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7

남궁세가
  무림의 정파의 기둥인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그중 안휘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 있어쓰니 그곳이 바로 남궁세가였다.
  남궁세가는 3년 전부터 커다란 근심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바로 소가주의 행방불명.
  무공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휘안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남궁세가는 큰 시름에 빠져 들어갔다.
  평소 남궁휘안을 잘 따르던 그의 동생들 역시 나날이 우울해져만 갔다.
  온 중원을 뒤져봤지만 남궁휘안의 행방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만사를 제쳐두고 남궁휘안의 행방을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리샨 대륙으로 사라져버린 휘안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안휘성.
  대 남궁세가의 정문.
  그곳에 한 인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냥 워프 사용하면 될 것을."
  한 예쁘장하게 생긴 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이가 중얼거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간다. 다만 확 눈에 띄는 것은 색목인이라는 것일 뿐.
  "워프가 뭡니까?"
  "있어요, 그런 게."
  그의 옆에 있던 다부지게 생긴 한 청년이 묻는다. 청년의 물음에 색목인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일행은 모두 넷.
  거지 행색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지저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발견한 남궁세가의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저런 잡것들이 다가오는가?
  그것도 저렇게 당당한 걸음으로?
  황당할 따름이었다.
  무사들은 점점 정문을 향해 가까워져 오는 그들을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천하의 이름 높은 남궁세가다.
  저런 잡배들이 감히 얼씬거릴 곳이 아니었다.
  색목인이 끼어 있는 이상한 조합의 일행이었지만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무사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 기세를 피웠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에도 넷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한 걸음으로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창 기세를 피우던 무사들이 순간 당황했다.
  도대체가 뭐란 말인가?
  자신들의 기세를 읽지 못했을까?
  무림인으로 보이는 것으로 봐서 분명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저 당당한 걸음이라니?
  "안녕하세요?"
  넷 중에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의 한 청년이 웃으며 남궁세가의 무사들에게 인사했다.
  너무도 당당한 그 태도에 무사들이 멈칫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다음에 이어지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사에 하나터면 자신들도 모르게 '고맙습니다.' 하고 그를 들여보내 줄 뻔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무사 하나가 황급히 그를 막아 세웠다.
  "이보시오! 여긴 그대들이 함부로 발을 들일 곳이 아니오!"
  청년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자기 집에라도 온 양 행동하는 모습에 무사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중 한 무사가 빨리 정신을 차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대로 정문을 지나 남궁세가 안으로 발을 들여놓도록 할 뻔했다.
  무사가 자신을 막자 청년은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고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
  "아니? 왜 내가 못 들어간단 말인가요?"
  그 말에 무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 참 답답하기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오?"
  "남궁세가죠."
  "그럼 남궁세가에 아무 신분 없이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어디 근처 문파의 제자들이라도 되오?"
  청년의 너무도 태연한 태도에 더 이상 참다못해 따끔하게 호통을 치려던 무사가 다음에 들린 말에 굳어버렸다.
  "내 집에 내가 들어가겠다는데 막는 건 또 무엇이오?"
  휘안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무사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까지 굳었다.
  "그래, 여기가 당신의 집이라..."
  집? 여기가 자신으 ㅣ집이라고 말한 건가?
  무사의 반응에 휘안은 이제는 되었다 싶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미친놈!"
  "살다, 살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뭐? 여기가 자신의 집이야?"
  "저놈들 그냥 패서 쫓아버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소리.
  그들의 반응에 휘안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런 휘안을 향해 옆에 있던 안영이 말했다.
  "에이라나 님 닮아 가십니까? 자신이 누군지 말해야 들어갈 수 있든 말든 하죠. 휘안 님이 중원에서 행방불명된 지 어언 3년이 지났습니다."
  "아, 그러네?"
  행패 비슷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이 일행은, 당연하게도 휘안 일행이었다.
  휘안, 유한, 안영, 팽가려.
  팽가려는 오랜만에 남궁세가에 가보고 싶다는 핑계로 휘안을 따라온 상태였다. 즉 용봉지회 일원들과 헤어졌다는 말이다.
  그는 며칠 동안 휘안 일행과 생활하면서 많이 놀랐다.
  휘안 일행의 무공.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어쩌면 화경의 경지일지도 몰라.'
  저 나이 때에 화경의 경지?
  정말 귀재 중의 귀재였다.
  휘안의 나이는 27세.
  30세에 강기를 사용하는, 즉 화경의 경지에 들었다면 그건 천재 중에 천재다.
  아무리 천재라도 거의 30대 중, 후반에 화경의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휘안은 무려 24세 때 화경의 경지였고, 리샨 대륙으로 넘어가며 현경의 경지에 올랐다.
  무림 역사상 그만큼 빠른 성장을 한 이도 없을 것이다.
  하유현. 즉 에이라나가 죽을 때의 무공 수위가 안영 정도의 무공 수위였다. 화경과 현경 사이.
  그것으로 보아 에이라나의 무력 역시 엄청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팽가려는 휘안의 경지가 높기는 해도 현경일 것이라는 예상은 꿈에도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안영의 말이 맞았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이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휘안은 자신들을 쫓아내기 위해 달려들려고 하는 무사들을 보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옥패였다.
  신비한 은빛 실에 묶여져 있는 옥패.
  은빛 실은 미스릴 실이었다.
  갑작스럽게 휘안이 옥패를 꺼내들자 문지기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남궁세가의 현 소가주 남궁휘안이 왔다고 안에 전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문지기에게 옥패를 보여주는 휘안이었다.
  "커억!"
  "나,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증명하는 옥패!"
  휘안이 꺼낸 옥패 하나 때문에 문지기들은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휘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에 기별을 넣지 않고 뭐합니까?"
  "저, 정말 소, 소가주님이 맞으십니까?"
  "윗사람을 불러오면 아실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무사가 황급히 남궁세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기, 기다리십시오."
  그 모습을 보며 휘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집에 온다는 생각에 전속력으로 달려왔더니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집의 대문을 보니 왠지 포근한 마음이 들었다.
  "휘안이가, 우리 휘안이가 돌아왔다고?"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류를 처리하던 남궁가주 남궁현은 갑자기 들이닥친 총관 현석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평소에 침착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현석이, 모든 일을 냉정하게 처리하던 그가 오늘따라 이상했기 때문이다.
  "자네답지 않게 왜 그렇게 당황해하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남궁현에게 숨을 헐떡이며 총관 현석이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허억! 허억! 바, 밖에! 허억! 소, 소가주님이! 허억!"
  그의 말에 남궁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소가주가 누구를 말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휘안이 말하는가?"
  지난 3년간 단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었던 말이기에 남궁현의 눈이 금세 슬픔에 잠겼다.
  그런 남궁현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현석이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밖에 남궁 소가주님이 와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 휘안이가 왔다."
  현석의 말을 혼자 뇌까리던 남궁현이 곧 그의 말을 인지하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자, 자네. 뭐라고 했는가?"
  "휘안 공자님이 밖에 와 있다고 합니다!"
  "휘, 휘안이가?"
  벌떡!
  "어디냐!"
  "세가 정문에!"
  타앗!
  그 말과 함께 남궁현은 경공술을 이용해 달려 나갔고 현석도 부랴부랴 뒤를 따랐다.
  팽가려가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상징하는 옥패에 달린 끈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실은 처음 봅니다. 은빛에 아름다운 실이라니. 그리고 매우 튼튼하군요."
  "천잠사보다 질겨. 그리고 기를 잘 받아들이고 끈 자체에 은은한 기가 흐르고 있지."
  "정말 그렇군요! 정말 엄청난 보물입니다. 재료가 뭐죠?"
  팽가려가 미스릴 실로 만든 끈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유한이 옆에서 나타나 말했다.
  "그거 미스릴 실 아냐?"
  유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휘안이었다.
  "맞아, 미스릴로 만든 거."
  "미스릴의 강도가 현철보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강도가 엇비슷하지 않을까?"
  "하긴 순수한 미스릴로 장인이 만든 검이라면 검기도 버텨내죠?"
  "그래."
  검강을 버텨내는 금속.
  그런 금속을 말하자면 무림에서는 두 개가 있었다.
  바로 현철과 만년한철.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두 무구.
  하지만 현철은 엄청난 무게를 자랑했으며, 만년한철은 현철보다는 가벼웠지만 역시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금속 자체가 은은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그에 비해 미스릴은 강도는 현철과 만년한철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순수한 미스릴로 장인이 만든 검이라면 검기도 버텨 낸다고 한다. 현철과 만년한철은 검기는 버티지만 강기는 버티기 힘들었다.
  또 미스릴은 만년한철과 현철이 따라가지 못한 장점이 많았다. 미스릴은 가볍고 탄성력이 상당했다. 그렇기에 실로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마나를 잘 받아들이며 은은한 마나까지 품고 있었다.
  휘안, 유한, 안영의 대화에 팽가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에? 검기를 버티는 강도의 금속이 있나요?"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 끈도 그 금속으로 만든 실로 만든 끈이지."
  "예에? 그런 부드러운 실이 천잠사보다 질기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실이 금속으로 만든 실이라고요?"
  팽가려는 정말 놀랐다.
  천잠사 역시 철로 만든 실이었다
  하지만 미스릴 실처럼 부드럽지 못하였으며 잘못 만지면 손가락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미스릴은 달랐다. 부드럽고 아름다웠으며, 감촉 또한 좋았다. 마치 비단을 만지는 것처럼.
  물론 미스릴 실은 리샨 대륙에서도 귀하기로 유명했다. 연금술사와 드워프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팽가려의 반응을 보고 휘안과 안영이 아차 싶었다.
  리샨 대륙에 익숙해 있다 보니 깜빡한 게 있었다.
  이런 물건은 리샨 대륙에서는 어느 정도 보급이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중원은 아니다.
  특히 미스릴이라는 금속 자체가 중원에는 없다. 그렇기에 이 미스릴은 이곳에서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물론 휘안의 아공간에는 온갖 잡다한 것이 다 있었다.
  포션에서부터 아티팩트, 명검, 신기한 물건 등.
  몇 개는 자신이 직접 산 것이고 몇 개는 에이라나의 레어에 널려 있는 것을 가져온 것이다.
  입조심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 휘안이 팽가려를 보며 말했다.
  "흠흠, 팽가려. 난 네가 이런 거 아무 데서나 안 떠들고 다닐 녀석이라고 믿는다."
  "아? 아, 예. 알겠습니다."
  팽가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저 끈의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만약 저런 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강호가 한바탕 뒤집어 질 것이다.
  아마 그 미스릴이라는 금속도 강호에 떨어진다면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팽가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잠시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려고 할 때 휘안이 갑자기 세가 정문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문지기들이 조심스러운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휘안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들이 아니었다.
  휘안의 눈이 쫓고 있는 자.
  그는 빠른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인물.
  휘안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갑작스런 휘안의 행동에 안영이 그의 시선을 쫓았다. 시선이 머문 곳을 확인한 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영의 눈에도 보였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가.
  안영은 정파의 각 세가나 문파의 중요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각 세가나 문파를 이끄는 수장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시군요."
  그 말에 유한과 팽가려 역시 반응했다
  "응? 아, 정말이시군요. 남궁가주님이 맞습니다."
  "헤에. 저 사람이 형의 아버지?"
  유한 역시 감탄하며 남궁현을 바라보았다.
  휘안은 아마도 어머니를 많이 닮은 듯 보였다. 그 이유가 휘안의 얼굴은 여인의 그것처럼 고왔다.
  좀 중성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하지만 지금 달려오는 남궁현은 남자다운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다.
  중년인의 다부진 얼굴과 몸매.
  휘안의 몸처럼 약해보이지 않았다. 물론 남궁현보다 남궁휘안이 훨씬 강하기는 했지만.
  유한이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형이랑 안 닮았어."
  그 말에 휘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남궁현과 현석이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을 지키는 무사들이 그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 남궁현과 현석은 휘안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내 휘안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들은 묵묵히 바라보던 휘안이 남궁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휘안의 인사에 남궁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행방불명될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아들의 모습.
  그런 아들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저, 정말. 휘안이가 맞느냐?"
  남궁현의 말에 휘안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휘안이 맞습니다."
  그 말에 남궁현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휘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들의 얼굴을 한 번 쓸어 본 다음 품에 꼭 안았다.
  "아아. 내가, 내가 얼마나 너를 찾았는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어디서 무얼 했느냐? 왜 아무 연락이 없었어!"
  남궁현의 말에 휘안이 쓰게 웃었다.
  남궁현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안고 있을 뿐이었다.
  남궁세가에서 중요한 손님을 맞는 전각.
  그곳에 유한, 안영, 팽가려가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 오랜만에 목욕하니 기분 좋다."
  유한이었다.
  그런 유한을 보며 안영이 입을 열었다.
  "후후. 하긴 남궁세가를 향해 쭉 달려왔으니 지칠 만도 하죠."
  "그건 그렇고, 이 차 좋다."
  유한이 용정차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최고급 용정차입니다. 안 좋으면 그게 이상합니다."
  안영 역시 용정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흐음. 휘안 형이 좀 늦는군요."
  일단 휘안은 옷을 갈아입고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그런데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감감무소식인 휘안.
  "왔다."
  유한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이 머문 전각의 방문이 열렸다.
  "헛!"
  "기척 좀 죽이고 다니지 마십시오, 놀랐습니다."
  팽가려는 깜짝 놀랐고 안영은 별로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뻥 치지 마, 하나도 안 놀란 표정이야."
  유한이 안영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내색을 안 할 뿐입니다."
  안영이 대꾸했다.
  그들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팽가려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도대체 휘안 형의 경지는... 방문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사실 팽가려는 문이 열리고 나서야 휘안의 기척을 알아차렸다. 팽가려는 휘안의 경지에 속으로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때 휘안이 입을 열었다.
  "좀 이르긴 하지만 식사를 하지. 아버지가 부르셔.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시다 하시고."
  그 말에 유한이 밖을 한 번 내다보며 말했다.
  "저녁때는 멀었는데... 뭐 하는 수 없지."
  유한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휘안 옆에 섰다. 안영과 팽가려도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전각을 나온 그들은 휘안을 따라 남궁세가의 중심부로 향했다. 휘안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유한이 월아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헤에~ 월아는 늘 지니고 다니네?"
  유한의 물음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함부로 뽑으면 큰일 나니깐, 이 녀석이 워낙 까다로워야지."
  "흐응~ 하긴 그래."
  자신도 월아를 강제로 집어 봐서 잘 알았다.
  휘둘릴 때조차 반항하는 것이 월아였다.
  월아를 힐끔 쳐다본 유한이 다시 또 투덜거렸다.
  "예쁜 검집, 가죽에 다 가리네. 에이라나 누나의 은아랑 흑아도 가죽으로 검집을 가리지 않았나?"
  유한의 말에 휘안이 월아를 슬쩍 손으로 쓸며 말했다.
  "일단 검집 자체가 오리하르콘으로 되어 있잖아."
  월아.
  월아는 순수 에이라나의 드래곤 본으로 되어 있었으며 검집은 오리하르콘으로 되어 있었다.
  검 자체가 완전히 예술품이었던 것이다.
  검집 또한 은아와 흑아의 검집에 새겨져 잇는 문신과 똑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휘안의 말에 납득이 가는지 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팽가려는 월아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난 명검인가 보네요?"
  그 말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장담하는데 이거 중원 무림에 떨어지면 피 바람이 나도 보통 나는 게 아닐 거다."
  휘안의 얼굴에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도 섞여 있었다.
  팽가려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팽가려는 입이 무겁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줘도 상관이 없었다.
  안전한 인물이랄까?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친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식당 앞.
  이런저런 얘기로 식당 앞에 당도한 휘안이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을 때였다.
  "켁!"
  휘안이 깜짝 놀랐다.
  바로 세가의 어른들이란 어른들은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그 짧은 시간 내에 장로 분들을 모두 모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휘안이었다.
  그리고 오늘 무슨 날인가?
  진수성찬도 저런 진수성찬이 없었다.
  "오, 오늘 무슨 날입니까?"
  휘안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그 말에 장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소가주, 오늘은 소가주가 돌아온 날이 아니오?"
  "후후후, 기다리시오. 소가주의 할아버지 되시자 세가에서 제일 높은 어르신인 남궁태 어르신도 오실 테니."
  "커억!"
  제 1장로 남궁환과 남궁상의 말에 휘안이 깜짝 놀랐다.
  남궁태!
  남궁세가의 최고 어른인 그의 명호는 하나!
