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6일 토요일

무림드래곤6

데프론 제국의 멸망
  “뭐라 하셨소?”
  데프론 황제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에르스토 공작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프콘 공작이...아프콘 공작이 이번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하옵니다.”
  통곡을 하며 자신에게 말하는 에르스토 공작을 보며 데프론 황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그럴 리 없소! 아프콘 공작이오! 그랜드소드마스터 아프콘 공작! 나의 친우! 꼭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겠다며 떠난 나의 친우가 죽었다니! 말도 안되오!”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데프론 황제의 말에도 에르스토 공작은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럴 리 없어...나의 친우가! 나의 절친한, 하나밖에 없는 친우가...크윽..그럴 리 없어!”
  결국 데프론 황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아툰 제국군과 데프론 제국군의 싸움은 첫 번째 격돌에서 승패가 갈렸다.
  정신적 지주인 아프콘 공작의 죽음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 데프론 제국은 20만의 피해를 입고 그대로 자신들의 국경으로 퇴각했다. 그에 반해 아툰 제국은 건재한 그랜드소드마스터 넷의 활약으로 5만의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다혈질적인 성격이지만 백성들에게 평판이 좋았던 아프콘공작. 일부는 황제보다 더욱더 아프콘 공작을 존경하던 이들이 많았다. 황제와 더불어 데프론 제국의 무력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그런 아프콘 공작이 죽었다. 황제는 물론 귀족들도, 백성들오, 모두가 통곡하였다. 그렇게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을 때 아툰 제국이 쳐들어왔다.
  아프콘 공작의 죽음에 의해 나라를 원망하던 백성들도 이제는 모두가 무기를 들기 시작했가. 모든 나라가 하나가 되는 효과를 불러 일으킨 아프콘 공작의 죽음
  의외의 상황에 데프론 제국 귀족들도 당황했다. 데프론 황제와 에르스토 공작 또한 평소에 아프콘 공작이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인지 새삼 느끼며 멍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데프론 제국과 아툰 제국의 처절한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크윽...일반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도륙할 수도 없도... 아프콘 공작의 죽음이 민심이 흉흉하던 데프론 제국에 이런 효과를 불러 일으킬 줄이야.”
  아르카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지나가는 데프론 제국의 백성들 모두가 아툰 제국을 적대시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을 지나갈 때면 돌을던지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다고 일일이 그런 이들을 죽일 수도 없었다. 너무 많았다.
  적국의 영토다. 가뜩이나 힘이 든데 백성들까디 적대시한다면 위험 그 자체였다. 그렇게 모두가 힘겨워 할 때였다.
  “오르칼 제국과 로코 제국의 싸움에서 오르칼 제국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입니다..”
  한 기사가 오르칼 제국의 승전 소식을 전해왔다. 로코 제국이 오르칼 제국을 상대로 잘 버틴 것이다.
  분명 로코 제국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런 숫자로는 마뇌 카프라스의 머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수, 바로 진법이 오르칼 제국에는 있었다.
  아마 로코 제국의 패배 원인은 진법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상한 환상 마법에 걸려 전쟁에서 졌다는 말이 나돌고 있었다.
  오르칼 제국의 승전을 아툰 제국측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 오르칼은 계속해서 로코를 칠 것이다.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별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오르칼 제국의 목적지는...데프론입니다.”
  “그건 예상했던 일...”
  기사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하려던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이 굳었다. 다른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네...방금 워라고 그랬나?”
  당혹한 표정을 짓는 아프카레이나큰을 보며 기사가 굳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오르칼 제국이 데프론 제국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기사의 말에 막사는 침묵이 찾아왔다.
  잠시 후.
  “데프론 제국을 돕기 위해서일까요?”
  한 귀족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모두가 굳었다. 오르칼 제국이 데프론 제국을 돕는다면 아툰 제국으로서는 확실하게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지금도 힘든 시기인데 오르칼 제국의 강병들과 붙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후퇴를 택하는게 더 나았다.
  그렇게 모두가 굳어 dLT을 때 아르카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우리 제국을 도울 확률이 더 높지요.”
  그 말에 모두가 놀란 듯 아르카스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데프론 데국과 오르칼 제국은 전쟁 시작부터 으르렁 거리기는 했으나 얼마 후 사이가 좋아진 나라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보다 월씬 사이가 좋은 두 나라일 것이가.
  그런데 데프론이 아닌 자신들을 돕는다? 거의 확률이 없는 일이다.
   “오르칼 제국의 실세 카프라스 공작이 여기 있는 누구와 아주 친분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천하의 카프라스 공작과 친한 이가 누구란 말인가?
