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9

황성으로 가는 길
  “유현 언니, 저것 좀 사줘~.”
  “왜 나한테 그래? 그 가건인가 뭔가 하는 니 부하 놈한테나 사달라고 그래!”
  “히잉~ 가건은 저런 거 안 사준단 말이야!”
  “그런 먹지 마!”
  “나 당과 먹어보고 싶어!”
  “언니, 그러지 말고 하나 사주는 게 어때?”
  “정 그렇다면 네가 사주지 그러냐?”
  “난 돈 없잖아.”
  “넌 돈도 없이 무슨 배짱으로 가출했냐?”
  “앗! 나도 처음에 돈이 있었다고!”
  “쥐꼬리만 하게 있었겠지.”
  “.......”
  결국 말싸움에서 진 화린이 침묵했다. 그러자 그런 화란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본 유현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말 나온 김에 묻자. 도대체 뭔 생각으로 가출을 했냐?”
  그 말에도 화린은 반박하지 못하고 유현의 눈치만 살폈다. 아마 유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집으로 돌아가 엄청 혼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한 무표정한 여인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말을 걸었다. 겨울이 거의 끝나간다지만 그래도 아직 때는 겨울이다. 그런데 여인의 옷차림은 그런 날씨에 나다니는 이의 옷차림이라기엔 너무도 괴리감이 있는 옷차림이었다.
  게다가 다리를 훠니 드러내 놓은 파격적인 옷차림이라니!
  볼썽사나운 건 둘째 치고 얼어 죽지 않은 게 이상한 옷차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며 거지는 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에게 무슨 볼일인고?”
  거지노인의 말에 여인이 말했다.
  “혹시 저와 같은 옷차림의 여인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그 말에 거지노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걸 거지인 내가 어떻게 아나?”
  “저는 개방 장로님의 신분인 분에게 물었습니다만.......”
  여인의 말에 거지노인의 눈이 빛난다.
  “호오, 난 개방 사람이 아닌데?”
  “거지 중에서도 그렇게 고강한 무공을 익힌 분이라면 개방의 높으신 분 아닙니까?”
  “크흠, 만만치 않구만. 개방 정보는 비싸다네.”
  더는 발뺌할 수 없자 바로 태도가 돌변하는 거지노인이다. 그런 거지노인을 바라보던 여인이 자신의 허리에 달고 있던 검을 거지노인에게 보여주었다.
  “잉? 이건 뭔가? 응?”
  갑자기 불쑥 내민 검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던 거지노인의 얼굴이 굳었다.
  “한빙.......”
  거지노인의 얼굴에는 경악감이 가득했다.
  “제가 찾는 이는 선잔의 주인이에요.”
  “빙검 월화와는 무슨 관계인고?”
  “어머니입니다.”
  “그렇다면 신권 유강월은?”
  “아버지 되십니다.”
  “크흠! 거물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린 거지노인이 다시 묻는다.
  “그래, 그들의 딸이 무림에 나온 것인가?”
  “아니요, 동생만 찾고 다시 돌아갈 생각입니다.
  “동생?”
  “예, 가출했죠.”
  그 말에 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거지노인이었다.
  “하긴... 유강월도 엉뚱한 면이 많았지. 일단 너는 월화를 닮은 듯하구나.”
  그렇게 말한 거지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기다려라. 내 너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여자에 대한 정보를 한번 찾아보지. 그 두 사람에게는 빚이 있으니 개방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고맙습니다.”
  “흐음... 무림이 한바탕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군.”
  황실 비무대회가 열리는 시기는 봄이다.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황실 비무대회는 무림은 물론 황실의 여러 고수들도 참여한다.
  황실이 무림보다 무공이 떨어지는 것은 이제는 그다지 비밀도 아닌 사실이지만 나이 제한이 15세부터 40세이기 때문에 비무대회에서는 그렇게 큰 무공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무공의 경지가 제대로 판가름 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40세 이상부터이기 태문이다.
  흔히들 이 나이가 돼서 귀재라면 화경의 경지에 든다고들 한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천재들은 20세 전에도 화경의 경지를 이루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그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물론 그 드문 일이 현 무림에서는 엄청 많이 일어난 상태 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화 공주는 황궁으로 돌아가야 했다. 약속한 여행기간이 황실 비무대회 전까지였으니 말이다. 그것이 오라비인 황태자 후소와의 약속이었다.
  여화 공주는 북경으로 향했다.
  “언니, 언니도 비무대회 참가할 거야?”
  여화 공주가 눈을 반짝이며 유현에게 물었다.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다.
  “휘안이 참여한다잖아? 나도 한번 해보려고.”
  “거긴 강자들이 많이 나와. 와, 기다려진다.”
  그런 여화 공주를 보며 화린이 말해다.
  “사실 언니, 휘안 오빠, 유한오빠, 소현, 은월 전부가 황실 비무대회에 참여하려고 해요.”
  “에? 그럼 오라버니한테 초대장 많이 써달라고 해야겠네?”
  그들의 무공 실력이라면 금의위 무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났다.
  여행 도중 살짝 드러냈던 실력만으로도 금의위 무사들을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무튼 유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소현이는 사도문의 소문주니까 초대장은 필요 없을 거다. 이미 참가신청이 되어 있을 거야.”
  “엑! 소현이 사도문 소문주였어?”
  유현의 말에 여화 공주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황실에 대한 예의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여화 공주의 말투에 유현이 피식 웃었다. 저런 면에선 여화 공주가 마음에 드는 유현이었다.
  “어.”
  “그런데 왜 정파인 남궁세가에.......”
  “내가 끌고 왔거든.”
  “끌고 왔다고?”
  의아한 듯 묻는 여화 공주를 보며 화린이 차근차근 소현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역시 언니는 대단해.”
  황족인 자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유현은 정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감탄하던 여화 공주가 유현의 가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 언니. 그러고 보니 나 언니 맨얼굴은 한 번도 못 봤다?”
  그 말에 화린도 말했다.
  “나도.”
  “엑! 화린 언니도?”
  “예, 저도 유현 언니의 맨얼굴은 한 번도 못봤어요.”
  “여화 공주는 화린에게 편하게 대하지만 화린은 역시 여화 공주의 신분 때문에 존대를 하는 형편이었다.
  화린의 말에 여화 공주가 말했다.
  “화린 언니 얼굴도 못 봤어, 난.”
  “에? 그, 그런가요?”
  “보여줘. 응?”
  여화 공주가 조르며 볼을 부풀렸다. 그런 여화 공주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 화린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자신의 얼굴이 중원에 드러나는 것을 지독하게 꺼리는 유현이었다. 저번에도 얼굴을 보려 했다가 지독하게 혼났던 기억이 있는 화린이었다.
  그랬기에 화린은 유현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한 번만 보여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화린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을 벗었다. 그런 화린을 기대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여화 공주는 곧 보이는 얼굴에 침묵했다.
  여화 공주의 표정은 마치 혼이 나간 듯 멍할 뿐이었다.
  “저기... 화린 언니?”
  “네?”
  여화 공주가 멍하니 화린을 부르자 화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화린에게 여화 공주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그런 예쁜 얼굴을 왜 가면으로 가리고 다녀?”
  “언니가 싫어해서요.”
  그렇게 말한 화린이 힐끔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현은 그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그런 얼굴을 드러내놓고 무림을 돌아다니면 골치 아파진다고.”
  그 말에 화린이 되물었다.
  “왜 골치 아파지는데?”
  “이런 예쁜 얼굴을 가리고 다니게 만들다니, 언니 나빠!”
  “니들 내 손에 뒈지고 싶냐?”
  “.......”
  “.......”
  그 말에 침묵하는 두 사람. 그동안 많이 친해졌다고는 해도 유현의 차가운 눈을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굳어버리는 그들이었다.
  “내가 그렇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렇게만 말한 유현은 더 말하기 싫은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야, 유현.”
  그때 밖에서 유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른 이의 목소리를 알아듣고서 의아한 표정을 지은 유현이 화린을 보며 재빨리 말했다.
  “야, 휘안이 볼라. 가면 써.”
  “어, 응.”
  화린에 대해서는 아직 휘안이나 유한, 안영에게 말하지 않은 상태인 유현이었다. 화린이 가면을 쓰자 그제야 유현이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
  “뭐야?”
  “산적이다.”
  “그냥 쫓아.”
  “산적인데... 혈교가 산적 노릇을 한다?”
  “혈교?”
  휘안의 말에 유현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유현은 곧바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대략 100명 정도의 산적 무리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겉모습만 산적일 뿐이지, 하나 같이 모두 사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몇몇은 사기까지 풍기고 있는 것을 보니 강시인 듯 보였다.
  유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그들과 금의위들과 남궁세가 무사들이 대치하고 있을때였다.
  “안녕하세요?”
  혈교 측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는 절대 유현이나 화린의 미모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차림을 보아하니.......
  “남자인가?”
  “예! 전 남자죠.”
  유현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그 청년은 당황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이는 27세, 이름은 혈시현이라고 합니다. 거기 휘안 씨와는 동갑이죠.”
  “뭐, 그런 건 상관없고.”
  유현이 검을 뽑았다.
  “내 눈앞에 혈교가 나타났다는 건 어서 죽여 달라고 나타난 것이겠지?”
  “흐응... 꽤나 성격이 급하신 분이시군요.”
  유현을 향해 한번 상큼하게 웃어 보인 시현이 휘안을 보며 말했다.
  “당신과는 지난번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이전에 당신의 귀한 축하 잔치에서 검을 섞어 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천마교 소교주 사무연 씨에게 양보 했었죠.”
  “역시 넌 저번에 무연과 같이 붙어 있던 고수군.”
  “예, 혈천교의 소교주랍니다.”
  그 말에 남궁세가는 물론이고 금의위 무사들까지 긴장하며 검을 뽑았다. 그들이 혈교의 무사들이란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피의 교리를 따르며 세상을 피로 정화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혈교다. 그런 이유로 황실에서도 혈교를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단체로 지정하고 경계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나설 틈은 없었다. 혈교라는 시현의 말에 바로 그럴 공격해 들어간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유현이었다.
  유현이 시현에게 검을 겨눔과 동시에 그녀의 검에서 일직선으로 무형강기가 시현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것을 느끼고 흠칫한 시현이 그대로 검을 뽑아 막았다.
  쾅!
  폭음과 함께 산적 행세를 한 혈교 무사들이 일제히 날카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향해 검을 슬쩍 들어 보이는 시현.
  시현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하하, 참 당찬 아가씨군요.”
  피가 흘러도 별 상관없다는 듯 웃는 시현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조금 전과 달리 차가워진 눈으로 말했다.
  “정파에는 인물이 많이 있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설마하니 휘안 당신과 동급의 고수가 더 있다니 정말 놀랍군요.”
  그 말에 유현이 말했다.
  “난 휘안과 친분이 있을 뿐이지 정파인은 아니야.”
  유현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그런 유현을 보며 시현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저희 혈천교에 들어오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감히 유현에게 혈천교 가입을 권유하는 시현. 당연히 시현을 비웃으며 유현이 말했다.
  “그딴 시덥잖은 곳에 가입해서 뭐하게? 그리고 그 혈천교를 무림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 내 최종 목적이다.”
  “흐음... 본교에 악감정이 상당하신 모양이군요.”
  “본거지만 알아낸다면 바로 쳐들어갈 정도로 악감정이 쌓인 상태지.”
  물론 혈교의 위치가 알려 진다면 그 날로 혈교는 초토화가 될 것이다. 유현은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내기만 하면 주저하지 않고 날아가 바로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도 한 방 사용해줄 위인이니 말이다.
  유현의 말에 시현이 호기심이 동한 어조로 대꾸했다.
  “참 재미있는 분이군요.”
  그렇게 말한 시현이 휘안을 보며 말했다.
  “일단 제가 직접 이곳에 온 이유는 휘안 당신에게 볼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혈교의 소교주가 나에겐 무슨 볼일이지?”
  휘안이 의아해 하며 묻자 시현이 대답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검을 섞어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럼 네 목이 떨어질 텐데?”
  시현의 말에 휘안이 냉소했다.
  “그저 비무 형식일 뿐입니다.”
  “흐음... 어떻게 할까?”
  시현의 말에 휘안은 고민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 인물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휘안과 한판 붙고 싶다면 내가 상대해주지.”
  유현이 히죽 웃으며 시현 앞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시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와 싸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아아... 그런 생각 싹 가시게 해주지.”
  시현의 말에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현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에 나타난 곳은
  바로 시현의 뒤!
  시현은 그런 유현의 속도에 경악하며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검을 피했다. 무시무시한 예기가 서려 있는 검술이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유현의 공격. 하지만 시현 역시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 역시 현경의 고수인 것이다.
  챙!
  유현의 검을 피하던 시현이 유현의 빈틈을 노려 그대로 검을 휘들렀다. 그 검을 막은 유현은 뒤로 물러서 시현과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유현과 시현이 한바탕 붙고 있자, 다른 이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이봐, 거기 애송이 둘! 위험해도 안 구해준다.”
  “애송이라고 하지 마!”
  소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휘안들도 그대로 100명의 혈교 무사들에게 돌격했다.
  공주를 호위하는 이들은 총 50명. 그 상대인 100명의 혈교무사들은 한 명, 한 명이 금의위 무사들급이었다. 하지만 호위 무사들 측에도 휘안, 소현, 은월이라는 고수가 있었기에 그들은 숫자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호각을 이루며 싸우고 있었다.
  화린 또한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
  “화린 소저는 공주마마를 호위해주십시오.”
  하지만 그녀를 가로막고 그렇게 부탁하는 가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주의 앞을 막아서게 된 화린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쾅!
  “이크크!”
  그 와중에도 시현과 유현의 싸움은 점점 격해져만 갔다.
  유현의 은빛 강기를 피한 시현이 유현의 가면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호기롭게 찔러 들어간 시현의 검은 그대로 유현의 손에 막히고 말았다.
  쾅!
  검강이 실려 있는 검이었지만 유현의 손에 역시 은빛 권강이 실려 있었다. 현경의 경지에 든 두 사람의 싸움인지라 어떤 식으로든 쉽게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둘 다 실력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화린쪽에도 몇몇 혈교 무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번 붙기 시작하니 그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는데, 약점을 노리겠다는 식으로 보였다.
  그러한 사정으로 다급해진 것은 화린이었다.
  챙!
  “으윽!”
  화린은 자신을 향해 내질러지는 검을 다급하게 막았다.
  “이얏!”
  “끄악!”
  특유의 괴력과 어마어마한 내공 덕분에 잘 버티고 있었지만 위태해 보이는 것은 djWJf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린은 사람을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것이 이 싸움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위태위태하게 버티는 화린을 본 은월과 소현이 나섰다.
  “화린!”
  “비켜! 이놈들아!”
  같은 나이인지라 그런지 그간 알게 모르게 많이 친해졌던 세 사람이었다.
  은월과 소현은 자신의 앞일을 막아서는 혈교 무사들을 처리하며 화린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화경의 경지에 들었다고는 하나 검기를 사용하는 무사들을 상대 하는건 상당히 벅찬 일이었다.
  그렇게 화린에게 갈 듯 말 듯 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눈앞에 화린을 두고도 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일이 터졌다.
  “화린!”
  “화린 언니!”
  한순간 은월이 찢어질 듯한 소리로 화린을 불렀다. 여화 공주 역시 비명을 질렀다. 화린의 전방위에서 노려지는 검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이대로 있다간 화린은 갈기갈기 찢겨 죽을 터였다.
  어느새 화린에게 점점 모여들던 혈교 무사들의 숫자 때문에 화린 역시 버티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었다. 소현 역시 굳은 얼굴로 위험에 처한 화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처음에는 두세 명씩 모여드는 혈교 무사들과 어느 정도 버티며 균형을 이루었던 화린. 하지만 혈교 무사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점점 상대하기 벅차갔다.
  결국 전방위로 검이 찔러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화린은 그대로 눈을 꼭 감았다. 여기서 이대로 죽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두가 안타까워하고만 있을 때였다.
  촤악!
  누군가 화란을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화린을 공격하던 일곱 명의 혈교 무사들이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져 죽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화린을 보호한 이를 보았다. 그곳에는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유현이 화린을 안고 있었다.

  유현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몰라 쓴웃음이 나와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을 낳아준 빌어먹을 작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동생인 화린이와 같이 여행을 한 것이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녀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함께 자란 적은 없지만 화린 EH한 유현에게 있어 소중한 이가 되었던 것이다.
  “화린아!”
  “화린 언니!”
  어느 순간 은월과 여화 공주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슬쩍 곁눈으로 보았을 때도 화린은 위험해 보였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해 보였다. 위험에 처하기 전에 누군가 화린을 보호해 주리라 생각하고 유현은 자신의 싸움에 집중했다.
  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현경의 고수 앞에서 뒤돌아서서 화린이를 도와주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일행에는 제법 쓸 만한 재주를 가진 이가 많으니 위험에 처하기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구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위험의 순간이 유현의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소현이나 은월이 다가가기도 전에 놈들이 우르르 화린에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유현은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서서 화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시현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정이 많은 분이군요, 이런 상황에서 등을 보이다니.......”
  푸욱!
  시현의 검이 유현의 옆구리를 가른다. 동시에 타는 듯한 고통이 옆구리에서부터 시작해서 퍼져나갔다. 이를 악문 유현이 죽일 듯한 눈으로 시현을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웃고 있는 시현이 보였다.
  그런 시현의 얼굴은 다음 순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쾅!
  화린의 손바닥에서 생성된 화구가 그대로 시현에게 날아갔다. 파이어볼이었다. 폭음과 함께 그대로 뒤로 밀려나버리는 시현. 그러나 사방이 아수라장이기에 그 소리에 이목을 집중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튼 날아가버린 시현을 뒤로 하고 옆구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화린에게 다가간 유현은 검에 베일 위험에 처한 화린을 품으로 끌어당긴 다음 그대로 천마환검을 사용해 혈교 무사 일곱을 도륙해 버렸다.
  화린은 상당히 놀란 듯 유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젠장!”
  “유현 님!”
  “누나!”
  옆구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유현을 보며 휘안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혈교 무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런 휘안은 지금까지와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안영과 유한도 다급하게 유현을 불렀다. 하지만 유현은 비틀거릴 뿐이었다.
  검강에 당한 상처다. 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현경의 고수 앞에서 등을 보였다는 것은 목숨을 내걸었다 할 만큼 위험한 행위였던 것이다.
  게다가 설마하니 저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유현이 위험을 감수하며 달려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세 사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들이 구하러 갈 것을 하고 후회하는 세 사람이었다.
  비틀거리는 유현을 다급하게 부축하는 화린. 그 과정에서 너무 당혹한 나머지 화린의 가면이 벗겨져 버렸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휘안, 안영, 유한은 물로 파이어 볼에 얻어맞고 뻗었다가 정신을 차렸던 시현도 굳어버렸다.
  유현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화린의 모습에 경악한 것이었다.
  “이 멍청아... 가면 써.”
  그 와중에도 화린의 부축을 받으며 가면을 집어든 유현이 화린의 얼굴에 가면을 씌워주었다.
  “지금 가면이 문제야? 언니가 다쳤는데!”
  “이 정도로 안 죽어.”
  그렇게 말한 유현이었지만 지금 유현의 옷은 온통 피로 물든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화란의 옷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현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어느새 화린의 옷까지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화린은 다급히 유현의 상처 부위를 지혈해주었다.
  “괜찮아?”
  “죽을 정도 아니지?”
  그때 은월과 소현이 달려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너희덜이 덜 떨어져서 내가 이렇게 다쳤잖아.”
  유현의 퉁명스러운 말에 소현과 은월이 입을 다물었다. 머리로는 반박하고 싶은데 도우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멍청하게 있지 말고 싸워!”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버럭 소리쳤다.
  유현의 외침에 소현과 은월이 가장 먼저 그대로 혈교 무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둘의 움직임은 조금 전보다 더욱더 사나워져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유현이 훌쩍거리는 화린을 보며 한숨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야, 울지 마라.”
  “그, 그치만... 나 때문에 언니가.......”
  화린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화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그게 무어든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 지금도 네가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내가 다친 것은 좀 짜증나긴 하지만.”
  유현의 말에 화린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현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런 화린을 보며 피식 웃은 유현은 그 사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시현의 기척을 느끼며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시현의 목소리에 유현에게 안겨 있던 화린도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화린을 멍하게 바라보던 시현이 묻는다.
  “그녀는... 천마교의 소교주 하유현과 무슨 관계입니까?"
  멍하니 묻는 시현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글세.......”
  “어째서 그와 같은.......”
  “이봐.”
  시현의 말을 유현이 끊었다. 유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 닥치고 꺼져.“
  그렇게 말한 유현의 손에서 무시무시한 빙기의 강기가 생성되었다. 그 빙기의 강기는 차가운 성질 그대로 악귀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그것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움찔 한 걸음 물러선 시현. 그는 그 강기로 만들어진 악귀의 형상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천마, 예전에 천마가 사용했던 천마를 보고 완성한 진정한 천마의 시전이었다.
