿을 수 없는 힘을 발휘했다. 기사단 중 50명이라는 경악스러운 숫자가 모두다 소드마스터라는 것! 그들은 모두 무시무시한 검은빛의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했으며 나머지 150명은 거의 모두가 소드마스터 익스퍼트 상급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이 오르칼 왕국이 키운 기사단이 아니라 카프라스 공작의 개인 기사단이라는 것에 더더욱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오르칼 국왕마저도 이런 기사단이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사단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사단의 합격술이었다. 기사단은 말을 타고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합격술을 사용했는데,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교한 합격술 덕분에 수천의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보다 못한 아프콘 공작이 그 기사단을 상대하기 위해 직접 기사단을 끌고 나갔다. 아무리 소드마스터가 50명이라고 하나 그랜드소드마스터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기사단의 소드마스터는 모두 입문에서 초급의 소드마스터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아프콘 공작을 막는 이가 있었다.
  “여~ 이거 꼬리 내린 개 아프콘 공작이 아니신가?”
  바로 카프라스였다. 그런 카프라스를 보며 아프콘 공작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놈...”
  “이거 왜 이러셔? 나에게도 카프라스라는 번듯한 이름이 있는데 놈으로 부르다니, 예의가 없구만?”
  그런 카프라스를 보며 아프콘 공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나온 것이냐! 오늘이야말로 네놈의 목을 따버리겠다!”
  어지간하면 흥분하지 않는 아프콘 공작이 이 정도로 흥분한 것을 보면 카프라스라는 존재가 아프콘 공작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줬다는 뜻이다.
  카프라스가 자신의 짙은 남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따.
  “그놈 참 말귀 못 알아듣는구만.”
  “크악! 이놈 죽어라!”
  카프라스의 조롱 섞인 말에 아프콘 공작은 무시무시한 오러블레이드를 검에 주입시키며 카프라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큭큭큭, 검을 배울 때 스승이 안 가르쳐주던? 흥분하면 진다고?”
  그 말에 함께 카프라스의 검에서도 시커먼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됨과 동시에 아프콘 공작의 검을 막았다.
  쾅!
  그리고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폭음. 아프콘 공작은 카프라스의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네, 네놈은 마법사가 아니었던가!”
  그런 아프콘 공작을 보며 상큼하게 한번 웃어준 카프라스가 말했다.
  “검술도 잘한다, 이 말씀.”
  그렇게 중얼거린 카프라스의 검이 아프콘 공작의 검을 흘려버렸다.
  퍽!
  그와 동시에 카프라스의 주먹이 아프콘 공작의 안면을 강타했다.
  “크억!”
  그 충격에 코뼈가 부러져 버린 아프콘 공작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런 아프콘 공작을 보며 카프라스가 말했다.
  “흐음, 이 몸은 몸을 움직이는 것은 싫어하지만 네놈을 생포하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여주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프라스의 몸에서 검은빛 기운이 줄깃줄깃 뿜어져 나왔다. 그것을 보고서야 서서히 경악하는 아프콘 공작이었다. 카프라스는 엄청난 검술의 경지에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오르칼 왕국의 병사들도 이상한 전술로 움직이며 데프론 제국의 병사들을 교한, 혼란시키며 데프론 제국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말을 타지 않고 갑옷도 입지 않은 이상한 기사단에 의해 병사들의 피해는 더욱 빨리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아프콘 공작의 얼굴이 팡백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나, 마뇌 악안영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을 영관으로 알아라, 원래 성격대로라면 네놈은 이미 세상 하직이었을 거다. 후후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엄청나게 얻어터진 후 결국 포로로 잡혀버리고 말았다.