  검왕!
  바로 이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세가 내에 최고수인 그는 휘안과 같은 현경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휘안이 그것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의 성격!
  심심하면 자신에게 검을 내지르던 할아버지였다.
  강하게 키워야 한다나 뭐라나?
  이번 대의 남궁세가에서는 검황이 나와야 한다며 당시 엄청난 재능을 보였던 휘안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던 남궁태였다.
  물론 그는 휘안이 그 당시 화경의 경지에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휘안이 뜨끔하고 있을 때 유한이 갑자기 반응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휘안 역시 은월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유한이 더 빨랐다.
  채앵!
  유한이 검을 내지름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
  그와 동시에 유한의 검에 변화가 생겼다.
  유한은 마족인데다 마황자다.
  검술 같은 것은 어릴 때부터 기본적으로 휘두를 수 있었다. 검술로만 따진다 해도 휘안과 에이라나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실제적인 힘으로 따진다면 에이라나나 휘안보다 훨씬 강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한차례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유한이 검을 쳐냈다.
  휘안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에 유한이 반응한 것이다.
  물론 휘안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반응에 어쩔 수 없었다.
  유한은 검을 휘두른 이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검을 휘두르는 이는 백발에 흰 수염이 어울리는 노인이었던 것이다.
  "허허, 거 색목인 아이가 검술 하나 대단하구나."
  빙긋 웃으며 말하는 노인을 보고 휘안이 말했다.
  "갑작스럽게 검 좀 휘두르지 마세요, 할아버지!"
  애원조로 부탁하는 말에 노인이 호통을 쳤다.
  "내 누누이 말하지만 이번 대에서는 우리 세가에서 검황이 나와야 된다니깐!"
  "그렇다 해도 손자에게 검을 휘두르고 싶으십니까?"
  "당연하지!"
  "..."
  현 남궁세가의 최고 어른이자 최강자인(휘안 제외) 검왕 남궁태였다.
  중원 무림의 삼마이제삼왕 중 한 명!
  광마, 혈마, 검마, 검제, 도제, 검왕, 창왕, 권왕 무림 8대 고수 중 하나인 남궁태였다.
  초고수 중 한 사람인 검왕.
  그런 검왕이 검을 막고도 태연한 젊은 색목인의 모습에 자리를 함께한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유한이 노인과 휘안의 대화를 듣고는 휘안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형 할아버지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한의 질문에 한숨을 쉰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할아버지셔. 나를 훈련시킨다는 이유로 나에게 검을 자주 휘두르시는 분이니,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어."
  휘안의 설명에 유한이 눈을 두세 번 깜빡거렸다. 그리고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하유한이라고 합니다."
  유한이 허리를 숙여 정중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인사가 흡족한지 남궁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휘안의 할아비인 남궁태라고 한단다."
  남궁태의 대답에 유한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드셨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강하세요?"
  유한의 순진한 물음에 남궁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때 휘안이 유한을 향해 무입전음의 수법으로 전음을 보냈다.
  [일단 중원인들이 익히는 무공은 대부분 리샨 대륙의 검사들이 익히는 외공이 아니라 내공이야.]
  [내공?]
  휘안의 말에 유한이 마법으로 물었다.
  [응, 그러니깐 쉽게 말해 겉을 수련하는 게 아니라 속을 수련하는 것이지. 그렇기에 중원에서는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법이야. 왜냐하면 엄청난 고수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거든.]
  그 말에 유한이 다시 마법으로 휘안에게 말했다.
  [누나나, 나나, 형한테는 별 상관없을 걸?]
  [뭐?]
  [이곳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일단 형은 형의 할아버지란 사람보다 강해, 훨씬. 잘은 모르지만 이 세계에 저만한 강자가 얼마나 더 있을까? 이 세계의 인간 중에 형보다 강한 인간은 아마 없을 걸?]
  유한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검왕보다 강한 자가 얼마나 있을까?
  검왕만 해도 무림 8대 고수 중 하나다.
  아무리 은거기인이 많은 중원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강한 이는 얼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휘안의 내공량은 압축되어 있다. 4갑자라고 하지만 그 내공은 압축되고도 또 압축되어 있다.
  에이라나의 레어에서 엘란카넌에게 수련 받은 성과다.
  에이라나 역시 내공이 압축되어 있다.
  성룡의 드래곤 하트의 마나와 보통 인간의 4갑자의 기의 양 중 어느 게 더 많을까?
  당연히 성룡의 드래곤 하트다.
  에이라나의 내공량은 4갑자.
  단전에 드래곤 하트의 마나만큼의 내공이 있다는 소리다.
  내공은 서클과 비슷하다.
  다만 서클처럼 고리 형태가 아닌 그냥 뭉쳐 있을 뿐이다.
  1갑자는 60년 내공.
  4갑자는 240년 내공.
  이건 그냥 수치일 뿐이다.
  에이라나에게 역시 4개의 내공 뭉치강 ㅣㅆ다.
  하지만 그 내공 뭉치 하나하나의 기운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두 압축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순수한 내공 싸움으로 해도 보통 4갑자들은 에이라나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보통 4갑자들이 휘안에게 덤벼들면?
  휘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이라나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보통 현경의 경지에 오르고 내공이 4갑자가 된다면 다음 경지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내공 뭉치 하나를 더 만들어 5갑자가 되기 전까지는 내공증진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엘란카넌이 무슨 짓을 했는지 휘안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내공을 뭉쳐지게 만드는 짓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휘안의 내공량은 에이라나의 내공량과 똑같았다.
  물론 에이라나의 마나량은 그래도 휘안의 두 배였다.
  하지만 적어도 내공만으로 싸운다면 에이라나도 휘안을 이기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뭉쳐지고 또 뭉쳐진 휘안의 내공은 역시 더 이상 뭉치기 힘든지 4갑자에서 멈추어져 있었다. 에이라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내공 갑자의 압축.
  이런 황당한 경우는 무림에도 없다.
  아마 휘안을 쓰러트리기 위해 삼마이제삼왕 중 적어도 세 명은 달려들어야 휘안과 동수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마법까지 쓴다면 휘안은 끔찍하게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형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유한의 말에 휘안이 울컥했다.
  [크윽! 내가 왜 괴물이야!]
  [휘안의 할아버지라는 사람, 형이나 누나와 같이 단전에 네 개의 마나 뭉치가 있어, 4갑자라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왜 마나의 양은 형이 훨씬 많은 거지? 내공량으로만 따지면 누나와 동급이고 그건 성룡급 드래곤의 마나. 결국 형은 인간을 초월한 괴물이라고!]
  [마족인 네놈에게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아!]
  결국 티격태격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한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휘안은 괴물이니까 말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자리에 앉은 휘안 일행과 남궁태.
  "흐음~ 성휘와 휘연이가 올 때가 되었는데."
  "으음. 세연과 같이 올 것이라 예상됩니다."
  남궁태의 중얼거림에 남궁현이 웃으며 말했다.
  3년 만에 돌아온 아들.
  그런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할 모용세연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남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세연이와 같이 온다고?"
  그 말에 남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남궁태가 말했다.
  "쯧, 결혼한 지 오래 됐으면서 그렇게 좋으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금실이 좋아 좋긴 하다만 볼 때마다 눈꼴 시려."
  남궁태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아들과 친구 놈의 딸을 결혼시켰다.
  검제 모용태현.
  젊은 시절부터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꾸준히 성장해 무림 8대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자신들의 가문을 크게 알렸던 두 사람.
  오대 세가에서 최고수 중 세명이 나온 상태다.
  검왕 남궁태, 검제 모용태현, 도제 팽가위.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그들.
  그래서 유독 남궁가와 모용가 그리고 팽가는 전전대부터 사이가 상당히 좋았다.
  물론 오대세가 전체가 사이가 좋긴 하다만 이들은 특히 절친했다.
  남궁현과 모용세연은 결혼할 때부터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서로 시끄러웠던 일도 별로 없었고 아직까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최근 3년간 휘안의 실종으로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았다.
  금실이 좋은 것을 떠나 이렇게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이들을 볼 때면 아들 내외가 눈꼴 시린 남궁태였다.
  남궁태의 농담 섞인 말에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형!"
  "오라버니!"
  갑자기 한 청년과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그들은 가문 최고 어른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인사했다.
  "하, 할아버님과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큰 실례를 했습니다."
  그 말에 남궁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후후, 괜찮다. 나도 휘안이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이해가 가니깐."
  그 말에 다시 한 번 용서를 빈 청년과 여인이 누군가를 찾았다. 그고 원하는 이를 찾았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옆에서 친근하게 붙어 있는 한 색목인을 보고 굳었다.
  "얘들아, 아무리 휘안이가 오랜만에 돌아왔다곤 하나 그렇게 뛰어가면 안 되지 않느냐?"
  조용하게 타이르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들어온 이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바로 모용세연이었다.
  중년의 나이이지만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의 외모가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그녀가 남궁태와 장로들에게 인사했다.
  "아버님 건강하셨습니까? 장로님들도 오랜만이군요."
  살며시 웃어준 모용세연은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성휘와 휘연이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너무도 반가운 자신의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 옆에 예쁘장하게 생긴 십대 후반의 남자아이도 보였다.
  색목인이었다.
  '휘안이와 저렇게 친근하게?'
  살짝 놀란 세연이었다.
  남궁휘안.
  그는 중원무림에서 실력을 드러내기 전에도 최고의 귀재로 꼽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월광검이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사귐에 있어 언제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성휘와 휘연과도 친근하게 잘 지내고, 어릴 때도 잘 놀아주었지만, 저 색목인처럼 저렇게 옆에 찰싹 붙어서 친근하게 지낸 적은 별로 없었다.
  거리를 두는 편이랄까?
  가족들에게도 일정 이상의 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휘안의 옆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게 조잘거리는 유한이라는 색목인 소년은 남궁현과 남궁태, 장로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남궁휘안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휘안이 인사드립니다."
  휘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세연이 침착함을 되찾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의 얼굴을 응시하며 환하게 웃었다.
  휘안은 웃으며 차례로 성휘와 휘연에게도 인사했다.
  "성휘와 휘연이도 오랜만이구나?"
  휘안의 말에 남궁성휘와 남궁휘연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 아, 오랜만이에요. 형."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마주 인사하면서도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한을 바라보는 그들이었다. 자신들도 저렇게 휭나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항상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저 색목인 소년은 뭐란 말인가?
  "얼라? 형, 형의 동생이란 애들이 날 자꾸 쳐다보는데?"
  유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 말에 성휘와 휘연을 바라본 남궁휘안이 그들을 나무랐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실례가 아니니?"
  유한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던 성휘와 휘연이 당황했다.
  "죄, 죄송해요."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유한에게 미안해하렴."
  그 말에 성휘와 휘연이 유한에게 용서를 구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 말에 유한이 대답했다.
  "별로, 죄송할 것까지야."
  그렇게 말한 유한이 괜히 상황을 어색하게 만든 휘안에게 따졌다.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실례인 건 맞거든."
  유한의 말에 휘안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귀족이랑 비슷한 건가?"
  "그래."
  둘의 친근한 대화.
  마치 정말 친형제를 보는 듯한 대화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남궁가 사람들이었다.
  식사 시간. 팽가려 역시 남궁사게와 친한 하북팽가의 사람이었으므로 별 어려움 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객점에서 여러 번 음식을 먹었다고는 하나 객점의 음식들이 어디 천하의 남궁세가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물론 큰 객점은 솜씨 좋은 요리사들이 많이 있지만 휘안 일행이 들린 객점은 모두 작은 객점들뿐이었다.
  유한은 새로운 중원 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저것 집어먹고 있었다.
  휘안은 그 옆에서 유한을 보며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 주었다.
  유한은 키라이스트일 때도 조금 덤벙대는 기질이 있었는데 그건 마황자가 돼서도 변함없었다.
  귀여운 동생이자 친근함이 묻어나는 아이.
  그렇기에 에이라나가 마음을 연 것일 수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만나기만 해도 칼질을 해야 할 대상이지만 에이라나는 유한을 용서해 주었다.
  그건 유한이 에이라나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음을 의미했다. 용서 못 할 것까지 용서할 만큼.
  그 사실에 조금 씁쓸한 감이 남아 있는 휘안과 안영이었다.
  유한과 휘안의 식사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태가 물었다.
  "그래, 너는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
  갑작스러운 남궁태의 질문에 조용하던 분위기가 일순 변했다.
  유한 역시 익숙하지 않은 젓가락질을 멈췄다.
  반면에 정작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휘안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요."
  휘안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아주 많은 일이 말입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사실 중원으로 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실감이 나는군요."
  할아버지에게 저런 말을 들어서일까?
  중원에 돌아왔다는 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던 휘안은 이제야 중원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났다.
  세가에 왔을 때에도 기쁘기만 할뿐 두근거리지 않았던 가슴이 지금에야 뛰고 있었다.
  "일단,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휘안은 그 말만을 던진 채 입을 다물었다.
  그의 분위기에서 더는 묻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느꼈을까?
  더 이상 묻지 않는 가족들이었다.
  잠시간의 대화.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오간 다음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헐헐헐. 잔치를 열어야겠군. 세가의 소가주가 돌아왔으니 당연한 건가? 친한 지인들과 다른 세가 사람들과 문파 사람들을 초대해야겠어."
  남궁태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휘안이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별로 신경 쓰지 마세요."
  "클클~ 손자야, 대 남궁가의 소가주가 행방불명되었다가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잔치를 여는 것이 도리 아니겠느냐?"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휘안의 거절에 남궁태가 꽥 소리쳤다.
  결국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남궁세가에서 잔치를 열게 되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광마 vs 에이라나
  한 노인이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노인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노인의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그 노인의 분위기는 꼭 신선을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평범한 차림새였지만 긴 백발과 긴 백색 수염이 잘 어울리는 인자한 노인이었다.
  하지만 정파의 몇 없는 기인들이 그를 본다면 눈을 부릅뜰 것이다.
  그의 이름은 사혈사.
  현 천마교의 교주이며 무림에서 광마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노 괴물이었다.
  그런 노인은 광마. 미친 악마라는 명호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혈사. 그는 노인이었다.
  이미 칠십 세가 넘은 나이.
  그에게는 늦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사무연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얻은 아들.
  소중한 아이였다.
  사혈사는 다음 대 교주로 만들기 위해 그 아이에게 총력을 기울였다. 아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아들은 이제 30세가 막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경이라는 놀라운 경지를 이룩했다. 아마 무림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귀재라고 하나 그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된 계기는 한 아이에게 있었다.
  자신의 양아들.
  하유현.
  자신의 아들은 최고의 귀재였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하지만 유현이는 귀재 정도가 아니었다.
  10세에 무공을 익히기 시작해서 24세에 현경의 벽에 부딪쳤던 그였다. 그래서 소교주의 직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유현이 3년 전 죽었다.
  그때부터 활기차던 아들은 웃음이 없어졌다.
  천마교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그 타격을 수습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
  설마하니 그 누구도 아닌 5대 장로들이 소교주인 유현에게 칼을 뽑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사혈사였다.
  물론 유현과 장로들의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자신이 교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의 장로들, 즉 전대 장로들은 유현에게 잘 대해 주었다. 하지만 새로운 5대 장로들은 달랐다.
  늘 유현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그렇다 해도 잘 헤쳐 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검을 뽑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알아낸 것은,
  '우리의 일에 방해된다.'
  이것뿐이었다.
  5대 장로들. 그들은 혈교에 들어가 자신들에게 검을 뽑았다.
  혈교란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타격을 입었다 하나 자신들과 대등한 힘을가졌으며 아직도 강해지고 있는 혈교!
  세상을 피로 정화할 것이라는 미친 생각을 하며 온갖 이상한 사술과 사이한 수법을 사용하는 곳!
  그곳들은 자신들과 같이 무림공적이 되어버렸다.
  자신들도 잔인하지만 그들이 하는 짓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였다.
  피로 세상을 정화한다니, 미친 생각이다.
  오랫동안 힘을 키웠으며 천마교의 장로들을 매수했다.
  무서운 곳이었다.
  결국 유현은 혈교의 일에 방해되는 인물로 여겨 살해당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무연은 수련에 들어갔다.
  '혈교를! 그 빌어먹을 미친놈들을 제 손을 죽을 겁니다. 파멸시켜 버릴 겁니다! 그놈들을 갈아 엎어버려 피바다를 만들 것입니다!'
  울면서, 원망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에는 5대 장로들가지 모조리 죽여 버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1000년을 천마교와 함께 해온 5대 장로 가문을 망칠 수는 없는 법.