  쾅! 콰가가가가가강!
  악귀의 현상이 시현을 덮침과 동시에 시현이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쿨럭! 쿨럭! 쿨럭!”
  다시 한 번 날아가 버린 시현의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꾸역 꾸역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시현을 본 혈교 무사들이 놀라 시현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빙기 때문에 동상까지 추가로 입은 듯 보이는 시현. 굳어버린 혈교 무사들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시현을 부축하고 그대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공주의 호위무사들이 그런 그들을 쫓으려는 순간!
  “추격하지마!”
  휘안의 날카로운 외침에 그들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며 그 자리에 섰다. 휘안은 별다른 말없이 재빨리 유현에게로 달려갔다.
  “야, 괜찮냐?”
  “아아... 그럭저럭.”
  휘안의 말에 유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어 보이며 말했다. 휘안이 한숨을 푹 쉬며 유현의 상처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리.......”
  “내가 하지.”
  그가 치료마법을 시전하려 하자 유현이 휘안의 손을 밀어 치우며 말했다.
  “휴... 알았다. 네가 해라.”
  유현의 a라에 한숨을 푹 쉰 휘안이 화린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정체가 뭐지?”
  날카로운 휘안의 시선이 화린에게 향했다. 그에게 있어 화린의 존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중원 무림에 유현과 똑같은 외무를 가진 이가 있다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휘안의 시선을 받은 화란이 움찔했다.
  “동생.”
  :하! 동생?“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짧게 대꾸하는 유현의 말에 휘안이 코웃음을 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일이다. 신경 쓰지 마라.”
  그 말에 슬쩍 얼굴을 찌푸린 휘안이 말했다.
  “신경은 안 쓰겠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말해줘야겠어.”
  그렇게 말하는 휘안의 목소리에는 거절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무공수련
  유현은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닥불 주위로는 휘안, 유한, 안영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이어진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유한이었다.
  “그러니까... 저 여자애가 누나의 전생인 하유현의 친동생이란 말이야?”
  “아마도.”
  “이곳 나이로 치면 누나보다 10살 적고?”
  “어.”
  “그렇다면.......”
  “하유현의 부모는 살아있다 이 말이지.”
  유현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런 유현의 말에 안영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거... 정말 뒤통수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군요.”
  그렇게 유현을 제외한 모두가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휘안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다치면서까지 화린이를 구해준 이유는 뭐냐?”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묻는 휘안. 그리 묻는 게 당연했다. 그가 아닌 유현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휘안을 향해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이라도 든 모양이다.”
  “엥?”
  “뭐라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유현의 그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현의 입에서 ‘정이 들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모두가 멍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자 그런 그들을 hs 유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냐? 그 표정들은?”
  유현의 말에 휘안이 한숨을 쉬듯 대꾸했다.
  “아니, 그냥 좀 너랑 안 어울리는 말이라서.”
  “뭐가?”
  “아니, 그런 게 있다.”
  휘안의 말에 슬쩍 불쾌한 표정을 지은 유현이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는지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잠이나 자자.”
  유현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흰 안 자냐?”
  “아, 우린 이야기 좀 하다가 잘게. 먼저 자.”
  유현의 말에 휘안이 대답했다. 흥, 하고 콧방귀를 낀 유현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근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휘안들은 그런 유현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언니. 나 수련시켜줘.”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유현은 또다시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을 향해 수련을 시켜달라는 화린 때문이었다.
  “뭐 잘못 먹었냐?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평소에 유현이 화란을 보며 자주 하던 말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강한 내공을 가졌으면서도 수련을 하지 않냐?’ 였다. 자신이 보기에는 화린은 수련만 하면 능히 화경의 경지에 올라 설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린은 왜인지 싫다며 수련을 거의 하지 않았다. 굳이 싫다는 화린의 일에 일부러 간섭해며 해라 마라 하는 것도 유현의 성격상 맞지 않았기에 그런 화린을 가만히 내버려 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화린이 자신에게 수련을 시켜 달라고 하는 것이니 조금 당황스러운 유현이었다.
  아무튼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나 사실 나 정도면 무림에서는 목숨쯤은 부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위험해지면 도망가면 되고. 그리고 내가 언니 같은 고수와 붙을 일도 거의 없을 거고.......”
  확실히 그렇다. 화린의 내공이라면 어지간한 상대라면 이기는 것은 힘들지라도 마음먹고 도망간다면 잡을 수 있는 이는 몇 없을 것이다.
  말을 멈추고 유현을 잠시 바라보던 화린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느꼈어. 나 짐이 되는 것 같아. 일행에게 짐이 되는 것은 싫어. 어제도 나 때문에 전투에 지장을 주었고, 또... 나 때문에 언니도 다쳤잖아.”
  고개를 푹 숙이는 화린. 그런 화린을 바라보던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기특한 생각을 했네.”
  그렇게 말한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수련시켜주지.”
  그 말에 화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 각오 단단히 하라고.”
  “응.”
  그렇게 하린의 무공수련이 시작되었다.
  “자, 일단 네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서 비무를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에? 언니랑?”
  “아니, 나랑은 아니야, 네 상대는 바로.......”
  유현이 싱긋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야.”
  그곳에는 은안을 가진 한 소년이 있었다. 바로 은월이었다. 갑자기 유현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은월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됐다. 일단 일루 와봐.”
  유현의 부름에 의아한 표정으로 유현에게 다가가는 은월.
  “이제부터 넌 화린이랑 비무를 좀 해야겠다.”
  “화린이와... 비무?”
  유현의 말에 은월이 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으음... 알았어.”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본 유현이 으름장을 놓았다.
  “아, 대충대충 하면 나한테 죽는다.”
  “그럼 다칠지도 모르는데?”
  “치료해주면 그만이야.”
  그 말에 은월이 조금 전과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화린의 앞에 선다.
  “은월과 한번 비무를 해봐”
  “응.”
  유현의 말에 화린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검을 뽑아 들고 은월 앞에 섰다. 은월 역시 주먹을 들어 올리고 화린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침을 준비하던 모두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야?”
  소현 역시 좀 놀란 표정으로 유현 옆에 다가왔다.
  “아아, 두 사람이 비무를 할 거다.”
  “갑자기 왜.......”
  “아아... 그런 게 있어. 보기나 해라.”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모으며 화린이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휘익!
  화린은 그대로 은월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화린을 본 은월이 자세를 낮추고 얕은 수로 찔러 들어오는 화린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은월이 화린의 검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잔영이 일어나며 은월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의외의 공격에 놀란 은월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화린을 압박해 들어가는 은월의 주먹.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망설임 없이 은월의 주먹에 화린이 놀라서 그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재빨리 은월과 거리를 벌렸다.
  가까이 붙을수록 유리한 것은 은월이었다. 검술보다는 권각술이 가까이 붙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거리를 벌리는 것은 화린이 유리했다.
  거리를 벌린 채 다시 서로를 경계하는 두 사람. 그렇게 잠시 서로를 경계하던 두 사람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화린이었다. 그런데 화린의 이번 공격은 상당히 희한했다.
  쾅!
  그녀는 검으로 옆에 있던 돌을 내려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화린의 행동에 당혹해 하는 은월.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화린의 행동에는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은월뿐만 아니라 모두들 그 황당한 공격에 굳어버렸다.
  카가가가강!
  돌을 내려침과 동시에 튀어 오른 돌덩어리들을 그대로 은월에게 날려버리는 화린이었다. 화린의 무시무시한 괴력에 의해서인지 그 돌덩이 하나하나는 모두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고있었다.
  “저런 어이없는.......”
  소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소현과 다르게 유현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발한 공격 방식인데? 나도 한번 써 봐야지.”
  그렇게 태평하게 말하는 유현과 다르게 은월은 거의 죽을 맛이었다. 설마하니 화린이 이런 공격을 가해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 하나하나에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겨 있으니... 막을 때마다 손이 저릿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공격이 끝나고 막 화린에게 공격을 가하려고 할 때였다. 은월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화린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뒤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쾅!
  그런 화린의 검을 다급하게 막은 은월. 그리고 그런 은월의 방어에 화린이 휘청거렸다. 그와 함께 은월이 화린을 공격하려고 할 때였다.
  “그만”
  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비무를 하던 두 사람이 멈칫했다.
  “수고했어, 특히 화린은 기대 이상이었어.”
  “헤헤헤.......”
  유현의 칭찬에 화린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지만 그대로 갔으면 졌어. 알고 있지?”
  “어? 응.......”
  유현의 말에 화린이 조금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목표는 지금 저 상태의 은월과 싸워 비기지 않을 정도다.”
  “에엑!”
  그 말에 화린이 경악하며 외쳤다. 은월 역시 상당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가능해!”
  화린이 소리쳤다.
  “불가능은 없어, 화린이 넌 내공만으로 따지면 화경의 절정급의 내공을 가지고 있어.”
  “그, 그렇지만!”
  “각오하고 수련에 임한다고 하지 않았어?”
  “.......”
  유현의 차분한 대꾸에 화린이 입을 다물었다.
  “난 불가능한 일은 시키지 않아.”
  유현이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수련을 어떻게 시키는지는 유한한테 물어봐라.”
  그렇게 말한 유현은 어디론가로 횡 하니 사라졌다.
  “에? 누나가 어떻게 수련을 시키는지 궁금하다고?”
  유한이 자신에게 와서 뜬금없는 것을 묻는 화린을 보며 되물었다. 그런 유한을 보며 화린은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화린의 근처에 있던 은월과 소현 역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 일단 누나의 수련 효과는 확실하지. 난 너희 나이 때 반년 정도 만에 검기를 겨우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 검강까지도 사용하게 되었으니.”
  “헉!”
  “그게 말이 돼?”
  “믿기지 않는데......."
  유한의 말에 셋이 경악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한이 피식 웃었다.
  “그만큼 누나의 수련이 혹독하다는 거야.”
  “어떤 수련이기에.......”
  “일단 환영을 보여주는 진법에 넣어버려.”
  “엥?”
  “그리고 거기서 거의 죽을 만큼 실전을 쌓은 다음 누나랑 비무를 하지. 거기서 난 거의 백 번 넘게 날아갔어. 그리고 또 다시 진법에 넣어버리고.......”
  유한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아주 실감나게 유현의 수련방법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진법 안에서 있었던 일까지 생생하게 재현하는 유한인지라 그 지옥수련 방법을 들으며 화린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다짐했다고 하나... 듣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저 수련을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분명한 건 수련하다 죽을 일은 없다는 거야.”
  마지막 말을 한 유한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운을 빌게.”
  “그렇게 말한 유한이 유유히 사라졌다.
  “후엥~ 난 죽었다.”
  화린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한쪽에서 그런 화린과 다르게 은월과 소현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웅!
  진법이 발동한다.
  바로 유한(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무시무시한 진법인 것이다. 그리고 진법의 발동을 멍하니 지켜보는 화린.
  “유한에게 대충 설명은 들었겠지? 이 진법은 유한의 설명과 똑같은 성능을 가진 진법이야. 물론 안에 어마어마한 고수들도 득실득실하지.”
  “.......”
  유현의 말에 화린이 침묵한다.
  “뭐, 위험해지면 내가 구해줄 테니까 걱정 마.”
  그 말에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은 화린. 그렇게 유현이 진법을 조율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갈고 할 때였다.
  “잠깐!”
  “우리도 그 진법에 한번 들어가 볼래.”
  은월과 소현이 다가와 말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흐음... 안 들어가는 게 몸에 좋을 텐데?”
  “우리도 수련이 필요하다고!”
  은월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소현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유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수련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하니. 좋아, 들어가.”
  “나 혼자 들어가기 무서웠는데! 잘됬다.”
  화린 역시 같이 들어갈 이들이 생겨서 더욱 자신감이 붙은 듯 말했다.
  “자, 그럼 내가 들어간 뒤 좀 있다가 셋이 동시에 들어와라.”
  유현의 말에 셋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 진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것이 좋다고 유한은 미리 말하지 않았다. 유한은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고만 말했던 것이다.
  만약에 루이스와 아레인이 여기에 있었다면 절대 버틸 만한 곳이 아니라고 피를 토하며 외쳤을 것이다. 유한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마황자이기 때문이었다.
  화린, 은월, 소현의 수련은 아침부터 점심까지 계속되었다.
  어제 갑작스러운 혈교의 습격에 입은 피해를 어느 정도 수습하기 위해 시간이 조금 걸렸기에 출발이 늦어졌다.
  습격 장소와 멀리 떨어진 후 위급한 환자들부터 차근차근 치료해 나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치료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치료마법을 사용한다면 아마 무림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 말 것이다.
  빛이 번쩍 하면 상처가 다 나아 버린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중원 무림에서는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치료마법이 나타난다면 아마 신의 능력이라 떠들어 댈 것이다.
  한순간에 무림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일만큼은 영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현 역시 그냥 상처를 지혈 하고 금창약을 바르고 붕대만 감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 후 출발할 때가 되자 유현이 진법을 해제시켰다.
  그와 함께 탈진 직전인 세 사람이 나타났다.
  “으윽! 이게 뭐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수준이야!”
  “으으... 지옥이었어.......”
  “죽여도, 죽여도.......”
  세 사람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핀 휘안이 말했다.
  “쯧, 다시 이 지옥 훈련을 보게 될 줄이야... 나도 다시 동참해야 하나?”
  “이번에는 나 혼자서 할 거야.”
  “그래?”
  그렇게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뻗어 있던 세 사람도 그 사이 빨리 정신을 차리고 이동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진법 수련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현과의 비모였다.
 
  여화 공주와 호위대는 제법 큰 마을에 들려 최고급 객점에 짐을 풀었다. 그들은 안전 문제도 있고 하여 전각 하나를 전세 내외 쉬기로 했다.
  그런데 그 전각 앞에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펼쳐지고 있었으니.......
  “자, 셋 중 아무나 덤벼라.”
  유현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언니, 아직 상처가.......”
  “아아, 이 정도 상처는 있건 없건 너희 상대 하는 데는 지장 없어.”
  그런 유현을 보고 소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리하지 말지?”
  “너부터 덤빌래?”
  유현의 말에 입을 다문 소현. 그런 소현을 바라보며 유현이 말했다.
  “너희는 착각을 하나 하고 있어.”
  뜬금없는 말에 세 사람은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우고 유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희에겐 이때까지 내가 해주던 이야기가 다 농담으로 들렸던 모양인데.......”
  유현이 점점 기세를 피어 올린다. 그 기운에 압박당한 세 사람이 흠칫한다.
  “날 그냥 현경의 고수로만 보면 그건 실수한 거다.”
  이제는 상대를 짓눌러버릴 듯한 유현의 기세에 세 사람이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셋 다 덤벼, 힘의 차이를 보여주지.”
  그 말과 함께 유현이 잔상을 남기며 소현에게 달려들었다.
  이영환위!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속도로 소현에게 다가간 유현이 그대로 소현의 얼굴에 주먹을 작렬했다.
  퍼억!
  그와 함께 공중에 붕 떠버리는 소현.
  쾅!
  그런 소현의 뒷덜미를 잡은 유현이 그대로 소현을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엄청난 충격을 예상한 소현이 빨리 호신강기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골로 갈만한 공격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를 장난감 가지고 노는 듯한 유현의 실력. 그 말 그대로 이건 현경의 경지에 든 고수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커억!”
  유현의 공격에 엄청난 충격을 당한 소현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호신강기를 둘렀다고는 하나 급한 마음에 끌어 올렸기에 그 충격이 상당한 것은 당연했다.
  아무튼 소현을 순식간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유현은 이번에는 은월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런 유현의 공격을 은월이 침착하게 막기 시작했다.
  “화린, 공격해!”
  유현이 공격을 막으며 은월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외침에 멍하니 있던 화린이 정신을 차리고 화급히 유현을 공격해 들어갔다.
  탁!
  하지만 유현은 가볍게 손으로 화린의 검을 잡은 다음 그대로 은월에게 던져 버렸다.
  “꺅!”
  “어억!”
  화린을 잡은 은월이 데굴데굴 땅바닥을 뒹군다.
  휘익!
  퍼억!
  “커억!”
  화린을 떼어 놓으며 거리를 벌리려는 은월의 배에 피할 새도 없이 발을 꽂아준 유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먹으로 은월의 턱을 가격해 버렸다.
  뻐억!
  어마어마한 충격에 그대로 안면에 마비가 온 은월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퍼억!
  “커억!”
  그런 은월을 소현 옆에 패대기치는 유현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화린 한 명!
  탓!
  유현이 화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유현을 향해 침착하게 금을 초식을 사용하는 화린. 덜렁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침착한 면을 보이는 화린을 보며 말은 안해도 내심 꽤 만족하는 유현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덥석!
  화린의 모든 공격을 피한 유현이 그대로 은월과 소현처럼 화린의 멱살을 잡았다.
  쿵!
  “아흑!”
  그리고 그대로 화린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유현이었다. 물론 은월이나 소현과 비교하면 아주 약한 충격이었겠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비교하면’이었다.
  쾅!
  그것도 모잘라 화린의 얼굴 옆에 바로 주먹을 내려치는 유현.
  “힉!”
  자신의 얼굴 바로 옆의 땅이 완전히 죽사발이 나는 것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르는 화린이었다.
  “네가 여자라는 것에 감사해. 안 그랬으면 너도 소현이랑 은월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됐을 거다.”
  그렇게 말한 유현은 그대로 뻗어 있는 소현과 은월에게 다가갔다.
  “마인드 업!”
  유현이 두 사람에게 외쳤다. ‘마인드 업’은 기절한 상대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마법으로 5서클 마법이었다. 보통은 거의 배우지 않는 마법 중 하나지만 500년 동안 어지간히도 할 짓이 없었던 유현은 배운 상태였다.
  아무튼 그 말과 함께 소현과 은월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끄응.......”
  “크윽.......”
  신음을 흘리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유현이 말했다.
  “한심한 것들.”
  혀까지 쯧쯧 차는 유현의 그 말에 몸을 비틀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유현이 새삼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런 몸이라도 현경 고수랑 붙어도 이길 수 있다. 그런 내가 너희 같은 햇병아리들 하나 처리 못 할 것 같더냐?”
  유현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들을 향해 유현이 말했다.
  “앞으로 매일 밤마다 이렇게 수련한다, 진법에 들어가는 것과 나와 비무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알겠냐?”
  그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
  “오늘은 대충 이렇게 해두지... 내일부터 각오해라.”
  그렇게 말한 유현은 전각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퍽! 퍽! 퍽!
  휘익!
  은월과 소현이 비무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거의 비무를 하지 않았다.
  은월, 소현, 화린 이렇게 셋이 꽤 친해졌다고 하지만 그 친해진 계기의 중심은 화린이었다. 소현은 은월과 거의 말도 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비무를 하고 있다.
  화린은 그런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안영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안영 역시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겉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살짝 올라간 입 꼬리만 봐도 알 듯했다.
  안영은 살짝 화린의 뒤로 다가갔다. 그러자 화린이 그런 안영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그런 화린을 보며 안영이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화린이 안영의 인사에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영이 이렇게 자신을 살갑게 대하자 당황한 화린이었다. 안영은 지금껏 자신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눈이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마는 그런 사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살갑게 굴자 조금 당황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런 화린을 보며 안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면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역시 이상하군요.”
  “네?”
  “하나도 안 닮았습니다.”
  “누구랑요?”
  “유현 님과 말입니다.”
  “에?”
  안영의 말에 화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과 전혀 닮지 않았다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아, 그냥요. 신기해서요.”
  도대체 영문을 모르는 소리만 하는 안영. 그런 안영을 보며 화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훗... 재미있지 않습니까? 고아.......”
  “악! 안영.......”
  그렇게 말을 하려던 안영은 뒤에서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흠칫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하하하... 그냥 좀... 화린 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화 내용이 좀 그런데?”
  “... 숨길 필요는 없잖습니까?”
  “아직은 아니야.”
  유현의 말에 잠시 침묵 하는 안영.
  “끄응, 스스로 정을 주셨다고 말하신 분 아닙니까?”
  “그게 왜?”
  “솔직해지십시오.”
  “솔직이건 나발이건 너는 입 닥치고 있어.”
  그렇게 말한 유현이 화린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가자, 수련이나 하자고.”
  “에? 응.”
  잠시 뒤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은 안영은 그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한 거지소굴의 움막.
  그런 거지소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앞에 마주앉아 있는 거지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흐음... 너와 같은 얼굴을 한 유화린이란 여자아이가 종남파와 남궁세가에 머물었었다는 정보가 있구나.”
  “남궁세가... 말입니까?"
  “그래.”
  그 말에 월린의 얼굴이 좋지 않게 변했다. 거대문파와 거대세가에 들락날락거렸다니.......
  “일단 그 유화린이 네 동생이 맞느냐?”
  “저와 같은 옷차림이라면... 그런 옷을 입었다면... 제 동생이 맞을 겁니다.”
  “흐음, 그 아이는 얼굴은 가리고 있다고 하네.”