  카프라스 공작, 아니 중원 천마교에서 대대로 교주의 참모역할을 담당해오던 악씨 집안, 그 악씨 집안의 후계자였던 이가 바로 악안영이었다. 악안영은 악씨 집안 역대 최고의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당시 그는 주군으로 유현을 모시고 있었는데, 유현이 암습을 받기 전 한 발 앞서 그것을 알아차려 대처하려 하다가 장로들의 암습에 의해 유현이 죽기 전에 먼저 죽어버린 자였다. 그런 그가 유현이 에이라나로 환생한 것처럼 리샨 대륙에서 오르칼 왕국의 귀족으로 환생한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장로들에게 복수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에 미친 듯이 마법에 몰두했고 장로들의 목을 치기 위해 검술을 갈고 닦았다. 그러던 도중 대륙전쟁이 터졌다.  악안영, 아니 이제는 카프라스 공작으로 불리는 카프라스는 자신의 집안의 기사 200명을 직접 훈련시켰고, 그 결과 지금 대륙 회강의 기사단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물론 루이스나 키라이스트, 아레인처럼 어릴 때부터 지도를 받지 못했고 세심하게 훈련시키지 못했기에 개개인의 역량은 상당히 떨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카프라스가 기사단에서 죽도록 훈련시킨 마참격진 덕분에 무시무시한 위력을 내는 기사단이었다. 그는 병사들에게도 중원에서 쓰던 병사들을 이용해 진법을 익히게 만들오 이제 무적의 군대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오르칼 왕국군이었다. 10만으로 3~4배에 해당하는 적들과 싸울 수 있는 최정예 부대였던 것이다. 돌격하다가 병사들을 나우어 싸버리는 샌드위치식의 병력 운용밖에 못하는 대륙에서는 잘 훈련된 오르칼 왕국군을 상대할 수 없을 게 뻔했다. 하루아침에 소드마스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수로 소왕국이란 타이틀에서 벗어났다. 그 오르칼 왕국의 대회의장에서 회의가 열렸다.
  “허허, 대단하오. 역시 카프라스 공작이오. 이렇게 우리 왕국에 승리를 가져다주니.”
  국왕은 몹시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카프라스 공작을 치하했다. 하지만 뒤이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하지만 짐 몰래 그런 기사단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은 조금 카프라스 공작에게 아쉬운 점이라네.”
  국왕의 말에 카프라스가 말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키울 필요성이 있어서였습니다. 괜히 이런 정보가 다른 나라에 넘어가는 건 좋지 않은 현상이니까요.”
  카프라스 공작이 몇몇 귀족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카프라스의 시선을 받은 모든 귀족들이  움찔했다. 그런 귀족들에게 한번 씨익 웃어준 카프라스가 말했다.
  “뭐, 좋지 않은 현상이 계속 일어난다면 날 잡아 쥐새끼들을 잡아야죠, 시기가 딱 좋군요.”
  카프라스의 말에 국왕은 껄껄껄 웃음며 말했다.
  “공작은 화끈해서 마음에 든다네.”
  그런 국왕에게 웃어준 카프라스가 말했다.
  “그리고...저번에 제가 폐하께 말씀드렸지요.?”
  카프라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왕.  
  “뭘 말인가?”
  그런 국왕을 보며 카프라스가 말했다.
  “오스칼 왕국을 제국으로 만들어 드린다구요.”
  그 말에 국왕이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국이 되고 싶긴 하지. 하지만 힘이 없지 않은가?”
  그런 국왕을 잠시 쳐다보던 카프라스가 입을 열였다.
  “어차피 계속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시달릴 것이 분명합니다. 일단 제 기사단이 드러난 이상 그 기사단을 자신들의 나라에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부리겠죠.”
  그 말에 귀족들과 국왕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때 회의잘 전체가 경악할 만한 말이 카프라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렇다면...미리 다른 국왕을 침략해 힘을 키우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그 말에 회의장내 모든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지었다. 저 말은 즉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자는 말이었다. 즉, 대륙 전쟁에 참전하자는 뜻. 그 말을 들은 국왕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가, 가능하겠는가, 카프라스 공작?”
  그 말에 카프라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가능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공격만 받느니 차라리 다른 나라를 치는 게 좋겠지요.”
  카프라스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모도가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할 즈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다른 나라와 내통하는 쓰레기들 역시 청소해야겠죠?”
  그 말과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기사들이 들어왔다. 그 기사들을 보며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다만 국왕과 이 일을 꾸민 카프라스만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카로스 공작, 뎀피 공작, 우르클 후작, 소펜 후작등 그 외30여명의 귀족들은 다른 나라, 특히 데프론과 내통을 한 죄를 물어 모드 참수에 처하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싱긋 웃는 카프라스를 보며 방금 전 대륙 전쟁에 끼어들자는 말에 놀랐던 국왕도 허허 웃으며 말했다.
