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2

레어
  1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이상 경지가 높아지지 않았다. 그것이 짜증나는 에이라나였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안 오르는 것을… 그나마 깨달음의 경지는 높아졌다.
  아무튼 300살을 맞이한 에이라나는 오늘도 역시나 레랴나스의 영역에 있는 엘프 마을에서 놀고 있었다. 에이라나는 이종족에 대한 것을 찾아봄으로써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 대륙에 많다는 것을 알았다.
  에이라나가 엘프들과 지내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었다. 바로 정령술이었다. 실피드가 정령이라는 것을 알고 정령술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한 에이라나는 지금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이건 정령계 정령들이었다.
  자연계 정령들과도 계약 맺은 에이라나. 그들 중 두 속성의 정령과 계약을 맺은 에이라나였다. 바로 그류페이와 다크. 얼음과 어둠의 정령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황당하게도 최상급 정령들이었다.
  최상급 정령들은 자존심이 강했다. 특히 자연계 정령들은 성룡도 가볍게 때려잡기 때문에 그 자존심은 더더욱 대단했다.
  하지만 그 자존심 강한 두 최상급 정령들과 계약한 에이라나였다. 그것도 성격 더럽다는 다크와 그류페이와의 계약.
  그들과 계약을 맺을 때 옆에 있던 실피드와 다른 엘프들, 레니스가 황당해하기도 했다.
  심법으로 빙과 마에 극의 기운이 아주 강한 에이라나였다.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속성의 정령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진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계약한 두 정령이었다.
  물론,
  "이, 이 새꺄! 지랄 떨면 죽인다고 했지!"
  "닥쳐! 얼음 도마뱀! 내가 뭘 했다고!"
  "썅! 네가 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이게 어디서 뻔뻔하게 면상을 들이밀어!"
  이런 경우가 허다했지만 말이다.
  성격 더러운 것들끼리 친구로 가까이 지내면 평소의 배는 시끄러워 진다고 했던가? 정말 평소의 배는 시끄러웠다.
  아무튼 그렇게 평화로운(?) 150년이 흘렀다.
  실피드가 에이라나에게 찝쩍거리다가 카랴만과 대판 싸운 날도 있었다.
  에이라나와 에랴나니스가 싸우다 에이라나가 가출했다가 카랴만의 레어에 있는 것이 걸려 에랴나니스에게 죽도록 맞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애를 왜 구박하느냐고 엘란카넌과 에랴나니스가 대판 싸웠었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지나가고 레니스는 이미 성룡이 되었다. 드래곤들 중 레니스와 에이라나만큼 친한 드래곤도 없었다.
  "응? 레어?"
  에이라나의 의아한 물음에 에랴나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블랙족의 수장이자 최고령자인 라칸 영감탱이가 레어를 옮긴다고 하더군. 그래서 네 아버지가 네 레어로 써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 영감탱이가 허락했대."
  이제는 에이라나가 많이 커서 레어가 비좁던 차에 마침 블랙족의 수장인 라칸이 레어를 옮기자, 딸의 레어를 그곳으로 레어를 옮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에랴나니스와 카랴만이었다.
  여기서 각 일족의 수장이라는 것은, 각 일족의 대표를 말하는 것이다. 수장이라고 해서 우두머리는 아니었다. 로드라고 해서 드래곤들의 왕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냥 명예직 같은 거랄까?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게 수장이었다.
  로드는 가장 머리 좋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거의 골드 일족들이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에랴나니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레어라..."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태어난 지 300년이나 지났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에이라나였다.
  '이제 독립(?)할 때가 된 건가?'
  그런 에이라나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독립이 아냐. 그냥 집 하나 더 늘어서 그곳에서 산다고 생각해. 어차피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으니 옆집이나 마찬가지지."
  그렇게 말한 에랴나니스가 꽁알거렸다.
  "무슨 애한테 벌써 레어를 준다고 난리야, 쳇!"
  그런 에랴나니스를 보며 에이라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매일 볼 수 없으니 아쉽기도 할 것이다.
  에랴나니스 또한 언제나 자신의 레어에서 빨빨(?)거리며 살아갈 것 같던 에이라나가 벌써 레어를 가진다니 조금 서운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는 부모였다.
  에랴나니스가 레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레어 크기는 엄마 레어보다 클 거야. 그리고 영역도 훨씬 클 거고, 너무 아무 것도 없으면 심심하니깐 책은 카피해줄게. 흐응~ 백지 많이 들겠군."
  중얼거리던 에랴나니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래, 그 영역에는 드워프 마을이 있어."
  "응? 드워프 마을?"
  레랴나스의 영역에는 엘프 마을만 다섯 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광물질이 별로 없어서 드워프가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에이라나의 레어가 될 곳의 영역은 드워프 마을이 있었다. 인간들과 교류도 하는 곳이니 인간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래곤의 영역이라고 인간이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레어 근처에 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드워프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에이라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은 키에 뛰어난 대장장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 드워프들이 자신의 영역에 있다고 하자 조금 기분이 들뜨는 에이라나였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에랴나니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살며시 에이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일주일 후에 그 레어에서 생활할 수 있을 거야. 지금 그 레어에 가볼래?"
  "응? 지금?"
   *   *   *
  우웅!
  라칸은 레어 정리를 하다가 문득 마나의 파동이 느껴지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300살 정도로 보이는 실버 해츨링과 3,000살 정도의 윔급 실버드래곤의 기운을 느끼고 피식 웃었다. 레어 구경을 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구나, 에랴나니스. 이름을 지을 때 이후 처음이군, 에이라나."
  라칸은 빛을 뿌리며 나타난 두 모녀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 라칸을 보며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아버님."
  "후후후. 그래 카랴만에게 들었다. 이 레어를 내 손녀가 쓴다고?"
  '잉?'
  라칸의 말에 에이라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칸을 쳐다보았다. 그 반응에 라칸이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말 안 한 거냐?"
  그런 라칸의 반응에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에이라나, 네 친할아버지다."
  "아, 안녕하세요."
  에이라나의 반응에 라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친할아버지에 대해 아무 것도 말 안 하다니! 엘란카넌 녀석이 내 손녀를 지 손녀인 것처럼 말하면서 얼마나 자랑했는데! 나는 보고 싶어도 300년 동안 바빠서 혼났는데! 좀 데리고 온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제 저 애는 내가 친할아버지인 것도 모르지 않느냐!"
  유치한 할아버지들의 행진이었다. 아무튼 그런 라칸의 불만에 에랴나니스가 딱 잘라 말했다.
  "카랴만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 영감탱이는 손녀 안 봐도 잘 산다나 뭐라나?"
  물론 카랴만이 이 발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동의한 것은 에랴나니스였다. 물론 봬야 하지 않겠냐고 묻기는 했지만 말이다.
  에랴나니스의 말에 라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니, 뭬야?"
  그 기세에 움찔하는 에이라나. 3,000살을 넘긴 에랴나니스는 괜찮겠지만 아직 300살인 에이라나다. 아무리 현경이라고 해도 겨우 성룡급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8,000살을 넘긴 라칸의 분노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움찔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기세를 거두는 라칸이었다.
  짧은 단발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에 깊은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30대 중반의 미남. 그것이 바로 카란의 폴리모프 모습이었다. 아무튼 라칸이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에이라나.
  "괜찮아요."
  그런 에이라나를 한번 쓰다듬어준 후 라칸이 에랴나니스를 보며 말했다.
  "그래, 레어 구경 왔느냐?"
  "네, 한번 둘러보는 것이 좋을 듯 해서요."
  고개를 끄덕이며 라칸이 말했다.
  "흐음~ 앞으로 자신이 살 곳이니 미리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라칸이 레어를 구경시켜주기 시작했다.
  레어를 구경하고 온 에이라나의 심정은 만족이었다. 친할아버지의 레어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배인 마기랄까? 마교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었다.
  들떠있는 에이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에랴나니스. 이럴 때 보면 분명 부모는 부모였다. 에이라나는 그렇게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에이라나의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찾아왔다.
  "그 영감탱이의 레어를 에이라나의 레어로 사용한다고?"
  엘란카넌이 말했다.
  그런 엘란카넌을 보며 카랴만이 대답했다.
  "결국 옮기기로 한 거니? 흐응~ 아버지가 보물과 책 같은 걸 조금 남길거다."
  카랴만의 말에 레랴나스가 말했다.
  "안 그래도 큰 레어인데 텅 비어 있다면 뭔가 썰렁할 것 같아서, 우리가 보물을 조금씩 나누어 거기에 가져다 놓기로 했단다."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할머니."
  그 말에 레랴나스가 에이라나를 안으며 말했다.
  "에구~ 우리 에이라나, 그렇게 작전 아이가 벌써 레어를 가질 정도로 크다니."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러게요. 벌써 300년이나 지났네요, 제가 태어난 지."
  인간이라면 경지에 들지 않는 이상 꿈도 꾸지 못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300년이라는 시간을 너무도 쉽게 받아 들인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과연 중원은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까? 이곳과 같은 300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그렇다면 자신의 지인들은 모두 죽었을지도.
  그 생각까지 하자 코끝이 시큰해지는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애썼다. 
  '넌 유현이 아니야, 에이라나야.' 그렇게 생각한 에이라나가 카랴만을 보며 말했다.
  "아빠, 친할아버지가 아빠 가만 안 둔다던데?"
  하지만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엘란카넌이었다.
  "그딴 자식은 할아버지라 안 불러도 돼."
  에이라나의 말에 이번에는 카랴만이 반응했다.
  "응? 왜?"
  그렇게 묻는 카랴만을 향해 막 뭔가를 설명해주려던 에이라나.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그 영감탱이는 손녀 안 봐도 잘 산다나 뭐라나? 오~ 이 소리 때문에 내가 널 가만 안 둔다고 했었던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는 흑발을 가진 30대 초반의 미남자가 고고하게 팔짱을 끼고 카랴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레랴나스, 오랜만."
  라칸의 말에 레랴나스가 생긋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라칸."
  라칸과 레랴나스는 친구 사이였다. 엘란카넌도 말했다.
  "여기까지 왜 기어들어왔냐?"
  그런 엘란카넌의 퉁명스러운 말에 라칸이 말했다.
  "너랑 상관없어. 저 자식 족치러 왔다."
  그렇게 말한 라칸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카랴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한 카랴만이 에랴나니스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왜 이러셔?"
  그 말에 에랴나니스가 라칸에게 해주었던 말 그대로 카랴만에게 해주었다. 그러자 얼굴이 굳은 카랴만.
  "아버지, 있잖아요."
  "닥쳐!"
  쾅!
  "으아아아악!"
  드래곤들 중 가장 싸움 많은 곳을 뽑으라면 바로 에이라나의 가족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싶다. 라칸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카랴만을 노려보며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남의 집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했던가? 역시 두 부자의 싸움을 구경하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는 에이라나 가족이었다. 역시 콩가루 집안이었다.
   *   *   *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보물 조금(사실 에이라나가 보기에는 엄청나게 많았다)과 카피된 책 수십 만 권이 에이라나의 레어 보물창고와 서재에 보관되었다. 라칸이 남긴 책도 있었기에 책장은 꽉 찬 상태였다.
  에야라니스나 다른 어른들 레어에는 꽉 차다 못해 널려있지만 말이다.
  레어 이사를 끝내고 카랴만이 찾아와 말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레어는 아빠의 레어다. 그러니깐 가끔씩 놀러와."
  하지만 그런 카랴만의 말에 태클을 거는 이가 있었으니...
  "흥! 워프 게이트 타면 바로 가는데 가깝고 자시고가 어디있어?"
  라칸의 말에 카랴만이 말했다.
  "아, 그래도요!"
  에랴나니스도 거들고 나섰다.
  "맞아,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네 레어가 가장 가까우니깐 네 레어에 자주 오라는 식으로 들리잖아!"
  "그래! 에랴나니스, 말 한번 잘했다."
  라칸이 에랴나니스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건만 라칸과 에랴나니스의 갈굼에 좌절하는 카랴만이었다. 
  그런 카랴만을 보고 삐질 웃는 에이라나.
  그렇게 에이라나가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오겠다고 말하며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해산하는 가족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에이라나가 레어를 가지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공터에 수련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수련장이라 해서 화려한 것은 없고 그냥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 수련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이건 레어 앞 공터에 만들었다. 그래 봤자 구석이라 잘 보이지도 않지만.
  다음에 한 일은 보석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금화면 금화, 보석은 보석, 액세서리면 액세서리... 이렇게 분리했다. 옷은 그저 옷장에 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편한 중원식 옷만 입는 에이라나였다.
  무구도 한 곳에 모았다. 창, 활, 검, 도, 방패, 갑옷 등 많은 무구가 모였다. 그렇게 쭉 - 무기들을 둘러보는 에이라나. 하지만 곧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자신이 들고 있는 롱소드는 투박했다.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걸 가지고 50년을 버텼다. 중원의 검과 조금 비슷해서 이 것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이라나가 자신의 롱소드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중원과 똑같은 검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차.
  "그래! 드워프들!"
  자신이 알기로 드워프들은 뛰어난 장인이다. 그들에게 검을 부탁하면 되는 것이다.
  중원식 검으로 부탁한다면 아주 좋은 검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는 에이라나였다.
  그녀에게 있어 검이 좋든 말든 상관은 없었다. 그것을 따지지 않을 만큼 에이라나는 고수였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낫지 않은가? 그렇기에 검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에이라나는 경공술을 이용해 빠르게 드워프 마을로 갔다.
  몬스터들이 짜증나게 덤비면 가볍게 마법을 날려 죽여 버렸다. 귀찮은 것들은 칼 휘두를 필요도 없이 마법으로 죽이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순식간에 라칸이 가르쳐준 드워프 마을에 도착한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가 경공술을 멈추고 슬쩍 드워프 마을 근처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며 목책으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듯한 모습에 에이라나는 살짝 감탄했다. 자신이 보기에 드워프 마을은 천연요새와 비슷했다.
  과거 마교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을 보는 듯 했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한 드워프 무리들이 자신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피식 미소를 짓는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가벼운 걸음 걸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드워프 무리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누구냐?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지?"
  그런 드워프를 보며 살짝 감탄하는 에이라나였다.
  '헤~ 정말 작잖아? 그리고 근육 한번 대단하군.'
  에이라나의 가슴까지 오는 키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구리빛 근육! 정말 책에서 본 것 그대로였다.
  아마 저 팔에 붙어 있는 손에 한대만 맞으면 보통 사람은 바로 세상을 하직할 것 같았다.
  에이라나가 자신을 경계하는 이들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들어왔냐니? 내 집 앞마당(?) 내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리는 건 내 자유라고."
  "뭐?"