  “얼굴을 가리고 있어요?”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하더군.”
  “휴.......”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월린이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얼굴을 닮은 편이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인 화린이는 정말 아름다웠다. 어머니를 더 닮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자신의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화린이었다. 물론 성격은 덜렁 그 자체였지만.
  아무튼 스스로 가면을 쓰고 다녔다니 다행이었다. 맨얼굴로 돌아다녔다면 좋지 않은 일도 당할 수 있었다.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라고 생각 하는 월린이었다.
  “다른 건 없나요? 일행 이라든지.......”
  “아아, 그 아이 또래의 남자애 둘과 같이 다닌다고 하더군.”
  “남자...요?”
  그 말에 월린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가면을 쓴 여성 한 명도 있고.......”
  그 말에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짓는 월린. 남자애 둘이서 같이 다닌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참이다. 늑대 두 마리가 옆에 붙어 있는 꼴이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월린을 보며 거지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표정 변화가 다양하군.”
  그 말에 월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되니까 어쩔 수 없죠.”
  그 말에 다시 한 번 웃는 거지노인.
  “정보에 따르면 그 화린이라는 아이가 가면의 여자를 엄청 잘 따른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여자는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휘안과도 친분이 상당한 듯 보였어.”
  “그렇습니까?”
  그 말에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월린이었다. 화린 이외에는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그런 월린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거지노인이 말을 이었다.
  “일단... 지금 네 동생이 향하는 곳은.......”
  “향하는 곳은?”
  “북경이다.”
  “북경?”
  “그래, 남궁세가에서 여화 공주 호위 의뢰를 맡았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호위 의뢰를 해준 쪽에서 말하길, 호위를 맡아준다면 황실 비무대회 초대장을 써 준다고 한 것 같더군.”
  “흐음.......”
  “그 호위 하는 무사들 중 네 동생이 끼어 있더라고.”
  “화린이가요”
  “그래.”
  그 말에 한숨을 푹 쉰 월린이 말했다.
  “그렇다면 북경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군요.”
  “그렇지! 그런데 자네.......”
  “...예?”
  “황실 비무대회에 참가할 의향이 없는가?”
  “황실 비무대회에요?”
  “그래.”
  거지노인의 말에 월린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싫어요.”
  “에잉! 그럴 줄 알았다.”
  그 말에 어조로 말하는 거지노인,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거지노인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황실 비무대회 출전패다.”
  그 말에 월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어허! 늙은이가 가져가라면 가져가!”
  “하지만.......”
  “떽!”
  거지노인은 완강히 거부하는 월린을 향해 소리쳤다. 그 엄청난 소리에 귀가 얼얼해진 월린이었다.
  그런 월린을 보며 거지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여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월린은 조심스럽게 품에 출전패를 넣으며 말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실 비무대회 출전패는 황실에서 발행 하는 것으로 황실의 높은 관리의 초대장과 비슷한 것이었다. 다만 이것은 무림맹, 사황성에만 몇 개 전해지는 것으로, 무림맹이나 사황성에서 인정한 무인에게 주는 패였다.
  아무튼 이 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지노인이 무림맹에서도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개왕 어르신... 다시 감사드립니다.”
  “헐헐헐! 거지에게 감사를 표하려면 나중에 맛있는 것이나 사다다오.”
  개왕. 그는 그저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가 아니었다. 현개방에서 가장 배분이 높으며 무림맹 문주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삼마이제삼왕에 버금가는 고수 중 사람이었다.
  “거기 비었잖아! 칼 맞고 뒈지고 싶어?”
  퍽!
  “크윽!”
  “목검 하나 제대로 어쩌지 못해서 어떻게 강해진다는 거야?”
  빠악!
  “끄억!”
  “얼굴 비었어!”
  퍼억!
  “커억!”
  유현의 발바닥이 소현의 얼굴에 작렬한다. 그 공격이 꽤나 치명적이었는지 끝내 비틀거리는 소현.
  “끝!”
  빠악!
  “악!”
  그런 소현의 머리를 향해 목검을 내리치는 유현이었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소현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한 대 더 맞고 싶으면 게속 거기 누워 있어라?”
  “허억!”
  그 말에 있는 힘, 없는 힘 모아서 후다닥 유현에게서 떨어지는 소현이었다.
  “다음 화린!”
  “헉!”
  유현이 날카로운 눈으로 화린을 바라본다. 그와 함께 화린에게 달려드는 유현. 그런 유현을 향해 재주껏 목검을 내지르는 화린이었으나.......
  따악!
  뻐억!
  “꺅!”
  그 검을 막은 유현은 그대로 검을 흘리며 화린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때부터 시작된 유현의 일방적인 구타는 그야말로 잔혹했다.
  목검으로 가장 아픈 곳만 골라 때린 후 유현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화린을 거치적거린다는 듯 옆으로 치워버렸다.
  그에 힘없이 쓰러지는 화린. 그런 화린을 보고 은월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래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유현은 은월의 뒤통수에 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어디 가? 역시 수련이라고 하면 몸으로 체험하는 게 최고지! 이런 수련은 수도 없이 해도 효과가 있는 법이라고.”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건 좀 심했다. 하루 종일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사람을 패니 아무리 내공이 강한 고수인 세 사람이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유한이 몰래 걸어주는 치료마법이 없었다면 이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몸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치료마법이 신기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아무튼 화사하게 웃고 있는 유현을 보며 은월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저... 쉬는 시간은.......”
  "없어.“
  휘익!
  “으악!”
  은월도 유현의 수련법 앞에서 그런 무뚝뚝함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
  퍼억! 퍼억! 빠악! 퍼버버벅!
  털썩!
  신나게 목검에 얻어터진 은월 역시 쓰러져버렸다.
  “흥! 이 정도도 못 버티다니.......”
  땅바닥에 널브러진 세 사람을 보며 혀를 차준 유현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끄윽.......”
  소현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악마.......”
  은월이 중얼거렸다.
  “히잉... 아파.......”
  화린은 울먹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가 있었으니.
  “오늘도 고생했다.”
  바로 유한이었다.
  유한은 화린에게 다가가 먼저 치료마법을 시전해준 다음에 다음에는 소현, 은월 순으로 치료마법을 시전해주었다. 마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괴리감 있는 행동을 하는 유한이었다.
  아무튼 유한이 수련 후 늘 치료마법을 걸어주자 일주일 만에 너무도 친해진 네 사람이었다.
  “우에... 오늘도 죽는 줄 알았어요.”
  화린이 유한에게 말했다. 그런 화린을 보며 빙긋 웃는 유한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주일 만에 많이 강해지지 않았어?”
  “그건.......”
  유한의 말에 화린이 입을 닫았다.
  확실히 유현에게 지옥훈련을 받은 일주일 만에 검기를 사용하게 된 화린이었다. 아무리 내공이 엄청나다곤 해도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소현과 은월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은월은 고작 일주일 만에 폭주상태였던 힘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유한의 말에 소현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휴... 그래도 무슨 여자가 그렇게 난폭한지.......”
  소현이 치유마법으로 통증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시큰거리는 듯한 어깨를 쓰다듬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유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누나의 매력 중 하나지.”
  “에엑? 유한 오빠, 유현 언니 좋아해요?”
  화린이 놀란 듯 묻는다. 그 말에 유한이 여태 몰랐냐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 좋아하지.“
  “형이 뭐가 부족하서 그런 난폭한 여자를 좋아해요?”
  소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묻는다. 그 말에 유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아...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거든.”
  “유한 오빠는 언니의 얼굴을 알겠네요? 어떻게 생겼어요?”
  그 말에 소현은 물론 은월까지 반응을 보였다. 베일에 쌓여 있는 유현의 얼굴이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아름답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유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화린, 너 만큼 예쁘게 생겼어.”
  “에? 저만큼요?”
  “그 여자가 화린 만큼 예쁘다고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유한의 말에 화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으며 소현과 은월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야. 대신 누나는 화린이처럼 어벙한 게 아니라 날카롭지, 잘 버려놓은 한 자루의 명검을 보는 듯 하달까?”
  유한의 말에 화린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쳇! 그래요 나 어벙해요.”
  “하하, 삐지지 마.”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네 사람이었다.
  숙소를 향해 걸어가던 유현이 한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와 함께 들리는 목소리.
  “하하하... 이거, 소저와는 싸우기가 무섭습니다만.......”
  “나에게 목을 주려고 오다니... 고맙군.”
  유현이 불쑥 나타난 시현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닥쳐,”
  하지만 그런 시현의 말을 들어줄리 없는 유현이었다. 아무튼 자신을 향해 살기를 피어 올리는 유현을 보며 시현이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끄응... 제발 봐주십시오. 오늘은 그저 물어볼 것이 있어 왔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질문 값으로 목을 내놓고 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는 유현의 그 말에 한숨을 푹 쉰 시현이 말했다.
  “저에게 그렇게 적대적인 이유가 뭡니까?”
  “네놈이 혈교 소교주이니까.”
  “혈교와 원한 관계에 있으십니까.”
  “어.”
  시현의 물음에 유현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휴우... 전 당신에게 죽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도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누구한테?”
  “...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저도 혈교...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혈교의 고위신분을 가진 모든 이들을 죽일 계획입니다.”
  “호오? 재미있는 말이군.”
  시현의 말에 유현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다지 믿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이 문제... 심각한 문제입니다만.......”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는 유현을 보며 시현이 좀 당황하며 말했다.
  “알고 있어.”
  시현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어느새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살기는 감추지 않고 있었다.
  “.......”
  그 말과 태도에 잠시 침묵하던 시현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런 시현을 무시하며 유현이 말했다.
  “그래, 물어볼 것이란 게 뭐지? 호위무사도 대동하지 않고 말이야.”
  유현의 말에 시현이 말했다.
  “그 화린이란 소저... 정체가 뭡니까?”
  “그건 왜 묻지?”
  “누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천마교의 전 소교주 하유현?”
  “네.”
  유현이 냉소하며 말했다.
  “하긴... 혈교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방해되는 녀석을 죽였는데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이들이 있으면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그 말에 시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유현의 죽음과 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뭐?”
  “오히려 그 일이 제가 혈교 수뇌부들을 모두 죽일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지?”
  시현의 말에 유현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 살기가 짙어진 것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잠시 뜸을 들이던 시현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이 이야기를 해 줘도 될까? 믿어도 될까?’ 라는 표정이 섞여 있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알려 준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그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유현이 입을 열었다.
  “화린이에 대해서 아는 대로 다 가르쳐 주지.”
  “좋습니다. 그럼... 제가 하유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시현의 말을 들으며 유현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시현의 말에서 유현은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자신이 파멸성의 기운을 탄 아이였다는 것. 두 번째로 파멸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 자신이 죽은 이유 역시 파멸성 때문이라는 것. 네 번째로 이 말이 사실이라면 눈앞의 시현은 자신의 복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하하하.......”
  유현이 힘없이 웃었다.
  그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신분 때문에 자신을 죽였다는 건 역시 이상했다. 혈교에서 자신들의 일에 방해 된다 하여 죽여라고 명했다지만... 그것 역시 이상했다.
  천마교 자체가 혈교의 일에 방해가 된다. 그런데 굳이 자신들을 드러내면서까지 자신을 죽인 이유에 대해 유현도 내도록 의아해 했었다.
  자신을 죽여 천마교와 적대시 할 이유가 없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죽은 이유가... 겨우 별자리 하나 때문이라니.......
  “운명이란 거 참 빌어먹을 것이네.”
  유현이 중얼거렸다. 그런 유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시현이 말했다.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이름 유화린, 나이 17세,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 언니, 죽은 오빠. 아버지는 신권 유강월, 어머니는 빙검 월화, 언니의 이름은 유월린, 죽은 오빠의 이름은.......”
  거기서 멈칫하는 유현.
  그런 유현을 보며 유현의 말을 들으며 눈을 크게 뜨던 시현이 멍하니 중얼거린다.
  “설마.......”
  “천마교 소교주 소마검 하유현.”
  “그럼... 그녀가 그의 동생이란 겁니까?”
  “그래.”
  “그런 어이없는.......”
  그 말에 시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시현보다 유현이 더 어이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일일이 화내기도 힘든 유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멍하니 있는 시현을 보며 유현이 물었다.
  “그런데... 넌 분명 하유현을 사랑한다고 했지?”
  “하하하... 그렇죠.......”
  유현의 말에 시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유현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리고 험악한 얼굴로 외쳤다.
  “그냥 뒈져라!”
  “으악!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닥치고 죽어!”
  “끄악!”
  갑작스러운 유현의 공격에 당혹하는 시현, 시현을 거의 떡을 만들어 놓은 유현이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왜 내 주위에는 항상 이런 변태들밖에 없는 거야?”
  그렇게 소리친 유현은 아직도 화가 난다는 듯 비틀거리는 시현을 한번 뻥 찬 다음 코웃음을 치며 걸어갔다. 물론 시현은 왜 자신이 이렇게 얻어 터졌는지에 대해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혈사인
  어두운 지하 밀실.
  그 곳에서 두 명의 인영이 한 침상 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이를 보고 웃고 있었다.
  “으흐흐흐흐... 정말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후후후, 이것을 얻는데 아주 고생을 했습니다.”
  “크크크크큭... 파멸성의 힘이 저희 손에 들어 왔습니다. 이제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피의 교리에 따라... 피로써 세상을 정화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피의 교리를 외치는 곳은 중원에서 단 하나뿐, 바로 혈교였다!
  “으하하하하하! 눈을 뜨시오! 다시 살아나 세상을 피로 물들여보십시오! 크하하하하하!”
  자신의 평생 걸작이라 생각되는 것을 바라보며 광소를 터트리는 남자. 그와 함께 침상 위에 눈을 감고 있던 이가 눈을 번쩍 뜬다.
  고오오오오오!
  무시무시한 검은빛 마기와 핏빛의 사이한 기운을 풍기며 일어나는 한 존재!
  “나는... 누구지?”
  그가 어눌한 말투로 묻는다. 그런 그를 보며 한 남자가 말했다.
  “오랜만이오.”
  “당신... 누구야?”
  남자의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 하며 순진한 눈으로 묻는다. 그런 그를 괴리감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살후라고 하오.”
  “살후?”
  “그렇소.”
  “난... 누구지?”
  “이 세상을 피로 정화할 존재요.”
  “세상을... 피로?”
  그 말에 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요.”
  그렇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 혼... 내 혼 내놔.......”
  “응?”
  “무슨.......”
  “내... 혼... 내...놔!”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발광을 하는 그. 그리고 이내 그의 눈이 날카로워짐과 동시에 손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풍겨져 나오더니 그 기운이 그대로 살후와 광소하는 남자를 덮쳤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광소를 터트리던 남자는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 기운에 쓸려 죽어버렸다.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생각되던 것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 남자였다.
  “크윽! 왜 갑작스럽게 폭주를.......”
  살후가 자신을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그를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폭주할 리가 없다. 심령으로 완전히 제압된 강시가!
  아무리 살아 숨 쉬는 생강시라고 하나 이미 죽었던 이가 혼을 찾아 폭주하다니! 그가 죽은지는 이미 3년이 지났거늘!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함을 지른다.
  “크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살후는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이런... 천마?!”
  바로 무시무시한 마기가 자신을 덮쳐왔기 때문이었다.
  꽝! 쿠구구구구!
  지하실은 그대로 내려앉아 버렸다.
  혈교 본거지.
  중원을 공포에 떨게 하던 그 혈교의 본거지는 지금 한 존재에 의해 초토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수가 산을 이룰 만큼 어마어마했다. 그 존재가 휩쓸고 다닌 곳은 피와 시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혈교 본거지를 혈혈단신으로 공격하는 존재는 이미 피를 뒤집어 쓴 ‘악귀’ 그 자체였다.
  피의 교리를 가지고 피로 세상을 정화시키겠다는 혈교. 하지만 그 피의 정화가 자신들을 먼저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혈천강시 부대 출동!”
  천마교의 비급인 혈천강시들이 그 존재를 포위했다. 강시는 강시로 상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혈교에서 만들어낸 생강시... 무림 역사상 가장 최강의 강시가 혈교에서 탄생한 것이다.
  “캬오오오오!”
  그런 생강시를 향 덤벼드는 혈천강시들. 하지만.......
  “죽어.......”
  서걱! 서걱! 서걱!
  생강시는 강했다. 강기도 막을 수 있는 피부를 가진 혈천강시들을 두부 썰어버리 듯 썰어나가는 그. 이미 강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먼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살아 숨 쉬며 생각을 하고, 인격을 가졌다. 거의 하나의 인간과 같은 존재. 그런 존재가 자신의 혼을 찾아 파괴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놀랍군.......”
  혈천강시들과 싸우는 그런 그를 보며 핏빛 눈동자를 가진 노인이 중얼거렸다.
  “저게 그 생강시인가? 살후?”
  “그렇습니다. 교주.”
  그 노인은 바로 혈천교의 교주 혈마 혈광천이었다. 혈광천은 생강시를 보며 말했다.
  “파멸성의 주인이었던 천마교 전 소교주 하유현의 육체로 생강시를 하나 만들었는데... 저런 괴물이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군.”
  혈교에서 유현을 죽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유현을 강시로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유현의 시신은 천마교 내에 묻혔다. 그런 유현을 썩기 전에 빼돌렸던 것이다, 혈교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천마교였다.
  오장대로를 빼놓고도 그들이 얼마나 천마교에 깊숙이 관여했는지 철저하게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혼을 찾아 난리를 부리는 것인가? 본교에 몇몇 생강시가 있긴 하지만 저렇게 혼을 찾아 폭주하지는 않는데.......”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 유현은 현재 지금 데스나이트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다만 육신에 남아 있는 혼의 기억으로 움직이고 있지, 혼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저 강시는 백치나 마찬가지였다.
  생강시들은 일단 만들어지면 주인의 명을 기다린다. 스스로 생각하고, 숨을 쉬고 있긴 하지만 도한 주인의 명에 절대복종하곤 했다. 하지만 유현의 육체로 만든 생강시는 달랐다. 주인의 명을 거부하며 폭주한다.
  그것은 중원 무림에 유현의 혼... 그러니까 에이라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혈교의 이들이 그런 것까지를 알리는 없었다.
  아무튼 폭주하는 그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혈광천이 나섰다.
  “자, 그만해라. 네 혼은 여기 없다.”
  그것에게 다가간 혈광천이 그것을 달래듯 말했다.
  “닥쳐! 내 혼 내놔!”
  하지만 그것은 수긍하기는커녕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혈광천에게 달려들 뿐이었다.
  쾅!
  혈광천은 그런 그것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그것은 혈광천보다 강했다.
  혀를 한 번 쯧 하고 찬 혈광천이 말했다.
  “우리가 네 혼을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
  멈칫!
  그 말에 그것이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것을 보고 혈광천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혈천교라는 단체의 수장이다, 네 혼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말에 그것이 기운을 서서히 거두어 들기 시작했다. 아직 아는 게 없어 단순한 그것이었다.
  거두어지는 기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혈교인들. 혈광천 역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네 혼을 찾아 어떻게 할 생각이지?”
  혈광천이 묻는다. 그런 혈광천의 물음에 그것이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뿐이다.”
  그 말에 슬쩍 얼굴을 찌푸린 혈광천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고 혼을 찾아 폭주했다니.......
  한숨을 푹 내쉰 혈광천이 말했다. 일단 이것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안 그러면 그 모든 일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아무튼... 내가 네 혼을 찾는 것을 도와주는 대신 넌 내 말에 따라라.”
  “싫다.”
  혈광천의 말을 그것이 거절했다. 그 말에 혈광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내 혼을 찾아준다는 조건으로 나의 파괴행각을 멈추었다.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 말에 혈광천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군.”
  그런 혈광천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그것.
  “너의 이름이 무엇인 줄 아나?”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너의 이름을 지어주지.”
  “이름?”
  “그래.”
  혈광천이 그것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은... 자신과 같은 혈 씨를 주는 것이 좋을 듯했다. 혈광천은 눈앞의 존재가 그만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혈광천이 웃으며 말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혈사인(血死人) 이다.
  “혈사인?”
  “그래.”
  혈사인. 피의 교리를 이루기 위해 유현의 육체로 만들어진 병기. 하지만 스스로가 병기인 것을 거부하며 자신의 혼을 찾아 나서는 존재. 강시이면서도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존재.
    인간적인 드래곤
  “이 귀찮은 호위도 끝이군.”
  “다시 지긋지긋한 황궁에서 생활해야 하나?”
  희비가 교차했다. 하지만 유현은 단순하게 드디어 호위의뢰가 끝난 것에 기뻐했다. 물론 반대로 여화 공주는 다시 망할 황궁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언니, 언니는 나랑 헤어진다는 것이 안 슬퍼?”
  여화 공주가 활기차게 말하는 유현을 보며 묻는다.
  “전혀.”
  그런 여화 공주의 말에 유현이 두 번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화린 언니, 언니는 슬프지?”