  결국 그 일에 참여한 자만 모두 죽이고 지금은 새로운 장로들이 장로직을 맡고 있었다.
  배신자인 5대 장로들의 아들 둘, 그리고 전대 장로 셋.
  이들이 바로 새로운 장로들이었다.
  전대 장로들은 적이라면 혈육도 자를 수 있는 냉정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장로가 된 이들은 어떨까?
  무력도 떨어질 뿐더러 아직 마임에 혼란이 많았다. 우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아버지에 분노한 상태였다. 그들은 뼛속까지 천마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수습되고 천마교는 다시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혈사는 혈사 교주라 바빠야 하지만 아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버렸다. 이제 늙었으니 쉬고 싶다고 말한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그 뒤로 유유자적으로 중원을 떠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떠돌아도 그냥 떠도는 것이 아니었다. 혈교 인물들을 철저하게 죽이며 다녔다.
  그렇게 섬뜩한 자가 아이들에게 웃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아는 이가 보았다면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아니, 그를 알아보는 자만 있어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천하의 광마가 촌마을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이없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혈사가 인자하게 웃으면서 눈을 반짝이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말해 주려고 할 때였다.
  "...참! 안 어울리는 짓을 하시는군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혈사가 고개를 들었다.
  빈정거리는 어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다.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말투.
  그리고 똑같은 목소리.
  설마 했다.
  설마 그가 죽지 않았을까?
  시체를 확인했는데, 그 시체는 가짜가 아닐까?
  목소리를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인 것은 은발에 은색 가면을 쓴 색목인 여자였다.
  혈사는 실망했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말에 너무 놀랐다.
  "천하의 광마가 촌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라 세상사람들이 들었다면 경악할 이야기군요."
  역시나 빈정거리는 말투와 목소리에 경악하는 혈사였다.
  어느 촌마을에 들어선 에이라나.
  마을에 처음 도착한 에이라나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폴리모프로 얼굴을 바꿔도 되겠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은 어느 정도 중원에 알려진 상태다. 그렇기에 자신의 얼굴을 아는 이와 부딪친다면 골치 아파지기에 가면을 쓰고 다녔다.
  은발을 가진 자신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머리카락 색도 바꿔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문득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그쪽으로 눈을 돌렸던 에이라나의 눈이 커졌다.
  한 노인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새어 마치 신선의 분위기를 품는 노인.
  그 노인은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이였다.
  '혀, 혈사 아저씨.'
  여기는 천마교의 영역인 신강과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혈사는 지금 마교에서 나와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소리였다.
  주위의 기척을 느껴보니 천마대의 인원 몇 명이 혈사를 호위하고 있는 듯했다.
  에이라나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아는 척을 해야 할까?
  '오랜만이에요, 혈사 아저씨!'
  이렇게 말하며 웃어줘야 할까?
  그는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혼란스럽다.
  이건 만나도 너무 빨리 만난 것이 아닌가?
  언젠가 만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 빨랐다.
  머리로는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혈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안 어울리는 짓을 하는 혈사를 보며 빈정거리는 에이라나였다.
  "참! 안 어울리는 짓을 하시는군요?"
  그 말에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혈사.
  무언가 기대에 찬 눈빛이다.
  하지만 그 눈빛이 자신을 보는 순간 실망의 빛을 띄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다시 빈정거렸다.
  "천하의 광마가 촌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라 세상사람들이 들었다면 경악할 이야기군요."
  그 말에 이번에는 혈사가 경악하며 눈빛이 자신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뀐다. 하지만 표정은 태연하다.
  "소저는 누군가?"
  혈사의 말에 에이라나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뭐, 소저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지만."
  에이라나는 좀 껄렁껄렁한 태도를 보이며 대꾸했다.
  "천마교를 좀 잘 아는 사람이죠."
  에이라나의 말에 혈사가 싱긋 웃는다.
  "흐음. 천마교를 잘 아는 곳이라."
  묘한 분위기가 풍긴다.
  혈사가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나는 저 사람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자꾸나."
  "에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아이들이 항의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웃으면서 떼어놓은 혈사가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본교를 천마교라 부르는 곳은 잘 없으니 너는 본교를 잘 아는 이겠구나?"
  "뭐, 그곳에서 무공도 익혔으니."
  "호오. 본교의 무공을 익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본교에 은발을 가진 여인은 없다고 아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혈사를 보며 에이라나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한번 보실래요?"
  피익! 쾅! 쩌정!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폭음!
  혈사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의 발 옆에 떨어진 탄지강 때문이었다. 하지만 탄지강도 보통 탄지강이 아니었다.
  탄지강은 적을 꿰뚫는 게 목적이다.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터지는 탄지강도 있다.
  바로 천마지.
  천마신공의 지법이었다.
  천마권각법 속에 들어 있는 천마지는 꿰뚫는 형태와 터지는 형태가 있다.
  터지는 지강은 중원 무림에 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혈사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지강 때문에 터졌던 흙들이 얼어붙었다. 엄청난 냉기를 품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탄지강의 사용과 동시에 주위에서 자욱하게 살기가 피어오른다.
  천마대일 것이다.
  혈사는 그런 천마대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살기가 멈췄다.
  어마어마한 살기에 직격 당하면 표정이 굳을 만한데도 에이라나는 여유로웠다.
  그런 에이라나를 향해 천마가 물었다.
  "방금 날린 그 지법은 뭐지?"
  "천마지."
  그 말에 혈사의 눈이 착 가라앉는다. 그의 손에 이미 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장난은 그만하게. 천마지와 비슷하긴 했으나 냉기가 서려 있었어."
  그 말에 에이라나가 빙긋 웃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혈사 아저씨. 현 무림 최강이라 생각되는 사람.'
  자신이 생각하기에 혈사는 현 무림 최강이다.
  그런 사람과 싸운다.
  자신은 아직 혈사의 진정한 힘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묘하게 심장이 뛴다.
  그리고 500년 만에 혈사와의 싸움이다.
  오랜만에 만났다. 그래서 기쁘기도 했다.
  에이라나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혈사를 상대로 권각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에이라나의 권각법은 검술에 버금가는 경지이다. 권각술로 휘안도 제압이 가능했다. 에이라나의 권각술은 그만큼 무섭다.
  에이라나가 혈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에이라나의 주먹에는 무시무시한 은빛 강기. 섬뜩한 냉기가 흘러나오는 권강이 맺혀 있었다.
  사혈사의 검에는 무시무시한 검은빛 마기의 강기가 맺혔고 두 개의 강기가 서로 격돌했다.
  쾅!
  갑작스러운 무림인들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를 피했다.
  에이라나가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그와 동시에 사혈사의 검과 격돌한 에이라나의왼손등에서 검븕은 빛 문신이 생성되었다.
  사혈사의 검 또한 부르르 진동했다.
  쾅!
  에이라나가 주먹으로 혈사의 검을 튕겨냈다.
  검과 함께 튕겨져 나간 혈사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이라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혈사와의 격돌 때문이 아니었다.
  -꺄악~ 천마검이다, 천마검! 이게 얼마만이야! 꺅~
  바로 머릿속에서 울리는 천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하긴 오랜만에 천마검을 만났으니 기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형제나 마찬가지 아닌가?
  -저 빌어먹을 검 끝내 분지르지 못했었는데. 주인! 분질러버려, 분질러버려.
  천은 왜 천마검을 분지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일까?
  천의 성화에 에이라나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들어가 있어!'
  에이라나가 속으로 소리를 빽 지르자 그와 동시에 손등에 생겼던 문신이 스르르 사라졌다.
  너무도 놀랄 만한 장면이었다.
  에이라나의 손등에 있는 것은 천마교의 교주와 소교주를 상징하는 문신이었다.
  천의 문신이 그런 것이었다.
  보통 때라면 혈사가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왼손에 천마도의 기운이 느껴짐을 느낀 것인지 천마검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사혈사는 당황한 상태였다.
  천마도의 상태를 바라본 에이라나가 다시 주먹을 쥐었다.
  오랜만에 펼치는 혈사와의 대결.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자신의 스승한테 말이다.
  "천마월혈무!"
  에이라나가 춤을 춘다.
  아름다운 춤.
  은빛 빙기의 강기가 퍼지며 아름답게 춤을 추는 에이라나.
  하지만 그 춤은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 죽음의 춤이었다.
  천마신공의 권각술 중 살상력으로는 수위를 다투는 초식!
  그것이 바로 천마월혈무였다.
  갑자기 천마검이 요동치자 당황해 있던 사혈사가 에이라나의 천마월혈무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건 천마교의 무공이다!
  그것도 교주와 소교주만이 익힌다는 천마신공!
  천마교 최고의 무학이 지금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여인에게서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태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초식이다. 잘못하면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천마백환검!"
  이번에는 혈사의 검에서 천마의 환검이 펼쳐졌다.
  백 개의 환검!
  모두가 허초가 아닌 진짜!
  전 방위로 찔러 들어오는 천마환검과 에이라나의 천마월혈무가 격돌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강!
  모두가 내공이 실려 있는 공격이기에 폭격 소리가 들려왔다.
  "천마군림보!"
  쿵!
  발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에이라나의 몸이 사혈사를 향해 돌진했다.
  쾅!
  에이라나가 자신의 주먹을 그대로 혈사에게 내려찍었다. 내빨리 그 주먹을 막은 혈사의 발이 땅으로 음푹 들어갔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천마환영보."
  다시 보법을 밟은 에이라나의 신영이 여러 개로 나뉘었다. 혈사 역시 얼굴을 찡그리며 똑같은 보법으로 대응했다.
  "천마환영보."
  콰가가가가강!
  그와 동시에 격돌하는 에이라나의 주먹과 혈사의 검.
  주르르르륵!
  격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밀려나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 두 사람.
  에이라나의 주먹에서는 역시 섬뜩하고 차가운 빙기의 강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혈사의 검 역시 섬뜩한 검은색 마기의 강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혈사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본교의 교주들과 소교주들만이 익힐 수 있는 천마신공을 알고 있는 것이지?"
  혈사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장난스럽게 답했다.
  "글쎄요?"
  "...게다가 본교의 마기가 아닌 그런 빙기라니, 그리고 그 은발. 북해빙궁의 사람이더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북해빙궁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거짓말 마라! 어찌하여 북해빙궁의 사람이 천마교의 무공을 익혔는지 말하지 못할까!"
  그 말에 에이라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거 참, 북해빙궁 아니라니깐."
  잘못하면 이유도 없이 북해빙궁이 천마교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에이라나가 계속 부정하자 혈사가 소리쳤다.
  "내 그 가면을 벗겨버리고 네년의 정체를 밝힐 것이야!"
  "무리일 걸요?"
  에이라나의 말에 혈사가 멈칫했다.
  "지금 당신이나 나나 사용하는 무공은 천마가 남긴 천마신공 중 권각술과 검술이죠."
  "그것을 누가 모르는가?"
  "흐음, 그럼 천마가 남긴 또 하나의 무공이 있다는 건 아시려나?"
  그 말에 혈사가 눈을 부릅떴다.
  "헛소리!"
  "뭐,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시죠."
  에이라나에게는 천마신공 중 천마권각법과 천마검법이 아닌 다른 하나의 무공이 있었다.
  바로 천마도검법이다.
  리샨 대륙의 천마의 안배.
  천마교의 무공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천마도검법.
  천마검법에 '도'자 하나 붙은 것일 뿐이지만 그 위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에이라나가 허리에 차고 있던 은아와 흑아를 뽑아들었다.
  백은빛 검신을 가진 은아와 칠흑의 검신을 가진 흑아가 중원무림에 모습을 드러냈다.
  뽑히자마자 자신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듯 차가운 냉기와 섬뜩한 마기를 뿌리는 두 검을 보며 혈사가 경악했다.
  마기와 냉기를 부리는 검.
  저런 검이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그리고 신비로운 검신.
  천마검도 저 흑빛 검이 품고 있는 마기는 품지 못하리라.
  그렇게 멍하니 있던 혈사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천마검법을 사용하려는 듯한데 천마검법 중에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검법은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 의아해 하고 있을 때 혈사는 또 경악해야 했다.
  바로 은아와 흑아에 맺히는 검강 때문이었다.
  은아에게는 은빛 빙기의 강기가, 흑아에게는 흑빛 마기의 강기가 맺혀지는 게 아닌가?
  "허. 허허허허."
  오늘 희한한 경험 여러 번 하는 혈사였다.
  "혈천검무."
  에이라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그와 함께 펼쳐지는 춤사위!
  몰아치는 마기와 냉기!
  에이라나가 회전한다.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 주위에 마기와 빙기가 생성되었다.
  아름다운 춤.
  마치 천마월혈무를 검무로 펼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천마월혈무는 권각으로 이용하는 공격이다. 그렇기에 검을 들고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 혈천검무라는 것은 검술의 기술이라는 소리가 되었다.
  놀라웠다.
  천마신공이 아닐 수도 있지만 느낌은 천마신공의 그것이었다.
  "그딴 것을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천마신공 중 가장 강한 초식이 천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소리를 침과 동시에 혈사의 검에 무시무시한 마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천마를 시전할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혈사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에이라나가 펼치고 있는 천마쌍검무.
  그것은 천마도검법의 초식이었다.
  천마도검법의 특징.
  항마!
  마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기를 정화하는 무공!
  그것이 천마도검법이다.
  천마교의 모든 무공은 천마도검법 앞에 있어 쥐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천마신공 최강의 초식인 천마라 하여도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천마도검법이 천마신공의 완성판이라고 보면 되었다.
  검에 마기가 맺히자 혈사가 소리쳤다.
  "천마!"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무시무시한 검강 다발이 에이라나 주위를 포위하고 그녀에게 날아든다.
  아무리 천마가 천마도검법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천마신공이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에이라나가 더욱 빠르게 춤춘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엄청난 폭음!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주변이 초토화 되었다.
  폭격의 영향으로 모든 것이 날아갔다.
  하지만 엄청난 위력임에도 혈사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에이라나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표정은 여유로웠다.
  혈사의 공격이 에이라나에게 저만한 피해밖에 입히지 못했다는 소리다.
  "허허허. 허망하구나, 허망해."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천마를 사용하고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고 말았다.
  그것도 새파란 어린애한테, 게다가 여자애 아닌가?
  평생 쌓아온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천마대가 혈사 주위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과연 그녀를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인다.
  그녀는 괴물인 것이다.
  "본교에 전해지는 천마의 무공을 알며, 우리도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천마의 무공을 아는 존재. 너는 누구냐?"
  혈사가 허망한 듯 웃으며 물었다.
  천마도검법을 천마의 무공으로 인정했다는 소리다.
  혈사의 말에 에이라나가 빙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언젠가 말했었지요?"
  혈사는 에이라나의 뜬금없는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절 절벽 위에서 떨어뜨릴 때 제가 당신보다 강해져서 당신을 굴복시킬 거라고. 지금에야 제 말이 이루어졌군요. 전 당신을 굴복시켰습니다."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고 멍해 있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에게 혹사당하며 무공을 익혔습니다."
  에이라나의 말에 듣고 있던 천마대 또한 묘한 표정이 되었다.
  광마에게 무공을 배운 이는 단 둘이다.
  현 소교주인 사무연과 이미 죽어버린 전 소교주 하유현.
  자신들은 교주가 저런 여자를 키웠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제가 무연 형보다 강해져 소교주의 자리에 앉았을 때, 전 당신에게 감사했습니다. 보잘것없는 고아인 저를 데려다 키워 교의 소교주로 만든 당신에게 정말 감사했었지요."
  그 말에 혈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소교주.
  지금 소교주라 했는가?
  저 여자가?
  그건 혈사뿐만 아니라 천마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 좋았습니다. 인정받았지요. 그런데 억울하게 죽어버렸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는 듯 에이라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런 에이라나를 향해 혈사는 멍하니 걸어가고 있었다.
  "억울했습니다. 이제야 인정받게 되었는데 죽어버렸습니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습니다."
  에이라나가 이제는 자신 앞에 다가온 혈사를 바라보았다. 꿈에서만 그리던 혈사를 눈앞에서 마주하다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유, 유현?"
  혈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웃으며 대꾸했다.
  "하유현은 남자이지요, 여자가 아닙니다."
  "...유현이 맞느냐?"
  에이라나의 말에도 혈사는 멍하니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그런 혈사를 보며 에이라나가 그동안 꾹 참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그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죽었던 자가 당신 앞에 있군요."