  에이라나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드워프. 그런 드워프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내 집 앞마당!"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드워프. 그러다 잠시 후...
  "헉! 드, 드래곤?"
  "딩동! 정답! 이번에 울 할아버지가 이사 간다 그래서 내가 이 레어를 가지게 되었지."
  그렇게 씨익 웃는 에이라나를 보며 드워프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알아보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뻣뻣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비굴하지도 않은 적당한 인사였다. 드워프는 드래곤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했다. 그렇기에 드래곤들에게 일정 이상의 예를 지키지 않았다. 그런 드워프들을 잘 알고 있기에 드래곤들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드워프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자질구레한 예는 집어 치우고, 난 이곳의 장로를 보러 왔어. 부탁하고 싶은 물건이 있거든?"
  "예? 아, 알겠습니다."
  드래곤이라는 건 참 편한 생물이었다.
  만약 인간이 이런 소리를 했다면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하면서 바로 도끼를 휘둘렀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이 드워프 마을은 인간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 세 달에 한 번씩 인간들이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드워프 마을 근처는 온통 몬스터들 천지였다. 하지만 라칸 산맥(라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산맥이다) 치고는 몬스터들이 많이 없기에(라칸 산맥 기준으로) 인간들도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마을 경비를 하고 있는 드워프 중 지위가 가장 높아 보이는이가 에이라나를 마을로 안내했다.
  드워프 마을의 장로라는 건 그 마을 중 가장 뛰어난 장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십 년에 한 번 드워프들은 자신의 실력들을 겨루어 가장 뛰어난 장인을 장로로 뽑았다.
  촌장은 따로 있었다.
  아무튼 아르콘 드워프 마을의 장로 드이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어린 해츨링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검을 만들어 달라고요?"
  "응."
  에이라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요즘 제가 만들 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다른 검을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제 생에 최고의 걸작이 될 그 녀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바쁠 것 같거든요. 오리하르콘, 이런 환상적인 재료를 만지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그렇기에 에이라나님의 검을 만들어줄 시간이 없습니다."
  오리하르콘.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물건이라고 하면 100% 장로급 드워프가 만든 물건이었다. 그들이 아니라면 오리하르콘을 제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드워프 장로를 해본 드워프들은 가능하겠지만.
  오리하르콘을 녹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심지어 브레스에도 녹지 않는 것이 오리하르콘이었다.
  특수하게 녹이는 방법이 있는 오리하르콘을 인간이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드워프들 중에서도 뛰어난 장인들만이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드워프 마을에서도 오리하르콘을 재련할 수 있는 드워프는 10명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 오리하르콘으로 드이스는 생에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아무리 고집이 강한 드래곤이라도 양보해주었다.
  드래곤은 폭군이 아니다. 툭하면 이종족들에게 재물을 짜내는 깡패는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달라고 조를 뿐, 협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뭐, 드래곤들은 조르기 시작하면 무섭기까지 하기에 협박이라고 봐도 되려나? 그렇기에 인간들을 제외한 유사인종들 중에 드래곤을 원망하는 이들은 극히 드문 편이었다.
  강하면서도 어느 정도 자신들을 배려하는 것이 드래곤이라는 생물이었다. 물론 인간은 썩은 것들이(?) 많아서 툭하면 드래곤들에게 풍비박살 나는 거지만 말이다.
  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면 심심하다고 날뛰는 드래곤은 광룡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드워프 장로에게 양보해줄 만한데...
  "그럼, 그 생에 최고의 걸잘을 내게 주면 되겠네? 아직 만들기 시작한 건 아니지?"
  그 뻔뻔한 말에 어이가 없어지는 드이스였다. 그런 드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히죽 웃었다.
  "8,000살 이상의 고룡의 뼈와 오리하르콘을 합쳐 만든 검은 어떤 검이 되려나?"
  그렇게 조금 인상을 찌푸리던 드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런 드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냥 만들어 달라는 건 그쪽이 좀 손해일 것 같으니까 내가 우리 외할아버지인 엘란카넌 할아버지의 뼈를 가지고 올게. 드래곤 본, 오리하르콘만큼이나 최고의 재료 아니야?"
  그 말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드이스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하겠습니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뻔한 에이라나였다.
  드이스는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어린 해츨링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검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 본을 다룰 수 있다니!
  오리하르콘만큼이나 환상적인 재료가 드래곤 본이었다. 물론 강도는 오리하르콘이 앞서지만 드래곤 본이라고 하면 그 고유 드래곤의 속성이 묻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엘란카넌이라고 하면 고룡 중의 고룡!
  그런 드래곤의 드래곤 본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정말 영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드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하, 하겠다면 나야 좋지."
  왠지 꼭 만들고야 말겠다는 표정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럼 모양은 내가 만들어 달라고 하는 대로 만들어 주면 안 돼?"
  "예?"
  드이스는 갑작스러운 에이라나의 제안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드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중원식 장검을 생각하며 일루젼 마법을 사용했다.
  "일루젼!"
  그러자 생겨나는 검의 환상.
  마교에서 자신이 사용하던 검과 똑같은 모양으로 조금 소박한 면이 있었다. 드이스는 처음 보는 검의 모양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 이상한 모양이군요. 이런 모양은 처음봅니다."
  중원의 검은 롱소드보다 길이가 좀 더 짧으며 검면은 바스타드와 롱소드의 중간 크기였다. 그렇기에 리샨 대륙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드이스가 보기에는 처음 보는 모양이기에 흥미가 동했다.
  "좋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드리지요."
  "고마워!"
  그 말에 활짝 웃으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흑아와 은아(1)
  에이라나가 드이스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드이스, 미안해."
  "예? 에이라나님, 무슨... 설마!"
  그 말에 드이스가 드래곤 본을 받는데 실패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드이스는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8,000살 넘는 고룡이 그렇게 쉽게 드래곤 본을 내줄리 없었다. 아무리 손녀라 해도 말이다. 그래도 며칠간 같이 지낸 에이라나가 마음에 들기에 드이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에이라나님의 검은 만들어……."
  하지만 그건 드이스의 너무도 큰 착각이었다.
  "일 두 배로 늘려서 미안."
  "에?"
  에이라나의 말에 드이스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멍한 소리로 되물었다. 그런 드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칸 할아버지도 드래곤 본을 주셨어. 그리고 오리하르콘까지."
  "허걱!"
  그 말에 입을 쩍 벌리는 드이스였다.
   *   *   *
  에이라나는 지난 며칠간 드워프 마을에 매일 내려가서 구경하며 놀았다. 대장간 일은 처음 보기에 호기심이 동하는 에이라나였다. 그래서 드워프들과 상당히 친해진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이제 슬슬 엘란카넌에게 드래곤 본을 달라고 부탁하려고 엘란카넌의 레어로 갔다. 에이라나도 드래곤 본이 드워프에게 있어 얼마나 매력적인 재료인지 잘 알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물론 며칠간 '어떻게 엘란카넌을 졸라 드래곤 본을 받아야 잘 받았다고 소문날까?'하고 고민하면서 엘란카넌에게 드래곤 본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한 에이라나였다.
  어쨋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엘란카넌의 레어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워프했다.
  자신의 레어에 도착한 에이라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엘란카넌.
  그런 엘란카넌을 보며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할아버지, 저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최대한 애교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에이라나.
  그렇게 말하는 에이라나의 말에 엘란카넌이 웃으며 말했다.
  "오~ 에이라나, 나에게 무슨 부탁이 있니? 말해보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주마."
  그런 엘란카넌을 보며 에이라나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 드래곤 본을 좀."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엘란카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드래곤 본? 그건 왜?"
  엘란카넌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제가 드워프 장로에게 검을 만들어 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드래곤 본이 필요해요."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엘란카넌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하는 손녀의 부탁이었다. 물론 자신의 뼈로 검을 만든다는게 조금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드래곤들이 자신의 본을 이용해 무기를 많이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때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젊을 때 이야기지, 자신은 8,000살이 넘었다. 8,000살 고룡의 드래곤 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뼈를 내준다는 게 조금 꺼려지는 엘란카넌이었다.
  그래도 손녀의 부탁이다.
  '흐음, 어차피 송곳니는 다시 나니 송곳니를 주면 되려나?'
  아무튼 이렇게 고민하며 점점 뼈를 내줄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에이라나야~ 그따위 고집쟁이 영감탱이는 무시하고! 이 할아비의 송곳니를 주마!"
  드래곤의 송곳니도 드래곤 본이었다. 엘란카넌이 그 목소리에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커다란 송곳니를 등에 걸치고 걸어오는 흑발의 남자가 보였다.
  그는 생긋 웃으며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에 에이라나도 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검을 만든다고? 그럼 저 짠돌이 영감탱이에게 부탁하지 말고 이 할아비에게 부탁하렴. 이 할아비가 오리하르콘도 주마."
  "저, 오리하르콘은."
  "씁! 너 뭐하자는 플레이야! 너 내 손녀 뒤를 캐고 다녔냐? 방금 한 말인데 언제 송곳니를 뽑았어!"
  "어허~ 할아비가 손녀가 뭘 원하는지 아는 건 기.본.아니냐? 무.능.한.놈!"
  "캭! 네놈 송곳니보단 내 송곳니가 더 나아!"
  쿠오오오오오!
  그리고 바로 폴리모프 해제하는 엘란카넌. 그는 바로 자신의 송곳니를 뽑은 다음 다시 원상태로 폴리모프했다. 마기를 띠는 라칸의 송곳니와 냉기를 뿌리는 엘란카넌의 송곳니. 그리고 두 할아버지가 준 오리하르콘 두 덩어리.
  그것을 들고 어색하게 웃으며 드이스를 찾아온 에이라나였다.
   *   *   *
  드이스는 한동안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 드이스를 의아한 듯 바라보며 그를 부르는 에이라나였다.
  "드이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드이스가 그 짧은 다리로 믿을 수 없는 속도를 내며 에이라나에게 다가왔다.
  "에이라나님!"
  "히익!"
  그 모습에 무서울 것이 없는 에이라나도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런 에이라나를 깔끔하게 무시한 드이스가 말했다.
  "드래곤 본 둘다 검으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드이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하하, 안 될까?"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드이스가 옆에 있는 책상을 쾅 치며 말했다.
  "안 되기는! 됩니다! 돼요! 그러니 검 두개 다 제게 맡기십시오!"
  "아, 알았어! 무서우니 좀 떨어져!"
  드이스의 무시무시한 표정에 기겁하며 에이라나가 말하자 드이스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어색하게 웃으며 물러섰다.
  그리고 얼른 에이라나에게 엘란카넌과 라칸의 송곳니 두개를 받아들고 에이라나에게 인사한 뒤 바로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드이스의 작업실은 세 달 동안 불을 뿜으며 꺼지지 않았다.
  다시 심심해진 에이라나는 드워프들과 놀고, 근처의 몬스터들을 처리해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검을 만드는 동안 에이라나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바로 남은 오리하르콘 때문이었다.
  드이스가 필요한 분량이라며 떼어가고 남은 분량은 에이라나의 주먹만 한 크기였다. 드래곤 본도 조금씩 남았다.
  물론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었지만 말이다.
  에이라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것들은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에이라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발한 생각이 있었으니!
  에이라나는 씨익 웃었다.
  '그래! 그걸 만드는 거야!'
  에이라나의 눈이 빛났다.
  에이라나가 찾아간 곳은 액세서리를 가장 잘 만드는 드워프의 집이었다. 역시 오리하르콘을 재련할 줄 아는 드워프였다.
  그는 요즘 신이 난 드이스를 시기, 질투, 부러움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도 8,000년 묵은 드래곤의 드래곤 본을 만져보고싶어."
  8,000살 드래곤의 드래곤 본은 흔하지 않다. 있다고 해도 다 자신들이 알아서 만들기 때문에 드워프가 8,000살 드래곤 본을 만질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드이스가 더 부러운 드워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소원을 이루어줄 존재가 있었으니.
  "아큰, 있어?"
  에이라나가 아큰의 집 문을 열며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아큰이었다.
  아큰은 에이라나가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라나님, 어서 오십시오. 제 집에는 어쩐 일로?"
  자신이 알기로는 에이라나는 액세서리나 보석보다는 검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드워프 마을에서도 검을 자주 만지곤 했다. 액세서리나 보석을 건드리는 일은 잘 없었다.
  물론,
  '예쁘네?'
  하고 만졌다가 깨트린 유리조각품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에이라나의 모습에 그녀를 조각하겠다는 조각사들도 많았다. 아큰의 질문에 에이라나가 품에서 남은 오리하르콘과 드래곤 본을 꺼내며 말했다.
  "부탁할 게 있어!"
  "헙!"
  두 재료를 보며 눈을 크게 뜨는 아큰. 아큰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부탁할 게 뭡니까?"
  "이런 걸 만들어줘!"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역시나 환상마법을 이용해 뭔가를 이미지화 했다. 이미지화 된 것은 섭선었다. 그것을 보며 아큰이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이것이 뭡니까?"
  "섭선."
  "그러니깐 어떤 용도냐고요."
  그런 아큰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부채."
  "예?"
  이미지화 된 섭선은 접혀 있는 상태였다. 그게 부채라고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는 아큰이었다.
  그런 아큰을 보며 히죽 웃어준 에이라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섭선이 펼쳐졌다.
  "호오."
  그것을 보며 눈을 빛내는 에이라나. 그녀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섭선 두개가 나왔는데 검은 섭선과 은빛 섭선이었다. 아무 그림도 없었지만 고풍스러웠다.
  "이 재료들을 이용해 이 모양으로 만들어 주면 좋겠어. 만들 수 있겠어?"
  아큰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만들 수 있다마다요! 정말 멋진 부채입니다."
  그렇게 말한 뒤 아큰이 오리하르콘과 남은 송곳니를 들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에이라나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후후. 저것도 무기로 쓸 수 있단 말이지."
  섭선을 비상시 무기로 사용할 생각인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생각 자체가 왜 그래 살벌한지 모르겠다.
  얼마 후 에이라나는 자신 앞에 있는 흑색 섭선과 은색 섭선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흑선을 잡고 '촥'하는 소리가 나게 펼쳐보았다.
  "호~ 이 검은 천은 뭐야?"
  에이라나가 섭선의 천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그 천은 색만 검은 게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 라칸의 기운을 받아들여 은은한 마기까지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스릴 실로 만든 천입니다."
  "미스릴?"
  에이라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스릴은 그녀도 잘 안다. 마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여 대장장이들뿐만 아니라 마법사들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마법의 금속이었다. 그것으로 마법 아티팩트를 많이 만들곤 했다.
  대륙에 이름을 날리는 명검은 미스릴로 만들어진 것뿐이었다.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건 신검이랄까?