  “그 자식이 여길 와? 피바람이 불겠군.”
  “아아..마뇌가 오는 건 좀 꺼려지는데...수틀림녀 백성도 뭐고 다 죽일 녀석이잖아?‘
  심각한 분위기와 다르게 태평한 말이 오고갔다. 바로 에이라나와 휘안의 대화였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모두의 시선에 슬그머니 웃은 아르카스가 말했다.
  “저기 있는 은빛 가면의 여검사인 에이라나누나와 카프라스공작이 아주 친합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도대체 저 여자의 정체가 뭘까? 그러고 보니 불꽃의 마검사 레니스와도 친구라는 말이 나돈다. 그런데 여기서도 카프라스와 친분이 있다? 여러 가지로 파악하기 힘든 여자였다.
  모두의 표정에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라나는 천하태평이었다.
  “오르칼 제국이 저희 제국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귀족이 데프론 황제에게 말했다. 역시나 오르칼 제국의 진운데 회의가 열린 데프론 제국이었다. 하지만 회의실 분위기가 결코 밝지 못했다.
  “우리... 편인가?”
  “적입니다.”
  에르스토 공작은 조금 냉정하게 말했다. 데프론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최고로 부흥하던 자신의 제국이, 대륙을 통일할 것만 같은 기세를 뿌리던 자신의 제국이 이제는 바람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친우를 잃고 많은 백성들을 잃었다. 돌이켜보니 후회가 되는 데프론 황제였다. 만약 다른 변수가 없었다면 자신의 나라를 계속 부흥해 나갔을까?
  “그 따위 하찮은 나라가!”
  그때 발광을 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데프론 황제는 쓰게 웃었다. 자신에게 물었던 답이 나왔다. 별다른 변수가 없었어도...자신의 제국은 멸망했을 것이다.
  후계자가 저러니 어찌 제국을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전쟁 중에도 방탕한 생활을 보내는 자신의 아들. 너무도 오만한 나머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자신의 나라는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다.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데프론 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데프론 황제에게 향했다. 데프론 황제와 오랫동안 지내온 귀족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금 힘 없어 보이는 황제.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해 보이는 자신들의 황제가 눈앞에 있었다
 “우리 제국의 운은 이미 기울었다. 아무 우리 제국은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다.”
  데프론 황제의 폭탄 선언!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아바마마!”
  데프론 제국의 황태자가 절규하듯 자신의 아버지를 불렀다. 하지만 그런 그를 무시하고 제프론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사들을 모아라, 단 강제적으로 모으지 말고 지원자만 모아라! 내가 직접 출전하겠다.”
  황제의 말에 모두의 눈이 흔들렸다.
  “떠나고 싶은 자는 떠나라! 다른 나라에 가도 좋고 숨어 살아도 좋다! 남을 자만 남아라! 마지막으로 제국의 기상을 드높일 이들만 남아라! 그거면 난 충분하다!”
  제국이 쓰러져 가고 있다. 하짐나 자신들의 황데는 아직도 강하다. 부러질 지언정 구부러지지않는 자신들의 황데! 그런 자신들의 황제가 자랑스럽다. 그러지 못한 자들도 있다.
  일방적인 통보를 한 황제는 묵묵히 귀족들을 쳐다보고는 회의장을 빠져나가KT다. 황제의 걸음은 당당하기만 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데프론 제국의 땅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오르칼 제국군은 데프론 제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가. 자신들을 막는 자들은 무차별적으로 무너뜨리고 지나가는 오르칼 제국군은 순식간에 아툰제국군과 조우하게 되었다.
  두나 라 측의 귀족들 모두가 긴장했다. 조금만 마찰이 일어나도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 분위기.
  “여· 소교주님.”
  모두가 긴장한 분위기와 달리 카프라스가 태연하게 웃으며 에이라나에게 다가왔다. 적진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카프라스를 보며 아툰 제국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오르칼 제국군은 기겁했다.
  에이라나는 그런 카프라스를 보며 말했다.
  “미친놈”
  “에? 만나자마자 욕입니까?”
  “적진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네놈이 신기해서 말이다.”
  “후후후, 그건 저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오는 자신감입니다, 미친 게 아니죠.”
  “네놈 잘났다.”
  태연하게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며 아르카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두 사람은 친하도고.”
  아니 친한 정도가 아니라 에이라나는 카프라스를 완전히 자신의 수하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인사를 나눈 카프라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툰 제국 수뇌부는 저와 이야기를 좀 하는게 어떨지요?”
  전장의 흐름을 읽고 자신의 손아귀에서 맘대로 주무르는 마뇌다. 이미 데프론 제국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한 카프라스였다.