  에이라나가 말을 멈췄다.
  어느새 에이라나의 볼에서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혈사 아저씨, 다시는... 못 보는...줄... 알았답니다."
  "유현아!"
  그 말과 동시에 혈사가 에이라나를 잣니의 품에 안았다
  혈사의 품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에이라나가 마치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못 보는 줄 알았어요. 다시는,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혈사아저씨."
  사혈사는 에이라나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의 스승이요, 아버지인 것이다.
  세상에 버려졌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던 존재.
  무공을 익힐 때는 수도 없이 원망했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고마웠던 존재인 그를 리샨 대륙에 가서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중원에 돌아와서 그를 만난다면 태연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나 살아왔다고, 죽지 않았다고, 그 빌어먹을 것들 죽이자고.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현생의 가족들만큼 소중한 존재.
  그런 존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서 그런 생각이 깨졌다.
  사혈사의 품에 안겨 울고 또 울었다.
  에이라나는 500년 동안 쌓이고 쌓였던 그리움을 모두 쏟아 내겠다는 듯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핏줄
  여러 명의 인영들이 숲 속에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얼굴을 찡그린 여인이 입을 열었다.
  "눈 깔아, 새끼들아."
  그 말에 그녀를 바라보던 모두가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마대라면 내 성격 잘 알 텐데? 죽고 싶냐?"
  그 말에 모두가 흠칫한다.
  성격 지랄 같았던 소교주가 떠오른 것이다.
  한 천마대원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정말 유현 님이 맞으신지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래."
  질문을 던진 천마대원은 다시 묘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이 알기로는 분명 소교주 하유현은 죽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교에 피바람이 불고 반란이 일어났다. 물론, 그 장로들이 반역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소교주가 살아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소교주님은... 남자이신데."
  빠직!
  한 천마대원의 말에 에이라나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생긴다.
  "씨발! 닥쳐!"
  결국 에이라나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날 때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혈사가 에이라나를 불렀다.
  "유현아."
  혈사의 부름에 에이라나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꾸나."
  "네."
  혈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사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천마대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존명."
  천마대를 뒤로 한 채 혈사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에이라나 역시 따라 들어갔다.
  계속해서 숲 속으로 들어가던 혈사가 걸음을 멈추엇다. 뒤를 따르던 에이라나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혈사가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뒤돌아서 에이라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그래. 아까는 묻지 못했다면 어떻게 된 것이냐? 너는 분명 시체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었고, 분명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은발은 또 뭐고 어떻게 여자가 된 것이냐?"
  쉴 새 없이 물어오는 혈사를 보며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전 죽은 게 맞습니다."
  그 말에 혈사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넌 귀신이라도 되느냐?"
  "아뇨, 전 귀신이 아니에요."
  "그럼 죽었다는 녀석이 어떻게 내 눈앞에 있어!"
  에이라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환생이에요. 하유현은 전생이고 지금 저는 하유현의 후생입니다."
  그 말에 혈사가 에이라나를 찬찬히 뜯어보며 대꾸했다.
  "... 내가 보기에는 3년 전과 비교해서 성별과 머리카락, 눈동자 색이 바뀐 것 빼고는 달라진 게 없는데?"
  그 말에 에이라나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솟았다.
  "짜증나니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일단 전 환생한 게 맞아요. 제가 바뀐 게 별로 없는 건..."
  말을 멈춘 에이라나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 중원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환생을 했기 때문이에요."
  에이라나의 말에 혈사가 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안영도 제가 있던 차원에 환생했더군요."
  그 말에 혈사의 얼굴이 더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농담이지?"
  "아닌데요."
  혈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에이라나의 눈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 어이없구나."
  "저도 환생했을 때는 상당히 어이없었어요."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 뒤 혈사가 입을 열었다.
  "끌~ 무연이가 좋아하겠구나."
  그 말에 에이라나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솟았다.
  "절 놀리는 거에요?"
  "글쎄, 헐헐헐."
  에이라나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혈사가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혈사 아저씨."
  "응?"
  "제 존재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 말에 혈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 말에 혈사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알았다, 어렵지 않지."
  "무연 형한테도 비밀이에요."
  "무연이한테도?"
  "네, 혈사 아저씨와 천마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해주세요."
  그 말에 혈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다른 이들은 그렇다 쳐도 무연이까지한테 비밀로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혈사의 말에 에이라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아저씨는 무연 형이 당장 무림으로 뒤쳐나와 절 찾아다니는 꼴 보고 싶으세요?"
  "...아니."
  "그리고! 빌어먹게도! 저주스럽게도! 내가 여자가 된 걸 알면서 생각해보세요! 아악! 생각만 해도 짜증나!"
  에이라나의 발악에 무연이 에이라나가 여자가 된 사실을 알게 되면 취할 행동을 나열해 보는 혈사였다
  '발광. 청혼. 덮친다.'
  세 가지였다.
  처음에는 좋아서 발광하고, 다음에는 청혼하거나 아니면 덮칠 것이다. 자신의 아들은 그런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무연을 죽이지도 못할 에이라나를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왔다.
  짜증을 부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혈사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당분간 비밀로 해주마. 하지만 너와 연락을 해야 하는데 연락망이 없지 않느냐?"
  그 말에 에이라나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아공간."
  그 말과 동시에 에이라나 눈앞에 검은색 구멍이 생겼다. 에이라나는 놀라는 혈사에게 살짝 눈을 찡긋해보이고는 그 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자 여기."
  에이라나가 거낸 것은 주먹크기만 한 구슬이었다.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을 보니 야명주 같았다.
  "야명주?"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비슷한 거에요. 하지만 그 구슬에 내공을 불어 넣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죠."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통신구슬을 혈사에게 넘겼다.
  "재미있는 일?"
  에이라나가 싱긋 웃으며 아공간에서 통신구슬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내공을 주입하자 그와 동시에 혈사의 통신구슬이 더 밝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호오?"
  혈사의 감탄과 동시에 에이라나가 경공술을 펼쳐 순식간에 그와 거리를 벌렸다.
  혈사는 눈을 크게 뜬 채 에이라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에이라나의 전음이 들려왔다.
  [혈사 아저씨, 구슬에 내공을 주입해 보세요.]
  그 말과 함께 혈사가 아무 생각 없이 통신구슬에 내공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통신구슬이 더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통신구슬을 바라보던 혈사는 다음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에이라나의 얼굴이 구슬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자~ 이것만 있으면 연락이 가능하겠죠?]
  함께 들려오는 에이라나의 목소리.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란 혈사였다.
  통신을 끈 에이라나가 다시 혈사에게 다가왔다.
  "자, 이걸로 중원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해요."
  에이라나의 말에 혈사가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건, 어디서 났느냐?"
  "엄마가 줬어요."
  "엄마?"
  "네."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은 혈사가 잠시 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부모님이 생긴 거니?"
  그 말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 거죠."
  에이라나의 말에 이번에는 혈사가 웃었다.
  "그래. 어릴 때부터 부모 정을 못 받고 자란 너에겐 다행이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쓰게 웃는다. 혈사의 쓸쓸함을 느낀 것이다. 그런 혈사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혈사 아저씨! 제가 이세계 이야기해줄게요!"
  "헐헐헐, 알았다."
  에이라나의 말에 혈사가 웃었다.
  에이라나에게 부모가 생겼어도 자신이 키웠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란 건 변함이 없었다.
  "혈사 아저씨, 그러면 다음에 봐요."
  에이라나가 혈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러나꾸나."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에이라나가 경공술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교주님."
  천마대원의 조장이 혈사를 불렀다.
  "마귀, 놀랍지 않은가? 유현이가 환생했다니 말이야."
  "속하도 정말 놀랐습니다."
  "후후,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는데 저 아이는 유현이가 맞더군. 얼굴까지 말이야."
  혈사의 말에 마귀가 말했다.
  "소교주님이 기뻐하시겠군요."
  그 말에 혈사가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래, 하지만 당분간은 무연이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게."
  "존명."
  혈사의 말에 마귀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혈교라."
  혈사와 헤어진 에이라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장로들이 그 빌어먹을 곳에 붙었다? 하! 어이가 없군."
  혈사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이전부터 천마교를 버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한숨을 푹 쉰 에이라나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된다."
  자신이 죽은 이유는 그들의 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것들은 나의 원초적인 원수라는 소리인가?"
  에이라나가 차갑게 냉소한다.
  "그렇담 혈교란 곳 완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지."
  에이라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바로 움직이는 것이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면서 품에서 가면을 꺼냈다. 그리고 마나를 끌어올려 머리에 마법을 걸었다. 에이라나의 긴 은발이 흑발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면을 썼다.
  중원에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우에~ 여기가 어디야?"
  십디 중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중원은 한겨울이었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소녀의 옷차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으며 다리 또한 훤히 내놓고 있었다.
  얼어 죽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들 정도로 추워 보이는 옷차림이었다.
  소녀는 등 쪽에 검을 하나 걸치고 있었는데 그 도에서는 시린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번 울먹거린 소녀가 다시 경공술을 이용해 달려 나갔다..
  에이라나는 며칠 동안 경공술을 사용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은 청해성이었다.
  천마교가 존재하는 신강의 바로 옆에 있는 곳이며 곤륜산이 있기로 유명했다. 곤륜산이 있다는 것은 곤륜파가 있다는 소리엿다. 물론 에이라나가 향하는 곳은 안휘성이기 때문에 곤륜산을 지난 지는 오래였다.
  전생 때 청해성을 여러 번 지나다닌 적이 있는 에이라나였기에 지금 안휘성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통해 가고 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계곡을 지나던 에이라나의 귀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에이라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녹림인가?"
  이 계곡에는 녹림무사들이 자주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는 않지만 표국들이 이 길을 자주 이용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깅 당연하게도 싸움이 날 만한 일이라면 녹림무사들과 지나가는 행인이 싸울 일밖에 없었다.
  "쩝, 귀찮은데 그냥 가야지."
  에이라나 사전에 귀찮은 일은 절대 사절이었다. 그렇기에 기척을 죽이고 경공술을 이용해 계속 달려 나갔다.
  "에잇!"
  쾅!
  "크억!"
  "끄악!"
  소녀가 검을 휘두르자 폭음과 함께 건장한 사내들이 날아가버렸다.
  "저거 여자 맞아? 무슨 힘이."
  "나 여자 맞아욧!"
  쾅!
  "커억!"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남자가 소녀의 검에 맞고 다시 널브러졌다.
  엄청난 힘.
  그 가녀린 팔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힘이었다.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소녀의 힘에 녹림무사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나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녹림무사들이 공격하고 있는 이는 체구가 작은 소녀였다.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저 작은 체구의 소녀에게서 저런 괴력이 나온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흥미롭게 소녀를 바라보던 에이라나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소녀의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자신이 있는 곳을 찾은 것이 놀라웠다. 잠시 후 에이라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가면에 가려 알 수 없지만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때.
  "아앗! 거기! 구경만 하지 말고 나 좀 도와줘요!"
  소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스윽.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에이라나의 분위기는 차갑고도 차가웠다.
  에이라나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소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에이라나에게로 향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사라지자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바로 소녀의 코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에이라나를 발견하고 소녀가 깜짝 놀랐다.
  "넌, 누구지?"
  에이라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에? 그, 그러니깐 저는..."
  "누구냐고 물었다!"
  에이라나의 음산한 목소리에는 드래곤 피어까지 담겨 있었다.
  그 음성에 소녀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덥석!
  "누구냐고 물었다!"
  어느새 에이라나가 소녀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소녀는 에이라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혹해했다. 에이라나의 몸에서는 은은한 살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이익! 이 계집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녹림무사들이 분노하며 검을 들고 에이라나와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에이라나와 소녀가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저 상태로 한꺼번에 달려드는 자신들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란 판단에서였다.
  "닥쳐! 헬 프리징 아이스!"
  에이라나가 마법명을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주위로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몇 십 명이 넘던 녹림무사들이 순식간에 얼음덩어리가 되어버렸다.
  파직!
  그리고 얼음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방금 에이라나가 펼친 마법은 9클래스 빙계 마법이었다.
  지켜보던 소녀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 정체가 뭐야!"
  유화린.
  올해로 17살인 그녀는 감숙지방 깊은 설산 산골짜기에 사는 소녀였다.
  가족관계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언니와는 10살 차이나는 늦둥이인 것이다.
  아버지의 나이는 46세, 어머니의 나이는 45세.
  화린이 알기로는 자신의 부모님은 십대 후반에 언니를 낳고 은거에 들어가셨다.
  자신의 부모님은 무림 활동 기간이 지극히 짧다고 하셨다.
  3~4년 정도?
  하지만 그들이 했던 일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유화린의 아버지인 유강월은 조선에서 건너 왔는데 청월신권이라는 무공을 익혔다고 했다.
  중원에서는 신권 유강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한 일이 대단하여 아직도 호사가의 입에서 오르내릴 때가 많았다.
  조선 끝자락에 있는 백두대간이란 곳에서 무공을 배웠다고 알고 있는 화린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빙월산검을 계승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알고 있었다.
  이전에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스승과 사매들을 잃은 자신의 어머니, 빙검 월화에 대해 모르는 이 역시 없었다.
  그 둘이 사라졌을 때는 모두가 의아해 했고 안타까워했다.
  중도를 걷던 두 사람.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거대문파나 거대세가와의 충돌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간 두 전설이 어느새 깊은 산골짜기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세상은 한바탕 떠들썩해질 것이다.
  특히 정파는 유강월에게 감정이 상당히 많은 상태였다.
  그에게 정파 고수 100명이 당한 적이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불구가 되어 다시는 무공을 사용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했던 일이 옳은 일이란 것이 밝혀져서 오히려 정파가 욕을 먹기도 했었다.
  긴 은거 생활을 더는 참지 못한 화린이 집에서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아마 지금쯤 화린의 집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무작정 집을 나온 화린은 길을 잃어버리고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에이라나가 지나치는 계곡에서 만난 것이다.
  지금 그녀는 알지 못하고 에이라나의 적의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 이거 놔요!"
  화린이 에이라나의 손아귀에서 발버둥 쳤다.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어마어마한 괴력.
  하지만 그 괴력이 지금 이 여인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자신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멱살을 잡고 있는 에이라나를 보며 더욱 거세게 발버둥 쳤다.
  쿵!
  "아흑!"
  발버둥 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근처에 있는 큰 나무에 자신을 밀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신음을 토하는 화린이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넌 누구냐?"
  으르렁거리며 묻는 에이라나를 보며 화린이 울먹이며 답했다.
  "흐윽. 유, 유화린이요."
  "젠장! 썩을! 이름 물어봤냐! 정체가 뭐냐고!"
  화린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사, 사람이요."
  에이라나의 말에 화린이 순진하게 대답했다. 화린의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결국 에이라나가 터져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런 젠장!"
  고함을 지르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에이라나.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깜짝 놀란 화린이 그녀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허억! 허억!"
  그렇게 잠시 후 파괴 행각을 멈춘 에이라나가 살기가 번뜩이는 눈으로 화린을 보며 말했다.
  "네 부모 어디 사냐?"
  "에?"
  "네 부모 어디 사냐고!"
  "가, 감숙지방 북쪽에 있는 커다란 설산 골자기에 은거하며 살아가시는데요."
  에이라나의 위압감에 눌려버린 화린이 쥐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부모 있는 곳으로 당장 안내해!"
  에이라나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아, 안 돼요!"
  화린이 소리쳤다.
  에이라나의 눈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잠시 후 화린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지금 가, 가출 중이란 말이에요."
  그 말에 어이가 없어지는 에이라나였다.
  밤이 되어 모닥불을 피운 에이라나는 그 앞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낮에 지나치게 흥분했다.
  헛웃음을 지어 보인 에이라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화린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아까 그 난리를 피웠는데도 내 곁에 붙어서 잠이 올까?"
  에이라나가 슬쩍 화린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달빛에 비친 화린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앳된 티가 조금 남아 있어 귀엽게 보이기도 했는데 선녀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화린을 보며 에이라나가 먼저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바로 자신이었다.
  화린을 보고 있으면 꼭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았다. 화린은... 에이라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할 수 있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 녀석이, 하유현의 친동생이란 것."
  그 생각과 동시에 에이라나가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처음 이 아이를 봤을 때 느낀 것은 분노였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그것은 자신과 같은 핏줄이라는 증거였다.
  이 아이의 친부모는 전생에서 자신을 버린... 하유현의 친부모라는 소리였다.
  전생에 10년을 끔찍하게 보냈던 유현이었다.