  에이라나가 놀란 표정을 짓자 아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 본에 오리하르콘. 그에 어울리는 금속은 그나마 미스릴밖에 없죠."
  그렇게 말하는 아큰을 쳐다보던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 방울도 미스릴?"
  "예."
  딸랑.
  섭선 끝에는 각각 백금색 방울이 달려 있었다.
  에이라나가 빤히 섭선 두개를 들어보더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대단한걸?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싱글벙글 웃는 에이라나. 그 웃음에 아큰이 대답했다.
  "저야말로 최고의 재료들을 다룰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린 아큰이 물었다.
  "그런데 그 섭선이란 건 어디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아큰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아큰을 향해 히죽 웃어주었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아큰 옆에 있는 장식용 항아리를 향해 휘둘렀다.
  삭둑!
  그리고 절삭되는 소리. 아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큰을 보며 히죽 웃어준 에이라나가 말했다.
  "역시 미스릴과 오리하르콘,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 그런가? 마나도 잘 받아들이네?"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흑선과 은선을 허리에 달았다.
  챙그랑!
  그리고 반으로 갈라지며 큰 소리와 함께 탁자에서 굴러 떨어져 깨지는 항아리. 그것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짓는 아큰이었다.
  "아큰~ 바이바이~ 섭선 고마워."
  그런 그에게 에이라나는 손을 흔들며 아큰의 집을 나갔다.
  잠시 후...
  "크악! 에이라나님! 이걸 깨면 어떻게 합니다!"
  아큰의 절규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며칠이 지났다.
  에이라나는 사고 안 치고 되도록 조용히 드워프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다. 물론 되도록 안 치는 것이지 아예 안 치지는 않았다.
  드워프들 훈련시켜준답시고 30명 드워프 전사를 주먹으로 때려눕힌 건 그나마 조용한 편에 속했다.
  그런데 드워프 마을이 시끄러워 지기 시작했다.
  에이라나는 그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드워프들이 툭하면 마셔대는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는 별로 독하지 않은 술이라 거침없이 에이라나의 목을 타고 들어갔다.
  맥주를 한 번에 마신 에이라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옆을 지나가는 드워프 하나를 잡고 물었다.
  "이봐, 왜 이렇게 마을이 소란스럽지?"
  에이라나의 의아한 물음에 드워프가 말했다.
  "저희 마을은 인간과 거래를 하는데, 오늘이 그들과 거래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이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흐응~ 그래?"
  드워프의 말에 에이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드워프들과 교류를 하는 곳은 '디폴 상단'으로 바로 나라에서 뒤를 봐주는 상단이었다. 디폴 상단의 뒤를 봐주는 나라는 이제 신흥 강대국인 로코 제국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상단에는 로코 제국의 황태자가 같이 와 있는 상태였다.
  물론 황태자 곁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붙어 있었는데 소드마스터급 기사가 무려 셋이나 있었다.
  그리고 카로스 미얀 로코... 그것이 바로 로코 제국의 황태자 이름이었다.
  황태자가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곳이 드워프 마을이구나?"
  카로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금발에 녹안을 가진 20대 초반의 미남자가 감탄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 곳곳에 울려퍼지는 망치질 소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작은 드워프들,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드워프들... 모두가 신기했다.
  그는 이래 봬도 소드익스퍼드 상급의 검사였다. 그렇게 감탄한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드워프 마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저기 은발에 은안을 가진 하늘거리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소녀도...
  소녀?
  카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소녀가 맥주를 들고 유유히 드워프 마을 한쪽을 걷다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는 놀라서 그 소녀를 쫓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 일단 숙소로 가시지요."
  상단 총 책임자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며 황태자가 말했다.
  "자, 잠깐만!"
  "드워프 마을을 함부로 돌아다니면 드워프들의 적개심을 살수 있습니다."
  그 말에 잠시 멈칫하며 카로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단 책임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곧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할 수 없지. 하지만 나중에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네."
  그렇게 말하는 카로스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상단 책임자였다.
  "예? 장로님께서 작업에?"
  상단 총책임자인 아르코가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그런 아르코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큰.
  "그래, 그래서 지금 장로 영감을 만날수 없네."
  "할 수 없군요. 그래도 거래는 진행시키죠."
  아르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큰이었다.
  생필품이나 맥주 같은걸 필요하긴 했다. 옆 마을의 드워프들에게 전해줘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협상은 얼마 후에 하기로 합의를 보려하고 있었다.
  일단 드워프들이 내놓은 물건들을 봐야할 것 아닌가? 그래봤자 드워프들은 실패작이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저... 물어볼 게 있는데."
  그때 카로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 카로스를 보며 아큰이 되물었다.
  "뭔가?"
  아큰의 말에 옆에 있던 소드마스터급의 기사 론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뭐냐? 황태자 전하에게 그런 말투라니!"
  하지만 그런 론의 말에도 아큰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황태자?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는데? 인간 황족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 말에 다혈질인 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놈이!"
  "그만!"
  론이 검을 뽑으려 하자 카로스가 말렸다.
  "이곳은 드워프의 영역이야. 그리고 이 종족에게 인간의 신분을 따르라는 것도 웃기고 말이야."
  "저, 전하!"
  그 말에 론이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카로스는 무시했다.
  그런 론을 보며 아르코가 말했다.
  "론님, 문제를 일으켜서 좋을 것 없습니다. 드워프들과의 거래는 저희에게 큰 밑천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론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물러났다.
  그런 론을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던 아큰이 카로스를 보며 물었다.
  "뭔가?"
  그런 아큰을 보며 카로스가 물었다.
  "이 마을에 은발에 은안을 가진 소녀가 있습니까?"
  그 말에 아르코는 물론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당황했다.
  드워프 마을에 웬 인간? 그렇게 모두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더욱 그들을 황당하게 하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장로급 드워프가 자신의 마을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조금 황당해지는 방 안의 인간들이었다.
  카로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싫다고요?"
  "그래."
  카로스는 그 소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아큰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큰은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아큰을 보며 카로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요? 인간이 인간 좀 본다는데."
  그런 카로스를 보며 아큰이 말했다.
  "워낙 갑자기 튀어나오는 우리 마을 손님인지라, 나도 어디있는지 몰라."
  "손님?"
  아큰의 말에 아르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들도 드워프 마을에선 '손님'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저 얼굴만 익힌 사람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늘 자신들을 경계하는 드워프들이었다.
  하지만 앞의 아큰의 말을 들어본다면 그녀는 드워프 마을의 손님이다. 그것도 꽤 정중하게 모시는 것 같았다. 드워프 마을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도록 놔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아르코는 그 소녀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카로스가 말했다.
  "그럼 드워프 분들께 그 소녀의 행방을 물어서 만나면 안 될까요?"
  그러자 아큰이 말했다.
  "귀찮아."
  그 말에 무안한 표정을 짓는 카로스. 그렇게 카로스가 무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완성됐다!"
  쾅!
  갑자기 방문이 거세게 열리면서 한 드워프가 들어왔다.
  드워프는 완전 그을려 있었는데 몇 달 동안 안 씻었는지 머리가 완전 떡이 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괴 드워프의 난입에 깜짝 놀란 기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을 손으로 한 명씩 던지듯 치우며 아큰에게 다가갔다.
  "아큰! 에이라나님 어딨어?"
  "드, 드이스님?"
  아르코가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은 커녕 아큰은 얼굴을 사정없이 구기며 소리만 칠뿐이었다.
  "이 자식아! 세 달 동안 작업실에 찌그러져 있다가 어디서 행패야!"
  하지만 드이스는 아큰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시끄러워! 에이라나님 어딨어! 검 완성됐다고! 엉? 어디!"
  검이 완성됐다고 외치는 드이스의 커다란 손에는 검 두개가 쥐어져 있었다. 아큰이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릴 때쯤이었다.
  "쿨."
  아큰의 멱살을 잡은 채로 드이스가 잠들었다. 그것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방 안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큰은 그런 드이스의 손에서 검을 빼앗고 드이스를 번쩍 들어 창밖으로 던질 뿐이었다.
  "잘 거면 딴 게 가서 자!"
  쿵!
  드이스의 육중한(?) 몸이 바닥과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큰은 신경 쓰지 않았다.
  "흐응~ 그것보다 에이라나님께 줄 검이 완성됐다고? 세 달 동안 처박혀 있더니 완성했나보군."
  그 말에 방 안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작 검을 만드는데 드워프가 작업실에 들어앉았다고?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바로 아르코였다.
  "자, 장로님께서 검 한 자루를 만든다고 세 달 동안이나 작업실에 있었다는 겁니까?"
  드워프 장로가! 그것도 무기 전문가인 드워프가, 고작 검 한자루를 만든다고 세 달이란 시간을 보냈단 말인가?
  정말 놀랄 '노'자였다.
  그 말에 더욱 놀란 것은 기사들이었다.
  드워프 장로!
  드워프 마을에서 최고의 장인이라는 그런 드워프가 검을 만든다고 세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면 그 검은 결코 범상치 않은 것임에 분명했다. 신검이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검일 것이었다.
  그런 아르코의 물음에 아큰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냐, 아냐! 검 두 자루야."
  그렇다 해도 드워프 장로가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었다.
  아큰이 그렇게 말하며 흑빛 검집을 가진 검을 뽑았다.
  검 밖에까지 예기가 느껴지는 것이 엄청난 검이 분명했다.
  검집도 공을 들였는지 아름다웠다. 검집의 이상한 문양.
  그것은 드워프들이 쓰는 일종의 주술이었다.
  그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아큰이었다.
  이건 분명 엄청난 예기를 가진 검의 예기를 봉인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이 문양이 그려져 있단 말인가?
  그렇게 슬쩍 검을 뽑은아큰.
  스릉!
  조금 뽑으며 보인 흑 빛 검신은 정말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었다.
  "헉!"
  아큰이 깜짝 놀라 검을 빨리 검집에 꽂았다.
  "헉! 헉! 헉!"
  갑작스러운 아큰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큰에게 있어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에, 에고소드?"
  아큰이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닌 검이 에고소드였기 때문이었다. 아큰은 환상을 보았다. 커다란 흑룡이 자신을 삼키는...
  만약 그대로 검을 계속 바라보았다면 검에 영혼을 빼앗겼을것이다. 그제야 문양을 그려 넣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건 신검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의지를 가진 자존심이 엄청 강한 검! 마법 따위에 의해 의지를 가진 게 아닌, 스스로 검 안에 똬리를 틀고 앉은 것이다.
  그렇게 놀라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손에 들린 다른 은빛 검을 쳐다보았다.
  '서, 설마 이것도?'
  역시나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아큰이 질린 눈으로 자신이 던진 드이스를 쳐다보았다.
  도대체가 어떻게 괴물들을 만든 것일까? 과연 이 자존심이 강한 것들을 아직 어린 에이라나가 굴복 시킬 수 있을까? 걱정되는 아큰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큰과 다르게 아큰을 짜증나게 만드는 이들이 있었으니...
  "좋은 검들이군."
  론이 흑빛 검과 은빛 검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제국의 신물로 내려져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검 같았다. 그리고 검사인 자신으로서 저런 물건이 탐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카로스도 검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 안에 있던 기사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저 검들이 탐나기 시작했다.
  놀란 건 방 안의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사들과는 달랐다. 과연 자신들이 뽑은 장로라고 생각하며 그를 인정하는 드워프들이었다. 그리고 괴물 같은 검들을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모두의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때 한 기사가 나서며 말했다.
  "이보시오."
  그는 오르카라는 이름을 가진 자로, 역시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기사였다.
  아큰은 그렇게 질린 눈으로 검을 보다가 오르카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왜 그러나?"
  "그 검, 나에게 파시오."
  그 말에 론과 남은 소드마스터급 기사 미카올이 찌릿한 눈으로 오르카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오르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얼마면 되오?"
  하지만 아큰은 차갑게 대답할 뿐이었다.
  "개소리 하지 마라. 이 검은 우리 마을 손님의 검이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입 다물어!"
  그 말에 오르카가 말했다.
  "방금, 검을 만든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검은 막 완성된 것! 그럼 아직 부탁받은 검 주인은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데."
  "흥!"
  오르카의 말에 아큰은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이에 오르카는 더 어이 상실한 말을 지껄일 뿐이었다.
  "검은 어울리는 사람이 가져야 빛을 뿜는 것이오."
  오르카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이토록 자만한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하긴 대륙에서 그렇게 많이 없는 소드마스터이니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튼 그 말에 아큰은 냉담할 뿐이었다.
  "지랄하고 앉았네."
  자신이 보기에 이 검은 적어도 그랜드소드마스터급의 검사가 아니면 다룰 수 없었다.
  그랜드소드마스터급 검사도 휘둘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디서 소드마스터랍시고 검을 받겠다고 하니 욕이 나올 수 밖에...
  아큰의 말에 오르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오르카가 으르렁거릴 때였다.
  "자자! 오르카, 저렇게 거절하잖아? 일단 더 대화를 나누어 보자고, 그리고 저 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이는 검의 재료를 모두 댔을지 모르잖아? 일단 검을 부탁한 사람에게..."
  "아큰! 드이스가 저기 왜 누워 있어? 그리고 검은 완성됐다면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한 목소리. 그 목소리와 함께 창문으로 인영 하나가 들어왔다. 그 인영은 치렁치렁한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은발에 은안을 가진 소녀였다.
  소녀는 '휙'하고 들어와 아큰의 눈앞에 착지했다. 그런 은발의 소녀 에이라나를 보며 아큰이 말했다.
  "에이라나님, 저 자식이 검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괴물 같은 녀석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렇게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린 아큰이 검 두 자루를 에이라나에게 넘겼다. 에이라나가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였다.
  "어? 그 소녀?"
  카로스가 말했다.
  에이라나는 카로스의 말에 카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나 알아?"
  자연스러운 반말. 그 말에 기사들은 어이가 없어졌다. 카로스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
  "그런데 왜 아는 척해?"
  그 말에 난감해지는 카로스였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워프 마을에 웬 소녀가 있으니 궁금해지잖아?"
  어색하게 말하는 카로스를 쳐다보던 에이라나가 중얼거리듯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신경 끄지."
  그 말에 어색하게 웃는 카로스였다. 아무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론이 말했다.
  "이봐, 소녀. 네가 그 검을 부탁했나?"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라나.
  "그런데?"
  그 말에 역시 어이없어지는 론이었다. 반말이다. 하지만 묘하게 납득되기도 했다.
  당당함. 그 당당함에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천족이 강힘한 듯한 아름다운 얼굴에 자연스럽게 풍기는 위암감. 그것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드는 론이었다.
  '어느 귀족가 아가씨지?'
  하지만 저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귀족가 아가씨가 풍길 위암감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아가씨가 왜 이런 위험한 산에 있단 말인가? 아무튼 그렇게 잠시 얼굴을 찌푸리던 론이 말했다.