  유현과 다르게 마음이 약한 화린에게 울먹거리며 여화 공주가 말했다. 그런 여화 공주를 보며 화린이 누가 봐도 어색하게 말했다.
  “네, 저도 안타까워요.”
  “그럼 우리 오라버니 한 번만 만나고 가!”
  그 말에 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예? 황태자 저하를 말입니까?”
  “응! 그리고 언니는 얼굴도 아름다우니까 오라버니의 신부가 되는 게 어때?”
  “하하... 그건 좀.......”
  아직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여화 공주의 말에 화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황태자와 만나는 것은 사절이다.”
  유현이 거절 의사를 표했다.
  “흥~ 유현 언니는 만나지 마!”
  “화린도 만나게 하는 건 사절이다.”
  그 말에 여화 공주가 소리쳤다.
  “왜?”
  “내 마음이다.”
  유현이 여화 공주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싸늘해진 유현의 표정을 보며 움찔하는 여화 공주. 그런 여화 공주를 보며 화린이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여화 공주님, 저도 황태자 같은 높으신 분과 대면하는 것은.......”
화린 역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화린마저 그렇게 나오자 실망한 표정을 지은 여화 공주가 말했다.
  “싫다는 사람 강제적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한 여화 공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 다 다음에 다시 만나.”
  그런 여화 공주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가라, 왈가닥.”
  “왈가닥이라고 하지 마!”
 
  “아아... 정이 많이 들었었는데.......”
  여화를 궁으로 들여보낸 후 화린이 나무에 기대어 앉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퍼억!
  그와 함께 뭔가를 타격하는 소리와 함께 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족과는 깊이 얽히지 않는 것이 좋아.”
  “크윽.......”
  조금 전 타격음은 은월을 향한 것이었는지, 은월이 괴롭다는 듯 명치를 부여잡았다. 그런 은월의 빈틈과 함께 유현이 그대로 은월의 머리에 발차기를 작렬했다.
  “그냥 참고 버텼어야지.”
  퍼억!
  “끄악!”
  유현의 발차기 작렬과 동시에 은월이 쓰러졌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네.”
  그렇게 중얼거린 유현이 말했다.
  “황실 비무대회에 너희들도 나간다. 하지만 내가 만족하지 못한 성적이 나오면 진법에 넣고 며칠간 꺼내주지 않을 테니 각오 단단히 해라.”
  “헉! 그런 말을 지금 하면 어떻게 해!"
  “그러니  빨리 쉬지 말고 수련해!”
  “우엑! 은월! 비무하자!”
  다급하게 소리치는 화린이었다. 하지만 이미 은월은 비무를 할 상태가 아니었다.
  “나랑 할까?”
  그런 화린을 보며 싱긋 웃어 보이는 유현.
  “하하하... 그건 좀.......”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살며시 뒷걸음질을 쳤다.
  “어? 은월은 벌써 뻗어버렸어?”
  그렇게 화린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현아!”
  잠시 갈 데가 있다고 나갔던 소현이 돌아 온 것이었다.
  “소현아 나랑 비무하자!”
  “어? 평소보다 더 열성적인 것 같은데?”
  “언니가 비무대회에서 자기가 만족할 성적이 안 나오면 며칠간 진법 속에 가두어 좋겠다.”
  그 말에 소현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저기, 당신이 원하는 성적이란 게 도대체 어떤 기준의 성적이야?”
  이상하게 유현에게 사나운 소현이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건 상대와 비무의 내용을 보고 판단해야지.”
  틀린 말은 아니기에 표정을 풀었다. 설마하니 16강 안에 들어라 이런 것이라면 목을 걸고서라도 당장 따지려 들려고 생각했던 소현이었다.
  그런 소현을 바라보던 유현이 문득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익숙한 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안영?”
  유현의 물음에 안영이 말했다.
  “에... 유현 님,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뜻밖의 손님?”
  “예.”
  안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유현이 말했다.
  “누군데?”
  “황태자입니다.”
  “뭐, 황태자?”
  안영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유현이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과 유현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고급 객점.
  황실 비무대회가 다가오는 바람에 침실이 빈 객점 구하기가 엄청 힘든지라 객점을 구하기 위해 엄청 고생해야 했던 남궁세가의 무사들이었다.
  그런 유현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황태자가 찾아왔다.
  유현이 황태자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와 어느 정도 낯이 익은 가건, 그 외 몇 몇 금의위 무사들로 보이는 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유현을 기다리고 있는 휘안과 유한이 있었다.
  “황태자가 무슨 볼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지?”
  “유현 님, 이 분은 이 나라의 황태자전하이십니다. 예의를 차려주십시오.”
  그런 유현을 보며 가건이 말했다.
  “한 달 동안 날 보면서 뭘 봤냐?”
  “유현 님, 제발.......”
  그런 유현을 보며 가건이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유현은 코웃음만 칠뿐이었다.
  그런 유현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황태자 주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여자군.”
  그런 주후소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여자 꽤나 많이 울리고 다니는 놈이군.”
  “.......”
  유현의 말에 주후소가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주후소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황태자인 나에게 그런 막말을 하다니, 정말 재미있는 여자잖아?”
  정말 유쾌하게 웃는 주후소, 그런 주후소를 보며 유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닥치고 본론.”
  그 말에 주후소가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턱을 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밤 나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을래?”
  푹!
  그와 동시에 황태자의 머리 옆으로 흑아가 스치고 지나갔다.
  챙! 챙!
  그와 동시에 금의위 대장급 무사들이 검을 뽑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황태자가 싱긋 웃으며 손을 들었다. 검을 검집에 넣으라는 뜻이었다.
  “하, 하지만 전하!”
  그런 황태자를 보며 한 금의위 무사가 말했다.
  “아아... 저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우린 벌써 죽었어. 우리를 죽이는 게 너무도 간단한 여자야. 도발하지 말라고.”
  “죽고 싶어 환장한 발언을 한 새끼는 누군데?”
  이미 유현의 입에서는 욕설까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흐음... 황태자인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러나 화를 내거나 하기는커녕 신기하다는 듯 유현을 바라보는 황태자였다.
  확실히 그의 눈에도 유현은 묘한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자신의 여동생 여화 역시 다녀와서 웃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가건 역시 여화 공주가 그녀의 말을 너무도 잘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호기심이 이는 건 당연했다.
  자신의 말괄량이 동생을 제어할 수 있는 여자. 그런 여자는 돌아가신 어머니 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본 그녀는 아주 강한 무인이었다.
  또한 유현은 당당했다. 오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오만한 눈은 다른 이들과 확실하게 달랐다. 오히려 그녀에게 너무도 잘 어울렸고 더욱 그녀를 돋보이게 하였다.
  주후소의 말에 금의위 대장급 무사들이 검을 집어넣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분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유현 역시 황태자 옆을 지나 벽에 꽃힌 흑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르르릉.
  그러자 검이 저절로 벽에서 뽑히며 유현의 손으로 날아갔다.
  “이게 바로 허공섭물이란 건가?”
  “뭐, 그렇지.”
  “역시 현경의 고수였군.”
  그런 주후소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본론 말해.”
  “아아... 방금 말한 게 본론이었는데.......”
  “죽고 싶은가 보지?”
  “하하하, 농담도 못하나?”
  유현이 한쪽 입 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하자 주후소도 웃었다.
  “뭐, 그대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싶은 건 사실이긴 하지만... 본론을 꺼내지. 황실에 머물 생각은 없나?”
  “없다.”
  그 말에 유현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흐음... 내가 말한 건 권력투쟁 같은 것에 끼어들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 왈가닥 공주를 돌봐달라는 소리가 아닌가?”
  유현의 말에 주후소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짜증나는 일 난 못한다.”
  유현의 말에 황태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유현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시덥지 않은 이야기나 할 거면 난 애들 수련이나 봐 주러 가련다.”
  그렇게 말한 유현이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흐음... 정말 매력적인 여자군.”
  그런 유현의 뒷모습을 보며 주후소가 중얼거렸다.
  “여기 있는 이들 중 몇 명이 그녀를 좋아하지?”
  “전부.”
  주후소의 물음에 휘안이 대답했다.
  “이런... 경쟁자가 엄청 많은걸?”
  휘안의 말에 주후소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황궁 비무대회가 그 막을 올렸다.
  각 문파의 이름난 후기지수들은 모두 모였다. 황실에서도 실력 있는 금의위 들이 대거 출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실력 있는 자들이 많이 출전했다해도 모두의 기대는 단 세 명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월광룡 남궁휘안, 흑마룡 사무연, 혈천룡 혈시현.
  현 무림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 알려진 세 사람이었다. 각각의 무공이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사람들이 그 이름을 수군대는 세 명.
  하지만 실제 그들의 무공은 이미 현경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문을 보고 과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소문은 실제 삼룡의 무공에 비해 너무도 초라했다.
  아무튼 소문으로는 너무도 유명했지만 실제로는 활동이 거의 없는 세 사람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무연과 시현의 행보에 특히 더 신경을 쓰는 상태였다.
  아무리 황실 비무대회에서는 정파, 사파, 마도 없이 똑같은 무인으로 구분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적인 마도의 후기지수들... 그것도 마교와 혈교의 소주인들의 행보가 신경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비무대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축제 분위기군.”
  유현이 거리를 걸으며 말했다.
  “쳇,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 거야?”
  그런 유현의 옆에는 소현이 따라오고 있었다.
  “너 화린이 좋아하냐?”
  “화린이는 친구야!”
  유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빨갛게 변한 소현이 소리쳤다.
  “은월은 화린이 좋아하던데.”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유현의 말에 소현이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소현은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화린이 역시 어느 정도 은월에게 마음이 있어, 둘이 잘되게 놔두자고.”
  “후,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이야? 둘을 방해 안 하고 처박혀 있으면 되는 거 아냐?”
  소현이 버럭 소리쳤다.
  “쳇, 화린이 은월을 더 좋아한다고 우울해진 놈이 누군데?”
  “무슨 소리야?”
  유현이 말에 소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긴, 여자애 같은 얼굴에 여자 옷 입고 있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남자로 보겠어?”
  “이익! 말 다했어?”
  유현의 말에 소현이 버럭 소리쳤다. 그런 소현의 가슴팍을 툭 치며 유현이 사내처럼 껄렁껄렁하게 말했다.
  “쳇, 소리치지만 말고 축제나 즐기자고.”
  “어어, 이봐!”
  그렇게 말한 유현이 앞으로 나가자 소현이 당황하며 유현의 뒤를 쫓아갔다.
  “쳇... 저건 내 몫이었는데.”
  유한이 그 모습을 보며 툴툴거렸다. 그런 유한 옆에 있던 안영이 말했다.
  “저런 화기애애한 모습을 발로 차버린 건 유한 님이십니다.”
  “반성하고 있는 중이야.”
  안영의 말에 유한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그런 유한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 안영. 하지만 유한은 그런 안영에게 신경을 안쓰고 소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쳇, 부러운 녀석.”
  그렇게 혀를 찬 유한이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나와서 점심때까지 돌아다닌 유현과 소현.
  유현은 마음껏 축제를 즐겼다.
  소현은 이런 큰 축제는 처음이라 어색한 면이 많았지만 그렇게 싫다는 표정은 하지 않았다. 매일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것과 다르게 오늘만큼은 조금 즐거운 듯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소현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재미있냐?”
  “뭐... 그럭저럭.......”
  “나도 이런 축제는 좋아하는 편이지.”
  그렇게 말한 유현이 점심을 시켰다.
  축제라 객점 안은 붐볐다. 아무튼 객점 안에서 주된 대화내용은 내일 열릴 황실 비무대회에 관해서였다.
  강한 무인들이 나와 자웅을 겨루는 황실 비무대회는 누가 뭐래도 굉장한 구경거리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끄럽던 객점 안이 순간 조용해져 버렸다.
  아직 초봄이라 춥긴 했지만 객점 안에 한기가 흘렀다. 소현 역시 갑작스러운 공기 변화에 살짝 몸을 떨었다. 유일하게 유현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빙기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실버 드래곤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유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공기의 온도를 순식간에 내려 버린 기운을 가진 이를 향했다.
  이 정도라면 화경 끝자락의 고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유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번 고수는 젊은 여자였다.
  “쯧, 무림에 괴물들이 이렇게 많았나? ...응?”
  혀를 차던 유현은 여인의 옷차림이 익숙하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다음 순간 유현의 눈이 차가워졌다.
  유현의 기세가 변했다. 그 기세 변화는 함께 있던 소현이 몸 서리칠 정도였다. 유현의 주위에서 점점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찻잔에 들어 있는 뜨거운 차가 순식간에 얼어버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
  “갑자기 왜.......”
  그런 유현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현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대답 대신 차가운 빙기를 여인을 향해 쏘았다.
  흠칫!
  그리고 여인이 무시무시한 빙기를 느끼며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여인을 보며 유현은 진하게 웃었다. 여인이 굳은 표정으로 유현에게 다가왔다.
  “뭐하는 겁니까?”
  여인의 목소리에 소현이 유현이 기를 집중시키고 있는 존재가 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자신의 친구인 화린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인 때문이었다.
  “네가 보기에는 내가 뭘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시비 거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정답이야, 난 너에게 시비 걸고 있지.”
  유현의 말에 여인의 눈이 차가워졌다.
  “이유는?”
  “없어.”
  챙!
  그와 함께 순식간에 발검 한 여인이 유현에게 검을 휘둘렀다. 유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현의 은아와 여인의 검이 부딪쳤다. 갑작스러운 칼싸움에 객점이 술렁거렸다. 아름다운 여인과 아름다운 은빛 가면을 쓴 여인들이 갑자기 검을 뽑아 들자 놀란 것이었다.
  챙! 채재재재재쟁!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룬 유현과 여인, 그 결과 당연하게도 밀린 것은 여인이었다.
  “역시 화린이와는 다르군.”
  그런 여인을 보며 유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유현의 말에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이 화린이를 어떻게 알죠?”
  여인이 유현을 노려보며 묻는다. 그러다 문득 개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은빛 가면의 여인과 함께 있다.......“
  “유월린. 동생을 찾으로 왔나?”
  유현이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월린이 유현을 경계하며 말했다. 그런 월린을 바라보던 유현이 피식 웃으며 은아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냥 한번 심술이 나서 기세를 뿌려봤던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버림받지 않은 월린을 향해 뭐라고 할까, 그저 화풀이라고나 할까?
  유현이 검을 거두자 월린 역시 검을 거두었다.
  유현이 객점을 월린을 보며 말했다.
  “화린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지.”
  그렇게 말한 유현이 소현을 보며 말했다.
  “가자.”
  “응.”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현이 월린을 한번 바라보고 걸어가는 유현을 따라갔다. 월린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두 사람을 따라갔다.
  “이렇게 하는 게 좋을까나?”
  “그럴 거야.”
  화린이 은월에게 검을 휘두르며 묻는다. 은월은 그 검을 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여기서.......”
  “왼쪽이 더 나을 듯한데?”
  “그런가?”
  은월이 비무를 하며 화린을 지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월린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솟아났다.
  “아아... 지 언니는 자신을 찾아 죽어라 돌아다닌 것도 모르고 남자랑 저렇게 노닥거리고 있다니... 응?”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어느새 검을 뽑아든 월린이 화린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며 삐질 식은땀을 흘리는 유현이었다.
  화린은 갑작스러운 한기를 느끼며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검은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검을 뽑아들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익숙한 모습의 여인을!
  “히익~!”
  그것을 보고 기겁한 화린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언니가 왜 여기 있는 거야!”
  화린이 소리쳤다.
  “너 당장 이리로 안와?”
  그런 화린을 보며 소리치는 월린.
  “끼약! 언니 한 번만 봐줘!”
  “시끄러워! 어디서 가출질이야! 나나 어머니, 아버지는 너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넌 이렇게 태평하게 노닥거리고 있어?”
  “꺅! 살려줘!”
  그런 자매의 모습을 보며 유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녀석... 동생 앞에서는 욱하는 성격인가 보네.”
  도주하는 화린을 추격하는 월린을 보며 중얼거린 유현은 자신에게 다가오더니만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은월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무슨 상황이야?”
  좀 당혹한 표정을 짓는 은월은 향해 유현이 말했다.
  “아아... 보는 바와 같이 저 여자가 화린의 친언니.......”
  대충 상황을 설명 하려던 유현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니, 나 좀 살려줘!”
  바로 자신의 뒤에 와서 숨어 버리는 화린 때문이었다.
  그런 화린을 보며 한숨을 푹 쉰 유현이 멈칫한 월린을 보며 말했다.
  “이봐, 그만 하는 게 어때?”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월린이 대답했다. 월린의 말에 유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건 내가 판단한다. 이 녀석이 도와달라고 했으니 난 도와주는 것뿐이야.”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월린이 차갑게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 역시 만만치 않은 눈으로 월린을 노려보았다.
  “당신... 마음에 안 드는군요.”
  “나 역시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고 잘 자란 네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유현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한 월린.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17년 동안 산속에만 처박혀 살았으니 답답할 만도 했겠지, 참 웃기는 부모들 아니냐?”
  “부모님 욕은 하지 마십시오.“
  “그건 내 마음인데? 내가 누굴 욕하든 무슨 상관이냐?”
  유현의 말에 월린이 무시무시한 빙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 빙기는 은월과 소현은 물론, 월린과 같은 심법으로 빙의 기운의 내공을 쌓은 화린마저도 몸서리치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유현은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오히려 월린의 빙기를 그대로 흡수해 버렸다. 그것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은월과 소현, 화린도 마찬가지였다.
  유현이 이때까지 숨기고 있던 자신의 빙기를 개방해버린 것이다. 순간 유현의 머리카락 색이 점점 은빛으로 변해갔다. 힘을 한꺼번에 개방함과 동시에 머리칼에 걸려 있던 마법도 풀려버린 것이었다.
  아무튼 유현이 차갑게 웃었다.
  “죽을래?”
  그 말에 월린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드래곤 피어. 극한의 살기였다.
  그렇게 살기로 월린을 몰아붙이던 유현은 갑작스럽게 팔에서 느껴지는 힘에 멈칫해야만 했다.
  “어, 언니... 하지 마.”
  바로 울먹거리며 자신의 팔을 꼭 쥐고 있는 화린이 때문이었다. 그런 화린을 보며 쓰게 웃은 유현이 살기를 거두었다.
  털썩!
  그와 함께 월린, 은월, 소현은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월린의 얼굴은 마치 새로 내린 눈처럼 허연 것이 완전 핏기가 가셔 있었다.
  화린만이 서서 유현의 팔을 꽉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건 언니와 안 어울려.......”
  화린이 말했다.
  “그러지 마.”
  화린의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화린이, 이게 나다.”
  씁쓸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유현이 화린을 떼어 놓은 다음에 걸어갔다. 그런 유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화린이었다.
  “누나 안색이 안 좋아.”
  유한이 유현을 보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유한을 보며 고개를 저은 유현.
  “갑작스럽게 기운을 쏟아내다니...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그 말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
  그런 유현의 말에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은 유한.
  “무슨 일 있어?”
  유한이 물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누나답지 않아.”
  “나답지 않다라.......”
  유한의 말에 유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던 유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금 내 이란성 쌍둥이를 만났다.”
  “에?”
  “화린의 친언니 말이야.”
  “찾아왔어?”
  유현의 말에 유한이 많이 놀란 듯 물었다.
  “어.”
  간단하게 대답한 유현.
  “좀... 씁쓸하더라.”
  “뭐가?”
  “나도 몰라... 뭔가 좀 씁쓸했어.”
  유현의 말에 유한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질투... 일지도.”
  “질투?”
  유현의 말에 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유한. 그렇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유한이 입을 열었다.
  “누나, 누나는 인간에서 환생해서 드래곤이 되었다고 했지?”
  “맞아.”
  “질투는 아무나 다 느끼는 감정이야.”
  “아니, 좀 치졸한 곳에서 질투를 느껴서 말이야... 화린이가 월린을 만나서 기쁜 표정을 짓고... 내가 기운을 풀었더니만 제 언니를 걱정해서인지 나를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이 보기 싫더라고.”
  그렇게 말한 유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나를 나중에야 깨닫고 내가 참 꼴불견이구나 생각이들어서.”
  “......."
  그 말에 유한이 침묵한다. 그러나 잠시 후 유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 그런 누나가 좋은데?”
  “...뭐?”
  유한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유현. 그런 유현을 보며 쓰게 웃은 유한이 말했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약해. 말 하나에 쉽게 상처입고, 화를 내고, 슬퍼하지.”
  “.......”
  유한의 말을 유현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런 인간의 정신이 드래곤에 깃들었어. 드래곤은 강한 생명체지. 정신력이 강하고, 신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기도 해.”
  잠시 말을 멈춘 유한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유현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마족, 천족도 마찬가지야.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 중 드래곤, 마족, 천족이 세 종족이 가장 신들의 사랑을 받는 종족이야.”
  신들도 이기적이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만 사랑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한다.
  “다른 모든 종족이 마찬가지지만...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종족이 있어.”
  “뭔데?”
  “인간이야.”