  부모 없이 정에 굶주려 살면서 10년 동안 거지 생활을 하였다.
  혈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불투명한 미래였다.
  화린의 나이는 17살이라고 했다.
  혈사에게 들어보면 하유현이 살아 있었다고 하면 27살이다.
  10년 차.
  그렇다는 소리는 하유현은 부모를 잃은 게 아니라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소리가 되었다.
  전생에서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었다.
  자신의 부모는 죽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은 완전 자신을 버린 게 아닌가?
  이유도 없이?
  어이가 없었다. 그렇기에 분노가 일었던 것이다.
  그 순간 이성이 마비되었지만 잠시 뒤 이성을 찾고 생각했다.
  이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보겠노라고.
  찾아서 자신을 버린 이들의 면상을 한번 보고 싶은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지금 자신의 옆에 잠들어 있는 화린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아침.
  "하암~"
  화린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누군가를 껴안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려다보니 어제 자신에게 살기를 피워대던 여인을 자신이 껴안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화린이 여인에게서 떨어지려다가 멈칫했다.
  분명 어제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며 살기를 보내기는 했지만 잠시 뒤 흥분을 가라앉히며 냉정하게 자신에게 이것저것 물어오기도 했다.
  화린은 그런 그녀가 왠지 싫지 않았다.
  천하태평하게 그녀의 옆에서 잠까지 자버렸던 것도 모자라 그녀를 꼉나고 자기까지 한 화린이었다.
  평소에 맹하고 덜렁거리고 엉뚱하다는 소리를 부모님이나 언니에게 자주 들었던 자신이지만, 설마 자신에게 아무 이유 없이 살기를 뿌렸던 이에게까지 아무렇지 않게 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살짝 쥐어박은 화린이 문득 에이라나의 가면을 바라보았다.
  신비로운 빛을 띄는 은빛 가면.
  "와~ 예쁘다."
  멍하니 중얼거린 화린이 문득 에이라나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에이라나의 가면에 손을 가져갔다. 에이라나의 가면을 벗길 생각인 그녀였다.
  덥석!
  "헉!"
  가면에 닿기도 전에 자신의 손을 잡는 에이라나의 손을 보며 깜짝 놀랐다.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침부터 왜 남의 가면을 벗기려 들고 지랄이야?"
  그 말에 화린이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잠버릇 하난 더럽게 고양하네. 그런 무식한 힘으로 어디 남의 허리를 안고 자?"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슬쩍 윗옷을 걷어 보았다. 에이라나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는데 그곳에는 시뻘건 줄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린이 껴안았던 자리다.
  "자국 생겼네?"
  "그, 그게 있잖아요."
  에이라나의 말에 화린이 어색하게 변명했다.
  그런 화린을 보며 한숨을 쉰 에이라나가 옷자락을 내리며 말했다.
  "일단 어제 내가 잘못한 거 있어서 봐주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완전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미약한 열기를 뿜고 있는 모닥불에 다시 불꽃을 일으켰다.
  "파이어."
  화르르륵!
  "우와!"
  에이라나의 손에서 일어난 작은 불꽃이 다시 모닥불에 붙었다.
  그것을 보고 감탄한 화린이 물었다.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알 필요 없어."
  에이라나의 말에 화린이 울상을 지었다.
  어린애 같은 화린의 표정에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었다. 왠지 모르게 화린을 보면 이상하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꼴깍.
  침을 꼴깍 삼키는 화린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뭘 그리 멍하니 바라봐?"
  "에? 그, 그냥요."
  그와 동시에.
  꼬르르르르르륵.
  화린의 배에서 울리는 소리.
  "..."
  "..."
  그 소리에 에이라나는 물론 화린도 침묵했다.
  "하아. 밥이나 퍼먹어."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먹어도 돼요?"
  "그래."
  "와~ 마을을 떠나고 난 뒤 며칠 동안 육포로 때웠는데, 마침 이틀 전부터 육포가 떨어졌었어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마을까지 경공술을 사용해서 5일은 더 걸리는데?"
  "커억!"
  에이라나의 말에 막 음식을 먹으려던 화린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쯧, 멍청한 놈.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왔구만?"
  "쿨럭!"
  에이라나의 말에 마름기침을 내뱉는 화린이었다.
  "저, 저기요."
  "왜?"
  화린이 작은 목소리로 에이라나를 불렀다.
  그런 화린의 부름에 에이라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있잖아요, 다음 마을까지 같이 가주시면 안 돼요?"
  화린의 말에 에이라나가 퉁명스럽게 허락했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어차피 난 네 부모를 만나야 할 것 같거든?"
  "에? 부모님이요?"
  "그래."
  그 말에 화린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절 끌고 바로 저희 집으로 갈 생각이신 건..."
  "아니다. 그냥 널 따라다니다가 네가 집으로 가고 싶어질 때쯤 따라가지."
  "아, 다행이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화린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 역시 수저를 들어 같이 식사를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아, 그러고 보니 너 다닐 때는 얼굴 가리고 다니는 게 좋을걸?"
  "에?"
  "네 얼굴 때문에 귀찮은 일 여럿 생길 것 같거든?"
  "에에에.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에이라나의 말에 화린이 곧바로 수긍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살아서 잘 몰랐지만 무림에 나오고 난 뒤 자신의 얼굴 때문에 귀찮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기에 별말 없이 수긍하였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말한 귀찮은 것의 기준은,
  '나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가 중원에 돌아다니면 한바탕 제대로 뒤집어질 게 뻔하지.'
  자신의 얼굴은 무림에서 어느 정도 유명하다.
  그런 얼굴이 무림에 돌아다닌다면 아마 파란이 일 것이 뻔했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 때문에 꼬이는 문제는 다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는 화린을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오는 에이라나였다.
    살인곡의 살인귀 소년
  "앗! 유현 언니, 저거 좀 사줘!"
  "넌 내가 물주로 보이냐!"
  "헤헤~ 언니 돈 많이 있잖아?"
  "맞을래?"
  화린과 유현이 같이 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특히 에이라나는 자신의 이름을 화린에게 하유현이라 가르쳐 준 상태이므로 화린은 에이라나를 유현이라 부르고 있었다.
  유현은 자신에게 매달려 머리 끈을 사달라고 조르는 화린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화린의 분위기에 휘말리는 자신을 보고 있으면 슬쩍 놀라기도 하는 유현이었다. 그렇게 조르고 조르는 화린의 귀를 잡아당긴 유현이 화린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객점 잡아야지, 저 딴 데 신경 쓸 여유 없다."
  "아악~ 아파~ 언니도 여자면서~ 저런 덴 왜 관심도 없는 거야? 아악~ 아파!"
  화린이 따지듯 묻자 유현이 딱 잘라 말했다.
  "관심 없다."
  유현은 막무가내로 화린을 고급객점으로 끌고 갔다.
  근처 객점에 방을 잡은 유현과 화린.
  두 사람은 항상 한 방을 썼다. 침대가 두 개 잇는 2인실 방을 잡는데도 쓰는 침대는 늘 한 개였다. 매일 화린이 유현의 품으로 기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계속 자신의 침대로 기어 들어오는 화린을 보며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아준 유현이었다.
  기어 들어오는 것까지는 봐줄 수 있는데 늘 자는 도중에 자신을 껴 안아버리는 화린의 잠버릇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냥 껴안는 게 아니라 그 괴력으로 힘껏 말이다.
  허리가 자국이 생길 정도이니 같이 자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안으면 압박감 때문에 편하게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현이 아무리 뭐라 해도 결국 자신이 침대에 들어오는 화린이었다.
  자신과 같이 자면 잠이 잘 온다나 뭐라나?
  자신의 품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나 뭐라나?
  그런 말을 늘어놓으며 늘 자신과 함께 자려고 하는 화린 때문에 결국 한 침대에서 동침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이제는 화린의 껴안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방에 들어온 화린이 바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아~ 편안한 이 느낌~ 얼마만이야?"
  "겨우 하루밖에 노숙 안 했다만?"
  "에이, 그래도~ 하루 노숙한 다음에 만나는 침대가 얼마나 반가운지 언니도 알잖아?"
  그 말에 유현이 입을 열었다.
  "별로."
  유현의 시큰둥한 반응에 화린이 말했다.
  "하긴 언니를 보고 있으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보는 듯해."
  화린의 말에 유현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감격스럽다."
  "에엑? 뭐가 감격스럽다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다."
  자신을 보면 남자를 보는 듯하다니, 살면서 저런 말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유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 식사하러 내려가자."
  "응."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화린이 그 뒤를 졸졸 따랐다.
  유현과 화린은 객점 2층 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다.
  일단 이곳은 유명문파가 없는 곳이라 화린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식사 중이었다. 그런 화린에게 달려들 법도 한데 유현이 은연중 풍기는 기운 때문에 그 누구도 다가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유현은 역시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툴툴거렸다.
  "그 답답한 가면 좀 벗으면 안 돼?"
  "기각이다."
  "히잉~ 언니 얼굴 한 번 보고 싶단 말이야."
  "닥치고 밥이나 먹어."
  유현이 음산하게 말하자 화린은 입 꾹 다물고 식사에 열중했다. 저번에 유현의 얼굴을 보려고 덮쳤(?)다가 신나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두를 하나 집어 먹으려던 유현이 멈칫했다.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깐! 그 계곡이 이제는 살인곡이라고까지 불린단 말일세!"
  "히야, 그거 살벌하구만?"
  무림인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대화에 유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음식을 입에 넣던 화린도 멈칫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무공을 노리고 들어간 이는 거의 살아서 돌아올 수 없지. 정말 섬뜩한 곳이 아닌가?"
  "그러게 말일세."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더 놀라운 것은?"
  무림인이 주위를 한 번 쓰윽 둘러보더니 작게 속삭였다.
  "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십대 중후반의 소년이라는 거야!"
  "허억! 정말인가?"
  "쉬잇! 이건 잘 알려지지 않았어. 나도 우연히 들은 건데 살아 돌아온 한 사람이 자신을 공격한 건 어린 소년이었다는 거야! 하지만 그 사람도 결국 얼마 후 숨을 거두었지."
  "허어~ 그런 살인귀가 어린 소년이라고?"
  "그래."
  그 후로 두 무림인은 계속해서 살인곡의 살인귀 소년에 대해 쑥덕거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살인귀가 있단다."
  "우에~ 무서워."
  유현의 말에 화린이 몸서리치며 말했다. 화린의 반응에 유현은 다음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마 웬만한 살인귀는 널 보고 도망갈 걸?'
  무슨 놈의 내공이 저렇게 높단 말인가?
  저 나이 때에는 가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화린이었다. 자신의 전생의 내공량에 맞먹는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공은 넘쳐나지만 정작 저 내공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화린을 보며 유현은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살인귀라."
  왠지 흥미가 동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유현은 살인곡의 살인귀에 대하여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보를 모은 결과 살인귀 소년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얼마 전 그러니까 100년 전 무림에서 가장 강했던 권황무제의 비급이 지금은 살인곡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권황무제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던 인물로 아직도 그의 명성은 천하를 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어느 곳에서 속하지 않은 중도를 택했으며 그 어느 제자도 들이지 않았다.
  그런 권황무제의 독문무공이 중원 무림에 나타났으니 중원 무림이 진동하는 것은 당연했다. 많은 이들이 그 평범한 계곡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무림인들이 그곳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급을 노리고 있던 이들이 대학살 되기 시작하는 일이 벌어졌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비급의 수호자 정도 되는 듯한데 그가 사용하는 무공이 어떤 무공인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살인에 의해 그 계곡의 이름은 살인곡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그 계곡에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이는 살인귀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유현이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물었다.
  "뭐가 그렇다는 거야, 언니?"
  화린의 물음에 유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지나가야 할 곳이 살인곡이라는 곳이래."
  "아아? 그래?"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화린이 굳었다.
  "뭐라고?"
  "살인곡이라고."
  "헉! 거기 살인귀 나오는 곳 아냐?"
  "맞아."
  "왜 그런 길로 가는 거야!"
  "빠르니깐."
  "언니는 빠르다고 그런 위험한 길을 이용해서 가?"
  "위험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그딴 살인귀가 나한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유현의 말에 화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도 유현의 강력한 힘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싫어! 무섭단 말이야!"
  무서운 것은 싫었다.
  화린의 투정에 유현이 입을 열었다.
  "아아, 닥치시고 살인곡을 지나간다."
  "싫어! 무섭단 말이야. 다른 길로 가자."
  화린이 유현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징그럽게 왜 이래? 떨어져!"
  유현이 자신에게 달라붙는 화린을 떨어뜨렸다. 화린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살인곡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있을 때 한 무림인이 억눌린 듯 소리친다.
  "으으으. 악마!"
  하지만 무림인에게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너는 할아버지의 무공을 노렸어. 노리고 왔다가 나에게 졌으니 너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
  그렇게 말한 그가 주먹을 든다.
  으으으! 으아아아악! 살려줘!"
  무림인이 피가 묻은 주먹을 보고 소리 지른다.
  퍼억!
  하지만 무림인의 외침에도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무림인의 얼굴을 강타함과 동시에 무림인의 얼굴이 터져 버렸다.
  잔인했다. 하지만 정작 잔인한 행동을 저지른 그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다.
  잠시 후 구름이 걷히고 보인 것은 앳된 티가 나는 십대 중후반의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뒤로 보이는 것은 수십 구의 시체였다.
  "사람 많다."
  화린이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출을 하고 난 뒤 사람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많은 무림인들이 이렇게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보는 그녀였다.
  화린의 반응에 유현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그 살인귀라는 녀석 잡아서 명성 좀 날리겠다는 생각들이겠지. 그리고 권황무제의 비급까지."
  비웃는 듯한 말투에 근처에 모여 있던 무림인들이 모두 유현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유현이 슬쩍 드래곤 피어를 붐자 모두가 움찔하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가자."
  "어? 응."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화린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유현을 사람들이 한 번씩 노려보았다. 그렇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할 유현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으.언니 천천히 좀 가."
  화린이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유현에게 애원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화린의 애원에도 유현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언니!"
  화린이 한 번 더 소리치자 유현이 그제야 돌아보며 물었다.
  "살인곡을 빨리 지나고 싶다면서?"
  유현의 말에 화린이 칭얼거렸다.
  "그렇지만, 쉬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잖아?"
  평범한 계곡이라고 하나 꽤 깊다. 그렇기에 계속 이런 속도로 간다면 하루는 이 계곡에서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것을 알았다면 당장 경공술을 사용하자고 떼를 썼겠지만 화린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화린이 힘들어하자 유현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쉬었다 가자."
  "와."
  그 말에 환호성을 지른 화린은 재빨리 근처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겨울이라 바위는 차가웠지만 빙속성 심법을 익힌 화린에게는 그저 시원할 정도의 느낌이었다.
  유현은 실버드래곤이기에 당연하게도 추위에 별 감흥이 없었다. 알몸으로 빙하 지방에 던져 놔도 괜찮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현이 하품을 하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갑작스러운 유현의 탄성에 화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언니 왜 그래?"
  "방금 전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람 몇 명이 죽었거든."
  살벌한 내용과 다르게 너무도 태연한 유현의 모습에 화린은 잠시 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바, 방금 사람이 죽었다고 했어?"
  뒤늦게 말뜻을 알아차린 화린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것도 열 명 정도?"
  "허억! 그것도 살인귀의 짓이야?"
  화린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반면 유현은 여전히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런 거 같다."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화린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뭐, 뭐야? 어디 가게?"
  화린의 물음에 유현이 싱긋 웃었다.
  "가보게."
  "싫어!"
  화린을 돌아보며 유현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래, 있어라. 누가 따라 오라고 했냐?"
  유현이 경공술을 이용해 신형을 날렸다. 결국 안절부절 못하던 화린도 유현을 따라 경공술을 이용했다.
  "같이 가."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있는 게 덜 무서웠기 때문이다.
  "흐음. 전부 주먹에 맞아 죽었군."
  유현이 시체들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하나 같이 얻어터진 흔적들.
  악랄한 수법들은 보이지 않지만 패도적이고 파괴적인 느낌의 무공 같았다.
  "정파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파 같지도 않고, 마도는 더더욱 아니야. 그렇다면 중도인가?"
  무공의 느낌을 보아하니 중도의 무공 같았다.
  "흐음. 권황무제의 무공인가?"
  유현은 권황무제의 무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권황무제의 자료에 대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현이었기에 이것이 권황무제의 무공인지 아닌지는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저 짐작이었다.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유현을 보며 화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 시체는 왜 뒤적거려!"