  아툰 제국군의 수뇌부와 오르칼 제국군의 수뇌부들이 막사에서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르카스는 어색한 표정으로 아툰과 오르칼 제국의 수뇌부들을 쳐다보았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디 카프라스는 그저 태연한 표정으로,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는 얼굴로 싱긋 웃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질 때 카프라스가 침묵을 깼다.
  “여, 당신이 그 유명한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입니까?”
  카프라스가 반갑다는 얼굴로 아프카레이나큰에게 말을 걸었고 갑작스러운 카프라스의 말에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이 당황하며 말했다.
  “내가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이 맞네. 나야말로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오르칼의 천재 지략가를 만나서 영광이군.”
  그 말에 카프라스가 싱긋 웃어보였다.
  “저도 영광입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각 나라에서 가장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꽤 화목하게 말이다. 딱딱했던 분위기가 풀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따 시덥잖은 인사는 그만두고 본론이나 꺼내.”
  하지만 한 존재에 의해 다시 막사가 싸늘하게 변했다.
  바로 떡하니 팔장을 끼고 다리를 꼰 채로 오만한 표정으로 카프라스를 바라보는 에이라나때문이었다.
  다시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아르카스가 조금 원망의 눈초리로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자신을 째려보는 에이라나의 눈빛에 그 눈빛을 거두는 아르크스였다.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히죽 웃은 카프라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죠...에 그러니까.”
  서두만 던진 카프라스가 뭐부터 이야기 할지 생각하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휘안을 불렀다
  “휘안님”
  “응?”
  갑작으러운 카프라스의 부름에 휘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휘안을 보며 카프라스가 입을 열었다.
  “아프콘 공작을 죽인 사람은 휘안님이었죠?”
  마치 ‘네가 옆집 애를 때렸냐?’ 는 듯 아무렇지 않게 묻는 카프라스의 질문에 휘아닝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얼마 전 결투에서 이겼어.”
  그 말에 카프라스가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쉽군요 처음에는 바보같은 짓을 많이 했었지만 맘에 드는 인물이었는데 말이죠.”
  카프라스의 아쉬움은 정말 조금의 아쉬움이었다. 카프라스의 태도에 고개를 젓고마는 휘안이었다.
  카프라스가 본론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그것 때문에 데프론 제국의 국민들이 반발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었단 말씀이죠?”
  그 말에 아툰 제국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군요.”
  카프라스가 피식 웃으며 마치 모든 게 다 정리되었다는 듯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카프라스에게 향했다.
  “방해하는 이들을 전부 죽이면 간단한 일 아닙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카프라스를 보며 일순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 말뜻을 이해하고 일제히 얼굴이 굳어버렸다. 특히 휘안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중원무림에서는 양민을 건드리지 않는다. 사파는 모르겠으나 정파는 양민을 건드리지 않았다. 휘안이 자기 의사를 표명했다
  “난 반대다.”
  “호오?”
  휘안의 말에 카프라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건 놀라서가 아닌 그저 장난기에 발동된 행동일 뿐이었다.
  이미 휘안이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한 카프라스였다. 하지만 그런 카프라스의 말에도 반대하지 않는 이도 있었으니 바로 에이라나였다.
  “뭐 나도 슬슬 짜증이 피어오르고 있었어.”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에이라나에게 향했다. 그랜드소드마스터인 은빛가면의 여검사 에이라나. 대외적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는 에이라나였지만 가면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외모와는 다르게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에이라나를 보며 조금 굳은 두 제국의 수뇌부들이었다. 특히 아툰 제국의 수뇌부들은 더했다. 그 이유는 에이라나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이때까지 보아온 에이라나라면 지금 당장 자신들에게 검을 내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학살은 안된다, 약간 겁을 주면 저절로 빠질 테니 말이야.”
  그 말에 카프라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막는것들만 죽이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오르칼 제국 사람들은 굳어있었다. 카프라스가 에이라나를 윗사람 모시듯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었기에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는 이들이었다.
  회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한 기사가 들어왔다.퉁칭 죽음의 기사단이라 불리우는 소마단이었다.
  들어온 소마대의 단장은 에이라나를 보고 고개를 숙이고는 카프라스에게 향했다. 아마 카프라스가 저렇게 훈련시킨 듯 보였다.
  카프라스 이외에는 황제에게 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던 소마대의 단장이 에이라나에게 고개를 숙이자 오르칼 제국 귀족들은 더욱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귀족들이 그런 표정을 짓든 말든 소마대의 단장에게 보고를 들은 카프라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엔 멋지게 장식해주시는군.”