  "그검 나한테 팔 생각 없나?"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에이라나가 아큰을 보며 물었다.
  "이 새끼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걸 돈으로 산다고? 미친 짓이다. 아마 이걸 돈으로 환산한다면 웬만한 왕국의 일 년치 예산과 맞먹을 것이다.
  에이라나의 말에 아큰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깨를 으쓱하는 아큰이었다. 론은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론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 검을 사고 싶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론.
  론의 끄덕임에 에이라나가 다른 기사들을 보며 물었다.
  "당신들도?"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나머지 기사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 끄덕임에 어이없어지는 에이라나였다. 주제 파악을 해야지, 어디서 남의 검을 노린단 말인가?
  "난 팔기 싫은데?"
  그 말에 당황하는 기사들이었다.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아큰에게 말했다.
  "아큰, 나 간다."
  "안녕히 가십시오."
  에이라나의 말에 손수건을 흔들어주는 아큰이었다.
  에이라나가 밖으로 나가자 세 소드마스터급 기사들이 그녀를 따라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카로스도 어색한 표정으로 에이라나를 따라갔다.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어색해지는 그였다.
  에이라나는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씨발, 참을 만큼 참았어. 뒈지기 싫음 꺼져!"
  에이라나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자신을 짜증나게 만드는 세명의 기사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에이라나의 말에 론이 말했다.
  "입이 거칠군."
  에이라나는 그 말에 피식 미소를 지을 뿐이다.
  "너희들, 너희 실력에 자신 있냐?"
  에이라나의 물음에 론이 말했다.
  "당연한게 아닌가? 우린 소드마스터 반열에 오른, 검의 끝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다."
  대륙 사람들은 그랜드소드마스터가 검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당연했다. 리샨 대륙은 그랜드소드마스터급 이상의 경지를 이룩한 이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랜드소드마스터상급 이상의 반열에 든다면 수명이 300년으로 늘어나기까지했다.
  라타파칸은 아직 그랜드소드마스터 초급의 경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리샨 대륙 사람들과 중원 무림 사람들은 다르다.
  중원 무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검의 길은 끝이 없다.
  마교만 해도 현경의 고수들이 수십 명은 있었다. 마교 안에서도 은거 고수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중 대부분이 천마대의 일원 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중원 무림의 숨은 고수들을 모두 합치면 혀경급 고수만 100명을 넘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검의 끝은 없었다. 천마만 하여도 검으로 신의 반열에 오른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에이라나가 기사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랄한다, 지랄을 해."
  에이라나의 또다시 터지는 욕에 기사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좋아, 너희들이 날 이긴다면 이 검을 넘기지."
  그 말에 론, 오르카, 미카올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저 눈앞의 소녀가 싸움을 건 것이다. 예상치 못한 말에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미카올이 물었다.
  "그 말 진심이냐?"
  미카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라나였다.
  "그럼, 내가 뻥치리?"
  에이라나의 말에 이번에 셋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눈앞의 소녀는 자신에게 싸움을 건것이 맞았다. 그 말에 카로스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하지만 에이라나는 그들을 무시했다. 에이라나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해? 아무나 덤벼."
  그 말에 기사 셋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 어린 소녀를 상대로 검을 휘두른 다는 것에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잊고 있는게 있었다. 자신들은 이곳까지 들어오는데 희생을 치르고 들어왔다. 그런데 에이라나는 혼자서 들어왔다. 그렇다는 것은 에이라나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당황하는 기사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흑선을 들어보았다. 이제 흑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딸랑.
  경쾌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연스럽게 에이라나의 손으로 시선이 가는 기사들이었다. 에이라나는 그런 세명을 향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전에 있던 곳에는 이런 말이 있었지."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흑선을 자신의 입까지 올리며 말했다.
  "어린아이, 노인, 그리고 여자아이를 조심하라. 약해 보인다고 무시하지 마라. 그러면 목이 떨어진다."
  촥!
  에이라나가 흑선을 한번 촥 펼쳐 입을 가리며 조소했다.
  탁!
  그리고 흑선을 다시 접었다.
  우웅!
  그것과 함께 흑선에서 검은빛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빛 기운이 흑선을 덮었다. 바로 오러였다.
  중원으로 따지면 선기? 그것을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짓는 기사들. 에이라나가 냉소하며 말했다.
  "자, 덤벼."
  그것을 보며 미카올이 말했다.
  "내가 상대하지."
  상대가 오러를 일으킬 실력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대의 기운은 상당히 강력했다. 처음 보는 무기에 호기심이 동하기도했다. 미카올도 오러를 일으켰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볼 때였다.
  팟!
  에이라나가 먼저 그에게 달려들었다.
  쾅!
  에이라나의 선기와 미카올의 검기가 부딪쳤다.
  자신이 밀리자 미카올은 당황했다. 그런 미카올을 보며 에이라나가 씨익 웃으며 이번에는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자, 제대로 간다."
  우웅!
  이번에는 선강이었다. 그것을 보고 경악하는 미카올!
  "오, 오러 블레이드!"
  그렇게 경악하는 미카올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경지라고 놀래서 빈틈을 보이다니 뒈지고 싶어 환장했군."
  촥!
  미카올을 검과 함께 베어버리는 에이라나였다.
  쿵!
  그러자 바닥에 엎어지는 미카올.
  눈 깜짝할 사이에 소드마스터 하나가 바닥에 누웠다. 그것을 보고 멍해지는 황태자와 론, 오르카.
  "이 녀석 죽이고 싶지 않으면 치료하는게 좋을걸?"
  에이라나가 쓰러진 미카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카로스가 외쳤다.
  "신관! 신관 불러! 치료사도 같이!"
  저렇게 놔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에이라나가 냉소하며 말했다.
  "자, 다음 덤벼."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그녀를 무시한 것은 엄청난 실수라는 것을 알아차림 론과 오르카였다.
  상단을 따라온 이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졌다.
  마스터급 검사들의 대결! 그러자 구름 떼처럼 빈 공터로 우르르 몰려드는 그들이었다. 그러고는 마스터급의 기사 둘과 대치하고 있는 은발의 소녀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락부락한 엑스 마스터인 드워프를 생각했는데 웬 은발의 소녀? 에이라나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자! 덤벼, 덤버!"
  그러자 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부터 하지."
  이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에이~ 결과는 똑같을 텐데? 그냥 둘 다 덤벼."
  하지만 론은 묵묵부답이었다. 에이라나가 말했다.
  "음, 그럼 잘가."
  휙!
  에이라나가 발을 굴렀다. 그러자 일어나는 이영환휘. 하지만 론은 이영환휘를 볼 시간도 없었다. 왜냐, 그전에 에이라나의 발이 자신의 복부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퍽!
  "커억!"
  그리고 바로 쓰러지는 론. 론은 그렇게 기절했다. 깔끔한 한방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나가 말했다.
  "다음."
  오르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대체가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움직인단 말인가?
  "검풍!"
  오르카가 검풍을 사용했다. 하지만!
  "검풍."
  에이라나도 똑같이 검풍으로 돌려주었다.
  쾅!
  검풍과 검풍의 힘 대결에서는 당연히 에이라나의 검풍이 이겼다. 그리고 기 싸움에서 진 결과 오르카는 피를 토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소드마스터 초급이 덤빌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튼 아무리 소드마스터 초급이라고 하나 가볍게 그들을 눕히는 에이라나를 보며 모두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랜드소드마스터'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흑아와 은아(2)
  기사들을 단 일격에 눕혀버린 에이라나는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에 짜증을 느끼며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찾아온 에이라나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두 검을 쳐다보았다.
  은빛과 흑빛.
  에이라나는 먼저 은빛 검집에 숨어 있는 검을 뽑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은백색 검신. 그것을 잠시 쳐다보던 에이라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우웅! 우웅!
  그리고 ‘우웅’ 소리를 내는 검을 만져보며 중얼거렸다.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군.”
  은백색 검신을 노려보던 에이라나의 눈앞에 갑자기 뭔가가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놀란 에이라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은 웬 소년이었다. 은백색 머리카락을 발끝까지 기른 엄청 귀여운 꼬마아이.
  에이라나가 그를 보고 중얼거렸다.
  “웬 꼬마냐?”
  하지만 그 꼬마아이는 에이라나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 꼬마 아냐! 난 이 검이라고!”
  꼬마는 은백색 검신을 뽐내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손에 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검에 붙은 정령 같았다.
  에이라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뭐야? 자존심 강할 것 같은 이 검이 이 꼬마라고?”
  에이라나가 어이가 없는지 직접 가리키면서 말했다.
  “우씨~ 나 꼬마 아냐!”
  꼬마가 꼬마라고 인정하는 거 본 적 있는 사람? 없다.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꼬마, 네가 이 검이라고?”
  은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꼬마가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나 꼬마 아냐! 그리고 난 이 검에서 태어난 이 검에 붙은 정령이야.”
  그런 꼬마를 빤히 쳐다보던 에이라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네 주인이네?”
  그러자 꼬마가 손을 까딱하며 말했다.
  “오우~ 노! 내 주인이 되고 싶거든 시험을 치러!”
  그렇게 말한 꼬마가 에이라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넌 시험을 치러도 내 주인이 될 수 없... 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에이라나가 발바닥으로 꼬마의 배를 갈겼기 때문이었다. 내공이 깃든 발차기라 꼬마는 그대로 나무에 처박혔다.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우씨! 어디서 발길... 헉!”
  꼬마가 막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꼬마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흉흉한 냉기를 품은 작대기가 자신의 목에 겨눠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정령이라 해도 그것에 맞으면 아플 것은 당연했다. 목에 겨눠진 것은 바로 은선이었다.
  “야, 꼬마! 내가 너 만든다고, 재료 구하고 뭐 한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거든? 순순히 날 주인으로 받아들여라?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럴까?
  살기까지 품고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의 모습에 아이가 흑흑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에이라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뚝 안 그치면 던져버린다?”
  바로 울음을 그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아무튼! 오늘부터 내가 네 주인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에이라나였다. 하지만 아이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일단 자신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한 그녀였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것도 바로 에이라나 때문이었다. 검에 대한 경지도 상당히 높아 보였다.
  아이가 말했다.
  “이봐.”
  아이의 부름에 에이라나가 대꾸했다.
  “왜?”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나, 이름 지어줘”
  “어엉? 이름?”
  자신의 말에 꼬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라나가 되물었다.
  “이름은 왜?”
  “나 이름 없어. 맨 처음 주인 된 사람이 지어줘야지?”
  그 말에 에이라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갑작스럽게 이름이라니? 일단 이 꼬마가 자신을 주인으로 선택한 거t 같아 기분이 좋기는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이름을 지어달라니...
  그때 에이라나의 머릿속으로 좋은 이름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실버 드래곤의 송곳니로 만든 검.
  그런 검에게 어울릴 만한 이름이 딱 하나 있었다.
  “은아.”
  “응?”
  “네 이름은 은아다.”
  에이라나가 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던 은아가 생긋 미소를 짓고 물었다.
  “주인은 이름이 뭐야?”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에이라나.”
  은아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서서히 기운을 품어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은아가 에이라나를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의식인 것 같았다. 은아 정도의 검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했다.
  그렇다 해도 에이라나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은아가 품고 있는 기운은 자신의 기운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아니, 자신을 뛰어넘었다.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은아가 어린 아이의 성격을 가지지 않은 도도한 검이었다면 자신은 은아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자신의 손에 쥐어진 흑빛 검에 위화감마저 들었다. 그보다 에이라나가 놀란 것은 지독한 한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어벙(?)해 보이는 검이 이렇게 지독한 한기를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나 흑한의 검 은아가 눈앞에 있는 에이라나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흑한.
  성격은 어울리지 않지만 기운에는 지독하게 어울리는 명칭이었다. 은아가 살며시 에이라나의 머리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은아의 행동에 에이라나가 놀라고 있을 때, 은아가 살며시 자신의 입술과 그녀의 입술을 포갰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에이라나가 무척 당황했다.
  은아는 에이라나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며 말했다.
  “이제 몸 어딘가에 문신 하나가 생길 거야. 그 문신은 네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표가 될 거야. 나를 그 문신 속에 보관하면 주인에게 내가 가진 힘을 빌려줄 수도 있게 되는 거지.”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한 검이다. 아무 마법도 없이 이런 검이 탄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에이라나는 그 말에도 멍할 뿐이었다.
  “응? 주인?”
  은아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그런 은아를 보며 정신을 차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한다?”
  에이라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흑빛 검집에 꽂혀 있는 검을 흔들었다.
  에이라나가 흑빛 검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이 자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
  은아가 중얼거렸다.
  “이 아저씨, 성격 장난 아니야.”
  은아의 말에 에이라나가 정정해주며 말했다.
  “성격이 장난 아닌 게 아니라, 자존심이 강한 거겠지.”
  “응? 자존심이라면 나도 강한데.”
  은아의 말에 에이라나는 다음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래. 처음 봤을 때는 자존심 강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보니 순 어린애야.’
  아마 이 소리를 들었다면 은아가 화났을...이 아니라 삐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에이라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말했다.
  “그래, 일단 뽑고 보자. 천하의 마교의 소교주였던 내가 고작 마기를 띤 검에게 쫄 수야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맘을 먹은 에이라나가 흑빛 검집에 꽂혀 있는 검을 뽑았다.
  스릉!
  은아처럼 차가운 냉기와 잔잔한 예기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인 마기와 쥔 사람까지 벨 듯한 예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보고 은아가 말했다.
  “우아~ 저 성깔 좀 봐!”
  “시끄러워!”
  은아의 말에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던 에이라나가 짜증을 냈다. 그녀는 금세 시무룩해진 은아를 무시하고 검에 집중했다.
  뭐든지 빨아들일 듯한 검은빛을 가진 검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뭐냐?]
  갑자기 웅장한 소리가 들렸다.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은아보다 훨씬 위엄 있어 보인다.”
  “우씨! 나 화낸다?”
  에이라나의 말에 잠자코 지켜보던 은아가 화를 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귀엽기밖에 더 하겠는가?
  에이라나는 은아에게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는 다시 자신의 앞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흑빛의 와이반만 한 크기의 블랙 드래곤과 비슷하게 생긴 비룡 하나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넌 인간 형체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빤히 쳐다보던 비룡의 몸이 검은 기운에 휩싸이더니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180cm에 근육이 적당하게 붙은 미남자로 변했다. 중요 부위만 근육이 있어 어떻게 보면 호리호리하게도 보일 정도였다.
  에이라나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남자에게 물었다.
  “뭐야? 넌 형체가 두 개야?”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흑발의 사내.