  뒤에서 들려온 화린의 목소리에 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시체가 무서운 듯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화린을 보며 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시체를 무서워하면서 저런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유현이 시체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시체들이 당한 것을 보아하니 화경 초입쯤 되는 것 같다."
  그 말에 화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경?"
  "그래."
  화경. 바로 강기를 다루는 단계를 말한다.
  그런 화경의 경지에 든 이들은 대 문파에서도 그리 많이 데리고 있지 않았다.
  유현의 말에 화린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정말 강한 사람이네?"
  화린의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유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네 내공은 화경 절정급의 내공이다.'
  유현은 아직 자신의 내공에 자각도 못한 것처럼 보이는 화린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 유현은 기척이 느껴지자 얼굴을 찌푸렸다.
  "무림인들이군."
  만나봤자 괜히 얼굴만 붉히게 될 것 같아 유현이 화린을 보며 말했다.
  "가자."
  "어? 응!"
  시체가 열 구나 있는 곳에 있기 싫었는지 화린이 힘차게 대답했다.
  유현은 화린과 함께 경공술을 이용해 빠르게 사라졌다.
  "계속 죽어나가면서도 달려들다니. 쯧!"
  며칠 동안 계속되는 살인 행각에 유현이 혀를 찼다.
  유현은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욕심을 부려 화를 자초하는 무림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느낀 것만 해도 벌써 백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학살당했다. 아무리 삼류에서 일류 정도의 무사들이라고 하나 조금 과한 감이 있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유현이 슬쩍 잠을 자는 화린을 바라보았다.
  "사일런스."
  소리차단 마법을 사용한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낫다. 그리고 한쪽을 보며 말했다.
  "유명한 살인귀께서 무슨 볼일이신가?"
  유현이 냉소하자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나왔다.
  화린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년은 신비하게도 은안을 가지고 있었다. 유현의 은안보다는 색이 좀 더 짙은 회색에 가까웠다. 아마 무공 때문에 그렇게 변한 듯했다.
  "흐응~ 권황무제의 전인인가?"
  단번에 알아챈 유현의 말에 소년이 움찔하며 경계했다.
  "할아버지의 무공을 노리고 온 건가?"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유현의 예상 밖의 대답에 소년이 의아한 표정을 징었다.
  "그냥 이 계곡을 지나가는 행인."
  그 말에 소년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그래."
  무공을 노리지 않고 왔다는 말에 소년이 자세를 풀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유현의 말에 소년이 흠칫하며 다시 경계했다.
  "너랑 잇아하게 붙어보고 싶은데?"
  그렇게 말한 유현이 히죽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자! 권황무제의 제자가 얼마나 강한지 볼까?"
  그 말과 함께 이영환휘를 사용해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쐐애애애액! 쾅!
  그와 동시에 격돌하는 권기와 권기!
  유현이 권기를 이용해 공격하자 소년도 권기로 막았다. 그런 소년을 보며 히죽 웃은 유현이 다른 주먹을 내질렀다.
  쾅!
  폭음과 함께 소년은 유현에게서 떨어져야만 했다. 바로 유현의 권기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빙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소년을 향해 싱긋 웃어준 유현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들어 올리며 달려들었다. 소년은 재빨리 유현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쉬익! 퍽!
  갑자기 소년의 품으로 파고든 유현이 어깨로 그의 가침을 받쳤다.
  "커억!"
  가슴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소년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렇게 한가하게 신음을 흘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
  부우우웅!
  바로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권기 때문이었다.
  콰가가가강!
  입술을 꽉 깨문 소년이 주먹으로 유현의 권기를 막았다.
  만약 권기와 권기의 격돌이라면 힘 싸움에서 이기는 건 당연히 유현이었다. 하지만 튕겨져 나온 것은 유현의 주먹이었다.
  유현이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렸다.
  "강기."
  유현의 주먹이 튕겨져 나온 이유는 바로 소년이 손에 강기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눈동자와 같은 색의 권강을 보면서도 유현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펴며 재미있다는 듯 자신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유현의 주먹에도 권강이 맺혔다.
  그런 유현을 보며 소년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후.
  콰가가가가강!
  소년이 권상을 유현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도망가는 소년.
  소년의 뒤를 쫓으며 유현이 말했다.
  "그냥은 못 가지! 파이어 볼!"
  유현의 외침과 동시에 생성되는 다섯 개의 화구.
  다섯 개의 하구가 소년을 노리고 날아든다. 죽지는 않겠지만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소년이 취한 행동에 유현이 굳어버렸다.
  고오오오오!
  갑자기 소년의 눈이 번뜩이더니 머리카락 색까지 눈동자와 똑같은 색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몰아치는 어마어마한 살기와 기운!
  소년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쾅! 쾅! 쾅!
  다섯 번의 주먹질과 동시에 생성된 탄권기가 각각 파이어 볼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소년은 엄청난 속도로 사라졌다.
  잠시 후.
  "뭐였지? 그건?"
  굳어 있던 유현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다음날 화린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유현은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화린의 기척을 느낀 유현이 말했다.
  "일어났으면 밥이나 먹어."
  유현이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유현은 이미 식사를 끝냈는지 화린의 몫만 남겨져 있었다.
  "헤헤."
  유현을 향해 웃어 보인 화린이 음식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응?"
  화린이 뭔가를 느꼈는지 식사 도중에 멈칫했다.
  "언니."
  화린이 자신을 부르자 유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림인들. 적어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데?"
  유현의 중얼거림이 끝나고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도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유현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호오? 공동이네?"
  그들은 바로 공동파였다.
  유현이 중얼거리며 말하자 화린이 물었다.
  "공동파?"
  화린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산속에서만 자랐다. 그렇기에 외부의 일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고로 구파일방을 잘 알지 못했다.
  화린의 말에 유현이 설명해 주었다.
  "정파 최고의 문파라 불리는 구파일방 중 하나다."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전생에 마교의 소교주였던 유현.
  그런 유현에게 있어 공동파는 적이었다.
  화린에게 다가간 유현이 공동파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총 5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이들로 모두가 일류 수준의 무사였으며, 몇몇 이들은 절정, 즉 일류와 화경 사이의 단계인 검기를 사용하는 이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듯한 이는 화경의 고수였다.
  그를 보고 유현이 히죽 웃었다.
  감숙에서 일어난 문제이니 감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종남파가 온 것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어제 소년이 마지막에 보여줬던 힘은 분명 화경초입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대단한 힘이었다.
  아마 그 소년이라면 저 정도의 전력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도망갈 수 있을 것이다.
  피식 웃은 유현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공동파 인들을 보며 삐딱한 자세를 취했다.
  "소저들은 무림인들이시오?"
  공동파 무사들을 이끄는 수장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물었다.
  그 말에 유현이 픽 웃으며 말했다.
  "검 차고 있는 거 보면 모르나?"
  무례한 말투에 유현에게 말을 건 중년인의 얼굴이 조금 꿈틀했다.
  "휴~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군. 어제 여기서 야영한 듯한데, 어제 이 근처에서 엄청난 폭음 소리와 함께 강력한 기의 파동이 느껴졌소."
  중년인의 말에 유현이 물었다.
  "그래서?"
  "어제 살인귀와 한 고수가 여기서 싸운 듯한데 혹시 아시오?"
  그의 말에 유현이 딱 잘라 말했다.
  "몰라."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 유현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정보를 캐는 일에 협조할 리가 없었다.
  유현의 대답에 슬쩍 얼굴을 찌푸린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대충대충 말하지 마시오. 중요한 일이오."
  그 말에도 유현은 여전히 삐딱했다.
  "모른다잖아. 왜 귀찮게 굴고 난리야?"
  유현이 짜증난다는 듯 말하자 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명은 가면을 쓴 여인, 또 한 명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 충분히 수상하다고 생각되오만."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우리가 그 살인귀란 말이야?"
  유현의 말에 중년인이 약간의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소?"
  "하?"
  유현이 어이가 없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역시 정파인들은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 하난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중년인의 말에 유현이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그 비웃음에 중년인이 울컥했다.
  "너 이름이 뭐냐?"
  유현의 물음에 중년인이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종남파의 장호성이라고 하오."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문했다.
  "종남협검 장호성?"
  대답이라기보다는 중얼거림에 더 가까웠다.
  분명 자신의 기억으로는,
  "아아. 그 툭 하면 여자를 겁탈한다는 쓰레기?"
  그 말에 자부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장호성이 굳어버렸다.
  유현은 화가 난 장호성에게 비웃음을 가득 담으며 말했다.
  "그런 쓰레기 분께서 왜 종남협검이라고 불릴까? 이해가 안 되네, 크큭큭큭큭."
  유현의 비웃음에 장호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년!"
  내력이 실려 있는 장호성의 외침이지만 유현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왜? 죽이게?"
  "이익! 이년이!"
  유현의 말에 검을 뽑아 드는 장호성이었다.
  '어, 어떻게...'
  겉으로는 자신에게 웃기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에 분노하여 검을 뽑는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당황한 상태였다.
  어떻게 자신이 은밀하게 행한 일들을 저렇게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너무도 혼란스러운 장호성이었다.
  검을 뽑아든 장호성이 외쳤다.
  "나에게 그런 헛소리를 한 네년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 말과 동시에 종남의 제자들도 살기를 피우며 유현과 화린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지켜보던 화린이 당황하며 유현을 말렸다.
  "어, 언니."
  유현은 불안해하는 화린을 자신의 등 뒤로 보내며 안심시켰다.
  "겁먹지 마."
  그렇게 말한 유현이 다시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파들은 이전에도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더니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하는 짓거리는 참 마음에 안 드는군."
  말을 끝낸 유현이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펼쳤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프리징 오브 아이스 볼."
  그와 동시에 유현의 손 위에 생기는 작은 빙구.
  7서클 빙계 마법인 프리징 오브 아이스 볼이었다.
  유현의 손바닥에 생긴 빙구를 보며 장호성이 소리쳤다.
  "사술!"
  장호성의 말에 유현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미친 놈, 이게 어딜 봐서 사술이란 거냐?"
  그렇게 말한 유현이 그대로 그것을 장호성에게 던졌다.
  "그 따위 사술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버럭 소리친 장호성이 검으로 유현이 날린 프리징 오브 아이스 볼을 갈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쩌저저정! 파악!
  "크아아악!"
  마법이 터지면서 그대로 장호성을 덮쳤다.
  지켜보고 있던 종남의 무사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림인들에게 있어 마법은 생소한 것이다. 그렇기에 장호성이 사술로 단정 지었던 것이다.
  사술로 보이는 것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였다. 장호성은 그대로 얼음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장호성을 향해 유현이 지풍을 날렸다.
  쩌저저정!
  얼음상이 되어버린 장호성은 그대로 부서져버렸다.
  "허억!"
  "사, 사술이다! 혈교인이 분명해!"
  종남파 무사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보며 얼굴을 구긴 유현이 말했다.
  "난 혈교랑 철천지원수에 있는 관계다. 그런데 내가 혈교인이라고? 이 새끼들이 뒈지려고 환장했나!"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유현은 동시에 검을 뽑았다.
  자신의 검신을 뽐내며 검집에서 뽑혀져 나오는 은아.
  백은빛 신비로운 분위기의 검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그들이 더욱 놀란 것은 은아가 품고 있는 차가운 빙기 때문이었다.
  상황도 잊고 은아의 아름다운 자태에 멍해진 종남 무사들.
  그런 그들의 행동은 그대로 죽음으로 직결되었다.
  펼쳐지는 환검.
  그와 동시에 엄청난 수의 환검이 만들어져 종남파 무사들을 덮쳤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살이 베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종남파 무사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와 함께 유현이 종남파 무사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이미 유현의 ㅣ환검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그들이기에 제대로 된 대응 한 번 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유현의 검에 맞아 쓰러져 갔다.
  똑. 똑.
  유현이 무심한 눈으로 오십 구 정도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화린은 그 옆에서 시신이 아닌 유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유현이 은아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은아를 한 번 털었다. 은아에 남아 있는 피를 털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은아는 신기다.
  신기였기 때문에 조금의 피밖에 남아 있지 않았는데 한 번 털어 주니 그대로 피가 털려져 나갔다.
  은아를 검집에 집어넣은 유현이 화린을 보며 말했다.
  "내가 무섭냐?"
  그 말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서 있는 유현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화린이 잠시 뒤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언니는 하나도 안 무서워."
  그 말에 피식 웃은 유현이 말했다.
  "일단 자리를 피하자. 구파일방의 무사들을 오십 명이나 죽였으니 골치 아파질게 뻔하거든?"
  그렇게 말한 유현이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물론 화린도 같이.
  유현과 화린이 경공술을 이용해 계곡을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찾았다! 비급을 가지고 있는 살인귀를!"
  "잡아라!"
  "저기 있다! 잡아!"
  주위가 소란스럽다.
  그것을 보고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그 녀석을 발견한 건가?"
  유현이 멈춰 섰다. 화린도 같이 멈춰 섰다.
  화린이 물었다.
  "으~ 가볼 꺼야?"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근처에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겠는데 녀석에게 확인해 볼게 있거든?"
  그렇게 말한 유현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경공술을 이용해 달려갔다. 그런 유현을 뒤따르면서 화린이 칭얼거렸다.
  "히잉~ 살인귀라면 분명 무섭게 생겼겠지?"
  그런 화린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유현이 말했다.
  "아니, 상당히 곱상하게 생긴 녀석이던데?"
  유현의 말에 칭얼거리던 화린이 멈칫하며 의아한 듯 물었다.
  "곱상해?"
  "어."
  "잘생겼다는 뜻?"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
  "어제 봤거든, 네가 자고 있을 때."
  정확하게 말하면 유현이 화린을 못 일어나게 한 것이다.
  유현의 말에 화린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에엑~ 그럼 왜 난 몰랐지?"
  "네가 둔해서 그렇겠지."
  "너무해!"
  유현의 말에 화린이 소리쳤다.
  그렇다고 부인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본인도 자신이 둔하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경공술을 이용해 달리던 유현과 화린은 소리가 들린 쪽에 빠르게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유현은 예상했었지만, 화린에게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무림인들이, 한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에게 쫓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격파당하는 무림인들을 보며 화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 저래?"
  화린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실력이 딸리니 혼자인 녀석에게도 쫓기는 게 당연하지."
  유현이 그렇게 비웃었다.
  잠시 후 도망치던 무림인들이 하나하나 소년의 손에 맞아 죽어갔다.
  그 장면이 잔인해 화린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유현은 그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수많은 무림인들이 소년의 손에 전멸해버렸다.
  소년은 호흡이 벅찬 듯 거칠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소년을 향해 유현이 히죽 웃어 주자 소년이 굳었다.
  유현이 발을 굴렀다. 동시에 뛰어오른 유현의 몸이 소년의 앞에 떨어졌다.
  언덕 위에서 가볍게 밑으로 내려온 유현.
  착지하자마자 자신에게 덤벼들어오는 소년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질러 들어오는 주먹을 보며 유현이 그것을 피해냈다.
  그런 유현을 보며 다시 소년이 발을 내질렀다.
  재빨리 소년의 발목을 잡은 유현이 그대로 소년을 던져버렸다.
  소년은 던져지는 상태에서 그대로 회전을 하여 바닥에 착지했다. 이제는 유현에게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경계했다.
  그런 소년을 보며 히죽 웃은 유현이 말했다.
  "어제 보여줬던 그 힘을 다시 사용하는 게 어때?"
  유현의 말에 소년이 흠칫했다.
  잠시 굳은 표정이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갑자기 소년의 눈동자가 무심하게 변했다. 그리고 눈에서는 살기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소년의 주위에 어마어마한 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유현도 놀랐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소년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유현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무력은 거의 현경이랑 맞먹는 녀석이잖아?'
  유현이 중얼거렸다.
  아직 화경의 경지에 들어서 보이는 그였는데 머리카락 색이 물들자마자 소년의 힘은 현경과 맞먹을 정도로 강해져버렸다.
  쾅!
  엄청나게 패도적인 기운으로 무장한 소년이 지면을 박차고 유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소년을 보며 유현 역시 똑같이 달려 나갔다.
  쾅!
  소년과 유현의 충돌과 동시에 소년이 뒤로 살짝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유현에게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여러 번의 충돌.
  역시나 밀리는 쪽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안 쓰는 듯 달려드는 소년을 보며 유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완전 버서커구만?"
  유현의 말에도 소년은 그저 살기만 뿌리며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쾅!