  그 말에 휘안이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아, 적이지만 이번에 취한 데프론 황제의 행동이 마음에 든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휘안. 그렇게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카프라스가 입을 열었다.
  “데프론 황제가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수도로 가는 가장 큰 관문인 데프로디아스에서 병사를 징집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죽음의 배수진을 친다는 것!
  죽을 각오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듯 직접 황제가 나서서 군대를 지휘한다. 엄청난 사기증진을 보일 것이다. 아무리 백석들이 힘들었다 하나 자신들의 황제다. 그런 황제가 직접 전쟁터에 나온다는 말은 징집 효과가 엄청나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군요. 어차피 질 전쟁...그냥 순순히 길을 내 줄 것이지 말입니다.”
  카프라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래도 멋지잖아?”
  에이라나 역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 어리석지만...멋지죠.”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다. 데프론 황제의 마지막 패는 마지막 결전을 택했다. 이번에 사활을 걸었단 소리다. 승산이 없어도 제국의 황제의 위엄을 보이겠다는 뜻!
  어리석다 하지만...멋지다!
 쾅!
  “크윽! 말도 안되는! 나의 제국이 망한다니 믿을 수 없어!”
  진한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의 이름은 드바이스투오 드 데프론. 바로 데프론 제국의 황태자였다.
  만약 데프론 제국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다음번 황제가 될 그였다.
  그것을 눈앞의 아툰 제국과 어르칼 제국이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크윽..그것들만 없다면..나는 대륙의 황제가 되었을 것을...빌어먹을!”
  모든 분노를 아툰과 오르칼에 표출하는 드바이스투오 황태자.
  그때였다.
  [힘을 원하나?]
  달콤한 목소리가 드바이스투오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흠칫!
  “누, 누구냐!”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흠칫한 드바이스투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다시 머릿속으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에게 힘을 둘 것이다. 너에게 대륙을 손에 넣을 수 dLT는 힘을 줄 수 있다.]
  그 말에 드바이스투오의 눈이 빛났다. 잠시 후 탐욕의 눈으로 변한 드바이스투오가 소리쳤다
  “썩 나오지 못할까!”
  그 말과 함께 검은 폭풍미 휘몰아쳤다.
  그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핏빛 머리카락에 핏빛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사내. 그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가 조금 비틀려 올라가 있었는데 드바이스투오를 바라보고 비웃는 듯 했다.
  “그대가 나에게 힘을 준다는 자인가?”
  “그렇다”
  “그대가 나에게 어떻게 힘을 줄 수 있지?”
  드바이스투오의 말에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투르스코아 레디아돈 오포코토리아트, 들어본 적 있겠지?
  사내의 말에 드바이스투오가 굳었다. 그리고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파멸의 대공...마계 8공작중 하나.”
  “잘 알고 있군”
  마계 8공작! 마계 3대 마왕을 제외한 최강의 존재들!
  그 힘은 한명한명이 최소 8천살정도의 드래곤과 맞먹는다. 그중 파멸의 대공은 중간계에선 몰라도 마계에선 엘란카넌과 맞먹는 힘의 소유자였다.
  “마계의 공작이 중간계의 황태자인 내게 무슨 볼일이지?”
  “말했잖은가 힘을 준다고”
  그 말에 드바이스투오가 외쳤다
  “내가 미쳤는가! 마족과 계약이라니! 어떠한 죽음을 당할지 알고!”
  그 말에 투르스코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대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무,무엇인가?”
  “은빛 감녀의 여검사!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드바이스투오의 얼굴에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툰 제국과 오르칼 제국은 함께 움직이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그들은 당장 데프로디아스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가차없이 처리하며 말이다.
  그러고 나니 직접적으로 그들의 앞을 막는것은 없었다. 며칠의 행군 끝에 데프로디아스에 도착한 그들은 감탄하고 말았다. 소문이 부족할 정도의 요새에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였다.
  두 제국의 수뇌부 회의가 열리고 데프로디아스 성에 대한 공략회의가 열렸다.
  “성 안에는 병사밖에 없다는군요.”
  아르카아 공작이 말했다.
  “말했잖습니따? 데프론 제국은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지요”
  요새 안에 병사만 있다는 것은 꽤 골치아픈 일이다. 어쩌면 함락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대륙의 지략가들에게 해당되느 s말이지 카프라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뭐 꽤 귀찮기는 하죠.”
  심각한 문제를 단순한 문제로 전락시키는 카프라스의 말에 모두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넌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휘안이 물었다
  “없죠”
  카프라스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무시하며 카프라스가 싱긋 웃었다.