  그 말에 눈을 크게 유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정하지.”
  “그래서 내가 가끔씩 불안정해지는 건가?”
  유한의 말에 유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 그대로 유현의 정신은 불안정해지는 때가 있었다. 그 시기의 유현은 아주 약해지곤 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유현만의 비밀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도 모르는 비밀.
  지금도 자신을 불안한 눈처럼 바라봤던 화린 때문에 상당히 불안정해진 상태였다. 무력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정신력이, 의지가 약해지는 것이다.
  드래곤의 가장 큰 힘은 정신력과 의지력, 그리고 자신을 믿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유현은 그 세 가지가 한꺼번에 약해질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때인 것이다.
  그런 유현을 말없이 바라보던 유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신에게는 사랑받지 못해도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존재가 인간이야.”
  “뭐?”
  “그들의 삶은 항상 역동적이잖아?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어, 그런 인간들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도 많고, 그런 인간들의 감정을 배우는 이들도 많지.”
  그렇게 빙긋 웃은 유한이 마저 입을 열었다.
  “인간의 정신체가 드래곤의 육체에 깃들었다 해도 나쁠 건 없아. 그것도 매력의 하나니까. 인간적인 드래곤... 멋지잖아?”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유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한은 경악해야 했다.
  “헉!”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유현 때문이었다. 유현의 행동에 유한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누, 누나.......”
  “잠시만 이러고 있자.”
  그런 유현을 바라보던 유한이 슬쩍 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어린애가 된 것 같잖아?”
  유한의 행동에 유현이 말했다.
  “하하하.......”
  유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동안 유한을 안고 있던 유현이 슬쩍 유한에게서 떨어졌다. 그런 유현을 유한이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네. 고맙다.”
  유현의 유한을 보며 말했다.
  “에... 뭐, 내가 좋았지. 그럼 내가 좀 좋아진 거야?”
  눈을 반짝거리며 말하는 유한. 그런 유한을 보며 유현이 취한 행동은 간단했다.
  빠악!
  “악!”
  유현이 유한의 머리를 한 대 쳤다.
  “네가 아니라 휘안이나 안영이 있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쳇!”
  그 말에 입술을 쭉 내미는 유한. 그런 유한을 보며 싱긋 웃은 유현이 말했다.
  “그래도 네 말 덕분에 빨리 진정됐어. 고마워.”
  “드래곤이 의지력과 정신력, 자신을 믿는 마음이 약해지면 광룡이 될 수도 있어. 조심해.”
  “조심할게.”
  유한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그런데 휘안이나 안영은 왜 안 오냐? 내가 힘을 개방했으면 당장 튀어 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아... 잠시 외출했어.”
  “그래?”
  그렇게 말한 유현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평소의 유현처럼 돌아온 유현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유한이었다.
  방금 전의 유한은 너무나도 불안정해 보였었다.
  ‘설마... 자주 저러는 건 아니겠지?’
  좋지 않은 현상이었다.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불안하기도 한 존재라는 건가?’
  유한은 너무도 자신이 사랑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드래곤을 보며 쓰게 웃었다. 정말 떨어지는 것을 무섭게 만드는 유현이었다.
    만남
  “싫어!”
  “너 계속 말 안 들을래?”
  월린이 말했다. 하지만 화린은 고개를 세게 저으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아직 집에 가기 싫어!”
  “휴우.......”
  화린은 어제부터 이런 식이었다.
  월린이 연신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데도 고집스럽게 가기 싫다고 하니, 이제는 계속 밖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평생 산속에서 지낼 수는 없겠지만... 너무 일렀다.
  “너 이러면 강제로 끌고 간다.”
  “싫어!”
  화린이는 화린이 나름대로 불안했다.
  ‘언니가 어제부터 왜 안 보이지?’
  바로 어제부터 유현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두 자매의 대치를 보며 은월이 말했다.
  “싫다는 애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웃기는군.”
  그 말에 월린이 말했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상관있어. 난 화린이의 친구거든?”
  순간 은월의 은안이 번뜩인다. 그런 은월을 매섭게 노려보는 월린.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의 대치를 말없이 바라보는 소현과 안절부절못하는 화린.
  달칵!
  그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유현이 들어왔다. 유현의 머리카락색은 어제와 전혀 변함없는 은발이었다.
  “수련시간이다. 나와.”
  그렇게 통보를 한 유현이 미련 없이 방에서 나갔다. 그런 유현을 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네 사람이었다.
  “왜 갑작스럽게 은발로 바뀐 거야?”
  화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원래 내 머리색이야.”
  그런 화린의 말에 유현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이상하냐?”
  “아니, 예뻐.”
  유현의 말에 화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 화린을 보며 피식 웃는 유현이었다.
  “다시 흑발로 바꾸지 마. 응?”
  “네 눈을 만족시키려고 남들 시선 한 몸에 받기는 싫다.”
  그렇게 ? 잘라 말한 유현이 머리카락을 스르륵 쓸어 넘겼다. 그와 동시에 머리카락이 흑발로 변해버렸다. 그것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짓는 화린이었다.
  잠시 후 화린이 말했다.
  “히잉~ 언니는 은발이 더 잘 어울려.”
  “시끄러워.”
  화린의 칭얼거림에 유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한 유현은 자신의 옆에서 칭얼거리며 달라붙는 화린을 살짝 떨어뜨렸다. 그런 유현의 행동에 화린이 멈칫했다.
  “언니?”
  화린이 유현을 불렀다.
  평소라면 한 번 정도는 뒤를 돌아보았을 유현인지라 화린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언니!”
  그런 유현을 보며 화들? 놀라 유현을 부르는 화린.
  “응? 왜 그래?”
  그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을 유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월린의 목소리였다. 의아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월린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아, 아니 월린 말고 유현 언니.”
  “저 사람?”
  화린의 말에 슬쩍 얼굴을 찌푸린 월린.
  “유현 언니!”
  월린이 얼굴을 찌푸리던 말던 화린이 유현을 불렀다. 화린의 부름에 유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
  “왜 내 말을 무시해?”
  “내가?”
  “어, 두 번이나 불렀는데 무시했잖아.”
  “그거 네 언니 부른 거 아니었냐?”
  화린의 말에 유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여기에 언니 말고 누가 있.......”
  말하다 말고 화린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어느새 자신에게 언니라 불릴 만한 한 사람 늘었던 것이다. 이제까지는 너무 자연스러워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화린을 보며 혀를 찬 유현이 월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마. 네 언니는 저기 있잖아?”
  그렇게 화린에게 말한 유현이 다시 뒤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유현의 뒷모습을 보고 화린을 하루사이에 갑자기 자신과 유현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왜?’
  왜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인가?
  화린의 손이 떨렸다.
  “유현 언.......”
  화린이 다시 유현을 부르려고 했다.
  “뭘 멍하게 있는 거야?”
  하지만 화린은 유현을 부를 수 없었다. 곧바로 소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에 그의 얼굴을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에? 유현 언니가.......”
  “저 인간이 왜?”
  “아, 아무것도 아냐.”
  화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화린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던 소현이 말했다.
  “늦으면 기합밖에 더 주겠냐? 빨리 가자.”
  “응.......”
  왠지 힘없어 보이는 화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소현이었다.
  늘 수련하는 장소로 온 유현은 소현과 은월과 비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당연하게도 소현과 은월은 뻗어버렸다. 유현에게 신나게 얻어터진 것이다.
  유현은 그런 소현과 은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전보다는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지?”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신나게 얻어터져 이미 정신이 해롱해롱한 상태였던 것이다. 아무튼 유현과 은월, 소현의 비무(일방적인 유현의 구타)를 보며 월린이 화린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수련할 때 수련시키는 사람은 매일 저렇게 수련시키고, 수련 받는 녀석들은 매일 저렇게 수련해?”
  “어.”
  월린의 말에 화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화린의 말에 월린이 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저런 혹독한 구타를 받고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월린이 의문을 가지든 말든 유현은 소현과 은월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화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화린은 검을 뽑아서 유현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잠깐!”
  하지만 유현의 말에 멈칫하며 멈춰서야 했다.
  “너랑 네 언니는 같은 무공을 익혔지?”
  “응, 그건 왜?”
  “네 언니와 비무 한번 해봐라.”
  “에엑! 어, 언니랑?”
  “...뭐?”
  유현의 말에 화린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고, 월린은 갑작스러운 화린의 비명에 생각을 멈추고 화린을 바라보았다.
  화린이 월린을 힐끔 봐라보았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언니의 상대가 될 리가.......”
  “난 네 언니보다 강하다. 그런 나와 내내 비무한 너야.”
  월린과의 비무를 회피하려는 화린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너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져봐.”
  유현의 말에 화린이 꾹 검을 쥐었다.
  “언니, 나랑 비무해!”
  잠시 가만히 있던 화린이 월린을 보며 외쳤다. 그런 화린을 보며 월린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공수련이라고는 좋아하지도 않았던 화린이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그런 화린이가 저 여자에게 수련을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직접 비무 신청을 해왔고.......
  그렇게 무공수련을 게을리 하던 화린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뭔지 궁금해지는 월린이었다.
  “괜찮겠어? 안 봐준다?”
  아무튼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비무 신청을 해온 자신의 동생을 상대해줄 생각에 기쁜 월린이 물었다.
  “응!”
  월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화린. 그런 화린을 보며 피식 웃은 월린이 검을 뽑아든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소현과 은월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두 자매를 바라본다.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자세를 취하는 두 사람.
  내공은 월린보다 화린이 더 많았다. 하지만 경지는 월린이 더 뛰어난 상태.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이기는 것은 월린이다.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탁!
  챙!
  먼저 공격을 시도 한 것은 화린이었다. 화린이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는 검을 월린은 맞서지 않고 피했다.
  쾅!
  화린의 공격이 땅바닥을 내려친다. 아무리 월린이라도 화린의 괴력이 실린 공격을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꺼려지는 것이 당연했다.
  땅을 내려침과 동시에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러자 그런 흙먼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월린. 그야말로 전광석화라 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이전의 화린이라면 피하기도 막기도 힘든 공격이었다.
  하지만.......
  ‘유현 언니보다... 느려!’
  그렇다. 유현보다 느린 공격이다. 매일 유현에게 신나게 얻어 터진 화린이었다. 그러면서 유현의 공격을 몇 개나마 피할 수 있게 된 화린이었는데 월린의 공격이라고 피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휙!
  아무튼 월린의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월린.
  챙!
  월린이 자신을 향해 베어지는 화린의 선잔을 다급하게 막았다.
  휘청!
  당연하게도 그 어마어마한 괴력에 휘청거리는 월린이었다.
  휘익!
  튕겨져 나갔던 월린의 검이 다시 화린을 노린다.
  ‘이런.......’
  그런 화린의 검을 보며 당혹한 표정을 지은 월린.
  “빙월풍산검”
  월린이 빠르게 초식을 사용했다. 빙월산검의 방어초식 중 하나로 공격하는 상대를 튕겨내는 초식. 하지만 다급한 나머지 내공을 많이 넣어 화린이가 공중으로 튕겨져 나가는 결과로 이어져버렸다.
  “꺅!”
  공중으로 튕겨져 나간 화린. 아직 화린이 막을 만한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화린을 보며 당혹한 표정을 지은 월린이 화린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딱!
  갑자기 들리는 손가락 퉁기는 소리. 그와 함께 빠르게 떨어지던 화린의 추락 속도가 줄었다.
  “어어?”
  화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한 바람이 자신을 지탱해주는 듯한 느낌. 아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지상에 착륙한 화린.
  “화린아 괜찮아?”
  월린이 당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응... 괜찮아.”
  화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현을 바라보았다.
  “언니... 고마워.”
  화린이 유현에게 말했다. 그런 화린의 말에 유현이 말했다.
  “뭐, 비무 결과가 괜찮았으니까, 계속 반격하나 못 했으면 좀 굴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유현이 뒤돌아서서 말했다.
  “오늘 수련은 여기서 끝이다.”
  “에?”
  “응?”
  “이걸로 끝?”
  유현의 말에 화린, 소현, 은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비무가 끝난 다음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진법에 들어가는 것.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수련이 저절로 되니 말이다. 실전 경험도 쌓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의아한 세 사람이었다.
  “어, 오늘은 쉬어라.”
  그렇게 말한 유현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유현의 뒤를 화린이 따라가려고 했다. 보통 때는 유현을 졸졸 따라다니는 화린이었기에 소현과 은월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월린도 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화린을 따라가려고 했다.
  “너 왜 따라와?”
  하지만 그런 화린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은 유현이었다.
  “에?”
  유현의 말에 멈칫하며 멍한 표정을 짓는 화린.
  “평소에도 매일 이렇잖아? 언니랑 늘 같이 붙어서.......”
  “네 언니는 저기 있잖아?”
  “월린 언니 말고, 유현 언니!”
  “나?”
  화린의 말에 유현이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나한테 언니가 월린 언니랑 유현 언니 말고 어디 있어?!”
  버럭 소리치는 화린.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내가 네 언니처럼 느껴져?”
  “다, 당연하잖아!”
  그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현이 잠시 후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쩌냐? 난 네 언니가 싫다.”
  유현의 말에 화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네 부모도 싫어.”
  그 말에 화린은 물론 월린이도 굳었다.
  “너는... 모르겠다, 좋기는 한데... 네 소중한 이들이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이라서 말이야.”
  그렇게 말한 유현이 다시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는 그렇다 치고... 부모님은 왜 싫으신 거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월린이었다.
  자신이야 유현이 싫어할 수도 있다. 자신도 유현이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부모들까지 그런단 말인가.
  “겨우 별자리 하나 때문에 애를 버리는 무책임한 인간들... 딱 질색이다, 혐오대상이야.”
  그렇게 냉소하며 말하는 유현을 보며 월린과 화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어, 언니.”
  멀어져 가는 유현을 보며 월린과 화린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유현을 불렀다. 하지만 유현은 두 자매의 말을 무시하며 걸어갈 뿐이었다.
  “언니가 이상해요.”
  사흘이 지났다.
  수련할 떄 외에는 자신에게 말도 붙이지 않는 유현. 무언가를 물어도 간단하게 대답한 하고 마는 유현을 보며 마음이 아픈 화린이었다. 왜인지 자신과 유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흘 전 유현이 했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 그것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제는 유현 역시 화린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아픈 게 싫었다.
  자신의 가족만큼이나 좋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싫어한다니. 특히... 자신의 부모님이라면 치를 떠는 듯 싫어하는 말투라니. 화린은 점점 우울해했다.
  결국 화린은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실마리를 잡으러 유한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런 화린을 보며 유한이 백금빛 머리카락을 긁으며 말했다.
  “누나의 어디가?”
  책을 읽던 유한이 화린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사흘 전부터... 저랑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 말에 유한이 말했다.
  “그거라면 간단하지.”
  “네? 이유가 뭔지 아세요?”
  유한의 말에 화린이 다급하게 묻는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네가 너무도 순하고, 착하고, 남을 원망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에? 그게 무슨......?”
  유한의 말에 화린이 멍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너 말이야 유현 누나가 너희 부모님을 죽였다고 생각해봐.”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유한의 말에 화린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치를 떨며 소리쳤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만약에.”
  유한의 말에 화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만약에라도 그런 끔찍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화린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그 끔찍한 생각을 해봐, 너라면... 유현 누나를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 말에 화린이 침묵한다.
  자신이라면... 부모님을 죽인 유현을... 미워할 수.......
  “...만약 제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다면... 유현 언니라도 미워할... 거예요.”
  그 말에 유한이 피식 웃는다.
  “아니, 넌 누나를 미워하지 못해.”
  “.......”
  그 말에 화린에게선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그거랑 언니가 나에게 거리를 두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누나는... 네 부모님을 본다면 바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네?”
  유한의 말에 화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야. 네 부모님과 유현 언니가 만난다면 바로 칼부림이 일어난다는 소리야.”
  “어, 어째서?”
  “그거야 나도 잘 모르지.”
  화린의 물음에 유한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풀이 죽어 침묵하는 화린. 그런 화린을 보며 유한이 말했다.
  “누나는 네가 상처받는 게 싫은 거야,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자신을 원망 하나 못하고 괴로워하는 널 보기 싫은 거고, 그래서 너를 뗴어내려고 하는 거야, 참 바보 같다니까?”
  유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보면 그녀는 정말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유한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화린은 한숨을 푹 쉬며 자신들이 매일 수련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문득 수련하는 곳에 유현이 있는 것을 보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잇는 유현에게 가까이 다가가 화린이 그녀를 불렀다.
  “언니.”
  화린이 유현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자 유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하러 왔냐?”
  “우리 부모님이... 왜 싫어?”
  그 말에 유현이 뜨끔한 표정으로 화린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세... 왜 싫을까?”
  화린은 물음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ㅁ라했다. 그런 유현을 바라보던 화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랑 놀러가자!”
  그렇게 말한 화린이 유현의 손을 잡고 잡아끈다. 그런 화린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쉰 유현.
  “놔라, 따라가 줄 테니.”
  “히히히.”
  유현의 말에 그제야 화린이 웃으며 유현의 손을 놓았다.
  저벅! 저벅!
  “개왕 어르신 말로는 여기에 월린이와 화린이 다 있는군요.”
  편안한 복장을 한 여인의 말에 또한 그녀처럼 편안한 복장을 한 남성이 말했다.
  “애들이 비무대회에 참가했을 것 같소?”
  “그거야 잘 모르겠지만... 비무대회에 참가한다면 참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그렇게 웃으며 말한 여인을 보며 다정히 웃은 남성이 말했다.
  “개방으로 가죠.”
  “네.”
  “언니, 나 저 옷 사줘!”
  화린이 따뜻해 보이는 옷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어차피 추위도 타지 않잖아?”
  “에이, 그래도 사줘.”
  어머니가 만들어 준 옷이라며 절대 벗으려 하지 않던 옷을 갈아입는다는 화린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 유현이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은 유현 또한 꺼려지는 일이기 떄문에 더 조르기 전에 화린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두 사람이었다.
  “응?”
  “응? 저 옷은.......”
  그때 한 쌍의 남녀가 놀란 눈으로 옷가게에 들어가는 소녀를 바라본다. 이 날씨에 얼어 죽고 싶은 모양인지 엄청 추워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휘둥그레 눈을 뜨는 두 사람.
  그 옷은 빙월산검을 계승하는 제자들이 즐겨 입는 옷이었다. 저 옷을 무림에서 입고 다닐 사람은 단 세 명.
  “화린이 아니에요?”
  “화린이 맞소.”
  유강월과 월화는 그녀가 자신들의 둘째 딸이라고 확신했다.
  가면을 쓰고 있어 잘 모르겠지만 키가 월린보다 작았으며 무엇보다 허리에 차고 있는 선잔이 화린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강월과 월화는 화린이 들어간 옷 가게로 따라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손님.”
  옷을 다 입은 화린이 웃으며 유현 옆에 딱 붙었다.
  “언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야, 너 왜 계속 달라붙어? 안 떨어져?”
  “난 상처 입지 않아.”
  자신에게 달라붙는 화린을 보며 짜증을 내던 유현은 갑작스러운 화린의 말에 멈칫했다. 화린은 똑바로 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랑 언니랑 싸워봤자 부모님이 이길 게 뻔해. 우리 부모님은 현경의 고수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화린을 보며 유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뭐 들었냐? 난 현경의 고수 한두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고 저번에 말하지 않았어?”
  “언니가 우리 부모님을 죽일 리 없잖아.”
  “글세... 그거야 모르지. 만나자마자 바로 칼부림이 일어날지 말이야.”
  화린의 말에 유현이 차갑게 웃었다. 그러자 그런 유현의 팔을 꾹 잡은 화린이었다. 그런 화린을 보며 한숨을 쉰 유현이 생각했다.
  ‘정말... 이 녀석 부모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에 화린을 따라 나설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에게 원망이 있었지만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그 죄를 물어 사뿐히 즈려밟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시현에게 자신이 버려진 이유가 파멸성 때문이란 말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넘어 갈 수 있었다. 자신은 그 이유를 모르니까! 그들이 자신을 그렇게 버렸어야 하는 이유 말이다.
  그런데 파멸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린 것이라면 절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겨우 별자리 때문에 자식을 버렸다니...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동이 아닌가?
  아무튼 죽이리라 다짐했던 그 마음이 화린이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꼭 죽일 필요야... 그 인간들 떄문에 혈사 아저씨랑 무연 형, 안영, 휘안이도 만났고... 또...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렇게 유현의 마음이 흔들릴 때였다.
  “응?”
  자신의 바로 앞에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고개를 든 유현은 제 곁에 있던 화린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보았다. 유현은 자연스레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숨을 푹 쉬며 화린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녀가 있었다.
  “어, 어머니, 아버지... 헉!”
  멍하니 중얼거리던 화린은 이내 제 실수를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앞의 두 사람의 정체를 벌써 알아차린 유현이었다.
  유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휴, 드디어 찾았다.”
  “이 녀석,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지 아느냐?”
  강월과 월화가 한숨을 푹 쉬며 화린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화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굳어 있었다.