  “그래. 네 옆에 있는 녀석이나 나나 정령으로서 두 개의 현상을 할 수 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은아를 쳐다보았다. 의아해 하는 은아를 보며 에이라나가 대뜸 요구했다.
  “다른 형체를 보여줘.”
  “응? 다른 형체?”
  끄덕.
  에이라나의 말에 은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 에이라나는 은아의 몸집이 당연히 커질 줄 알았다. 눈앞에 사내도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으니깐.
  그런데, 황당하게 작아진다?
  에이라나가 어이없어 하고 있을 때였다.
  “야옹~.”
  에이라나가 묵묵히 자신의 발밑에서 하품을 하는 새끼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은백색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쥐고 자신의 눈앞에 가져와서는 말했다.
  “... 생긴 대로 논다.”
  에이라나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휙 던져버렸다. 저런, 감정이 메말라버린 놈.
  에이라나는 귀여운 모습이 아닌 뭔가 화려한 걸 기대했었다. 그런데 저런 게 튀어나와 조금 실망한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의 손에 던져져 바닥을 몇 번 구른 은아가 소리쳤다.
  [뭐, 뭐야? 왜 던져?]
  “야옹.”
  심령으로 말한 다음 바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은아.
  그런 은아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검 안에 들어가 있어라.”
  [우씨.]
  그렇게 말한 은아가 에이라나 손에 쥐어진 은백색 검 속으로 들어갔다. 에이라나는 은백색 검을 다시 검집에 넣은 다음 허리에 차면서 속삭였다.
  “미안.”
  에이라나를 빤히 쳐다보던 흑발의 사내가 물었다.
  “그 녀석의 다른 모습에 어이가 없는가?”
  그의 질문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린 아이 모습은 그런대로 이해하는데, 새끼 고양이가 뭐야? 겉모습은 흑한이란 명칭과 전혀 안 어울려.”
  에이라나의 말에 흑발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다.”
  비슷한 것들끼리 잘 하는 짓들이다.
  그때, 에이라나가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난 네 주인이 될 사람이야. 날 주인으로 받아드릴 거냐?”
  에이라나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사내가 말했다.
  “아니. 난 나보다 약한 이의 소유가 될 생각은 죽어도 없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발의 사내가 에이라나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검과 검집을 자신의 손으로 이동시켰다. 에이라나의 손에 있던 검이 순식간에 사라져 사내의 손에 쥐어졌다. 이어 당연한 듯이 말하는 사내.
  “네가 내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 광마의 검이 확인해주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에게 돌진해왔다.
  쾅!
  에이라나가 재빨리 피했다. 하지만 마기를 띤 기운이 그녀를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사내의 공격을 모두 피하긴 했지만 검에 깃든 정령이라 장난이 아니었다.
  ‘쳇! 특별한 초식이나 무공은 없지만, 리샨 대륙의 어중이떠중이와는 근본 자체가 다르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소리쳤다.
  “마기를 가진 상대와의 대결은 오랜만! 옛날 생각나는 걸?”
  에이라나도 마기를 품어내기 시작했다.
  완벽한 마기.
  그것을 보며 사내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 두 개의 기운을 같이 가질 수 있지? 빙과 마는 상극은 아니어도 다른 속성인 것을.”
  일단 자신의 형제뻘인 은빛 검이 눈앞의 존재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은 그녀가 강하기도 했지만, 그와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빙 속성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는 마기까지 뿌려대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도 자신과 같은 흑발에 흑안이 되었다.
  에이라나가 말했다.
  “난 마교의 소교주였다.”
  그렇게 외친 에이라나가 흑선을 들어 내공을 불어넣었다. 시커먼 마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짓던 사내가 히죽 웃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군.”
  남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굉장히 깨끗한 마기다.”
  “고마워.”
  마의 성향에 따라 호전적인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격돌했다.
  쾅!
  에이라나는 자신의 삼갑자 내공을 총동원하며 사내를 제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내 또한 에이라나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마기를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온 숲은 어느 새 마기로 자욱했다.
  쾅! 콰가가가강!
  때 아닌 폭격에 주위의 몬스터들만 죽어나갔다. 드워프들도 옆 숲에서 폭격의 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하며 대피(?)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의 레어의 워프 마법진이 빛나더니 뭔가를 토해(?)냈다. 바로 적발에 적안을 가진 미남자였다. 까딱 잘못 보면 여자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였다. 키는 175cm 정도?
  그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뭐야? 에이라나가 레어를 가졌다고 해서 구경 왔는데. 리얀 누나가 왜 여기 있어?”
  그러자 레어 안에서 빈둥거리던 흑발에 흑안을 가진 미녀 리얀이 방금 워프 게이프를 타고 도착한 레니스를 보며 말했다.
  “나도 방금 왔어, 우리 에이라나 어디 갔지? 그건 그렇고 넌 왜 에이라나 레어에 온 거야? 친하지도 않으면서?”
  리얀의 말에 레니스가 말했다.
  “왜 안 친해? 나 에이라나랑 친해.”
  하지만 레니스의 말에도 리얀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레니스는 얼굴만 찌푸린 채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고 해도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일로 싸울 만큼 속이 좁은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싸워봤자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쳇!’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릴 때였다.
  “...?!”
  리얀과 레니스가 동시에 깜짝 놀라 한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는 어마어마한 마나와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특히 한 마기는 차가운 실버 드래곤의 냉기가 섞여 있었다. 레니스는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에이라나의 마기!’
  바로 150년 전에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에이라나의 마기였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리얀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뭐야?”
  당황한 표정의 리얀을 보며 레니스가 말했다.
  “에이라나의 마기야! 에이라나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어! 워프!”
  레니스는 서둘러 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워프했다. 하지만 아직 상황판단을 못한 리얀은 어리벙벙할 뿐이었다.
  “뭐? 에이라나가 싸우고 있다고? 뭔 소리야! 우씨! 워프!”
  일단 에이라나가 싸우고 있다니 워프할 수밖에 없는 리얀이었다.
* * *
  에이라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허벅지 쪽은 찢겨져 하얀 속살이 훤히 보였고, 옆구리 쪽부터 허리에서 등까지도 완전히 찢겨져 있었다.
  다시 말해 옷이라고 보기 힘들 누더기였다. 그래도 가릴 곳은 다 가리고 있었다. 에이라나가 아까보다 풍기는 기운이 약해진 흑발의 사내를 보았다.
  “대단하군.”
  사내가 중얼거렸다. 사내는 정령답게 외관은 별 피해가 없어 보였으나 기운은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에이라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한 기운만으로는 이기기 힘들어.’
  냉기와 마기가 섞이면 보통의 마기보다는 더 강한 데미지를 줄 수 있다. 특히 추가 타를 더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면 많이 지치기 때문에 잘 안 쓰는 에이라나였다. 물론 그것을 쓸 만큼 대단한 상대를 만난 적도 없었고. 하지만 눈앞의 정령은 달랐다.
  에이라나가 천천히 실버 드래곤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흑선에 맺혀 있던 검은빛 마기에 은빛 냉기가 서리기 시작하더니 냉기와 마기가 서로 하나로 합쳐졌다.
  서로 합쳐지고 반발하기를 반복하는 두 기운.
  에이라나의 눈동자도 왼쪽은 은안, 오른쪽은 흑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머리카락도 은발과 흑발이 섞여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흑발의 사내가 그런 에이라나의 모습을 보고 질린 듯 말했다.
  “괴물이군.”
  그러자 에이라나가 반박했다.
  “너도 만만치 않거든?”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잔상을 남기는 이영환휘를 쓰며 흑발의 사내에게 돌격하려고 할 때였다.
  “앗! 에이라나다!”
  휘청!
  순간 에이라나가 휘청거렸다.
  덥석!
  그리고 뒤에서 달려와 갑자기 자신을 껴안는 존재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리, 리얀 언니?”
  바로 에이라나의 사촌언니인 리얀이었다.
  “꺄~ 에이라나다! 에이라나!”
  에이라나를 껴안은 채 소리치는 리얀. 그런 리얀을 에이라나에게서 떼어내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레니스였다.
  “리아 누나, 작작해.”
  리얀이 그런 레니스를 보며 말했다.
  “사촌동생과 사촌언니의 감격스런 재회를 방해하다니, 이런 썩을 놈!”
  “눈앞의 흉흉한 마기를 뿌리는 상대나 잘 봐.”
  레니스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에 리얀이 흑발의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하는 말.
  “앗! 에이라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왜 그래? 어! 기운도 이상해!”
  흑발의 사내를 본 게 아니라 에이라나를 본 리얀이었다.
  “앗! 옷도 여기저기 찢겼잖아? 꺅! 레니스! 보지 마! 노출이 심하잖아!”
  리얀은 에이라나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레니스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그러자 레니스가 말했다.
  “씁! 허벅지랑 옆구리, 허리, 등 좀 보는 게 뭐가 어때서?”
  레니스의 말에 리얀이 다시 소리쳤다.
  “늑대들이 에이라나의 속살을 보는 건 죽어도 용납 못해!”
  사실 에이라나의 옷이 찢겨 있긴 했지만 그렇게 노출이 심한 것도 아니었다. 리얀이 과민 반응한 것이다.
  지켜보던 에이라나가 참다못해 나섰다.
  “둘 다 시끄러워!”
  에이라나의 말에 곧바로 조용해지는 두 사람.
  그런 세 드래곤을 보며 흑발의 사내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하는 거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난 빼고, 이 두 드래곤은 개그하는 것 같아.”
  에이라나의 말에 리얀이 말했다.
  “나 개그 안 했는데?”
  그러자 에이라나가 말했다.
  “하는 짓 자체가 개그야.”
  그렇게 둘이 다시 티격태격하려고 할 때, 레니스가 물었다.
  “저 녀석... 도대체 뭐지?”
  레니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아차’하고 흑발의 사내를 보며 설명해주었다.
  “검.”
  “검?”
  에이라나의 말에 동시에 의아한 반응을 보내는 두 드래곤.
  그런 드래곤을 무시하고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봐, 이만 끝내지? 이제 슬슬 지겨워질 것 같아.”
  이 모습으로 변한 것은 한 방에 끝내기 위해서였다. 더 이상 끌어 봤자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에이라나였다.
  잠시 두 드래곤의 등장에 어이없어 하던 흑발의 사내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렇게 다시금 서로를 노려보는 두 존재.
  역시나 그 두 존재를 긴장된 눈으로 쳐다보는 두 드래곤.
  에이라나의 눈이 빛났다.
  “천마!”
  에이라나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한 기술이었다. 에이라나의 흑은빛 검강의 폭격이 흑발의 사내를 덮쳤다.
  그 공격에 리얀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레니스 역시 다시 보는 공격이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면 흑발의 사내는 그것을 보고 멍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쾅!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검강의 폭격이 흑발의 사내를 덮치고 있을 때였다.
  콰가가가가가가강!
  무시무시한 마기 다발이 에이라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공격을 펼친 에이라나도 당황했다. 레니스와 리얀도 그것을 보고 굳은 얼굴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그리고 히죽 웃은 에이라나가 자신의 마나를 이용해 배리어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입을 쩍 벌리는 리아와 레니스였다.
  에이라나가 가지고 있는 기운은 삼갑자의 내공량과 7서클 급의 마나량. 다시 말해 7서클급 배리어였다.
  하지만 흑빛 검. 즉 흑발의 사내는 에이라나와 맞먹을 정도의 기운을 가진 검이다.
  쾅!
  마기 다발과 배리어가 충돌했다.
  잠시 버티던 배리어가 박살나면서 마기가 에이라나를 때렸다.
  하지만 이미 배리어가 박살날 것을 알고 있던 에이라나는 남은 내공으로 호신강기를 펼쳐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겠지만... 그것에 맞고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워낙 강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쿵!
  바닥에 떨어진 에이라나가 피를 한 움큼 토했다.
  “쿨럭!”
  “에이라나!”
  에이라나가 피를 토하자 두 드래곤이 다급하게 에이라나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내상에 익숙한 그녀가 고통을 참으며 일어서서 천마가 떨어진 곳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내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사내의 모습이 가물가물한 것이 곳 사라질 것처럼 불안했다. 사내가 생긋 웃었다.
  “널 내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사라지기 일보직전의 모습이었지만 역시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레니스와 리아는 그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말?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그들은 갑자기 그가 에이라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쳇. 또 의식이 키스인 건 아니겠지?”
  그러자 사라져가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 가장 상대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좋은 곳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당연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뭔 소리야? 의식이라니? 또 뭐? 키스? 뭔 개소리야!”
  “맞아! 뭔 소리야? 에이라나와 싸우더니? 도대체 저 자식 정체가 뭐야? 마족이야?”
  바로 리얀과 레니스였다.
  두 드래곤의 말에 에이라나가 대꾸했다.
  “말했잖아? 검이라고.”
  “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에이라나가 은아를 툭 치며 말했다.
  “은아, 나와.”
  그러자 검집이 빛을 발하더니 빛 덩어리를 토해냈다. 그 빛 덩어리가 점점 형상을 만들어가더니 귀여운 소년의 형상이 되었다. 그런 소년을 보고 레니스가 중얼거렸다.
  “설마... 에고소드?”
  레니스의 말에 은아가 답했다.
  “정답!”
  그런 은아를 잠시 쳐다보던 에이라나 앞으로 사내가 나서며 말했다.
  “피곤하다. 쉬고 싶으니, 빨리 이름을 지어줬으면 한다.”
  “나도 피곤하다.”
  그렇게말한 에이라나는 생각하던 이름을 말했다.
  “네 이름은 흑아다.”
  에이라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내. 아니, 흑아.
  “나 광마의 검 흑아가 눈앞에 있는 에이라나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검의 명칭과 이름만 다를 뿐, 은아와 똑같은 대사를 말하는 흑아였다. 그렇게 말한 흑아는 은아와 다르게 연인이 키스하는 것처럼 에이라나의 허리를 붙잡아 끌어당기며, 살며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 모습이 정말 연인처럼 보여 레니스를 광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레니스와 같이 광분해야 할 리얀은 은아를 보고는 눈을 반짝이며 꼭 끌어안고 있었기에 두 존재의 키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꺅! 이 꼬마 진짜 귀엽다! 에이라나의 검에서 튀어나온 거 맞지? 검의 정령인가? 꼬마야, 이름 뭐야?”
  “으아아악! 뭐야, 이거? 주인! 살려줘!”
  리얀의 품에 안겨 절규하는 은아. 그렇게 절규하는 은아를 무시한 채 에이라나가 살며시 얼굴을 찌푸렸다.
  “이상해.”
  그런 에이라나를 보고 레니스가 흉흉한 눈으로 흑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질투는.
  레니스의 물음에 에이라나가 대답했다.
  “흑아, 은아의 말로는 너와 은아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으면 문신이 생긴다고 하던데, 왜 생기지 않지?”