  “지금 없다는거지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며칠뒤면 비가 오겠군요...”
  쏴아아아
  비가 내린다. 하지만 그 비와 상관없이 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쾅!쾅!쾅!
  “뚫어라!”
  “얼마 남지 않았다!”
  막으려는 데프론 제국과 뚫으려는 아툰과 오르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한달가까이 비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빗속에서 성문을 앞에 두고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편 성벽 위에서도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성벽을 타고 올라온 두 존재는 그런 공방을 일방적인 학살로 바꾸어 놓았다.
  “흑안의 검사와 은빛 가면의 여검사다!”
  에이라나와 휘안이 날뛰고 있을 때 웅장한 나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우
  그 나팔소리와 함께 아툰과 오르칼의 병사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에이라나와 휘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지루한 소모전의 양상이 계속된지 한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마뇌는 태연하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 했다.
  마뇌의 말이었기에 휘안과 에이라나는 별말이 없었짐나 아툰의 수뇌부는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언제까지 쓸데없는 소모전을 계속 할 생각이오!”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이 소리쳤다. 그러나 카프라스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얼마 안남았습니다”
  “뭐가말이오!”
  그때 소마단의 단장이 들어와 카프라스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러자 카프라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군요, 병사들을 뒤로 물렸으면 합니다.”
  갑작스런 후퇴요청에 절로 얼굴이 구겨지는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이었다.
  “후퇴?”
  “예 분명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한 귀족이 기뻐하며 보고했다.
  “두 제국의 공세를 막아낸것입니다.”
  하지만 에스트로 공작은 생각이 달랐다.
  “뭔가 이상합니다. 아직 저쪽도 충분히 싸울 여력이 남아있는데 갑작스런 후퇴는 말이 안됩니다 폐하!”
  “동감이오”
  갑작스런 후퇴에 데프론의 수뇌부는 혼란에 빠졌다.
 
  카프라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후퇴가 마무리되었습니까?”
  그의 미소에 안그래도 짜증이 나있던 아프카레이나큰 후작이 소리쳤다
  “왜 아무성과도 없이 후퇴한단 말이오!”
  카프라스에게 휘둘리는게 못마땅했던 아툰 제국의 수뇌부들은 모두 울컥한 상태였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프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한달간 비가 내렸지요?”
  후작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다 아는 사실아니오?”
  “이곳은 비가 오면 수위가 늘어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수위가 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설,설마!”
  “계속 소모적인 공격을 한 것은 강의 수위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저쪽엔 9클래스 마법사가 있으니 알아차린다면 충분히 방비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아직 눈친못챈 것 같으니...데프로디아스는 이걸로 함락입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갑게 웃는 카프라스를 보며 오싹함을 느끼는 수뇌부들이었다.
  콰앙!
  그 순간 폭음이 들려왔다.
  “응?”
  데프로디아스 망루에서 망을 보던 한 병사가 소리가 난 방향에 고개를 돌리고는 경악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성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폐하! 외성이 무너졌습니다.”
  데프론 황제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무슨소리냐! 적군은 퇴각했는데 외성이 갑자기 왜!”
  그 말에 보고를 하러 들어온 귀족이 말했다.
  “엄청난 양의 물이 외성을 덮쳐 모든 것이 쓸려나갔습니다.”
  그 말에 황제가 굳은 표정으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내성의 높은 곳에서 데프론의 수뇌부는 모두 경악하였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물에 잡겨있었기 때문이다. 내성은 높은곳에 위치하여 무사했지만 외성의 50만 대군이 한순간에 쓸려나가버린 것이다.
  “끝이군”
  데프론 황제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문득 카프라스는 두 존재가 사라진 것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이라나와 휘안이 보이지 않았다.
  콰가가강!
  “은빛가면의 여검사와 흑안의 검사다!”
  에이라나는 이런 다수와의 싸움에선 항상 가면을 착용하였기에 은빛 가면의 여검사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다.
  “휘안 넌 에스트로 공작을 맡아라.”
  “알았어.”
  휘안은 열심히 마법을 난사하는 에스트로 공작에게 다가갔다.
  에이라나는 성벽 위에서 남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데프론 황제를 바라보고 다가갔다.
  막는자는 오직 죽음 뿐. 그렇게 하나하나 베며 나아갈 때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기사가 에이라나를 막아섰다.
  “호오?”
  채채채챙!
  그들이 내지른 검을 막으며 히죽 웃었다
  “소드마스터 상급의 기사들인가?”
  에이라나의 말에도 묵묵히 검을 겨누는 기사들.