  “응? 화린아?”
  그런 화린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강월.
  “잠시 이야기 좀 할까?”
  하지만 그런 강월의 부름에 대답한 것은 화린이가 아니라 유현이었다. 화린의 옆에 붙어 있던 여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강월이 묻는다.
  “소저는 누구시오?”
  “나? 아아... 나는 말이야.”
  “저, 저를 이때까지 돌봐주신 분이에요. 어머니, 아버지.”
  화린이 가듭하게 말했다. 그런 화린의 말에 강월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하하, 개왕 어르신께서 말하신 그 소저시군요, 고맙소.”
  강월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강월을 보며 차가운 어조로 유현이 말했다.
  “그렇게 고마워 할 필요도 없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강월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캉!
  강월이 자신의 목을 베어오는 검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퍽!
  바로 자신의 이마로 날아오는 유현의 주먹에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린 강월이었다.
  쾅!
  뒤쪽에 있는 가게에 처박혀버린 강월. 그런 강월을 보며 월화가 놀란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린도 다급하게 유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 언니!”
  그런 화린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유현이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이 말했다.
  “어, 언니... 그, 그만해... 제발.......”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던 유현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아... 여기서 끝낼게.”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한 유현이 은아를 검집에 꽂았다. 그리고 월화를 보며 말했다.
  “내가 유강월을 공격하는데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군.”
  그 말에 월화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소저가 강월 그이를 죽일 생각이 없으니 그렇죠.”
  그 말에 유현이 말했다.
  “화린이만 아니었음 유강월은 물론 당신도 죽였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유현을 향해 월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요?”
  “없어, 그냥 당신들이 싫은 것뿐이니까.”
  “저희가 왜 싫냐요?”
  월화의 물음에 유현이 말했다.
  “파멸성”
  그 말에 월화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소저, 잠깐만요!”
  월화가 유현을 불렀다. 하지만 월화의 부름에도 유현은 그 부름을 무시하고 갈뿐이었다. 그런 유현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는 월화였다.
  파멸성.......
  27년 전 자신이 낳았지만 파멸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버려야 했던 아들을 그제야 떠올린 월화였다.
    황실 비무대회의 시작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강윤아.......’
  한 여인이 다섯 살 정도의 사내아이를 끌어안은 채 흐느끼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여인. 그리고 잠시 후 여인은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아이를 땅바닥에 내버려두고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일어난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에게 있어 지옥의 시작이었다.
  굶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으며, 점점 말라가는 몸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도 돌봐주는 이가 없으니 마을 아이들에게 얻어터지기도 일쑤였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이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의 현생과 후생을 모두 합쳐 가장 끔찍한 기억들이 이어졌다.
  가만히 감겨 있던 유현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고 있었던... 기억인가?’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리는 유현.
  분명 꿈에서 본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 여인은 월화였다. 그렇다는 건 이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이라는 소리였다.
  ‘강윤...? 강윤이라.......’
  아마도 버려지던 그때 함께 잃어버린 자신의 진짜 이름은 유강윤인 것 같았다.
  유현이 피식 웃었다.
  ‘다섯 살 때까지는 그래도 부모라는 존재와 함께 있었나?’
  씁쓸한 표정으로 웃은 유현이 고개를 흔들며 침상 위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드디어 비무대회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미 참가신청은 모두 끝난 상태다. 유현, 회안, 은월, 소현이 모두 참가하게 된 비무대회
  ‘무연 형도 나오려나?’
  그 생각을 하고서야 놀라 멈칫하는 유현. 유현은 이내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신 구슬을 꺼낸 유현은 그것에 기를 불어넣었다.
  그와 함께 우웅 울리기 시작하는 통신구슬.
  “혈사 아저씨.”
  유현이 통신구슬에 대고 혈사를 불렀다. 그와 함께 통신구슬에서 반응이 보였다.
  우웅.
  -응? 유현이냐?
  혈사의 목소리에 유현이 말했다.
  “아아... 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
  -쯧, 좀 더 자주 연락하지 그러냐. 아무튼 물어볼게 뭐냐?
  “무연 형이 비무대회에 참가해요?”
  -무연이? 참가하지.
  “그래요?”
  -어제쯤 수도에 도착했을 거다. 그런데 왜 그러냐?
  “저도 참가하거든요.”
  -너도?
  “네.
  유현의 말에 혈사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비무대회가 끝나고 천마교에 갈 것 같아요.”
  -으음?
  유현의 말에 혈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마교에 오겠단 말이냐?
  “네, 그러니까 제가 쓰던 방 비워두세요.”
  -푸헐헐헐, 그러마.
  유현의 말에 혈사가 유쾌한 표정으로 웃었다.
  “안영도 데려갈게요.”
  -흠... 만소 놈이 안영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 궁금하곤, 큭큭큭큭큭.......
  그 말에 유현도 피식 웃었다.
  안영이 능글맞다면 안영의 아버지인 악만소는 날카로웠다. 그는 늘 날카로운 눈으로 모든 일을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바로 목이 날아가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영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점이라면 안영이 더 다가가기 쉽다고나 할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악만소에게는 정말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런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꽤 재미있을 듯하다.
  아무튼 방으로 돌아오는 화린의 기척을 느끼며 유현은 서툴러 자리를 일어났다.
  “통신 끊습니다.”
  -알았다.
  통신을 끊은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황실 비무대회. 그 황실 비무대회에 파란을 일으킬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인 님... 사기를 죽이십시오, 소교주님이십니다.”
  “닥쳐.”
  “.......”
  무사의 말에 사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사인의 목소리에 움찔하는 무사. 시현은 그런 사인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이런 괴물이 혈교 내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시현이 살후를 바라본다. 상당히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살후를 바라보는 시현의 눈에는 진득한 살기가 머물러 있었다.
  그 살기에 움찔하는 살후.
  잠시 굳어 있던 살후가 말했다.
  “사인 님은 교주님께서 직접 혈 씨를 내리신 분이십니다.”
  “기운을 보아하니 생강시인데... 교주가 생강시에게 혈 씨를 내려?”
  비웃는 듯 한 말투로 시현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런 시현을 보며 살후가 대답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 누구의 명도 듣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 말에 시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강시인데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하며 명을 듣지 않아? 흥미로운 이야기이군.”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 웃는 시현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뭐지?”
  “나의 혼.”
  “너의 혼?”
  사인의 말에 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그런 시현의 되물음에 사인이 말했다.
  “그렇다.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 떠돌고 있는 나의 혼을 만나야 한다.”
  “흐음... 이 세상 어딘가?”
  눈앞에 있는,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인이란 생강시의 말에 시현이 피식 웃었다.
  “본교가 네 혼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나?”
  “그래.”
  그 말에 시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용할 대로 이용한 다음 버릴지도 모르거든?”
  그 말에 사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인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와 사기, 그리고 마기가 풀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호오?”
  그런 사인의 기운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는 시현.
  ‘망할 자식!’
  그런 시현을 보며 살후는 속으로 시현을 욕했다. 저 괴물을 도발하다니... 만약 저 괴물이 저 상태로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은 모두 죽음이었다.
  “사, 사인 님 진정을.......”
  한 혈교 무사가 사인에게 말을 걸었다.
  퍼억!
  하지만 그와 함께 혈교 무사의 머리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털썩!
  무사의 몸이 그대로 쓰러지며 뇌수가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몸서리를 치는 혈교무사들. 살후 또한 조금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인을 보면서도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것은 시현뿐이었다.
  “이봐, 이봐 진정하라고.”
  시현이 사인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사인은 그저 진득한 살기만 뿌릴 뿐이었다.
  “후후후... 지금 윗대가리들이 그렇다는 거니까 물갈이가 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믿든 말든 그것은 네 자유다. 뭐 내가 교주의 자리에 오르면 네가 뭘 하든 신경쓰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런 시현의 말에 살후가 다급하게 말했다.
  “사, 사인 님! 소교주님이 말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살후의 말에 사인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크윽... 일단 이놈을 진정시켜야 한다. 소교주라면 몰라도 여기에 있는 우리는 전부 죽음이다.’
  만약 여기서 사인이 폭주라도 한다면 현경의 경지인 시현이라면 몰라도 다른 이들은 정말로 죽을 것이다. 그만큼 사인의 무력은 무서운 것이었다. 혈혈단신으로 혈교의 본타를 쓸고 다녔던 이가 바로 사인이었다.
  “일단 믿어주지.”
  사인의 말에 살후가 식은땀을 흘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흐음... 그런데 넌 누구의 시체로 만든 혈강시야?”
  “모른다, 내가 누구였는지.”
  “그래?”
  그 말에 시현이 살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후 장로는 사인이 누군지 아세요?”
  “모, 모릅니다.”
  시현의 말에 살후가 대답했다.
  “호? 그래요?”
  살후의 대답에 시현이 비꼬듯 되물었다. 그 어조로 보아 전혀 믿지 않는 듯했다.
  “흐음... 이 녀석도 비무대회에 참가하나요?”
  “참가합니다.”
  “헤에? 그래요? 경쟁자가 늘었군.”
  그렇게 중얼거린 시현이 사인을 보며 말했다.
  “이봐, 비무대회에서 나랑 만난다면 봐달라고.”
  이렇게 시현과 사인의 묘한 첫 만남이 끝이 나버렸다.
  시현은 사인이 유현의 육체로 만든 생강시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사인이 파멸성의 기운을 들어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인은 시현의 혈천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자, 비무대회장으로 가자고.”
  시현이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런 시현의 뒷모습은 노려보며 살후는 자신이 아는 욕이란 욕은 모두 퍼붓고 있었다.
  황실 비무대회.
  이는 5년만에 한 번씩 열리는 중원에서 가장 큰 비무대회로 이 대회에는 15세부터 시작해 40세의 후기지수들이 참가하는 가장 큰 대회였다.
  예선전에서만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림인들이 모여 들었다. 물론 황실에서 내려준 패를 가지고 있거나 초대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런 귀찮은 예선전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응? 언니도 나갈 꺼야?”
  “부모님이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셨어.”
  화린은 유현이가 사준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초대장이 있는 화린이야 예선전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월린 역시 개왕에게 받은 패가 있기에 예선전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아무튼 월린 역시 움직이기 편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월화가 사준 옷은 눈에 너무 띈다는 이유로 옷을 갈아 입혔던 것이다. 월화 역시 눈에 너무 띄기 때문에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두 자매를 보던 유현은 문득 대회장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비무장에는 현 무림 사대 세력의 대표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다음에 황실 사람이 대회규칙을 말해준다. 그런 이유로 비무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림맹 대표들이다!”
  “오! 저자는 무림맹주인 검제 모용태현이 아닌가?”
  “검왕 남궁태다!”
  “도제 팽가위다!”
  “옛날 무림 삼협이라 불리던 이들이 아닌가?”
  “그리고 검제와 검왕이 같이 오다니... 그렇다면 검마도 오지 않을까?”
  “무림에서 검을 쓰는 최고수들이 한자리에 다 모이겠군!”
  “와아아아아아!”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현이 비웃었다.
  “웃기고 있네, 검마보다는 광마가 검을 더 잘 다루는 것을 모르나?”
  사파의 최고수 검마보다는 천마교 교주 광마가 검을 더 잘 다룬다. 둘이 검으로 붙는다면 검마의 패배였다. 그것은 검왕이나 검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앞에 검자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최고수고 생각하다니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유현의 말에 소현이 말했다.
  “검마와 광마는 비슷비슷한 수준의 최고수들이 아닌가?”
  “흥! 천마교의 광마와 같은 연배의 고수들만 해도 세인들이 말하는 삼마이제삼왕의 반열에 들 정도로 강해. 천마대 대주도 마찬가지고. 천마교의 사대 무력단체의 수장들만 해도 전부 다 현경의 고수다!”
  그 말에 휘안, 안영, 유한을 제외한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이 진짜라면 천마교가 보유한 현경의 고수만 해도 10명이 넘어가지 않는가?
  “뭐, 중원 무림이 천마교를 과소평가 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휘안이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사파에도 숨은 고수들이 많이 있잖아? 사도문 문주이자 네 스승인 아해안만 해도 현경의 여고수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세인들은 정파를 우위에 쳐서 떠들어댈 뿐이야.”
  유현이 말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다시 한 번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사파다!”
  “사황성 대표들이다!”
  “검마 마광천이다!”
  “악권수조 아해안!”
  “오오! 권왕 서열천이다!”
  무림맹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엄청난 고수들의 등장에 많은 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부님?”
  소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악권수조라 불리는 자신의 사부가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흐음... 아해안인가?”
  그냥 평범해 보이는 인상 좋은 중년 여인.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만나러 가볼래?”
  “응?”
  유현의 말에 소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그 반응은?”
  “아니, 쉽게 못 만나게 할 것 같더니.......”
  “어차피 네가 비무대회에 나가면 네 사부는 바로 알아차려.”
  “그것도 그러네.”
  소현의 얼굴이 밝아진다. 오랜만에 사부를 보는 것이 기쁜 모양이다. 소현이 막 사파 고수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진득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휘~익!”
  유한이 휘파람을 불었다.
  “흠... 천마교군.”
  휘안이 중얼거렸다. 모두의 눈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우우우... 마교다.......”
  “마교의 무사들이다!”
  “정말 섬뜩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로구나.”
  “저 어린애는 누구지? 어째서 저런 어린아이가.......”
  “살혈! 저 어린애가 마교 살가의 장로 혈겁 살혈이다.”
  “헉! 저 어린애가?”
  “말도 안 되는! 무슨 이상한 수법을 쓴 것이지?”
  수없이 많은 말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살혈 아저씨도 왔나?”
  유현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무표정한 어린아이는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마치 무언가 찾는 듯.
  “흐음... 살혈 장로님이 무언가를 찾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안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유현에게 묻는다.
  “날 찾는 것일지도.......”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혈겁 살혈 장로가 네 존재를 어떻게 알아?”
  “혈사 아저씨랑 살혈 아저씨는 마교에서 유일하게 내가 중원에 있다는 걸 알아.”
  “어떻게?”
  “내가 중원에 왔을 때 얼마 안 돼서 혈사 아저씨랑 만났거든. 그때 혈사 아저씨에게 통신구슬을 줬어.”
  “...그런 이야기는 안 하셨잖습니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유현의 말에 휘안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게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살혈을 바라보던 유현이 살혈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저씨, 서남쪽 방향]
  움찔!
  전음과 함께 살혈이 움찔했다. 그와 함께 유현이 말해준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살혈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유현이었다.
  그런 유현을 봄 살혈의 얼굴에 조금 미소가 어렸다.
  “마교 소교주 흑마룡 사무연이다!”
  “삼룡 가운데 한 사람인 흑마룡?”
  “어디? 어디?”
  사람들이 무연을 발견했는지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에 유현도 살후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무연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걷고 있는 무연을 발견했다. 그런 무연을 보고 유현이 쓰게 웃었다.
  ‘장난기 같은 거 많이 없어졌네.......’
  많이 변한 듯 보이는 무연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무연을 보니 정말 반가운 유현이었다.
  무연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현은 순간 무연과 눈이 마주쳤다. 무연의 무심한 눈을 보며 유현이 싱긋 웃었다. 그런 유현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무연이었지만 이내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 없는 무연이었다.
  ‘뭐지?’
  시설을 뗄 수 없는 가면의 여인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무연.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러나 의문이 생길 때 여인을 보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그 이상한 감정에 얼굴을 찌푸린 무연이었다. 왜 자신이 생판 알지도 못하는 여인 때문에 그리움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이상한 기분이 든 무연이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버렸다. 그러나 계속 신경 쓰이며 불안한 마음에 빠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인이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린 무연. 하지만 그곳에 있던 여인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들은 당연하게도 혈교였다.
  “혈교다!”
  “물러가라!”
  “우우우!”
  “이 대회에는 왜 나왔냐?”
  여기저기서 야유가 울려 퍼졌다. 천마교의 등장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천마교 역시 혈교처럼 강시 같은 것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강시의 비중이 무사들과 비교해 본다면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싸울 때 만큼은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물러섬이 없는 강한 이들. 부러질지언정 굽혀지지 않는 이들.
  정파나 사파의 대문파나 세가들은 세뇌라고들 떠들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정직한 무인들이었다. 물론 계략 같은 것이 판을 치는 곳 또한 천마교지만, 그것은 거의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아무튼 중원 무림은 천마교를 무조건 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무를 높이 치는 그들의 그런 면을 높이 사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혈교는 달랐다.
  3년 전 그들이 바깥으로 드러나면서 일으킨 몇몇 일들은 정말 지옥을 연상시키는 일들밖에 없었다.
  피로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피의 교리를 내세운 혈교는 황실에서도 경계 대상이었다. 그들이 지나 간 곳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강처럼 흘러넘치는 피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무사들보다는 강시가 많이 동원되는 곳이 혈교였다.
  그런 많은 사람들의 야유를 무시한 혈교가 당당한 걸음으로 비무장 한쪽을 떡 하니 차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마교측에서 진득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중 무연의 살기는 압도적이었다. 바로 혈교 장로 살후가 이번 무리에 끼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이전에 천마교의 장로였지만 이제는 배신자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천마교의 수교주 하유현을 죽인 원수가 아닌가? 모든 이들이 천마교의 살기에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끼며 온몸에 돋은 소름을 문질러댈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대놓고 칼부림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이번 비무대회는 황실이 개최한 것이다. 나라의 많은 고관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대놓고 피를 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살후는 천마교인들의 살기에도 그저 무표정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천마교와 혈천교 사이에서 칼부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금의위 총대장과 동창의 총대장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각 단의 수장들, 혹은 단주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나옴과 동시에 천마교 측에서도 어쩔 수 없이 살기를 거둬들여야 했다.
  그와 함께 금의위 총대장과 동창의 총대장이 대회규칙이나 금기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회 규칙은 그저 보통 비무와 같았다.
  금기는 이러했다.
  첫째,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둘째, 고의로 상대에게 상처 입혀선 안 된다.
  셋째, 상대에게 싸울 힘이나 의사가 없얼 때는 공격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이런 금기를 건 것은 만약 같은 정파나, 사파, 마도들이 자신들끼리야 아무 상관없겠지만 전혀 다른 세력들과 비무할 때에도 일부러 죽이고 상처 입히고, 싸울 힘이 없는데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내버려두면 이렇게 될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아무튼 너무도 당연하고 지켜야 할 것이 예의인 금기였지만... 서로 적대 관계에 놓인 세력들이 비무를 펼치는 만큼 그 점을 강하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난 뒤 무림맹, 사황성, 천마교, 혈천교 중 초대장이나 초대장을 받은 이들은 각각 황실에서 마련 해준 자리로 가기 시작했다.
  무림맹에서는 검제와 검왕과 도제가, 사황성에서는 검마와 악권수조, 권왕이. 천마교에서는 흑마룡과 혈겁, 혈천교에서는 혈천룡과 의문의 복면인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렇기에 셋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혈교 측에서는 살후 장로가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모두가 복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무림의 쟁쟁하신 분들을 만나 영광입니다.”
  그렇게 묘한 대치상황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한 청년이 금의위와 동창의 총대장들과 함께 나타났다. 총대장들이 그를 극진히 대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는 상당한 인물의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저는 주후소라고 합니다.”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황실의 황태자인 것이다.
  “다 늙은 노인네들을 이렇게 환대하게 맞아 주시다니 저희야말로 영광입니다.
  검제 모용태현이 대표로 나서며 말했다. 그 말에 주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무림과 황실이 아무리 불가침 관계라고 하나 귀하들은 무림이란 하나의 세계에서 가장 높으신 분들이나 마찬가지인 분들입니다. 그런 귀하들에게 그에 맞는 예를 차릴 뿐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주후소를 바라보았다.
  대체로 황실에서는 무림이라고 하면 깔보는 성향이 적지 않아 있었다. 아무리 무림과 황실이 불가침이라 하나 그들도 자신들의 백성이란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무림도 황실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태자는 황실과 무림을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막말로 단결이 안 돼서 그렇지 단결만 된다면 지금 황실은 단결된 무림을 막을 힘이 없었다.
  아무튼 황태자는 황실과 무림을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막말로 단결이 안 돼서 그렇지 단결만 된다면 지금 황실은 단결된 무림을 막을 힘이 없었다.
  아무튼 황태자의 말에 도제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실에는 꽉 막힌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요, 하하하하하!”
  그런 도제를 보며 금의위와 동창의 총대장들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도제의 호탕한 말에 주후소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꼬가 막힌 황실 사람들과 다르니 편안하게 대하십시오.”
  “전하.”
  그런 주후소의 말에 금의위 총대장 무세건이 당황해 주후소를 불렀다. 하지만 그런 무세건의 부름에도 주후소는 빙긋 웃으며 말할 뿐입니다.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림은 무시해서는 안 될 곳이라고 그들의 저력은 실로 무섭습니다.”
  “하, 하오나.......”
  “저들은 그런 무림에서 최강자들에 손꼽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습니다. 예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
  주후소의 말에 금의위 총대장과 동창의 총대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 문득 주후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오지 않으려나?”