  에이라나의 물음에 흑아가 말했다.
  “은아가 말 안 했던가? 그건 나와 은아가 너의 몸 어딘가에 기운을 압축시켜야만 생기는 것이다.”
  흑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에이라나.
  “저 녀석은 그냥 생긴다고 하던데?”
  그러자 흑아가 말했다.
  “저 녀석이 철이 없어서 잘못 말한 거다.”
  그 말에 리얀의 품에 안겨 있던 은아가 반발했다.
  “아. 아냐! 저절로 생기는 거야!”
  그러자 얼굴을 찌푸리던 흑아가 에이라나의 등에 손을 대어 그녀의 속살이 드러난 등부터 옆구리까지 쓸었다.
  그것을 보고 레니스가 말했다.
  “너 뭐하는 짓이야?”
  위오오오!
  흑아의 손에 엄청난 마기가 압축되기 시작했다. 에이라나는 자신의 허리부터 옆구리까지 진득한 기운이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흑아의 손이 닿은 곳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한 흑빛 비룡이 새겨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아름다운 흑룡 문신이.
  그것을 보고 흑아가 말했다.
  “멍청아, 너도 빨리 새겨라.”
  당황한 채 지켜보던 은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내가 착각했나봐.”
  그렇게 말한 은아가 리얀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살짝 에이라나의 오른쪽 볼을 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흑아와 다르게 차가운 냉기가 오른쪽 볼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마법진 같은 은빛 문신이 새겨졌다. 은빛 문신 역시 아름다운 문신이었다. 두 문신으로 인해 에이라나가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흑아가 말했다.
  “멍청하긴.”
  그 말에 울상을 짓는 은아. 하지만 흑아는 그런 은아를 뒤로 한 채 말했다.
  “난 쉬겠다.”
  흑아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본체로 스며들어갔다.
  그것을 잠시 빤히 쳐다보던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공중에 떠 있는 흑아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은아를 보며 말했다.
  “은아, 너도 들어가.”
  그 말에 은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리얀을 피해 얼른 자신의 본체로 들어갔다. 잠시 리얀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제야 에이라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것을 보고 레니스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냐?”
  “아니.”
  레니스의 물음에 부정적으로 대답한 에이라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 잠 온다... 좀 자자.”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는 두 드래곤이 당황하는 것도 무시하고 눈을 감은 채 잠이 들었다.
  한편 본채로 돌아갔던 흑아와 은아도 잠시 우웅우웅! 소리를 내다가 가루가 되어 각각 자신들이 에이라나에게 새긴 문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리얀과 레니스였다.
    인간 세상으로
  아름다운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커다란 동굴 앞 공터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대륙에는 없는 자세.
  소녀의 주위에 강력한 마나의 폭풍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인간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나의 폭풍. 잠시 후 그 폭풍이 끝나고 소녀가 살며시 눈을 떴다.
  소녀의 은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소녀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이제 500살이 된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소녀가 바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중얼거렸다.
  “폴리모프!”
  그러자 소녀의 몸에서 번쩍 빛이 났다.
  그렇게 잠시 후 빛이 사라지며 소녀가 다시 나타났다. 소녀는 자신의 몸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윔급 드래곤이 아니면 성별을 바꿀 수 없나?”
  소녀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잠시 뒤,
  “워프.”
  그리고 소녀가 사라졌다.
  500년 전, 한 실버 드래곤이 태어났다. 그 실버 드래곤은 이상하게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전생에 중원 무림이란 곳의 단일 최고의 단체로 뽑혔던 마교라는 곳의 부 우두머리격인 소교주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파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지금 리샨 대륙에 다시 태어났다.
  바로 에이라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에랴나니스의 레어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마, 저 왔어요.”
  에이라나는 에랴나니스를 찾으며 레어를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에랴나니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 할 때 누군가 에이라나를 불렀다.
  “에이라나야.”
  그 부름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적발에 적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에이라나가 너무도 잘 아는 분이었다.
  “할머니, 엄마는요?”
  바로 레랴나스였다.
  레랴나스는 에이라나의 말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녀석은 벌써 로드의 레어로 갔어. 우리도 레어로 가자꾸나.”
  레랴나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냥 로드의 레어로 가면 될 것을 왜 에랴나니스의 레어로 온 것일까? 오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에랴나니스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소리도 되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레랴나스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에이라나, 에랴나니스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양이구나.”
  하긴 자신도 에랴나니스의 레어에 뭔가를 챙기러 왔으니.
  에이라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봐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레랴나스가 말했다.
  “가자꾸나. 워프!”
  에이라나의 손을 잡고 워프를 사용했다.
  파앗!
  그리고 빛이 에이라나를 삼키며 사라졌다.
  드래곤 사회에서는 또 다른 헤츨링이 성룡이 된다는 것으로 떠들썩했다.
  헤츨링이 성룡이 된다는 것은 드래곤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새로 태어난 헤츨링의 이름을 짓는 것만큼 중요했다. 그렇기에 수면에 들어간 드래곤들 빼고 모두 모인 상태였다. 에이라나도 자신의 윗 헤츨링들이 많아 여러 번 온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모여서 헤츨링들은 이 지루한 의식에 하품을 하며, 서로 장난치며 보내기 일쑤였지만.
  로드의 레어에 도착한 에이라나를 보며 조금 소란스럽던 레어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에랴나니스와 카랴만은 기다렸다는 듯 에이라나 옆을 각각 차지하고 섰다.
  에랴나니스는 에이라나와 같이 온 레랴나스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왜 에이라나와 같이 와요?”
  그런 에랴나니스의 물음에 레랴나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네 레어에 와 있기에 같이 왔다.”
  그러자 의아한 표정으로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내 레어는 왜?”
  그러자 레랴나스가 말했다.
  “둔하기는...”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두 모녀를 보며 로드가 말했다.
  “흠흠... 일단 잡담은 성인식이 끝나고들 하지?”
  로드가 헛기침을 하며 하는 말에 두 모녀를 입을 다물었다.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자 로드가 말했다.
  “에헴! 헤츨링 에이라나는 앞으로 나오도록.”
  그러자 에이라나는 모두가 보는 레어의 중앙에 있는 로드 앞으로 다가섰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로드가 말했다.
  “태어난 지 50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드래곤으로서 부족한 면을...”
  그렇게 시작한 드래곤 로드의 연설.
  이걸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지루하디 지루한 에이라나였다. 그렇게 몇 분 후 늘 있는 레퍼토리를 끝내며 로드가 선언했다.
  “나 드래곤 로드 아카타스카가 실버일족의 헤츨링 에이라나를 성룡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성룡식이라 해봤자 몇 분 동안 늘 똑같은 레퍼토리를 중얼거리는 게 다였다. 그리고 성룡이 된 드래곤에게 축하한다는 말 몇 마디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주 의외의 일이 있었으니.
  “에이라나! 사랑합니다! 결혼해주십시오!”
  “이 자식아! 저리 꺼져! 나랑 결혼해줘!”
  “처음 봤을 때부터 첫눈에 반했어!”
  이제 막 성룡식을 치른 어린애(?)한테 청혼한답시고 몰려드는 드래곤들 때문이었다. 막 에랴나니스와 카랴만과 이야기하던 에이라나는 갑작스런 전개에 멍해졌다. 반면 카랴만과 에랴나니스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몰려드는 드래곤들에게 마법을 날려주었다.
  쾅!
  콰가가가가강!
  “악!”
  “살려줘!”
  하지만 그런 그들을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신나게 마법을 난사하는 두 모녀였다.
  “헬 파이어!”
  “블리자드!”
  그 광경에 에이라나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런저런 작은 소란이 끝나고 에이라나가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매일 저런 것들에게... 시달리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에이라나가 심히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성룡이 된 걸 축하한다.”
  “에이라나! 성룡된 걸 축하해!”
  레니스와 리얀이 다가와 에이라나가 성룡이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두 드래곤을 보며 에이라나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렇게 셋이서 막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있을 때, 스산한 살기를 뿜는 이들이 있었으니.
  아까 카랴만과 에랴나니스에게 마법을 직격당한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너무도 익숙하게 에이라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레니스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감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캭!”
  “얌마! 레니스! 너 언제부터 에이라나와 친했어!”
  수많은 남성 드래곤들이 레니스에게 살기를 품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니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외치던 드래곤들은 다시 한 번 카랴만에게 응징을 당하고 말았다.
  성인식이 대충 끝나고 에이라나가 레어에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뒤에 있던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그래... 유희 나가게?”
  에랴나니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그녀가 기특한 지 에랴나니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헤~ 우리 딸, 이제 다 컸구나.”
  그런 에랴나니스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왜? 평생 내가 헤츨링으로 살 것 같았어?”
  장난스러운 에이라나의 말이었지만, 에랴나니스는 긍정을 표했다.
  “응.”
  에랴나니스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에이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때 이상한 헤츨링이라고 생각했어. 처음 태어났을 때 꽥꽥 소리를 지르지 않나. 100년 동안 자신을 남자로 착각하고 있질 않나.”
  에랴나니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그래서 널 키우는 게 재미있기도 했단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에이~ 그러면 이제 내가 엄마랑 완전 남남인 것 같잖아? 난 앞으로도 쭉~ 엄마 딸이야.”
  에랴나니스가 씁쓸해하자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에랴나니스는 에이라나를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그래... 에이라나는 영원한 내 딸이지?”
  그런 에랴나니스를 잠시 쳐다보던 에이라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응, 왜?”
  살며시 자신을 품에서 떼며 묻는 에랴나니스에게 에이라나가 애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 남자로 폴리모프 시켜주면 안될까?”
  그 말에 에랴나니스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퍽!
  “켁!”
  이어 에이라나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말했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절대 안 돼!”
  “쳇.”
  ‘은근슬쩍 남자로 폴리모프 시켜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은근슬쩍 남자가 되려고 했던 에이라나였다. 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솨아아아아.
  바람이 분다.
  그리고 그 바람에 한 소녀가 자신의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소녀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좋은 듯 싱긋 웃는다. 소녀가 눈을 살며시 뜨자 은빛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소녀는 흑빛 검과 은빛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간편한 여행복 차림의 소녀는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소녀가 가고 있는 곳은 숲길이었다.
  보통 혼자서 이런 숲길을 걷는 것은 미친 짓이다. 수많은 몬스터가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숲은 마의 숲이라고 불릴 정도로 몬스터가 떼로 있었다. 심지어 마계의 마물도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평안한 표정이었다.
  아툰 제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아프론 숲.
  지나더라도 수많은 실력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이 ㅅㅜㅍ을 혼자서 저렇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소녀.
  당연하겠지만 소녀의 이름은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자신의 레어를 떠나 워프를 한 번 사용했는데 그 곳이 바로 아프론 숲이었다.
  에이라나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사실 수많은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걷는 길이었다. 그렇게 걷고 있을 때였다.
  -쳇! 심심해.
  은아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속으로 받아쳤다.
  ‘시끄러워.’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은아가 소리쳤다.
  -심심하다고. 차라리 본체를 형성화시키게 해주면 안 돼?
  그런 은아의 부탁에 에이라나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럼 귀찮게 할 거잖아. 정신 사납게 만들지 말고 입 다물어라?’
  -쳇쳇쳇! 치사해!
  은아는 삐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은아는 다음 에이라나의 말에 소리를 지르다 누군가에 의해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흑아, 이 녀석 좀 조용히 만들어.”
  -알았다.
  -으아아아아악! 싫어!
  바로 흑아가 심령으로 은아를 제압한 것이었다.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심심하지는 않군.”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피식 웃어보였다.
  에이라나가 느긋하게 걸어 어느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은 꽤 큰 마을이었는데 에이라나는 규모를 보고 그 마을에 머물렀다 갈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에이라나가 마을에 들러 마을에서 가장 큰 여관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 있던 여자 종업원이 에이라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에이라나의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정신을 차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혼자이신가요?”
  “응.”
  그러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반말이었지만, 종업원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하루 묵을 건데, 식사부터 줬으면 해.”
  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80크럴입니다.”
  리샨 대륜의 화폐 단위는 동의 크럴, 은의 실버, 금의 골드, 백금의 오럴이었다.
  100크럴에 1실버, 100실버에 1골드, 50골드에 1오럴이었다.
  30실버는 보통 평민 집안의 한 달 생활비였다.
  에이라나가 실버 하나를 주었다. 그러자 종업원은 거스름돈으로 20크럴을 건네주었다. 에이라나는 20크럴을 품속에 넣고 식탁에 앉았다.
  에이라나의 외모 때문에 모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에이라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식사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은연중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용병들조차도.
  그렇게 에이라나가 식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끼익!
  갑자기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평범한,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앳된 티가 나는 남자였다. 하지만 얼굴은 남자답지 않게 예쁘장하게 생겼다.
  어쨌든 남자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가 갑자기 에이라나에게 달려오는 게 아닌가?
  “도, 도와주세요!”
  그리고 한다는 말이 다짜고짜 ‘도와주세요’였다. 식사를 기다리던 에이라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에이라나의 말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 가지고 계시잖아요? 저 지금 쫓기고 있어요. 혼자서 여행할 정도로 실력자라는 거잖아요? 아님 일행이 있거나...”
  앳된 티가 나는 남자의 말에 방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가느다란 팔에서 무슨 힘이 난다고 검을 휘두르겠는가?
  자신들이 보기에는 그저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눈에는 이채가 띠었다.
  남자의 말은 조금 억지스러울지 모르나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이 근처는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숲이 많다. 더욱이 아프론 숲까지 있었다.
  그런 곳에 아무리 여자라지만 검을 차고 왔다는 것은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에이라나가 앳된 티가 나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뭘 도와 달라는 거야?”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쫓기고 있어요!”
  그러자 에이라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뻔뻔하기는...”
  그렇게 에이라나가 중얼거릴 때였다.
  쾅!
  여관 문을 열며 한 무리의 검은 복면을 쓴 이들이 들어왔다. 그 복면 쓴 이들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그때 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모두 죽여라. 오늘 이 마을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인다.”
  그러자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검을 뽑는 복면인들.
  그것을 보며 기겁하는 여관 사람들이었다. 특히 여관으로 들어왔던 어떻게 보면 소년으로 보이는 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달랐다.
  “어디서, 모두 죽이느니 마느니 지랄이야? 그럴 실력이라도 되나?”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에이라나의 목소리.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복면을 쓴 남자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에이라나의 미모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에이라나 옆에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살기를 피웠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남자에게 물었다.
  “뭐냐? 너, 무슨 잘못이라도 했냐?”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저 녀석들은 더프론 제국의 기사들입니다!”
  그러자 여관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또 한 번 경악했다.
  더프론 제국.