  "젠장!"
  소년의 거센 공격에 유현이 밀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구긴 유현이 재빨리 쌍권을 날렸다.
  쾅!
  그와 함께 휘청거리는 소년.
  그런 소년에게 달려든 유현.
  "천마!"
  콰가가가가가가가강!
  퍼억! 퍽! 퍼억! 빠악! 우드드드득!
  천마권각술 상태에서 사용하는 천마.
  어느새 소년의 호신강기를 뚫은 유현이 소년의 몸을 난타했다. 그와 함께 뼈가 박살나는 섬뜩한 소리까지 들렸다.
  쿵!
  "쿨럭!"
  소년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그대로 피를 토했다. 뼈도 몇 대 부러졌기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소년을 유현이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화린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화린에게 거의 다 다가왔을 때 유현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흠칫!
  어느새 일어났는지 자신에게 달려드는 소년을 보며 유현이 욕설을 내뱉었다.
  "썅! 뻗을 거면 계속 뻗어 있을 것이지!"
  유현은 완전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소년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런 유현보다 먼저 행동한 이가 있었으니,
  퍼억!
  바로 화린이었다. 화린이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검등으로 소년의 면상을 가격한 것이었다.
  털썩!
  소년은 화린의 괴력적인 공격에 날아가 버렸다. 공격한 화린이나 지켜보던 유현이나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코피가 흘렀다. 그것도 쌍코피로.
  주르르륵.
  소년의 몰골은 상당히 웃겼는데 그것을 보고 유현이 웃었다.
  "킥!"
  잠시 웃음을 참아보려 했다.
  "킥킥킥킥킥."
  하지만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현이 웃고 있든 말든 소년은 멍하니 자신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소년의 머리카락 색은 언제 돌아왔는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멍하니 유현과 화린을 바라보던 소년이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이 녀석 기절했네?"
  "혹시 내가 때린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지?"
  "뭐, 그 전에 나한테 신나게 얻어터진 것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너의 무식한 공격 때문인 것 같다."
  "크윽."
  유현의 무식하다는 표현에 화린이 얼굴을 구겼다. 그런 화린을 힐끔 쳐다본 유현이 한숨을 쉬었다.
  "무림인들이 온다. 가자. 걸리면 귀찮아."
  그렇게 말한 유현이 막 경공술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잠깐!"
  화린이 유현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멈춰 세웠다. 언제 짊어 맸는지 화린의 어개 위에는 소년이 들려 있었다.
  "이 애도 데리고 가자."
  "그 녀석은 왜?"
  "불쌍하잖아."
  "그냥 버려."
  "으윽! 너무해! 언니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언니 잘못이 커!"
  화린이 버럭 소리치자 유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데려가자! 데려가!"
  그렇게 말한 유현이 먼저 경공술을 사용했다. 화린도 소년을 짊어진 채 경공술을 이용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인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유현과 화린, 그리고 살인귀 소년에 대한 단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혈교와의 격돌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유현이 짜증을 냈다.
  "그런 녀석은 왜 구해주고 난리야?"
  유현의 말에 화린이 소리를 질렀다.
  "언니 잘못도 크지! 멀쩡한 사람 이렇게 때려 눕혔잖아!"
  "간단하게 비무만 하려고 했는데 죽자 살자 살기를 뿌리며 달려드는 녀석을 그냥 살짝 눕혀주라고? 그딴 짓 절대 못한다! 그리고 그 녀석 반쯤 맛 가 있었다고! 주화입마에 빠질 확률이 높은 녀석이야!"
  유현이 버럭 소리치자 화린이 움찔했다. 하지만 잠시 후 물수건으로 소년의 머리를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소년은 살기를 뿌리면서 언니에게 달려들 때에 괴로워했단 말이야."
  그 말에 슬쩍 얼굴을 찡그린 유현이 물었다.
  "괴로워해?"
  "으응. 잘은 모르겠는데 살기를 뿌리는 이 애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어."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던 유현이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일어나서 나에게 살기를 뿌리며 또 달려들면 죽인다."
  음산하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움찔하는 화린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끄응."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
  "크으으윽."
  소년은 온몸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는지 고통을 호소했다.
  "아앗! 일어났다! 이봐요, 정신이 들어요?"
  화린은 그런 소년을 다급하게 불렀다. 소년이 살짝 눈을 떠 멍하니 화린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화린은 그런 소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소년의 뺨을 툭툭 쳤다.
  철썩! 철썩!
  제 딴에는 툭툭 친 거라고 하지만 자신의 괴력을 주체하지 못했다.
  "끄아악!"
  다시 고통을 호소하는 소년의 볼은 벌개져 있었다.
  "헤~ 다시 잠들어버리는 줄 알고 많이 걱정했다. 케엑!"
  생글생글 웃으며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에게 말하던 화린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유현이 손바닥으로 화린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었다.
  "왜 때려!"
  "지금 사람 잡을 일 있냐? 네 무식한 힘으로 어디 환자를 치고 난리야!"
  "언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언니는 사람을 반 시체 만든 주제에!"
  "시끄러워!"
  "꺄악! 사람 잡겠다!"
  시끌벅적한 두 사람.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년이 잠시 후 유현을 알아보며 화들짝 놀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런 소년을 힐끔 쳐다본 유현이 입을 열었다.
  "걱정마라, 안 죽인다."
  유현의 심드렁한 말에 소년이 경계를 풀었다. 유현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풀리자 붙임선 좋은 화린이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난 화린이라고 해요, 유화린! 나이는 17살의 꽃다운 나이에요!"
  화린의 소개에도 소년은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화린이 어색함을 느끼며 살짝 웃었다.
  "은월, 나이는 17세."
  소년, 아니 은월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은월이 대꾸하자 화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은월, 예쁜 이름이네요. 아, 동갑이니깐 말 놔도 되죠?"
  화린의 말에 은월이 답했다.
  "마음대로."
  "와! 그럼 편하게 대할게!"
  은월은 화린의 붙임성 있는 행동에 당황해 했다.
  잠시 후 은월이 유현을 보며 물었다.
  "당신은?"
  은월의 물음에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하유현, 나이 27세."
  유현의 소개에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보던 은월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할아버지보다 강해?"
  밑도 끝도 없는 그 말에 유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할아버지가 누군데?"
  "은자강."
  "아하, 권황무제?"
  유현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말했다.
  "권황무제?"
  이번에는 은월이 유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네놈이 말한 은자강이란 사람, 그 사람 명호가 바로 권황무제다."
  그 말에 은월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화린이 더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권황무제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그 말에 유현이 답했다.
  "100년 전 중원 무림 최강자라고 불렸던 인간."
  "와~ 그럼 은월이는 그 사람의 손자란 거야?"
  그 말에 유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명해주었다.
  "친손자는 아닐 거야,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사람이기도 하니깐. 죽었다는 말도 많았지만 17살밖에 되지 않은 제자를 키우고 있을 줄이야."
  잠시 감탄하던 유현이 질문했다.
  "그래, 은자강은 어떻게 됐지?"
  그 말에 은월이 멈칫하더니 잠시 후 슬픈 눈으로 말했다.
  "돌아가셨어."
  "호오?"
  권황무제가 사라질 당시만 해도 그의 나이 57세.
  권황무제는 현경의 경지에 접어들어 환골탈태를 한 이로 유명했다.
  현경에 들었다고 무조건 환골탈태를 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반로환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깨달음에 의해 자동적으로 생기는 현상으로 휘안이 환골탈태를 한 예이다.
  보통 환골탈태를 하면 200살까지는 기본으로 산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권황무제는 150세쯤에 죽은 것이다.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죽었지?"
  "...내...손으로."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은월을 보며 유현이 멈칫했다. 그것도 잠시 금세 나른한 표정이 되었다. 반면에 화린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호오? 아까 그 폭주상태인 상태로?"
  "..."
  은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그런 은월을 보며 히죽 웃었다.
  "하긴 그 상태의 널 이길 수 있는 존재는 현 무림에서 두 명밖에 없을 듯하군."
  유현의 말에 은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명?"
  "그래. 나랑, 남궁휘안이란 녀석."
  그 말에 은월이 생각에 잠겼고 그런 그를 보며 유현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건 왜 묻냐?"
  그 말에 은월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그랬어, 나를 제압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깐 만약 폭주상태인 나를 제압하는 사람이 남자라면 그의 수하가 되고, 그것이 만약 여자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의 남편이 되라고 했어."
  "쿨럭!"
  "켁! 쿨럭! 쿨럭!"
  은월의 말을 듣고 있던 화린은 마른기침을 토했으며 유현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당신의 남편이 될 거야."
  태연하게 중얼거리는 은월에게 유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썅! 내 손에 뒈지고 싶지 않으면 개소리 좀 작작해!"
  유현의 외침에 은월이 의아해했다.
  "난 할아버지의 말을 지킬 뿐인데?"
  "그딴 데 날 끼워 넣지 마!"
  "할아버지 유언..."
  하지만 은월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깨끗하게 명치를 발로 차버리는 유현의 행동 때문이었다.
  "크억!"
  환자인 데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의해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은월이었다.
  다친 은월을 한 방에 뻗어버리게 만든 유현은 잠시 후 일어난 그를 주먹으로 몇 대 패고 난 뒤 분이 좀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말했다.
  "개소리 하면 죽인다?"
  "할아버지 말에 따를 거야."
  하지만 협박에도 한결같이 대답하는 은월을 보며 눈썹이 꿈틀한 유현이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썩을! 개 같은 영감탱이! 왜 그딴 개소리를 해서 나의 울화를 치밀게 하냔 말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유현을 보며 은월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은자강이 은월에게 그런 말을 한 이유는 그냥 농담으로 그런 것이었다. 은자강이 생각하기에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가 은월을 제압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결국 죽을 때 은월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농담 삼아 했던 말에 의해 고인이 된 은자강은 유현에게 쌍욕이란 쌍욕은 다 듣고 말았다.
  결국 유현은 은월을 설득(협박)하는 것을 포기했다.
  "너의 폭주상태를 어떻게 한 건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야."
  유현이 화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은월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넌 강해"
  "에? 아니야, 아니야. 난 약해."
  은월의 질문에 화린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말했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내공량은 무식하게 많은 녀석이다."
  "무식이란 말은 좀 빼!"
  화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역시나 깨끗하게 무시하는 유현이었다.
  "잠이나 자라."
  그렇게 말한 유현이 자리에 누웠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에? 자게?"
  "밤이다."
  화린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한 유현은 화린과 은월에게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화린과 은월도 자신들만 이야기하기 뭣했는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유현은 막 잠에서 깬 화린과 은월을 힐끔 쳐다보더니 은월에게 다가갔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유현은 은월의 몸을 여기저기 툭툭 쳐보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흐음. 위가 상했네? 그리고 늑골이 세 개 나갔고, 팔도 부러지고, 발목에 금까지 갔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유현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무식하게도 팼다."
  하지만 그런 화린의 말을 무시하고 유현은 은월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네놈을 보니 계속 우리를 따라올 것 같고. 내가 그렇게 만든 거니깐 이번 한 번만 치료해 주지. 리커버리."
  그 말과 함께 유현의 손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은월을 감싸 안았다.
  갑작스러운 빛에 놀란 은월과 화린이 눈을 감았다.
  "어?"
  눈을 살며시 뜬 은월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피멍까지 전부 말이다. 그리고 더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은월이 주먹을 휘둘러 봤다. 다리도 휘둘러 봤다.
  몸을 풀어봤는데도 이상이 없었다.
  "와."
  "대단해."
  화린과 은월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유현은 아침에 잡아 왔는지 토끼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밥이나 먹어."
  유현의 말에 은월과 화린이 모닥불 주위로 다가왔다.
  점심쯤 마을에 도착한 유현 일행.
  하지만 유현 일행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유현만 해도 아름다운 은빛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화린 역시 얼굴을 가리고 한겨울에 신발도 신지 않았으며 다리를 훤히 다 드러내고 다니는 옷차림이었다. 은월은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눈동자 색이 은색이란 것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철면피인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유현은 무시했고 화린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쳐다보는 것을 몰랐으며 은월은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여러모로 눈에 듸는 세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던 유현이 멈칫했다.
  그런 유현을 보고 나란히 걷던 화린과 은월도 따라 멈칫했다. 잠시 후 은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반면에 화린만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흐음~ 기운으로 봐서는 정파인들은 아니고. 사파인가?"
  패도적인 기운을 가진 이들이 다수 따라붙고 있었다.
  그것도 꽤 고수로 보이는 이들로.
  정파라면 정순한 기운이. 마교라면 패도적인 마기.
  그런데 이 기운들은 그저 패도적이기만 할뿐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유현의 말에 은월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유현이 싱긋 웃으며 알면서 묻는다는 듯 대꾸했다.
  "마을 밖에서 아작 내지."
  "응? 뭔데? 뭐야?"
  화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그런 화린의 물음을 무시한 유현은 화린을 끌고 마을 밖으로 향했다.
  그 두 사람의 뒤를 은월이 따라갔다.
  마을 외곽.
  그곳에서 멈춘 유현이 히죽 웃으며 탄지강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픽픽픽픽!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네 발의 탄지강이 정확하게 유현 일행을 미행하던 이들의 머리통에 정확히 꽂혔다.
  넷이 정확하게 쓰러지자 기척들이 움찔하더니 모습을 드러냈다.
  총 이십 명.
  "열 명 더 숨은 거 아니깐 나와."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열 명의 인영이 더 나왔다. 모두가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유독 한 사람만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사람을 발견하고 유현이 물었다.
  "여자냐? 남자냐?"
  빠직!
  유현의 질문에 아이는 이마에 힘줄이 하나 생겼다. 아이는 화린과 은월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헤에~ 이런 녀석이 있었나?'
  유현이 속으로 감탄했다.
  그 아이는 은월과 비슷한 경지, 즉 화경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물론 은월이 더 강하며, 은월이 폭주 상태가 된다면 무림에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물론 은거기인들 중 은월을 제압할 수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월은 폭주상태라고 하지만 권황무제와의 대결에서 이겼다고 했다. 그 당시 상황을 들어보니 권황무제는 은월을 향해 자신을 쓰러트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은월이 익힌 무공은 참월백랑권.
  권황무제의 독문무공이 월랑백권이 아니었다.
  참월백랑권각은 권황무제 역시 봉인해 놨던 비기로 자신은 그것을 익힐 자질이 못 된다고 했다. 그의 사부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렇게 대대로 이어져 오던 비급을 은월이 익힌 것이었다. 그만큼 은월의 자질은 대단했다.
  '하긴, 이 나이 때에 이런 괴물이 되었는데.'
  은월에게 받았던 참월백랑권각을 한 번 읽어보니 이것은 익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화입마에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은월은 자질이 뛰어나 그것이 폭주상태로 그쳤던 것이다.
  은월의 자질은 유현의 전생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도.'
  화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찾아본다면 현경의 경지에 든 이들은 꽤 많다.
  정파만 해도 찾아본다면 속세에 있는 현경의 경지에 든 이들만 20명이 넘을 것이다. 천마교에서도 장로들을 포함해 현경의 경지에 든 이들이 무려 23명이나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이들까지 합친다면 30명은 족히 될 것이다. 사파 또한 정파와 비슷한 현경의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천마교와 정파, 사파의 고수들 차이만 해도 이렇게 난다. 그렇기에 천마교가 단일 최강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그런 그들 중에서 특히 강한 이들이 바로 삼마이제삼왕이다. 그리고 그들보다 강한 이들이 있다면 전대 은거기인이나 유현과 휘안을 뽑을 것이다.
  휘안이 마음만 먹는다면 삼마이제삼왕들을 찾아다니며 비무를 신청해서 모두 박살내고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휘안에게는 마법이란 무기가 있다.
  대량학살(?)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고위마법들.
  그런 고위마법들이 있기에 휘안은 더욱 무서운 것이다.
  유현이 눈앞의 아이를 보며 감탄한 이유는 십대 중후반의 나이에 화경의 경지에 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저 아이는 사파 최고의 고수가 될 것이다.
  검마만 하더라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유현의 여자냐 남자냐 라는 질문에 이마에 힘줄이 생긴 아이가 짧게 대꾸했다.
  "남자다."
  "옷은 왜 그 꼬라지냐?"
  소년의 말에 유현이 비웃었다.
  "으윽! 닥쳐!"