  다들 삼십대 초반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친우가 나를 위해 키워준 기사들이지.”
  그때 뒤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라나는 돌아서며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당신의 친우라면 아프콘 공작?”
  데프론 황제가 끄덕거렸다.
  “강한자였지.”
  가면속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걸 느꼈을까? 세명의 기사가 달려들었다. 그들의 검에는 오러블레이드가 넘실거렸다.
  “천마참격!”
  푸학!
  일격에 세 기사가 모두 베어졌다.
  상급 소드마스터 셋이면 그랜드소드마스터도 고생할만 한데 일격이라니...
  “난 정말 운이 없는 황제로군”
  그렇게 중얼거린 데프론 황제는 검을 뽑았다.
  “원하는건 내 목이겠지?”
  그 말에 에이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에게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쉽지만은 않을꺼야.”
  황제가 먼저 에이라나에게 달려들었다.
 
  “안녕하시오?”
  휘안이 자신의 앞에 있는 에스트로 공작에게 인사를 건냈다. 갑작스런 휘안의 등장에 주위의 기사들은 황급히 휘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나 이미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크악!”
  “크어억!”
   어느새 뒤를 점한 휘안이 순식간에 기사들을 베고 에스트로 공작에게 일검을 날렸다.
  쾅!
  휘안의 검은 에스트로 공작이 전개한 실드에 막혀버렸다.
  자신의 검이 막힌것에 조금 놀란 휘안을 보며 에스트로 공작이 말했다.
  “이 늙은이를 처리하는게 쉽지많은 않을걸세.”
 
  챙챙!
  데프론 황제는 최상급 소드마스터다. 에이라나의 검을 막으며 가끔씩 반격도 해 오는 황제를 보며 에이라나는 감탄하고 있었다. 오러를 쓰지 않고 순수 검술로만 대결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하짐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에이라나의 검로가 매서워 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압박해 가던 검이 황제의 옆구리를 베었다.
  “크윽!”
  신음성을 터뜨리며 뒤로 물러나는 황제를 가로막으며 여러 귀족들이 칼을 빼들고 에이라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에이라나는 검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원하는거 없어? 유언같은거”
  오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럴 자격이 충분한 에이라나를 보며 황제가 웃었다
  “우리 제국을 그렇게 괴롭힌 너의 얼굴을 좀 보고싶군.”
  황제는 가족이나 수하를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게 다 운명이라는 것처럼.
  에이라나는 피식 웃으며 가면을 벗었다. 잠시 에이라나의 얼굴을 멍하니 보던 황제는 큭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니 우스운 일이군”
  피를 부르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에이라나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황제는 표정을 바꾸었다.
  “여자가 좀 조신하면 안되나?”
  “닥쳐!”
  데프론황제의 말에 이마에 십자마크를 하나 만드는 에이라나.
  상처입은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끝내지”
  “폐하!”
  황제의 말에 귀족들이 모두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황제의 말에 귀족들이 물러섰다.
  황제는 당당하게 에이라나의 앞에 섰다.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그는 하늘을 보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대륙을 지배해보려던 나의 야망은...어리석은것이었나? 네가 보기에도 어리석은 꿈이냐?”
  그 말에 에이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어리석지.”
  그 말에 헛웃음을 짓는 데프론 황제.
  “하지만...멋지기도 해.”
  에이라나가 검집에 검을 꽃았다.
  죽이지 않겠다는 뜻? 아니다 다음에 데프론 황제가 취할 행동을 알기에 한 행동이었다.
  “쿠쿠쿠쿡..멋지다라...고맙군...”
  그렇게 웃은 황제는 검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너간은 미녀에게 그런 말 듣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군.”
  “뒈질꺼면 빨리 뒈져라”
  데프론 황제의 말에 울컥한 에이라나가 말했다. 그 말에 황제는 목을 그었다. 그 얼굴엔 한가닥 미소가 걸려 있었다.
  “폐하!”
  대륙을 통일하려던 야망을 가진 황제. 한때 최강의 나라를 만들며 최강의 힘을 가졌던 황제가 그렇게 죽었으니 그의 죽음과 함께 데프론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사라져갔다.

    마황자
 
  비로소 막을 내린 대륙전쟁.
  이 과정에서 몇몇 나라는 사라지고 몇몇나라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오르칼 제국은 비상하기 시작했다. 아툰 역시 세력이 크게 늘었고 오르칼과 아툰은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친목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역시 두 제국 사이의 주요 인사가 모여 파티를 진행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을 때 한 그룹은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묵묵히 와인만을 마시고 있었다.
  “후...황태자를 찾지 못한 것은 조금 찜찜한데.”