  “폭탄발언에 놀라기는 했으나 원래 계획했던 일은 해아지.”
  이미 오레 전부터 나른 나라와 내통을 하며 나라를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 귀족들을 처리할 생각인 카프라스와 국왕이었다. 기사들에게 제압당한 귀족들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저 전하 억울합니다.!”
  “충신들에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십니까?”
  그제야 억울한 듯 지껄이며 항의하는 귀족들을 보며 카프라스가 화사하게 웃어주었다. 그가 아무 증거도 없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었다. 임 병력을 보내 다른 나라와 내통한 귀족들의 힘을 무력화시킨 카프라스였다. 즉, 귀족들의 세력이 고스란히 왕권으로 흡수되었다는 말이었다. 카프라스가 히죽 웃으며 마말했다.
  “증거는 다 잡앗고... 억울함은 지하 감옥에서 표출하라고.”
  카프라스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자 키로스 공작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네놈!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우리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는가! 우린 나라의 권력자들이다! 이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아느냐!”
  이 말은 즉 자신들의 힘을 써서 이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카프라스가 킥킥킥 웃으며 말했다.
  “네놈들의 세력에 있는 것들은 이미 목이 잘렸거나 다 잡혀서 수도로 압송되고 있을걸? 아, 네놈들 자식들도 모조리 죽었을지 모르지. 네놈들의 세력은 이미 무력화돠었단 말이다.”
  남이 앞을 내다본다면 하늘을 내다본다는 마뇌다. 그런 마뇌에게 있어 이까짓 귀족 정치판은 너무도 쉽고도 쉬었다. 차라리 천마교의 암투극이 더 골치 아픈 마뇌였다. 카프라스읨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귀족들. 그런 귀족들에게 오만한 표정으로 웃어준 카프라스가 말했다.
  “끌고 가라.”
  “예.”
  카프라스의 말에 귀족들은 끌고 가는 기사들이었다. 얼마 후, 경악할 만한 소문이 대륙을 강타했다. 갑자기 나타나 소드마스터 50명! 그리고 150명의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으로 구성된 기사단! 이 기사단의 등장에 대륙이 경악했으며 이 기사단이 나온 곳이 오르칼 왕국이라는 곳에 또 경악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르칼 왕국이 바로 데프론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미치치 않고서야 절대 그런 짓을 할리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오르칼 왕국이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며칠 후 그들은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데프론 제국의 연속적인 패배소식이 들려 온 것이다. 온갖 이상한 공성전 무기를 꺼낸 든 오르칼 왕국에 데프론 제국은 그만 연전연패를 계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르칼 왕국의 크기는 한 달 만에 거의 세 배로 늘어 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되었다.  이 경악스러운 일의 공신인 카프라스 공작이 알려지고, 모두가 오르칼 왕국의 행보를 주시했다. 한 달 동안 의 진격을 마치고 잠시 쉬기로 한 오르칼 왕국은 그 사이에 늘어버린 땅의 민심을 수습하는가 하면 여러 나라들은 견제하기 바빴다.  그리고 포로로 잡힌 병사들과 하나한 지원하는 백성들 덕분에 하루아침에 병사들의 수가 30만 가까이 늘어버린 오르칼 왕국. 그중 8만이 데프론 지국과의 싸움에서 연승을 만들어낸 무적의 군대라는 명칭을 가진 부대였다. 제국과 왕국 사이의 준제국이 움직일 수 있는 40만이라고 볼 때 거의 대국에 가까워져버린 오르칼 왕국이었다. 이제는 당당하게 대륙에 ‘오르칼’ 이 석 자를 들이밀 수 있는 것이다. 강대국으로 인정을 받자 대륙 여기저기서 동맹국이 되려고 사신이 오기 시작했다.
  마뇌가 리샨 대륙을 주무른다.
  소마검(에이라나의 명호)이 리샨 대룩을 뒤집어엎는다.
  월광검(남궁휘안의 명호)이 이세계의 강자들을 굴복시킨다.
  중원 심인방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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