  유현이 비꼬자 소년이 발끈하며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은 여자아이들이 입을 법한 옷이었던 것이다. 물론 외모도 상당히 예쁘장하여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유현은 발끈하는 소년을 무시하며 그를 자세히 살폈다. 특히 유현의 눈은 소년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손을 단련했다? 권? 수? 지? 으음. 뭐지?'
  소년의 손은 보통 사람의 피부색이 아닌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손을 집중적으로 단련했다는 증거였다. 아마 웬만한 명검으로는 소년의 손에 상처를 입히기 힘들 것이다.
  소년을 자세히 살피던 유현이 그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지?"
  그 말에 소년이 은월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은안의 아이. 그 아이가 들고 있는 권황무제의 독문무공 월랑백권의 비급을 가지러 왔다."
  소년의 말에 유현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호오~ 그걸 알아?"
  유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러자 소년이 소리쳤다.
  "우리 사도문의 정보는 구파일방 따위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
  "흐음? 사도문?"
  유현이 살짝 감탄했다.
  사도문은 사파의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 힘 하나하나가 구파일방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소림사와 무당파와 맞먹었다. 그리고 다섯 개의 문파 중 사화문의 문주가 바로 사황성의 맹주인 검마였던 것이다. 사도문은 사천지방에 자리를 틀고 있었는데 아마 자신들을 잡으러 온 것 같았다.
  유현이 히죽 웃는다.
  "사도문 문주는 여자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소년이 움찔했다.
  "보아하니 사도문 문주의 독문무공을 익힌 것 같은데, 사도문은 대대로 여자를 문주로 삼는 게 관습이지."
  히죽!
  유현이 사악하게 웃는다.
  "너 사실 여자 아냐?"
  "이익! 이 녀석!"
  유현의 말에 소년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유현은 그런 소년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어대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보다 못한 화린이 한마디 했다.
  "사악해."
  "응? 뭐라고 했니, 화린아?"
  유현이 미소를 지으며 화린에게 물었다.
  "아, 아무 것도 아냐."
  어색하게 웃는 화린을 향해 한 번 더 진하게 웃어준 유현이 은월에게 말했다.
  "네가 뿌린 씨앗, 네가 처리해라."
  그 말에 은월이 앞으로 나갔다.
  "폭주는 하지 말고 저 녀석 제압해봐라."
  "알았어."
  은월이 앞으로 나서자 복면인들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복면인들을 저지한 소년이 앞으로 나섰다.
  "내 이름은 소현, 사도련의 소문주다."
  "은월."
  "내가 이기면 네가 가지고 있는 비급을 넘겨."
  그 말에 은월이 고개를 갸웃했다.
  "난 비급을 가지고 있지 않아."
  "뭐?"
  "유현이 내 비급을 가지고 있어."
  은월이 유현을 가리켰다. 소현이 은월의 손가락을 따라 유현을 바라봤다.
  "눈깔아, 날 볼 새 있으면 은월 녀석이나 똑바로 보지?"
  "크흑. 저 여자가! 헉!"
  유현을 향해 소리치려던 소현이 깜짝 놀랐다. 꽤 떨어져 있는 거리였는데 은월이 언제 왔는지 소현의 코앞에 나타나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쩡!
  내공이 실려 있는 듯 소현의 손바닥과 은월의 충돌로 인해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을 보고 유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로 비슷한 실력의 두 사람의 대결.
  어찌 재미있지 않으랴?
  그리고 두 사람 다 화경의 고수들!
  콰가가가가강!
  소년이 갑자기 손가락을 쫙 펼치더니 조금 구부렸다. 그리고 그대로 은월을 향해 휘둘렀다.
  '조법?'
  바로 조법이었다. 보통 조법이란 손톱 모양의 무기를 손에 달고 펼치는 것인데 소현이란 소년은 단단한 손을 이용해 무기같은 것이 필요 없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공격 변화에 은월이 당황해 했다.
  촤악!
  옷이 조금 뜯겨나가자 은월이 얼굴을 찌푸렸다.
  퍽!
  그리고 발을 휘둘렀다. 은월의 각법을 소현은 재빨리 팔뚝으로 막았다.
  은월과 소현이 거리를 벌렸다.
  뚜두두둑!
  소현이 손가락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
  잠시 소현을 바라보던 은월이 자세를 바꿨다.
  왼쪽 주먹을 얼굴까지 올리고, 오른쪽 주먹을 허벅지 부근까지 내리며,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민 다음 왼쪽 다리를 살짝 굽혔다.
  "참백랑권."
  초식명을 말함과 동시에 튀어나가는 은월!
  그와 동시에 은월의 주먹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소현에게 날아들었다. 소현은 재빨리 막았지만 갑자기 은월의 주먹에 패도적인 기운이 서림과 동시에 양손이 엄청난 파괴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가강!
  "크윽!"
  갑작스러운 공격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소현이 몇 방을 얻어맞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광혈조!"
  쾅!
  소현의 조법과 은월의 권법의 격돌.
  그 결과 승리는 은월의 것이었다.
  "크윽!"
  그대로 튕겨져 나가는 소현이었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를 위주로 보법을 이용해 공격해오는 은월을 보며 소현은 그가 권황무제와 같은 월랑백권을 익혔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월이 익힌 참월백랑권각은 권황무제의 월랑백권처럼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공이 아닌 패도적인 기운으로 모든 것을 파괴해 나가는 무공이었다.
  은월은 월랑백권과 참월백랑권각을 같이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몇 대 얻어맞은 소현이 은월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서서리 내공을 끌어올렸다.
  서서히 소현의 손에 생성되는 수강.
  손칼을 만든 소현의 수강을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헤~ 보랏빛 강기는 찾아보기 힘든데?'
  그것을 보며 감탄하는 유현이었다.
  은월 역시 소현의 행동에 대응하듯 강기를 끌어올렸다. 서서히 은월의 주먹에 은빛 권강이 생성되었다.
  다시 자세를 잡은 두 사람.
  쾅!
  그리고 다시 서로에게 달려들어 격돌했다.
  쾅! 쾅! 쾅!
  강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그 소리부터 달라졌다.
  콰가가가강!
  소현의 수강과 유현의 권강이 계속 격돌했다.
  그런 두 사람을 화린은 당황하며 바라보았다.
  "어, 언니 괜찮겠지?"
  "어, 둘 다 실력이 비슷비슷해.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는 이상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나른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곧 29명의 복면인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싸우게?"
  그 말과 함께 복면인들이 진득한 살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히죽 웃어준 유현이 말했다.
  "너에게 달려드는 것들은 알아서 처리하도록."
  "에엑!"
  "그럼."
  "꺅~ 언니!"
  화린은 유현의 무책임한 말에 유현을 부르짖었지만 유현은 무시하고 복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몇몇의 복면인들을 보며 화린이 어색하게 말했다.
  "하하, 아저씨들. 날씨 좋죠?"
  하지만 그런 화린의 말에도 복면인들은 대답이 없었다.
  "우리 평화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그 말과 동시에 복면인들은 진득한 살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후엥~"
  그런 그들을 보며 화린이 울먹이며 검을 뽑아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복면인들과 맞서가기 시작했다.
  '크윽. 나랑 비슷... 아니 나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이다!'
  소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앞의 자신 또래의 소년은 자신보다 강했다. 물론 그 차이가 조금밖에 나지 않으나 강한 것은 강한 것이었다.
  중원 무림 후기지수들 중에서 사도련 사람들은 늘 자신이 최고라고 했다. 자신 같은 귀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보다 더 강한 이가 눈앞에 있다.
  '절대 안 져!'
  속으로 다짐한 소현이 다시 초식을 이용해 은월을 공격했다.
  푸욱!
  유현이 빙긋 웃으며 안아를 상대방의 목에 집어넣었다. 그와 함께 자신의 등 뒤를 베어오는 이에게 뒤차기를 먹여줌고 동시에 검을 뽑아 다시 휘둘렀다. 완벽하게 복면인들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었다.
  챙!
  "얏!"
  화린은 순간 자신을 향해 내려찍어지는 검을 막았다. 그와 함께 검을 튕겨내고 상대를 베었다.
  화린의 검 선잔은 중원에서도 알려진 보검이다.
  주인이 사람을 베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사람의 살을 베지 않는 검, 이름에서 말해주듯이 착한(?) 검이었다. 반대로 주인이 살심을 품는다면 한없이 잔혹해지는 검, 그것이 바로 선잔이었다.
  지금 화린은 상대를 제압하고만 싶을 뿐 살기는 없기 때문에 선잔은 사람의 살을 베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화린의 어머니의 문파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검이었다.
  그 문파가 망하고 화린의 어머니인 월화가 유일하게 남은 문주의 제자였기에 빙월문의 세 자루의 보검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월화 자신이, 하나는 화린의 언니이자 유현의 쌍둥이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유월린에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화린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화린은 차근차근하게 자신에게 따라붙는 이들을 처리해 나갔다. 무공 경지는 몰라도 내공량은 거의 현경에 필적했다. 어떻게 저런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현이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자신을 따라왔던 사도문의 무사들은 모조리 쓰러져있었다.
  살아 있는 이라고 해봐야 고작 다섯.
  그들은 모두 화린이라는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던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무사들은 유현이라 불리는 여자에게 모두 당해버렸다.
  그렇게 당황해한 것이 소현의 큰 실수였다.
  퍼억!
  바로 은월의 무릎이 소현의 배를 강타한 것이었다.
  우당탕탕!
  소현은 그 상태로 바닥을 몇 바퀴 굴러야만 했다.
  "크윽."
  은월은 신음성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소현을 향해 다시 발을 내려찍었다.
  쿵!
  "커억!"
  소현은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크으으윽!"
  자신의 등에 발을 올린 은월을 보며 소현은 살기를 피웠다. 하지만 천근추의 수법을 쓰는지 엄청 무거운 은월의 발을 치우게 할 수 없었다.
  제압당한 소현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야~ 가까이서 보니깐 더 여자 같잖아?"
  유현의 염장질에 소현이 도끼눈이 되어 노려보았다. 유현은 그런 소현을 향해 킬킬킬 웃어주었지만 잠시 후 안색이 확 굳어버렸다.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이건?"
  유현의 중얼거림에 은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상당히 사이한 기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던 유현이 멈칫했다. 그리고 냉소했다.
  "혈교인가?"
  그 말에 은월과 화린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며 소현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혀, 혈교라고?"
  소현이 깜짝 놀라며 되묻자 그 물음에 유현이 말했다.
  "상당히 사이한 기운이야. 사파처럼 패도적이지 않아, 마교처럼 마기가 섞여 있는 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정파가 이런 기운을 뿌리고 다닐 리 없고. 결과는 하나뿐, 혈교다."
  그렇게 웃은 유현이 말했다.
  "보자. 오십 명? 호오~ 꽤 많은 숫자인데?"
  유현의 말에 소현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뭐야? 뭔데?"
  화린이 의아한 듯 묻자 유현이 말했다.
  "별 것 아니야. 쓰레기들이 몰려왔거든?"
  그렇게 말하는 유현의 눈을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유현의 눈을 보며 움찔하던 셋도 잠시 후 사이한 기운을 느꼈는지 몸을 떨었다.
  하지만 유현은 태연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유현이 히죽 웃으며 왼 손등을 살짝 문질렀다.
  그와 함께 빛이 번쩍하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것을 보고 화린이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그건 또 어디서 났어?"
  화린의 호들갑에 유현이 심드렁하에 답했다.
  "어디선가."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천마도의 도집을 벗겨냈다.
  그리고 보이는 아름다운 천마도의 도신.
  검붉은빛 도신을 가진 천마도는 기분 나쁜 색깔임에도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와~ 이번에는 어떤 적이야?
  천이 활발하게 말했다.
  천의 물음에 유현이 속으로 말했다.
  '혈교.'
  -에? 혈교라고 하면.
  '그래, 그 빌어먹을 곳을 말한다.'
  유현의 살기가 섞인 말에 천이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떠들어 봤자 신상에 안 좋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깨에 천마도를 걸친 유현이 말했다.
  "너희는 나서지 마라."
  그렇게 말한 유현이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천마도에 은빛 강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천마도를 휘두르는 유현!
  콰가가가가가강!
  "탄도강? 그것도 어마어마한 위력의."
  유현이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도강의 위력을 보며 소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유현이 날린 탄도강에 혈교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그대로 쓸려나갔다.
  피익!
  그와 동시에 숲속에서 엄청난 양의 암기들이 유현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부웅!
  도를 휘둘러 막아버리는 유현이었다.
  유현의 탄도강에 휩쓸린 이는 모두 이십 명 정도.
  그와 동시에 30명 정도의 혈교 무사들이 남아 있었다.
  특히 그중 다섯은 화경의 고수들이었다.
  "계집! 죽고 싶어 환장했는가?"
  그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노인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는 화경의 끝자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목소리에도 사이함이 묻어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노인을 보며 유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랄하고 앉았네."
  유현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노인.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그렇게 겁대가리 없이 행동하는 것이냐!"
  "누구긴 누구야? 혈교라는 쓰레기 단체들이 아닌가?"
  유현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혈교를 저딴 식으로 말하는 이가 어디 있을까?
  그것도 본인들 앞에서.
  "이 계집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유현의 욕설에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달려드는 혈교무사들.
  그들 역시 사도문과 마찬가지고 은월이 가지고 있는 비금을 노리고 찾아온 듯했다.
  이렇게 보면 혈교의 정보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무사들의 실력 역시 모두가 검기를 사용하는 고수들!
  하지만 유현은 태연했다.
  이 정도 전력이면 현경의 괴물들도 목숨이 간당간당할 판인데 말이다.
  유현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천마폭격!'
  콰가가가가강!
  자신이 알고 있는 초식 중에서 패도적인 것으로 수위를 다투는 초식인 천마폭격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다섯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고수들이 쓸려나갔다. 그나마 다른 이들이 피해서 그렇지 안 그랬다면 더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모두가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물론 은월과 화린은 제외였다.
  쾅!
  유현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천마도를 자신에게 소리 지른 노인에게 휘둘렀다.
  유현의 공격을 노인은 검으로 막았다.
  "쿨럭!"
  그대로 속이 진탕이 되어버린 듯 피를 흘렸다. 유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인의 배를 그대로 가격했다.
  퍼억!
  "커억!"
  한 번 더 피를 토하는 노인.
  그와 동시에 볼일 없다는 듯 유현이 노인에게서 떨어져 자신을 향해 검을 내지르는 화경의 고수들을 향해 천마도를 내질렀다.
  물론 그와 동시에 유현의 발이 노인의 머리를 가격했다.
  퍼억!
  그와 동시에 노인은 뇌수를 흘리며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머리가 그대로 터져버린 것이었다.
  유현은 다시 천마도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리고 하나의 초식을 더 사용했다.
  콰가가가강!
  도법답게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유현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짓는 혈굠사들이었다. 그리고 유현의 힘이 생각보다 더욱 대단한 것에 은월, 화린, 소현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천마도가 다시 화경의 고수의 몸속을 구경하고 나왔다.
  그는 그대로 허리가 양단되어 죽어버렸다.
  유현은 한 마리 악귀라도 된 듯 사람 한 명 한 명을 곱게 죽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면 먼저 간 15명의 무사들은 초식 한대만 맞았으니 엄청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최대한 잔혹하게 죽여 가는 유현의 눈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커억!"
  유현이 그 가는 손으로 한 무사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퍼억!
  그대로 움켜쥐었다. 그 작은 손에 잡힌 혈교무사의 머리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
  이미 제대로 서 있는 혈교무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이들이라고는 겨우 둘.
  유현이 히죽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런 유현을 지켜보며 눈을 질끈 감고 있던 화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 언니!"
  화린이 유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비켜."
  유현이 차갑게 화린에게 말했다.
  하지만 화린은 입을 꾹 다물고 유현을 노려볼 뿐이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자신의 복수를 방해하는 이들은 베어버렸을 유현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전생이라고 하나 자신에게 핏줄이어서 그런 것일까?
  잠시 화린을 바라보던 유현.
  둘의 대치 상태가 계속되자 은월이 지풍을 날려 쓰러져 있는 혈교 무사 둘의 숨을 끊었다.
  그도 저런 유현의 모습은 보기 싫은 듯했다.
  그런 은월을 바라보던 유현이 잠시 뒤 말했다.
  "피를 씻고 오지."
  그렇게 말한 유현이 경공술을 이용해 사라졌다.
  화린은 혹시나 유현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뒤를 따라갔다. 은월 역시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소현의 혈도를 짚어 제압한 다음 소현 짊어 매고 경공술을 이용하여 일행을 쫒아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