  아레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흥! 듣자하니 아무 능력도 없는 무능한 놈이라며? 그런놈이 도망 쳐 봤자지.”
  와인에 열중하던 에이라나의 말에 모두들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가 문득 에이라나의 옷차림을 보고 아레인이 툴툴거렸다.
  “쳇1 드레스 같은거 입으면 이쁠텐데...왜 그런거 안입어?”
  그 말에 에이라나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나랑 단독면담 어떠냐?”
  “미안해.”
  미쳤다고 드레스를 입겠는가? 에이라나의 으르렁거림에 절로 꼬리를 내리는 아레인이었다.

  “야 천.”
  방 안에 세명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그 때 은발을 가진 여인이 누군가를 불러 내었다.
  그와 동시에 검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나 가타났다.
  “ 네 검의 정령들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
  휘안이 캄탄하며 중얼거렸다. 그 말과 동시에 어디서 나왔는지 흑아와 은아도 나왔다.
  -에헴 좋은 구경하는줄 알아.
  -맞아맞아 우리같은 무신의 선택을 받은 검들은 거의 없으니까!
  천과 은아는 자신들이 잘났다는 듯 당당하게 송가락을 까딱거리며 카프라스에게 말했다.
  “정신체에 가둬줄까?”
  에이라나의 말에 바로 입을 다무는 천과 은아.
  카프라스도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말로만 듣던 신기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이게 천마대제께서 남기셨다는 천마도입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천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 천마를 대제라 칭하는 걸 보니 너도 천마교의 사람이구나?” 그 말에 카프라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카프라스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천마교의 악가의 수장이었으며 마뇌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에 천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마뇌?
  “예” 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잔소리 많고 말투는 하나같이 염장지르는 것들뿐이고 그 엄청 싸가지 없다는 초대 마뇌 악마사의 후손?
  카프라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건 어디서 들었습니까?”
  -천마랑 초대 장로들한테
  천마의 대답을 들은 카프라스는 아주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마대제께서 저희 집안을 그렇게 보시고 있었다니.그리고 장로들 그것들은 내 목숨을 취하더니 선대들도 마음에 안드는 참 개같은 집안들이군요.” 이 말을 시작으로 오대장로에 대한 온갖 욕설을 다 퍼붓기 시작했다. 말로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다는 마뇌가 작정하고 퍼붓는 욕은 에이라나도 처음들을 정도였다. 정작 말을 꺼낸 천이 멍한 표정으로 있다 보다 못한 에이라나가 카프라스를 말렸다. 언제 그런 폭언을 퍼부었냐는 듯 뚝 그치는 카프라스.
  모리를 부여잡고 에이라나가 천을 불렀다. “얘전에 마천검 살강 장로가 이런 말을 했어 천마도가 중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거라고”
  -으응 그럴걸 아마?
  “만약 중원에 가게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거야?”
  그 말에 천이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응 가능해, 나는 무신의 축복을 받은 신기들 중 주인이 다른 차원의 존재였기 때문에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리고 안된다 하여도 중원에는 천마의 안배가 있을거야 그걸 이용해 돌아오면 되지.
  천의 말에 에이라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족이 여기 있는데 돌아올 수 없담녀 중원으로 갈 수가 없는것이다. 지금은 이곳의 자신의 세계였다.
  “자 그럼 중원으로 가는 방법이 뭐지?”
  그 말에 휘안과 카프라스 역시 기대에 찬 눈으로 천을 바라보았다.
  -몰라
  모두의 기대를 꺾어버리는 이 한마디에 모두 굳었다.
  “왜!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며?”
  에이라나의 말에 천이 배시시 웃으며
  -까먹었어
  “후후후후”
  갑자기 에이라나가 고개를 숙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흠칫한 휘안과 카프라스가 반사적으로 물러나고 흑아와 은아도 마찬가지.
  “후후후후....흐흐흐흐”
  점점 음침하게 변해가는 에이라나의 웃음. 그 소리에 움찔한 천도 멀어지려 슬금슬금 달아났지만 에이라나에가 덥썩 잡혀버렸다! 에이라나가 웃으며 고개를 든다. 너무도 화사한 얼굴이라 마치 천사처럼 보이는 얼굴. 하지만... “이 병신.” 에이라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절대 고운 소리일리 없다. 그리고 순식간에 천사의 웃음에서 악마의 분노로 바뀐 에이라나의 표정 “그런 중요한 걸 쳐 까먹으면 어쩌자는 거냐!”
  -끼아아아아아악!
  에이라나가 그대로 천의 머리를 잡고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어 버렸다. “이 병신아!” 순식간에 방이 초토화 되었다.