  지금 대률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나라가 있다. 그것이 바로 더프론 제국이다.
  그런 그들을 저지하는 나라, 바로 아툰 제국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남자는 아툰 제국의 중요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어쨌든 에이라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사?”
  에이라나가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더프론이든 다프론이든 내 알 바 아냐. 난 식사해야 하니깐 꺼져.”
  역시 전생에 마교의 소교주 아니랄까봐 자신에게 해되는 일 아니면 신경도 안 쓰는 에이라나였다.
  그 말에도 복면을 쓴 남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들이 검을 들고 에이라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에이라나 옆에 있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
  그러자 움찔하며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는 남자.
  픽픽픽!
  하지만 어디선가 바람을 뚫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에이라나 쪽으로 다가오던 ㅅㅔ 명의 복면인이 쓰러졌다.
  그러자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나가 지강을 날린 것이다.
  천마지를 날린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내 말 무시하면 다 죽는다.”
  에이라나가 무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복면 쓴 나머지 이들이 멍해졌다.
  그 때 복면인의 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소리쳤다.
  “저 여자를 죽여라!”
  그 말에 에이라나가 냉소하며 말했다.
  “병신.”
  그리고 손을 들었다. 그 말과 행동은 모든 복면인들의 몰살을 뜻하는 일이기도 했다.
  키라이스트 디온 데르나.
  바로 여관으로 뛰어 들어온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남자라고 부르기 뭣하고 소년에 더 가깝게 보이는 아직 18살밖에 되지 않은 키라이스트였다.
  키라이스트는 말을 타고 놀러 나왔다가 갑작스런 암습에 호위병들이 모두 죽었다. 그리고 더프론 제국의 기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자신을 추격하자 이를 악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자에 있는 제법 큰 마을까지 도망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한 소녀를 보게 되었는데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는 상당히 강해보였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일은 그 상당히 강해보이는 것을 초월한 단계였다.
  학살.
  자신이 본 모습이었다.
  소녀는 자신에게 덤벼드는 이들을 말끔하게 검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추적하던 무리들의 대장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남의 식사를 방해하면 안 되지? 이전에 정파 쓰레기들도 밥 먹고 있을 때, 쳐들어와서 마도니 뭐니 지껄이면서 시비 걸더니... 이 세계도 별반 다를 게 없군.”
  정파라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추적하는 이들에게 여러 번 시달린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말에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뭐, 그래도 그것들은 이것들보다는 실력이 좋았지. 이거 완전 삼류 수준 아냐? 이런 게 진짜 기사?”
  뛰어난 기사들을 보며 삼류라고 칭하는 저 소녀의 말에 멍해지는 키라이스트.
  더프론의 기사들을 가볍게 쓸어버리는 에이라나의 무위에 경악할 뿐이었다. 에이라나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이십여 명의 시체를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흐응~ 수준 알 만하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재차 말했다.
  “쳇! 입맛 버렸군.”
  아무리 비위 좋은 에이라나도 이렇게 시체가 있는 곳에서 밥을 먹을 만큼 좋지는 않았다. 에이라나의 얼굴에는 짜증난다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슬쩍 고운 미간을 찌푸리다 밖으로 나갔다.
  에이라나가 밖으로 나가자 키라이스트가 그녀를 황급히 따라갔다. 에이라나가 막 마을을 벗어나려고 할 때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자, 잠깐만요!”
  에이라나는 십대 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 앳되어 보이는 키라이스트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같이 있으면 누나, 동생처럼 보인달까?
  어쨌든 은연중에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에이라나에게 존대를 하는 키라이스트였다.
  그래도 아무리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 해도 평민에게 존대를 하는 귀족들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보면 키라이스트는 상당이 붙임성이 좋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에이라나는 뒤에서 아까 그 앳된 티 나는 남자가 자신을 부르자 뒤둘아보았다.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가 자신의 말에 멈춰 서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도 그녀 앞에 멈춰서서 숨을 골랐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에이라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에이라나의 시선을 느낀 키라이스트가 잠시 얼굴을 붉혔다.
  에이라나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니깐.
  얼굴을 붉히던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키라이스트의 인사에 에이라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감사하지 마, 만약 나한테 덤비지 않았다면 그냥 네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했을 테니깐.”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에이라나가 그런 키라이스트를 무시한 채 말했다.
  “너, 딱 봐도 부잣집 도련님 같은데 왜 저런 녀석들에게 추격당해?”
  에이라나의 물음에 키라이스트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에...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귀족인데요?”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족이든 아니든, 왜 그 녀석들한테 쫓겨다녔냐니깐?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우기라도 했냐?”
  키라이스트는 데르나 공작의 하나뿐인 자식이다. 그런 공작가에서 후계자 싸움이 벌어질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까 그들의 정체를 분명히 키라이스트가 한차례 밝힌 바 있었다.
  “그게 아니라... 적국의 기사들이 절 노린 것인데요?”
  데르나 공작가는 더프론 제국의 국경과 한 영지만 건너면 올 수 있는 곳이기에 암살자들이 올 수 있었다. 아마 변장하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키라이스트가 숲에 많이 놀러가기 때문에 더더욱 노리기 쉬웠다.
  사실 키라이스트는 자신의 영지에 있는 울창한 아프론 숲과 근접해 있는 별장에 놀러 왔기 때문에 노리기 쉬운 것이 아니라 완전 ‘날 죽여줍쇼’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자신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영지 안에서 암살당할 뻔한 것이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채 에이라나가 말했다.
  “꽤 고위 귀족인가 보지?”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신분을 밝혔다.
  “전, 데르나 공작가의 후계자입니다.”
  보통 자기 신분을 밝히면 아무리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거의가 놀란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아니다.
  “그러냐?”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되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물었다.
  “그래, 날 따라온 이유는 뭐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
  뜸 들이는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눈썹을 까닥였다.
  “뭐야! 할 말 있음, 빨랑빨랑 해!”
  “네, 넵!”
  에이라나가 소리 지르자 주눅 든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저희 영지의 저희 집인 데르나 공작가까지 저를 데려다 주시면 안 될까요?”
  에이라나와 키라이스트가 있는 곳은 데르나 공작령의 변두리 쪽이었다. 제국의 공작답게 웬만한 소왕국만 한 크기의 영지를 가지고 있는 데르나 공작이었다. 그렇기에 키라이스트의 집까지 가려면 걸어서 적어도 일주일은 가야 했다.
  키라이스트가 탄 말은 탈진한 상태고, 그렇다면 말을 사면 되겠지만 지금 이대로 별장에 가는 것은 위험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기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키라이스트가 데려온 기사들은 고작해야 10명뿐이고, 그들 중 반수가 데프론의 기사들에게 죽었다.
  별장에 병사들과 기사들이 있다 해도 그 수보다 더 많은 기사들이 버티고 있다면 아마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별장을 가지 못하는 키라이스트로서는 말 살 돈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에이라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에이라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뻔뻔한 놈일세?”
  그 말에 얼굴을 붉히는 키라이스트였다.
  “저를 데려다 주시면 크게 보상하겠습니다.”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키라이스트는 주눅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상당한 실력자가 자신을 쳐다본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공작가의 외동아들답게 늘 당당하던 키라이스트는 왠지 에이라나 앞에서는 주눅 드는 것 같았다.
  키라이스트를 보며 한숨을 푹 쉰 에이라나가 말했다.
  “어차피 내 목적지가 아르한까지 갈 생각이니깐, 따라 올 거면 알아서 해.”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반색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르한은 데르나 공작령 중 가장 큰 도시로 바로 데르나 공작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곳에 키라이스트의 집이 있다는 뜻이었다.
  키라이스트의 인사에도 에이라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누나!”
  키라이스트가 자신의 빵을 빼앗아 먹는 에이라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코웃음만 칠뿐이었다.
  “흥! 난 안 먹는 줄 알았다?”
  “흐에~ 그렇다 해도! 잠시 볼일 보러 간 사이 먹는 게 어딨어?”
  “말 안 했잖아?”
  “치사해!”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의 낯짝 두꺼운 말에 분한지 주먹을 꼭 쥐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저런 애들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서 꼬나봐? 눈 안 깔아?”
  그 말에 바로 기죽어버리는 키라이스트였다.
  자신이 어떻게 저 인간을 당해낼 수 있으랴? 당해낼 수 있으면 3일 동안 이 고생을 했겠는가?
  키라이스트는 3일 동안의 일을 떠올렸다.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를 따라갔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먹을 게 없는 바람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친다고 쫄쫄 굶어 배에서 연신 꼬르르 소리가 나 자신을 창피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저 살벌한 여자에게 뭘 달라고 할 수도 없기에 조금은 귀엽기까지 한 표정으로 에이라나가 스튜를 끓여 먹는 것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에이라나가 스튜를 만드는 방법은...
  500년 동안 놀고만 있었겠는가?
  여행하면서 필요한 기본적인 음식은 만들 줄 아는 에이라나였다. 중원 무림 소교주 시절 때 여러 번 노숙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토끼를 잡아 구워 먹는 것도 능숙했다. 심지어 야생동물 중 늑대고기가 가장 맛있다고 자신하는 에이라나였다.
  어쨌든 에이라나는 자신이 스튜를 먹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키라이스트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배고프면서도 달라고 못하는 걸 보고 참 숫기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에이라나가 빵 하나를 먹을 때였다.
  꼬르르꼬르륵.
  갑자기 엄청난 크기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키라이스트의 표정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것이 더 귀엽게 보이긴 했지만.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풋!”
  “...!”
  그 모습을 보고 키라이스트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빨개질 수 없을 것 같은 키라이스트의 얼굴을 보고 에이라나는 그만 박장대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진짜 웃기다! 으하하하하!”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는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더욱 얼굴을 붉혔다. 사실 에이라나는 연신 키라이스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있었다.
  키라이스트는 그것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드래곤이면서 엄청난 경지에 다다른 검사이기도 한 에이라나가 그것을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에이라나는 그것을 들으면서도 계속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이번에 큰 소리가 나자 결국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만 것이다.
  에이라나가 진정하며 여전히 키득거리며 말했다.
  “거, 스튜는 많이 끓였으니 좀 먹어, 빵도 많으니 좀 먹고, 난 그렇게 좀생이는 아니니깐.”
  그 말에 키라이스트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예.”
  그렇게 대답하며 키라이스트가 스튜와 빵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체할 듯 먹는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물었다.
  “넌 이름이 뭐냐?”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키라이스트... 키라이스트 디온 데르나.”
  “아~ 키라이스트?”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그런... 당신은 이름이 뭔가요?”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
  “에이라나.”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나이는요?”
  에이라나가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한 키라이스트가 대담하게 물었다. 키라이스트를 빤히 바라보던 에이라나가 반대로 되물었다.
  “넌 몇 살이냐?”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18살이요.”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자신이 전생에 죽기 전의 나이로 대답했다.
  “24살이다.”
  “네?”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뭐야? 그 표정은?”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전... 저랑 동갑이거나 19살 정도 되시는 줄 알았는데... 동안이시군요.”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24살이야.”
  그 말에 어색한 표정을 짓던 키라이스트가 조금 굳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재차 물었다.
  “그런데... 에이라나님은 여성이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검술을...”
  이것은 키라이스트도 검을 잡고 있기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사부님이 계시지.”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어디에 사시는 분이신가요?”
  그 말에 에이라나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 안 계셔. 날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그분의 아들인 사람도...”
  그 말에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의 눈에서 진득한 슬픔이 느껴졌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던 키라이스트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너무도 애처로웠다. 에이라나를 품에 안고 다독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 생각이 들자 앗! 하는 표정을 지은 키라이스트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그런 키라이스트를 의식하지 못하고 에이라나가 계속 입을 열었다.
  “천애고아였으며 부모도 없이 그저 길가를 떠돌던 날 거두어 주신 좋은 분이셨지. 10살 때였는데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셨어.”
  “무공?”
  키라이스트의 반문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검술이야.”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혈사 아저씨.”
  에이라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직도 사혈사가 자신을 봤을 때의 기억이 선명했다.
  ‘허허허! 이것 참... 정말 엄청난 미색이구나? 정말 사내아이가 맞느냐? 그리고 독기에 찬 눈빛이라... 마음에 드는군. 어떠냐? 날 따라가지 않겠느냐?’
  인자하게(?) 말하는 사혈사를 멍하니 따라나선 에이라나였다.
  물론 무공 수련한다고 피를 토하는 고통이 따르기는 했지만, 천애고아였던 자신을 거두어 주고 무공까지 익혀주었으면서 소교주의 자리까지 주었던 사혈사가 정말 고마웠다. 정말 자신을 친 아들처럼 대해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곧 사무연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자신이 혈사를 따라 마교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아버지! 어서 오세요? 응? 뭐죠? 이 꼬맹이는? 우와~ 진짜 예쁘게 생겼다, 제 신붓감인가요?’
  그때도 여자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던 에이라나였다.
  당연히 손에 잡히는 물건을 겁 없이 그 당시 소교주로 가장 유력했던 그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와~ 너 진짜 앙칼지다? 더 마음에 드는데요? 네? 뭐라고요? 남자라고?’
  그렇게 지극히 평범한(?) 반응을 보이던 사무연.
  그리고 언젠가 무공 수련을 하던 자신에게 찾아와 했던 말에 그녀에게 칼질까지 당했었다. 그때 사혈사가 없어 자신은 마옥에 갇히기도 했다. 물론 혈사와 무연이 돌아와 자신을 구해주었지만.
  당시 무연이 에이라나에게 했던 말은 칼 맞아도 쌀 상황이었다.
  ‘유현아... 넌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로 있기 아까워? 내 신부가 되는 게 어때? 뭐 지랄하지 말라고? 킥킥. 성별이 달라서 그러나? 걱정 마! 우리 마교 비급 중에 음양전환공. 즉 성별을 바꾸는 무공이 하나 있으니 너에게 익히게 하는 거야! 대성하면 성별이 바뀔 거고, 넌 나의 신부가 될 수 있을 거야! 물론 금서 중 하나지만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우악! 살려줘!’
  그 생각까지 하자 옛 감정에 물들어 있던 에이라나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빠직! 생겨났다. 그리고 음산한 살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움찔하는 키라이스트.
  그를 보고 에이라나가 말했다.
  “아... 미안... 갑자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가 생각나서.”
  표정은 살벌 그 자체였다.
  에이라나가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살기를 내리 눌렀다.
  에이라나는 아까 그 우수에 찬 표정을 모두 지워버리며 생각했다.
  ‘젠장! 한번 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면 잘하면 성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것은 남자에게만 효과가 있고, 남자만 익힐 수 있는 남성전용 무공이라는 것을.