  바로 자신들이 직접 초대장을 써준 이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특히 은빛 가면을 쓴 여인이 생각나는 주후소였다.
  오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였다.
  “우리가 좀 늦었나?”
  “확실히 늦었지.”
  “선배 분들이 먼저 모이셨군요.”
  특별석으로 다가오는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유현 일행이었다. 혈겁은 익숙한 유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와 함께 무연도 흠칫했다.
  ‘이 목소리는.......“
  무연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아까 그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던 은빛 가면을 쓴 여인이 있었다. 그러자 무연의 눈에는 실망감이 깃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저 목소리만이 비슷할 뿐.......
  ‘죽은 녀석이... 살아 돌아올 리 없나?’
  그렇게 생각한 무연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무연과 다르게 살혈은 유현을 보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유현의 등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도를 보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제의 대도보다 커 보이는 유현의 대도. 그런 대도를 등에 매달고 있음에도 태연한 유현. 저 갸날픈 몸에서 저런 대도를 휘두를 힘이 나올까?’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악권수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일행에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소녀(?)는 자신이 문주로 있는 사도문의 소문주 소현이었다.
  “소현아!”
  악권수조가 소현이를 불렀다. 그런 악권수조를 보며 소현이 포권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사제지간인 것을 알고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마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저 아이가 그대가 말한 제자요?”
  “그렇죠... 행방불명되어서 걱정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저의 뒤통수를 때리는군요.”
  악권수조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런 악권수조를 보며 움찔하는 소현.
  평소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자신의 사부이지만 무서울 때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을 수련시킬 때였다.
  그리고 하나는 화가 났을 때... 그때 자신의 사부 악권수조는 정말 무서웠다. 명호 앞에 악이 붙을 정도로 사악하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아해한, 그녀는 정말로 무서운 여인이었다. 아무튼 소현이 움찔하는 것을 보며 유현이 의외라는 듯 소현을 바라보았다. 그 건방지던 녀석이 자신의 사부 앞에 서니 고양이 앞의 쥐가 되지 않는가?
  아무튼 그렇게 검마와 악권수조의 대화를 듣던 도제가 의아한 듯 말했다.
  “악권수조, 당신의 제자라고? 그러면 저기 있는 검제와 검왕의 손자는 뭐지? 휘안이가 아닌가?”
  도제가 휘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휘안에게 향한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휘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남궁태와 모용태현, 팽가위에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두 분을 뵙습니다. 팽 할아버지도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구나, 휘안아.”
  “으음... 건방진 손자, 거기 있는 악권수조의 제자는 뭐냐?”
  “친할아버지, 그 앞에 건방진 손자는 뭡니까? 그리고... 이 소현이라는 아이는.......”
  하지만 휘안의 말을 가로채서 말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유현이었다. 그런데 가로채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내용이 가히 경악적인 내용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살혈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
  “.......”
  그 말에 많은 이들이 침묵한다. 심지어 무연까지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천하의 혈겁 살혈을 보고 아저씨라고? 그것도 정파의 검제와 검왕의 손자와 사파의 악권수조의 제자가 있는 일행의 사람이?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구나. 흐음, 반갑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살혈이 드물게 웃으며 유현을 맞이했다. 그런 살혈을 향해 빙긋 웃은 유현이 말했다.
  “뭘 그리 멍청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거지?”
  무림의 높으신 분들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말하는 유현.
  그런 유현을 보며 휘안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흔들었으며 소현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휘안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아아, 내가 살혈 아저씨랑 이렇게 편하게 대하고 있지만 천마교 사람은 아니니 걱정 끄셔.”
  유현이 휘안에게 굳은 표정으로 묻는 검제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투가 참 가관이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살혈에게 향했다.
  과연 저 여인의 말이 사실일까? 만약 살혈이 여기서 아니라고 말한다면 공식적으로 그녀는 천마교의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현재 그녀가 천마교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천마신공의 계승자 중 한 사람이오, 마음만 먹는다면 교주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잇는 자이기도 하고.”
  그 말에 모두가 다시 경악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천마신공의 계승자라니? 무연 역시 경악한 눈으로 무연을 바라보았다. 시현 역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인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유현은 자신의 기운을 완벽하게 갈무리한 상태다. 아무리 사인이라고는 하나 그런 유현이 자신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녀를 보며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튼 살혈의 말에 유현이 퉁명스러운 투로 말했다.
  “교주직에는 관심 없어요. 망할 혈교랑 그 개 같은 오대장로 새끼들만 아작내고 다시 돌아 갈 거예요.
그렇게 말한 유현을 보며 시현이 말했다.
  “소저, 오랜만이군요.”
  “닥쳐, 꺼져.”
  시현이 말을 붙이자마자 으르렁거리는 유현, 그런 유현을 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시현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소저와는 싸우기 싫습니다. 소저는 정말 무섭거든요.”
  그런 시현을 보며 코웃음을 친 유현이 말했다.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교주랑 대립이나 하는 주제에.”
  “하하하... 그런 건 이런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시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유현이 그런 시현을 향해 보란 듯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들은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오늘 얼마나 놀라야 할까? 천마신공의 새로운 계승자가 나타나지 않나, 혈교에서 교주와 소교주가 대립한다고 하지 않나.
  아무튼 그렇게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시현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본교가 입장할 떄 보셨습니까?”
  “아니, 구역질나서 안 봤다.”
  혈교의 입장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 입장하기 전 비무장을 나가버린 유현이었다. 그렇기에 살후 역시 보지 못 했다.
  “아아, 역시 소저가 왜 가만히 있는가 했습니다. 저번에 분명 오대장로 만큼은 소저의 손으로 죽여 버린다고 하셨죠?”
  “그랬지.”
  “혈교의 소교주, 그만하게.”
  시현의 다음 말을 예상한 살혈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여기서 살후가 와 있다는 것을 유현에게 말하면... 그대로 유현은 폭주할 것이다.
  “저는 저 소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줄 뿐입니다만?”
  “그만하게.”
  살혈이 강압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런 살혈을 보며 시현이 빙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만 하죠.......”
  유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살혈이 왜 시현의 말을 막는 것인가? 아무튼 시현의 그만한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살혈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들리는 시현의 목소리에 얼굴이 그대로 일그러졌다.
  “살후 장로가 여기에 와 있답니다.”
  바로 뒤통수를 때리는 시현이었다.
  그 말에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가면을 쓰고 있던 안영이었다.
  “당장 잡아올까요?”
  안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런 안영을 향해 유현이 말했다.
  “놔둬.”
  유현의 의외의 반응에 살혈과 휘안, 안영, 유한, 시현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얼마나 천마교를 배신한 오대장로들을 못죽여 안달이 났는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잡아 죽이면 되니까.”
  하지만 다음에 들리는 유현의 차가운 말에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현은 황실이 여는 행사라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섞인 무시무시한 살기는 당장에라도 살후를 찾아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실려 있었다.
  아무튼 그런 유현을 보며 휘안이 말했다.
  “야, 진정해.”
  “누나, 지금 이 상태로 터지면 큰일 난다고.”
  두 사람의 친근한 말투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파의 중심이 되는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천마교의 사람은 아리라지만 천마교의 천마신공을 계승하고 있는 이와 친근하게 말하다니.
  “휘안아, 설명을 좀 해보아라.”
  남궁태가 조금 노한 눈으로 말했다. 그런 남궁태를 보며 휘안이 딱 잘라 말했다.
  “삼년동안 생과 사를 같이한 동료입니다. 나중에 설명을 해 드리죠.”
  제일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쉬운 말로 설명하는 휘안이었다.
  분위기가 좀 진정된 듯하자 주후소가 특별석 구석에 혼자 자리잡은 유현에게 다가갔다. 화린과 은월도 소현을 따라갔다. 유현이 일부러 떼어 놓은 것이었다.
  유현은 악권수조에게 소현이 자신을 따라가야만 했던 상황을 설명해주라고 했다. 물론 안 된다면 자신을 부르라 한 것이고.
  또 휘안과 유한은 남궁태, 모용태현, 팽가위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안영은 바람을 좀 쐬러
간다고 간 상태였다.
  월화는 황실에서 내려준 패가 있기는 하지만 초대장이나 초대장이 없기에 이런 곳에는 오지 못 했다. 패보다는 초대장이 있는 것을 더욱 높게 쳐주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혼자 남게 된 유현은 천마교 측에 합류하기도 뭣해서 혼자서 앉아 잇는 상태였다. 그런 유현을 검마와 권왕, 무연이 관찰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천마신공의 계승자. 그러나 천마교 사람이 아닌 중도라고 밝힌 여인,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중원이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또 한 번 요동칠 것인가?
  수많은 생각을 하는 그들이었다.
  “여, 다시 만나네?”
  주후소가 친근하게 유현에게 마을 걸었다.
  “꺼져.”
  감히 황태자에게 저런 식의 발언을 하는 유현, 그런 유현의 말을 듣고 유현에게 집중하던 검마와 권왕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무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하하하하하!”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주후소가 큰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했다. 역시 재미있는 여인이었다. 인사를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꺼져’라니.
  아무튼 갑작스러운 주후소의 웃음에 모두의 시선이 주후소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주후소는 여전히 자신을 보지 않고 비무장에서 비무를 하고 있는 무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유현을 바라보았다.
  “이봐, 이봐. 내가 명색이 황태자라고, 이야기할 때는 날 좀 보라고.”
  “누가 너랑 이야기한다고 했냐?”
  유현이 짜증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귀찮으니 저리 꺼져버려.”
  그렇게 말한 유현은 그 말 그대로 완전히 주후소에게 신경을 꺼버렸다.
  “아무리 봐도 재미있단 말이야?”
  그런 유현을 보며 주후소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몸만 여자지, 사고 자체는 남자다.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매력적으로 웃어봤자 역겨울 뿐이었다.
  “면상 치워.”
  유현이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유현의 말을 주후소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더욱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겨져 있을까?”
  주후소의 물음에 유현이 대답했다.
  “신경 꺼라.”
  “아아... 신경 쓰이는데?”
  “더 이상 집적거리면 황태자라도 목을 비틀어주지.”
  유현이 차갑게 냉소했다. 그런 유현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황태자에게 막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협박까지 하다니. 도대체 여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여인이었다.
  “헐... 난 목 비틀어지기 싫은데?”
  아무튼 유현의 말에 보란 듯 자신의 목을 잡고 능청을 떠는 주후소였다.
  “그럼 꺼져.”
  “흐음... 귀찮게 안 할 테니 네 옆에 있으면 안 될까?”
  유현의 말에 주후소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주후소를 노려보던 유현이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비무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유현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주후소였다.
  ‘정말 재미잇는 여인이군.’
  피식 웃은 주후소가 편안하게 앉아 자신도 비무를 보기 시작했다.
  쳉!
  “하앗!”
  “이얏!”
  제법 실력 있어 보이는 두 무인의 비무를 바라보던 유현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화린이 있었다. 유현이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주후소도 따라 반응을 보였다.
  “언니, 소현이의 사부라는 사람이 언니를 불러.”
  “흐음... 그래?”
  그렇게 대꾸한 유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렇게 유현이 화린을 보며 안내하라는 듯 말했다. 그런 유현을 바라보며 주후소가 물었다.
  “이봐, 정말 나랑 잠자리 같이 할 생각 없어?”
  그 말에 화린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런 주후소를 바라본 유현이 슬쩍 자신의 도를 살짝 뽑았다.
  “하하하! 농담이라고.”
  유현의 살기를 느낀 주후소는 웃으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주후소를 보며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 유현이었다.
  “도대체가 왜 저렇게 집적거리고 지랄이야?”
  유현이 짜증을 부리며 말하자 화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언니가 그만큼 마음에 든 게 아닐까?”
  “시끄럽고, 어디야?”
  “아, 저기야.”
  그렇게 두 사람이 악권수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살혈이었다.
  주후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노인들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질이 급해 보이는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그 천박한 계집이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금의위 총대장 무세원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전하, 그 여인을 왜 그냥 두는 것입니까?”
  동창 총대장 위고련 역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주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여인을 황비로 맞을 수는 없겠죠?”
  그 말에 두 사람이 황당하다 못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다른 무림의 여인은 몰라도 그 여인은 절대 안 됩니다!”
  “아... 그래요? 전 그 여인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말입니다.”
  후소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천박한 여인의 어디가 마음에 드십니까?”
  무세건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후소에게 묻는다. 그러자 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총대장 당신은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녀는 참 당당한 눈을 가졌어요. 뭐 조금 막말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참 당당한 여인이죠. 그리고 무공 또안 아주 고강하더군요.”
  “젊은 여인이 무공이 고강해봤자.......”
  “현경의 고수였습니다.”
  후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두 총대장은 쩌적 굳어버렸다. 현경은 이럴 때 농담으로 쓸 만한 뉘 집 개 이름이 아니다.
  “농담입니까?”
  “진담입니다.”
  “크흠... 놀랍군요.”
  주후소는 이런 일에서는 거짓말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위고련이 놀랍다는 듯 감탄하며 말했다.
  “아아... 참 매력적인 여인인데... 황비가 안 된다면 후궁으로라도 들이고 싶습니다.”
  주후소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황태자의 이상한 취향에 한숨을 푹 쉰 두 사람이었다.
  “마음에 드시면 후궁으로 만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녀가 절 어떻게 대하는지 보셨잖습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이 침묵한다.
  그녀는 절대 주후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적의는 없지만 귀찮아 죽겠다는 투가 역력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후궁으로 들인단 말인가?
  그렇다면.......
  “강제적으로라도 할 수 있다면 벌써 덮쳤습니다. 근데 워낙 강하니.......”
  주후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유현이 주후소의 말을 들었다면 주후소를 죽인다고 달려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유현은 여기 없었다.
 아무튼 주후소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흐음... 얼굴은 어떨지 참 궁금하군.”
  주후소는 유현의 그 자체가 마음에 든 것이었다.
  “유현.”
  은월이 유현을 불렀다. 은월은 유현을 부를 때 그냥 이름을 불렀다. 유현이 건방지다고 몇 번 패 보았지만 누나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유현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심 누나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그냥 이름 듣는 게 좋은 유현이었다. 누가 뭐래도 유현의 영혼은 남자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전에 키라이스트들이야 이름을 부르라고 해도 그냥 누나, 누나 했으니 어쩔 수 없었기에 포기한 것이었고 말이다.
  은월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악권수조가 유현을 바라보았다.
  “내 제자가 소저에게 신세를 진 것 같더군.”
  악권수조가 유현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유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계속 신세지게 할 생각인데 말이야.”
  유현의 말에 아해안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당장 내 제자의 팔에 채운 이상한 팔지 풀어.”
  “흐음... 잘 어울리고 좋잖아?”
  유현의 말에 아해안이 점점 기세를 뿌리기 시작했다.
  “천마교가 뒤에 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그런 아해안을 보며 유현이 말했다.
  “난 내 스스로의 힘을 믿는 것뿐이야.”
  유현 역시 기세를 뿌리기 시작했다. 더없이 차가운 기세였다.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빙의 기운을 느낀 아해안이 진심으로 놀라다는 듯 중얼거렸다.
  “천마교의 기운이라면 마땅히 마기여야만 하거늘 왜 빙의 기운이.......”
  “말했잖아? 중도 사람이라고.”
  유현이 히죽 웃는다. 그런 유현을 보며 아해안이 기세를 거두었다. 쉽사리 대할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아해안이 기세를 거두자 유현 역시 그와 동시에 기세를 거두었다.
  “정말... 천마교의 사람이 아닌가?”
  “천마교의 사람들과는 친분만 있고 천마교의 무공만 익혔을뿐이야.”
  이제 유현은 천마교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유현의 말에 아해안이 말했다.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마음대로 떠들라고 그래. 어차피 할 일만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니 말이야.”
  유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해안은 그런 유현을 다시 자세하게 바라보았다.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서 잇는 그녀의 모습. 더없이 오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눈이었다. 이런 눈을 가진 자는 자신의 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 한다면 주위에서 뭐라 하더라도 자신만의 정의를 지켜갈 사람이다.
  아해안은 점점 그런 유현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군.”
  “.......응?”
  갑작스러운 아해안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유현.
  “내 제자를 수련시켜줘서 말이야. 아주 많이 강해졌더군.”
  “아아, 좀 굴렸더니 저렇게 되던걸?”
  아해안의 말에 유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야 소현이 마음에 들어서 조금 굴려준 것뿐이었다. 아무튼 유현의 말에 피식 웃은 아해안이었다.
  그 한편에서 소현은 유현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현 뿐만 아니라 은월과 화린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그 지옥을 ‘좀 굴렸다’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제법, 아니 엄청 많이 따랐던 것이다.
  아해안은 처음 유현이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소현과 빨리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유현에 대한 소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어떤 사람인지 직접 한번 보기로 한 것이었다.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 적이 없는 소현이 친구라는 것들을 사귀며 크게 의지하고 있는 여인이 어떤 여인인지 궁금했었다.
  직접 확인해본 결과, 아해안은 유현이 천마교의 무공을 익혔으나 천마교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정적으로 유현이 가지고 있는 내공의 기운은 천마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흡사 북해방궁의 빙공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북해빙공보다 더욱 차갑고 무서운 느낌을 들게 하는 기운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유현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여보며 점점 더 유현을 마음에 담아가는 아해안이었다.
  사실 그녀 역시 꽉 막힌 여인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악권수조라 떠들지만 사실은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남들과 대립한다 하여도 그 옳은 것을, 소신을 지켰다. 반대로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누가 뭐라 하기도 전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것이 아해안이었다.
  항상 자신의 정의를 지켜가며 항상 정직한 그녀였다. 어쩌면 정파 사람들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 그녀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자신의 사부와 유현이 어느 정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자 소현이 유현을 불렀다.
  “이봐, 당신.”
  소현의 부름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유현이 소현을 바라보았다. 소현은 그런 유현을 보며 자신의 팔목에 있는 아름다운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이것 좀 빼주지 않을래?”
  팔찌의 효능이라면 이미 절실하게 느꼈던 소현이었다.
  유현과 여행을 시작할 무렵, 초반에 딱 한 번 도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팔찌에서 흘러나오는 전류 때문에 멀리 가지도 못하고 쓰러져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새 찾아온 유현에게 신나게 구타를 당했다.
  아무튼 팔찌의 효능 덕분에 유현에게서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는 소현이었다.
  “응? 소현아, 예쁜데 왜 빼려고 하니?”
  사부인 아해안의 그 말에 소현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사부님, 저기... 이거 어떤 물건인지 저한테 들으셨잖아요.”
  “그래, 이 소저와 떨어지면 전기가 흘러나오는 신비한 물건. 그게 왜?”
  “전 그렇게 되면 사도문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요?”
  “흐음... 그냥 둘이서 식 올려 버리고 사도문에서 같이 사는게 어때?”
  “싫어요.”
  “거절이다.”
  아해안의 말에 볼 것도 없다는 듯 대답하는 유현과 소현.
  “흐음...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이런 녀석 거저 준다고 해도 안 가져.”
  아해안의 말에 유현이 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소현이 버럭 소리쳤다.
  “당신같이 난폭한 여자는 내 쪽에서 거절이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즐겁게 웃는 아해안. 그러다가 아해안이 소현을 보며 말했다.
  “소현아. 저자가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꺼려지긴 하지만 그리 나쁜 자는 아닌 것 같구나, 그리고 널 이렇게 강하게 수련시켜주고 말이다.”
  아해안의 말에 침묵하는 소현.
  “그러하니 넌 좀 이 소저를 따라다녀 보거라, 공부가 많이 될 것이다.”
  “사, 사부님, 전.......”
  아해안의 말에 소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아... 그건 무리야. 나는 이번 비무대회가 끝나고 천마교에 한번 가 볼 생각이거든.”
  유현의 말에 아해안이 되물었다.
  “천마교에? 왜?”
  “만날 사람이 있어서.”
  유현의 말에 아해안이 대답했다.
  “그런 건 말하지 않는 게 좋지 않나?”
  “무슨 상관이 있겠어? 난 당당하다고.”
  천마교로 간다면 그건 자신이 천마교 사라이라고 광고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유현은 당당했다. 남이 뭐라 떠들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그런 유현을 보며 아해안은 빙긋 웃었다.
  그렇다. 남이 뭐라 떠들든 자신만 당당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데 남이 무어라 떠들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건 그렇군. 그렇다면 더더욱 소현이를 데려가줬으면 하는데?”
  이제 유현이 천마교 사람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녀가 너무 마음에 든 아해안이었다.
  유현이 소현을 바라보며 그의 의사를 묻듯 말했다.
  “나야 나중에 떠나겠지만... 넌 중원에 남는다. 그 후에도 남들이 뭐라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따라와. 뭐 내가 보기에는 나랑 같이 다니는 것 자체가 싫어 보이지만.”
  “쳇, 내가 안 간다고 해도 강제로 끌고 갈 생각 아닌가?”
  “글쎄? 그거야 모르지.”
  유현의 말에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소현이 툴툴거렸다.
  그런 소현을 보며 아해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애가 정말 저 소저를 좋아하나?’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말도 안 걸고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는 소현이다. 그런 소현이 유현의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여러 가지 감정 표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자 신기한 아해안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도의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것이냐?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남궁세가에서 지내게 했었다니!”
  검왕 남궁태가 얼굴을 찌푸리며 휘안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런 남궁태를 보며 한숨을 푹 쉰 휘안이 입을 열었다.
  “녀석이 천마신공을 익힌 건 사실이지만 천마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녀석입니다.”
  휘안의 말에 남궁태가 말했다.
  “어허! 마교의 무공을 익혔으면 그것이 천마교의 사람이지!”
  “녀석의 기는 마기가 아니라 빙기입니다! 천마교의 사람이 어디 빙기의 심법을 익힙니까?”
  “혈겁이 천마교의 계승권을 가졌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 하여도 천마교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휘안과 남궁태는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겨우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이유만으로 녀석을 그렇게 싫어하신다면 전 할아버지께 정말 실망입니다.”
  그 말에 남궁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어디 할아비 앞에서 할아비에게 실망을 했다는 둥 그런 버릇없는 말을 하느냐!”
  남궁태의 온몸에서 강한 기운이 풍겨져 나갔다.
  말 안 듣는 손자를 기세로 한번 눌려줄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남궁태였다. 그만큼 휘안의 행동에 상당히 화가 나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화가 났다면 그것은 휘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하지 무엇이라 합니까?”
  그 할아비에 그 손자라고, 계속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유현을 욕하는 남궁태의 말에 상당히 화가 난 휘안의 몸에서 남궁태도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에 남궁태가 눈을 부릅떴다.
  남궁태뿐만 아니라 모용태현과 평가위, 그리고 그런 남궁태와 휘안의 말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검마와 권왕까지 한순간 굳어버렸다.
  무연과 시현은 재미있다는 듯 휘익 휘파람을 불었으며, 혈겁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휘안을 바라보았다.
  단지 사인만은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그런 휘안을 바라보았다. 사인은 자신의 영혼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그의 흥미를 끌게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두가 휘안에게 시선을 집중할 때였다.
  “뭐냐? 이 분위기는?”
  이 상황의 원인이라면 원인인 유현 본인이 태연히 나타났다. 왜인지는 몰라도 어색해진 분위기와 기세를 품고 있는 휘안과 휘안의 휘안의 친할아버지인 남궁태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 유현이 평소와 다름없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그렇게 흥분하고 난리야?”
  유현이 휘안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유현을 보며 한숨을 쉰 휘안이 기세를 거두었다.
  “흠, 너답지 않다.”
  유현의 말에 휘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 몰라.”
  그렇게 말한 휘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느냐?”
  그런 휘안을 보며 남궁태가 물었다. 남궁태의 물음에 휘안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러헥 말한 휘안은 그대로 비무장 특별석에서 나가버렸다. 그런 휘안의 뒷모습을 향해 유현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나야 남이 뭐라고 떠들든 신경 안 써. 내가 당당하면 되니까.”
  유현의 말에 밖으로 나가던 휘안이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휘안을 보며 피식 웃는 유현이었다.
  비무대회의 첫째 날 밤.
  “아저씨.”
  유현이 웃으며 혈겁 살혈에게 다가갔다. 그런 유현을 본 살혈이 빙긋 웃었다.
  “그곳에서는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살혈의 모습은 아주 어린 소년의 모습이다. 열 살이 채 될까 말까한 모습. 그렇기에 유현을 방긋 웃는 그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다. 하지만 그 귀여운 모습에 속아 살혈을 얕봤다가는 상대는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시체가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오대장로 중 가장 강한 살혈이다. 동삼을 먹고 반로환동을 했을 뿐이지, 검을 든다면 그 누구보다 잔인해지는 살혈이었다.
  그와 검을 나누는 것은 고아마 사혈사도 꺼릴 정도로 그의 검은 무서웠다. 아무튼 그 위명답게 살혈은 평소에 잘 웃지도 않았다. 그가 웃을 때는 근처에 아주 가까운 지인이 있을 때 뿐이었다.
  그런 살혈이 유현에게 저렇게 방긋 웃는 것을 본다면 그와 같은 시대의 오대장로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유현도 살혈장로가 저렇게 방긋 웃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었기에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유현이 말했다.
  “직접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유현의 말에 살혈이 말했다.
  “그렇구나, 네 나이가 몇이지?”
  “휘안이 28살이니까.......”
  “음... 전생의 나이 말고 현생의 나이.”
  “비밀입니다.”
  506세라고 말해봤자 믿지 않을게 뻔해 유현은 농담을 하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유현을 가만히 바라보던 살혈이 말했다.
  “그 가면은 좀 벗지 그러느냐?”
  그 말에 유현이 주춤하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면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간 내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그제야 아름다운 유현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때였다.
  “이야~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유현님의 얼굴이군요.”
  “누구냐?”
  그와 함께 숲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나. 살혈은 자신의 감각에조차 잡히지 않은 의문의 인영을 겅계했다.
  “안영. 장난치지 마라.”
  “하하하, 역시 유현님이시군요.”
  그는 다름 아닌 안영이었다. 살혈은 웃으며 나타난 안영을 보며 경계를 풀었다.
  “허허... 평생 다시는 못 볼 거라 생각했던 얼굴을 오늘 다 보는군.”
  살혈이 안영을 보며 말했다.
  “아아, 운 좋게 유현 님과 같은 세계에서 환생했죠.”
  안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음... 너의 무공은 어느 정도냐?”
  경계를 게으르게 하긴 했어도 안영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이 의아한 살혈이었다.
  “화경의 끝을 달리고 있습니다.”
  살혈의 말에 안영이 말했다. 그런 안영을 멍하니 바라보던 살혈이 잠시 후 허탈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하긴 죽은 사람이 둘이나 살아 돌아왔는데 뭐가 더 놀라운 것인지.......”
  혈사의 말에 안영이 웃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장시간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살혈이었다.
  “나는 아직도 너희가 살아 돌아온 것이 믿기지 않는구나.”
  “믿기 싫으며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영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증거가 있는데 어떻게 믿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말하며 다시 보아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살혈이었다. 잠시 제 눈을 의심하듯 유현과 안영을 관찰하던 살혈이 문득 유현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유현의 가슴을.
  “뭘 보는 겁니까?”
  유현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자 살혈이 보기 드물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여자가 되었구나 싶어서.”
  그 말에 유현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하하, 살혈 장로님 그 이야기는 하지 말죠, 유현 님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거든요?”
  “닥쳐.”
  안영의 능글맞은 말에 유현이 살벌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찔끔해 당장에 입을 다무는 악영이었다. 살혈 역시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너의 등 뒤에 달린 그 커다란 대도는 무엇이냐? 검술을 사용하는 네가 왜 도를 들고 있느냐?”
  살혈의 말에 유현이 천마도의 손잡이를 툭 치며 말했다.
  “천마도에요.”
  “천마도?”
  유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살혈.
  “천마가 남긴 삼대 무구 중 하나입니다.”
  “천마대제께서 남긴 무구는 천마검과 소마검이 다가 아니란말인가?”
  “아아... 그것은.......”
  -그런 조잡한 놈들과 나를 똑같은 취급하지 마!
  유현이 살혈에게 지난 일을 설명하려 할 때 들려오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와 함께 살혈 앞에 살혈만 한 나이의 소녀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살혈.
  “천 님 오랜만입니다.”
  안영이 천을 보며 말했다.
  -안영, 오랜만.
  그런 안영을 향해 마주 인사하는 천. 안영에게 인사한 천이 살혈을 보며 말했다.
  -이봐, 살가의 꼬맹이.
  “살가의 꼬맹이?”
  천의 말에 살혈의 눈썹이 꿈틀한다. 모습이 변한 후 살혈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꼬맹이라는 말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온 계집인 줄은 몰라도, 죽고 싶어 환장했나보군.”
  -흥! 내가 겨우 살가의 어린애한테 겁먹을 줄 알아?
  “.......”
  -덤벼, 덤벼, 덤... 커억!
  제법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 깐죽거리던 천이었지만 더 이상은 살혈을 도발할 수 없었다. 바로 자신의 등을 발바닥으로 냅다 차버린 유현의 때문이었다.
  천은 그대로 앞으로 엎어져버렸다.
  “갑자기 왜 나타나고 난리야?”
  유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천이 혓바닥을 쏙 내밀며 말했다.
  -내 마음이다 뭐, 베~
  그런 천을 본 유현이 말없이 주먹을 들었다. 그러자 천이 그대로 화들짝 놀라며 사라졌다.
  이 모든 상황에 다시 놀라는 살혈.
  “방금 그 녀석은 천마도의 정령이에요.”
  유현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유현의 말에 살혈이 고개를 갸웃했다.
  “천마도의 정령?”
  “일단 천마도를 어떻게 얻었냐 하면.......”
  유현이 살혈에게 천마도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의 황성에 던전의 이야기가 먼저였다.
  두 사람의 환생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살혈은 유현의 이야기가 끝난 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초대 오대장로들?”
  “네.”
  “믿어지지가 않는군.......”
  “다시 말하지만 믿든 말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안영이 말했다. 안영의 말에 고심하던 살혈이 말했다.
  “조상님의 검을 볼 수 있을까?”
  살혈의 말해 유현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고이 보관해두었던, 천에 둘둘 말린 낡은 검 하나를 꺼냈다.
  마천검 살강의 유품인 마천검의 검.
  유현이 ‘마천검’이라 새겨져 있는 검을 살후에게 넘기자 마천검을 떨리는 손으로 받은 살후가 천천히 검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었다.
  그곳에는 이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낡을 대로 낡은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아무리 검 자체에 영구화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나 9,000년 된 검이다. 마법의 힘을 빌어도 버티기 힘들 만큼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검면에는 마천검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천검이라 적혀 있는 반대쪽 면에도 역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 검을 전해 받은 나의 후예는 들어라. 나는 천마교의 천마대제를 모셨던 초대 다섯 장로중 하나인 마천검 살강이니라.
  부득이한 이유로 이계로 왔으며, 천마대제께서는 중원이 돌아갔으나 우리는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천마대제께서 무사히 중원 땅을 밟으셨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우린 낯선 이 세계에 남아 그대가 상상도 못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후예여, 우리는 행복하다.
  이 검에 적힌 나의 편지를 보았다면 이 세계에 중원인이 와서 무사히 중원으로 돌아갔다는 뜻. 그는 천마대제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무공을 익힌 자일 것이다.
  그를 극진히 대접하라. 천마교에선 그와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그가 교주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교주의 자리도 넘겨라. 그가 바로 천마대제를 제외한 교주 계승권 0순위이니라.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후예여 이 검을 십만대산 가장 높은 산 봉우리에 가져다 다오.]
  마천검 살강의 편지였다.
  유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군가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살강, 이것으로 당신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잠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현이 살혈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것이 제가 아저씨를 부른 이유입니다. 저희는 이만 갈게요.”
  그렇게 말한 유현은 안영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유현이 사라졌음에도 그 자리에 앉아 묵묵히 마천검을 바라보는 살혈이었다. 그로서는 믿기지 않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조상의 유품을 받았으니 그럴 것이다.
  아까 낮에 살혈에게 볼일이 있다고 전음을 보냈던 유현이었다. 그런데 그 볼일이 바로 마천검 살강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었다니.
  ‘천마교로 돌아간다면 참성, 귀사, 한산, 산간의 부탁도 들어줘야겠지.......’
  유현은 자신의 아공간 안에 들어 있는 네 사람의 무구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비무대회의 아침이 밝았다.
  수많은 이들이 참석한 비무대회라 예선전만 일주일은 넘게 치르게 일정이 잡혀 있었다.
  어제 유현이 천마신공을 익혔다고 밝혀졌지만 그곳에 있던 이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것을 굳이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사파 쪽에서는 악권수조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천마신공을 사용하지만 내공이 빙기이다. 그리고 보기 드문 여걸에 당당하며 진실된 눈을 가졌다는 악권수조의 말.
  이미 검마와 권왕은 유현이 천마교의 사람은 아닌 중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악권수조의 말은 신뢰감이 컸다. 그리고 악권수조가 그만큼 말을 조리 있게 잘했고 말이다.
  악권수조는 유현을 검마와 권왕에게까지 소개해준 상태였다.
  “이런 건... 별론데.”
  유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눈이 너무 많다. 대화까지는 듣기 힘들더라도 당장에 보이는 눈만 어마어마한 숫자가 있다. 자신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검마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뭘 그리 쳐다봐?”
  검마는 삼마이제삼왕 중 에서도 수위를 다툰다 할 정도로 대단한 검의 고수였다. 그리고 사파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사황성 맹주이며 사파의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인 사화문의 문주이기도 했다.
  그런 검마를 보며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하는 유현.
  사실 그녀에게 있어 중원의 인맥 따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남들이 보았다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아도 될 정도의 놀라운 장면임에 틀림없었다.
  유현의 말에 검마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신공 중 도를 다루는 무공이 있었던가?”
  “몰라, 그런 거, 늙어서 무슨 호기심이 그렇게 많아?”
  유현의 말에 검마가 피식 웃었다.
  “내가 늙기는 했지. 삼마이제삼왕들 모두가 늙은이들이니 말이야. 어디 남는 동삼 하나 없나? 혈겁처럼 먹고 어려지게 말이야.”
  그 말에 저 멀리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살혈이 날카로운 기운을 뿌렸다. 그런 살혈을 보고 빙긋 웃는 검마다. 그들의 대립에 유현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당신도 성격이 많이 꼬였군.”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한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악권수조 옆에 있는 소현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무슨 말인지 그 말에 소현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소현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유현은 소현의 손을 잡아끌었고, 저쪽에서 몰래 도망가려는 은월을 잡으러 갔다. 화린이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그냥 놔 둘 생각인 유현이었다.
  무엇보다 강월과 월화와 마주치기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수련장으로 간 유현은 화린이 나와 잇는 것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월화를 보고서는 얼굴을 굳혔다.
  “뭐 하러 왔지?”
  유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월화에게 말했다. 그런 유현의 질문에 월화가 대답했다.
  “며칠 동안 생각을 해봤어요, 소저에게 궁금한 게 있어요.”
  “난 당신이랑 말 섞기도 싫어.”
  월화의 말에 유현이 차갑게 말했다. 그런 유현을 보고 은월과 소현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본래도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저렇게 남에게 차갑게 대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차갑게 대하고 자시고도 없이 보통 때라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자신의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는 유현이었다. 그래도 얼씬거리면 벤다. 그것이 유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벨 수 없는 상대였다.
  유현의 말에도 월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꼭 물어봐야겠어요.”
  “꺼져.”
  “그렇게는 못합니다.”
  꿈쩍도 하지 않는 월화를 보며 유현이 천마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 유현을 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현과 은월.
  그녀의 도술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익히 알고있는 소현과 은월이었다. 화린의 얼굴 역시 하얗게 탈색되었다.
  “마지막 경고다. 꺼져.”
  “그렇게는 못 합니다.”
  후웅!
  그 말과 함께 갑자기 엄청난 바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천마도가 어느새 월화가 있던 곳을 베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월화는 그것을 피한 상태였다.
  도에 기세는 섞여 있었지만 상대를 죽일 생각은 없는 유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월화가 유현의 검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안 꺼지면 진짜 벤다.”
  천마도의 검붉은 도신에 은빛 냉기가 서린다. 하지만 그런 유현의 반응에도 월화는 묵묵부답이었다.
  “궁금증을 풀 때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
  월화의 말에 유현의 눈이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가면에 가려져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이제는 마음껏 뿌려대고 있는 기운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저대로 유현이 마음먹고 날뛴다면 자신들은 막을 힘이 없다. 아무튼 그렇게 무서운 기세를 뿌려대던 유현이 한순간 짜증ㅅ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기랄! 염병!”
  그렇게 버럭 고함을 지른 유현이 말했다.
  “그래, 그 빌어먹을 궁금한 게 뭐야?!”
  그런 유현을 보며 화린, 소현, 은월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유현이 참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현을 보며 월화도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 것도 없이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고수다. 만약에 정말로 그녀가 마음먹고 자신에게 달려들었다면 자신도 죽음을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유현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얻어냈다. 이제 궁금증을 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어볼 게 뭐냐고!”
  유현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저번에... 소저께서 말하셨던 파멸성이란 단어, 왜 저희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셨나요?”
  월화의 말에 소현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파멸성!
  팔대성좌인 천살성, 혈천성, 파천성, 촤성성, 파마성, 자미성, 천중성, 파멸성.
  그것은 무림에서 유명한 팔대성좌의 이름들이었다. 100년에 한 번씩 그 별을 타고난 자들이 태어난다고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세상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력한 무공을 가지기는 하지만 운명이 이끄는 대로 죽거나 아니면 속세와 인연을 두지 않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그 팔대 성좌 중 가장 무시무시한 성좌가 두 개 있었다. 그 성좌를 가진 이들은 하늘이 버렸다고까지 하는 성좌... 천살성과 파멸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두 성좌는 바로 전설의 천마대제가 타고난 성좌들이기도 했다. 긴 무림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처음으로 두 개의 성좌를 타고난 천마대제. 그는 무림의 역사상 가장 강한 무림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아무튼 그런 척살 대상인 두 성좌 중 하나의 성좌의 이름이 유현의 입에서 거론되자 파멸성이 무슨 뜻인지 잘 아는 소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파멸성을.......”
  갑작스러운 월화의 말에 화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파멸성이 뭐야?”
  “.......”
  화린의 말에 소현과 유현이 침묵했다. 그러자 분위기에 맞지 않게 화린의 얼굴이 좀 붉어졌다.
  “어머니, 파멸성이 뭐에요? 이름을 보아하니 대단히 위험한 것 같은데.......”
  “화, 화린아... 나중에 설명해줄게.......”
  그런 화린을 보며 월화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월화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화린.
  “하아, 기운 빠져.”
  유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화린이 던지는 갑작스러운 말은 정말 힘 빠지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었다. 아무튼 귀찮다는 듯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긴 유현이 말했다.
  “그래? 내가 왜 파멸성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는지 궁금하다고?”
  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월화. 그런 월화를 보며 유현이 차갑게 웃었다.
  “왜? 23년 전 버린 아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나?”
  그 말에 월화의 얼굴은 완벽하게 굳어버렸다.
  “소, 소저가 그걸 어떻게?”
  당혹해하는 월화를 보며 유현이 말했다.
  “당신이 원한 답 아니었나?”
  굳어버린 월화를 보며 유현이 계속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오 년 동안 키워온 자신의 아이를! 겨우 파멸성이란 이유만으로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 버린 당신이 왜 지금에 와서 아들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것이지?”
  그런 유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월화의 표정은 울 것같이 변해갔으며 화린 역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현과 은월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현이 차갑게 말했다.
  “왜? 유강윤의 행방이 궁금한가?”
  이것이 직격타였다. 유현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까지 알고 있자 월화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런 월화를 묵묵히 바라보던 유현이 몸을 돌렸다.
  “오늘 수련은 안 한다.”
  그렇게 말한 유현이 천마도를 도집에 넣으며 말했다.
  “가, 강윤이의 행방을 알고 계시죠?”
  그 말에 유현이 멈칫했다. 그리고 싸늘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건 왜 묻지?”
  “알려주세요.”
  유현의 물음에 월화가 말했다. 그런 월화를 보며 유현이 냉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했다.
  “뻔뻔하군. 버릴 때는 언제고 다시 찾는단 말인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버리지 말았어야지.”
  유현의 말에 월화의 맑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런 월화를 무심하게 바라본 유현이 경공술을 사용하려고 할 때였다.
  “이, 이게 다 대체 무슨 소리야!”
  경악에 찬 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유현이 멈칫했다.
  “언니, 이게 무슨 소리야?”
  화린은 유현을 불렀다. 그런 화린을 보며 유현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네 친오라비에 대한 이야기다.”
  유현의 말에 화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머니 사실이에요?”
  화린이 멍한 표정으로 월화에게 묻는다. 하지만 월화는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월화를 보며 화린이 유현에게 말했다.
  “언니는 내 오라버니란 사람의 행방을 알고 있지?”
  “.......”
  화린의 말에 이번에는 유현이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새로운 부모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딱 잘라 말한 유현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유현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화린이었다.
  “어머니.......”
  한참만에야 화린이 월화를 불렀다. 그리고 월화에게 가까이 다가간 화린이 그녀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슬퍼하지 마세요.”
  “미, 미안하다... 너에게도 미안하고... 월린이에게도 미안해... 그리고 강윤이에게도.......”
  흐느끼며 우는 월화를 보며 화린이 더욱 월화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두 모녀를 바라보던 소현과 은월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따뜻한 봄이 다가오는 시기였지만 오늘 바람은 유독 추웠다.
  화린은 문득 자신의 오라버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유현과 오라버니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화와 화린이가 상상도 못 하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현과 강윤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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