  그것을 전혀 모르는 에이라나는 그 무공서를 ‘한번쯤 봐둘걸’ 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 * *
  그 뒤로 키라이스트와 에이라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졌고, 누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에이라나는 형이라고 부르게 하고 싶었지만, 어딜 보나 여자인 자신을 보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분명 미친놈 취급당할 것이 뻔하기에 속으로 한숨을 푹 쉴 뿐이었다.
  빨리 1,000년이 지나기를 빌면서.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사이가 된 키라이스트와 에이라나.
  그렇게 지내다 보니 에이라나는 키라이스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책으로 본 귀족들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인간이라도 되는 양 모두 우월주의에 휩싸여 있었다.
  평민은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이라나가 본 키라이스트는 그런 귀족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은근히 귀엽기까지 하기에 남동생 하나 생긴 것 같았다. 그렇기에 호감이 갔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키라이스트도 완전히 에이라나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버렸다.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검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륙에서 그만한 수의 기사들을 저렇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검사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스터라고 생각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여검사가 마스터가 된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검술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은 10대 후반에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오르기는 하지만 그건 엄청난 재능이 있을 때의 경우다.
  키라이스트는 은근히 데프론 제국의 기사들이 방심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으니. 하지만 데프론 제국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죽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모두 저승길로 간 상태였다.
  그들은 에이라나를 보며 딱 한 가지 생각을 할 뿐이었다.
  마스터!
  키라이스트와는 다른 생각이었다. 키라이스트와 다르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자신들 한 명 한 명이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해당하는 기사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러를 일으킬 사이도 없이 모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러니 그들이 에이라나를 마스터로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키라이스트나 저 세상으로 간 데프론 제국의 기사들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에이라나가 드래곤이며, 혼자서 제국 하나를 쓸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라는 것을.
  키라이스트는 스프를 먹으며 자신의 빵을 빼앗아 먹은 에이라나를 보며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히죽거리며 스프를 먹던 에이라나의 눈이 날카롭게 빛이 났다.
  그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키라이스트.
  그런 키라이스트를 무시하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것들은 예의를 모르는 놈들인가? 꼭 밥 먹으려고 할 때 와서 알짱거리냐?”
  그 말에 키라이스트의 얼굴이 굳었다. 키라이스트는 재빨리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누나? 장난친 거야?”
  키라이스트는 에이라나가 장난친 거라 생각하며 다시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말에 온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암살자인가? 동생아, 암살자들 납셨다.”
  “커억! 거짓말!”
  지금은 밤이다!
  그리고 암살자 즉 어쎄신들은 밤에 활동하는 이들로 지금은 지극히 어쎄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조건이었다.
  아무리 에이라나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검사라도 이런 어둠 속에서는 고전을 면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키라이스트였다. 하지만 다음에 들린 말에 멍해지는 것을 느끼는 키라이스트였다.
  “정말 리샨 대륙은 수준 이하군. 이런 것들도 암살자라고, 어떻게 이렇게 기척을 흘리고 다니냐? 이런 허접한 실력으로 어디 사람하나 잡겠냐?”
  에이라나가 냉소하며 지금 숨어 있는 어쎄신들을 비웃기 시작했다.
  휘익!
  그때 암기 하나가 키라이스트를 향해 날아갔다.
  키라이스트는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소리가 나자 당황했다.
  그도 검술을 수련했기에 오감이 어느 정도 발달해 있었다.
  물론 소리가 들린다 해도 어디서 날아오는지 누구를 노리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덥석!
  암기는 에이라나의 손에 잡혀버렸다.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암기를 날리려면 소리 없이 날리던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신의 손에 잡힌 단검을 히죽 웃으며 날아온 곳을 향해 날렸다.
  푹!
  단검이 뭔가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털썩!
  갑자기 나무 위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떨어지더니 그곳에는 후드를 쓴 채 미간에 에이라나가 잡았던 단검이 박혀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빙고!”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흑아를 뽑아 들었다.
  그런 흑아를 보고 키라이스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번의 에이라나의 검을 보기는 했지만 너무도 정신이 없었던 나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에이라나가 흑아와 은아의 검집 위에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해 가죽으로 감아 놓은 바람에 흑아와 은아를 신경 쓰지 않았던 키라이스트였다.
  하지만 지금 검신을 드러낸 흑아는 처음 보는 조금 색다른 모양이긴 했지만, 아무 장식도 되어 있지 않은데다 너무도 아름다운 검신이 보였다.
  조금 흑빛을 띠는 듯하면서 불빛이 흑아를 비추자 무언가 흑아의 검신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밋밋하지만 그래도 날카롭고 신비한 검신을 보며 키라이스트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에이라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식사를 방해했으니, 너희들은 다 죽는다.”
  에이라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다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캉! 캉! 캉!
  하지만 에이라나는 모든 암기들을 가볍게 쳐냈다. 키라이스트에게 향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병신들아, 밤을 믿고 까부는 가 본데 너희들 실수한 거야.”
  그렇게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어쎄신들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들을 은빛 눈동자로 하나하나 바라보는 에이라나.
  어쎄신들은 이미 자신들이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에이라나에게 발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밤은... 나의 무대이기도 하거든?”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어둠속에 스르르 사라졌다.
  그것을 보고 눈을 부릅뜨는 암살자들과 덩달아 놀라는 키라이스트.
  털썩! 털썩! 털썩!
  갑자기 나무쪽이나 돌 뒤쪽, 숨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모두 어쎄신들이라는 것을 여기 잇는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도, 도대체...’
  키라이스트는 갑작스럽게들 쓰러지는 어쎄신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소리도 없어졌다. 그 사실에 더욱 흠칫하는 키라이스트.
  그렇게 키라이스트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심드렁한 표정을 한 에이라나가 어둠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데프론 제국이라는 곳,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걸?”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를 보며 활기차게 말했다.
  “키라이스트, 밥이나 마저 먹고 자자.”
  하지만 그런 에이라나의 태연하고도 활기찬 말에 키라이스트는 속으로 절규하며 대꾸할 뿐이었다.
  ‘누나 같으면 이 분위기에 밥이 넘어가고 잠이 와? 으아악! 도대체 누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방금 어떻게 갑자기 사라진 거야?’
  의문투성이다.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한 나머지 머리에 김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말은 속내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응...”
  키라이스트와 에이라나는 그 일이 있은 후 몇 번의 암살에 더 시달렸다. 애초에 길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경솔하게 노숙이 많은 길을 택했고, 이곳까지 오면서 여관에서 쉰 것은 겨우 2번뿐이었다.
  그리고 적게 잡아도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였기에 지금 9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나마 이제 반나절만 더 가면 데르나 공작가가 있는 아르한에 도착이었다.
  하지만 가기도 전에 밤이 되었고, 이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는 에이라나의 말에 하는 수 없이 노숙을 하고 있지만 불안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해도 에이라나가 있어 사실 안심이 되었다.
  3일째 되는 날부터 암살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에이라나가 나서서 모두 가볍게 처리했다. 그동안 보인 에이라나의 무위를 보며 키라이스트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처음 볼 때부터 친한 누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키라이스트였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가끔 잠에서 깨 에이라나를 보면 얼굴이 붉혀 지기도 했다.
  역시나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를 불렀다.
  “저... 누나.”
  “왜?”
  “있잖아.”
  그는 말하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얼굴을 붉혀? 어디 아프냐?”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누나, 날 우리 집에 데려다 주고 난 뒤 보상을 받고 바로 떠날 거야?”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왜?”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서 물었다.
  “어디 목적지라도 있어?”
  그 말에 에이라나가 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스프가 끓기를 기다리며 나무 하나로 불을 쿡쿡 쑤시며 말했다.
  “없어, 그저 대륙을 떠돌 뿐. 뭣하면 친구에게 가 봐도 되고.”
  에이라나는 문득 레니스를 생각하며 말했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친구?”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이라나가 말했다.
  “레니스라고 한 명 있어.”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당황했다.
  “나, 남자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라나.
  “응, 남자야.”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물었다.
  “그냥 친구야?”
  역시나 이번에도 에이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응. 나한테 고백했는데, 가볍게 밟아주었지.”
  그 말에 키라이스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모습을 보며 에이라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그래?”
  키라이스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어색하게 웃던 키라이스트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레니스?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키라이스트가 어떻게 알겠는가?
  불꽃의 검사 레니스 오르 폰트레스 공작이 바로 에이라나가 말한 레니스라는 것을.
  이번 레니스의 유희 컨셉은 마검사였던 것이다.
  그것을 전혀 모르는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누나,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에 머물지 않을래?”
  그 말에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를 보며 물었다.
  “너희 집?”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키라이스트가 입을 열었다.
  “응, 날 구해줬다고 하면 우리 집에서 머물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너희 부모님이 날 별로로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내 누나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돼. 난 외동아들이라 누나나 형이나 동생들이 없거든. 그것을 보고 조금 안타깝게 여기시던 부모님들이었는데, 누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환영할 거야.”
  그 말에 잠시 고민하는 에이라나.
  키라이스트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
  에이라나는 문득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딱히 갈 데도 없고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남아줄게.”
  그 말에 활짝 웃는 키라이스트였다.
  * * *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을 시각.
  스윽.
  둘의 근처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열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두 사람 근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손에 하나씩 단검을 들고 있었는데 기척을 죽이며 둘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에이라나와 키라이스트가 택한 길은 몬스터가 완벽하게 없는 길이기 때문에 보초 없이 잘 수 있었다. 있다 해도 에이라나의 기척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처음에 키라이스트가 암살자들이나 적국의 기사들이 올 것이라며 난리를 쳤지만 에이라나가 묵살하고 잠을 자버렸다.
  불안에 떨던 키라이스트는 잠도 못 이루다가 결국 ‘죽으면 죽는 거지’하며 잠을 자버렸다.
  그리고 밤에 암살자들이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들이 몇 걸음만 더 가면 에이라나와 키라이스트의 지척에 다가갈 수 있을 거리만 남았을 때였다.
  “후... 이제 좀 대가리를 굴리는구나? 그래, 잘 때 공격해야 더 암살자답지. 그런데 어쩌냐? 멍청하게 기척을 흘려줘서 다 알아차렸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스르륵 에이라나가 일어났다.
  그것을 보고 기겁한 암살자들이 에이라나를 향해 단검을 날렸다.
  덥석!
  하지만 에이라나의 손에 단검 열 자루가 모두 잡혀버렸다.
  그것을 보고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짓는 암살자들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에이라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런... 난 이런 거 필요 없는데. 돌려줄게.”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신의 손에 잡힌 단검 열 자루를 모두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단검들은 본래의 주인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혀버렸다. 그것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에이라나가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하암. 오늘은 기사님들까지 출동하셨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와 키라이스트가 노숙하는 주위에 삼십 여명에 해당하는 기사들이 나타났다.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전에 만났던 기사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봤자 에이라나에게는 그게 그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에이라나가 귀를 후비며 말했다.
  “몇 명이 와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복면을 쓴 채 기사로 보이는 이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이기에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이오?”
  그러자 에이라나가 말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재수 없어서!”
  그러자 황당한지 침묵을 지키던 복면 남자가 되물었다.
  “그게... 이유?”
  그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에이라나.
  “아! 그리고 하나 더! 나랑 이 녀석 의남매 맺었거든? 그래서 도와주는 거야.”
  상큼하게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기사가 말했다.
  “이 많은 수의 기사들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시오?”
  그러자 에이라나가 말했다.
  “흐응~ 그 정도 실력들이면 혼자서도 처리 가능한데.”
  에이라나의 말에 기사들이 부르르 떨었다.
  그런 기사들을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흐응~ 본좌가 움직이기 귀찮으니...”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사일런스! 베리어!”
  에이라나의 마법에 의해 키라이스트 근처에 막 두 개가 생겼다,
  “빨리, 빨리 한 방에 끝내자고!”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생긋 웃으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만들었다. 기사들은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의 근처에 마법을 쳐주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마, 마검사?”
  마검사는 상당히 드문 존재였다. 아니 인간은 마검사가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인간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인간 마검사는 드래곤이라 해도 무방했다.
  상당히 희귀하고 강력한 마검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모두가 긴장했다.
  지금까지 겪은 바에 의하면 상대는 아주 강력한 검사였다. 그런데 그런 검술 실력에 마법까지 더해진다면,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이라나에게는 힘들고 자시고가 없었다.
  에이라나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헬 프리징 아이스.”
  9클래스 빙계 마법. 9클래스 화염계 마법의 꺼지지 않는 업화라 불리는 지옥의 불꽃인 헬 파이어와 같은, 지옥의 녹지 않는 빙화라 불리는 이 얼음 꽃이 바로 헬 프리징 아이스였다. 결국 헬 파이어에 맞먹는 파괴력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9클래스 마법!”
  에이라나의 손에서 펼쳐지는 무시무시한 냉기를 품고 있는 얼음 결정을 보며 기사들은 경악했다.
  그런 기사들을 향해 에이라나가 말했다.
  “잘 얼어.”
  지옥의 빙화가 정확하게 30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뉘었다.
  인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마나 컨트롤이었다. 그리고 나뉜 30조각의 얼음 결정들은 정확하게 기사들에게 날아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에이라나는 하품을 하며 키라이스트에게 걸어주었던 마법을 해제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솨아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30명의 기사들은 모두 얼음 알갱이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다음날.
  에이라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 있던 키라이스트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뭐야? 이제야 일어나?”
  에이라나가 말했다.
  “어제 새벽에 잠을 못 잤걸랑?”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키라이스트의 질문에 에이라나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웬 모기떼가 귀찮게 하잖아? 그래서 모조리 잡는다고”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모기? 지금은 가을이잖아?”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하암. 꽤 생명력이 질긴 녀석들 같더라고.”
  키라이스트는 그 말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에 모기로 취급된 데프론 제국의 기사들이었다. 그것도 각자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해당하는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이 말이다.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에게 말했다.
  “누나~ 밥해줘.”
  그런 키라이스트를 보며 에이라나가 말했다.
  “이 썩을 놈아! 네가 해봐!”
  그런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남자인 내가 요리를 어떻게 해? 그리고 난 귀하게 자란 놈이라고.”
  그 말에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러면? 난 여자니깐 요리를 해야 되고? 또 귀하게 안 자랐으니 요리를 해야 되냐?”
  “그, 그건...”
  “에라~ 이놈아! 오늘 네 아침은 없어!”
  “허억! 너무해!”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기겁하며 말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나도 밥 줘~.”
  “꺼져라.”
  “잘못했어!”
  “시꺼!”
  하룻밤 사이에 리샨 대륙에서는 일류로 불리는 기사 30명을 모기 취급하며 간단하게 모기 잡듯 죽여 놓고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요리를 하며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에이라나였다.
  역시 마교의 소교주였던 사람은 뭔가 달라고(?) 다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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