 
  “그러니까 신성제국에 가면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벌벌떨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천. 천을 제촉하던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신성제국으로?” “그래.” 목적지가 정해졌으면 거침없이 움직여야하지 않겠는가?    “저도 가죠.” 카프라스 역시 떠난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신성제국으로 향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뭐 계획이고 자시고 그냥 워프로 한방에 가면 되겠지만 말이다.

  “뭐라했어?” 키라이스트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짐을 싸며 말했다.
  “신성제국으로 간다고 했다.”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묻는다. “왜?” 키라이스트의 말에 짐을 다 싼 에이라나가 역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왜긴 뭐가 왜야? 내가 가고싶다는데?”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다시 올꺼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멈칫했다.
  그리고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글세? 잘 모르겠다” “뭐?” 에이라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잘 모르겠다고 올지 안올지.”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악을 썼다. “뭐야! 그런 게 어디있어?” 키라이스트쪽으로 돌아선  에이라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 혹시 나랑 늘 함께 할 거라고 생각했냐?”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멈칫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 확신했었다.
  “설마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니겠지?”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니었어?”
  짐을 다 싼 가방을 매며 당연하다는듯 피식 웃으며 “당연 아니지.” 에이라나의 말에 키라이스트의 표정이 금방 울듯하게 바뀌었다.
  “누나 가지마” 그 말에 에이라나가 다시 멈칫했다. “나, 나랑 같이 살자, 나랑 데르나 공작가에서 같이 살자 응” “안돼!” “싫어 안보내!” 떼쓰듯 에이라나를 뒤에서 덥썩 안아버리는 키라이스트의 돌발 행동에 에이라나의 얼굴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여기서 떨어뜨려 놓는 것이 좋다 루이스처럼.
  탁!
  “치워라.”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키라이스트를 응시하며 말했다. “너 나 사랑하냐?”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멈칫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사랑해” 키라이스트의 말에 한숨을 푹 쉰 에이라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에이라나가 입을 열었다. “날 사랑하지 마라.” 침묵뒤의 단호한 말에 키라이스트가 그대로 굳었다. “날 사랑해봤자 너만 아프다.”
  그렇게 말한 뒤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나갔다. 잠시동안 움직이지 않던 키라이스트가 다리의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곤 혼자 곱씹듯 말했다. “누나는 내꺼야. 다른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누나는...누나는 내거라고!” 그렇게 바닥을 주먹으로 치던 키라이스트의 표정이 일순 차갑게 변했다
  “ 누나..누나가 자초한거야.” 키라이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가는 키라이스트의 표정은 차갑고도 차가웠다.
  한편 휘안은 데르나 공작가에서 쓰던 자신의 방에서 이것저것 짐을 싸고 있었다. 잠시 중원의 일이 떠올라 짐 싸는 것이 늦어져 에이라나가 짐 싸는 것을 거의 끝났을 무렵에야 짐을 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 명 울겠군.”
  이곳 아툰에는 에이라나를 진심으로 애타게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 키라이스트, 루이스, 아레인, 아르카스...
  그 넷중 루이스는 에이라나가 잘라냈다고 했다. 하지만 잘려나가지도 못하고 아직도 에이라나를 애타게 따르고 있다. 에이라나는 차가운 존재다. 자신을 이성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은 에이라나가 이성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연인에 대한 감정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하긴 뭐...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
  아닌 듯 보여도 아직 에이라나를 사랑하고 이는 휘안이었다. 휘안뿐만 아니라 카프라스, 무연도 티를 내지 않고 않지만 에이라나를 사랑한다. 전생에 남자였는데도 사랑한다고 지껄이는 자신들이 이들보다 더 싫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피식 웃은 휘안이 다시 짐을 싸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갸웃하며 뒤돌아보았다. 뒤에는 키라이스트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안이 키라이스트를 반기며 말했다.  “에이라나를 만났니?” “응 조금전에” 휘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랬냐?”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도 태연하다. 혹시 에이라나가 자르지 않은 것인가? 그때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며?”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라이스트는 중원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휘안과 에이라나의 고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라나는 키라이스트에겐 중원으로 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흐음, 차원 이동이라.. 역시 다크이스타의 힘인가?” 그 말에 휘안이 놀란 표정으로 키라이스트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묻는 표정이었다. “형은 다른 차원 존재지? 그 카프라스라는 인간도.
  그런데...두사람은 뭐길래 중원이라는 곳이 뭐기에 에이라나 누나가 두 사람을 위해 차원이동을 하려는 것일까? 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키라이스트가 격분한 듯 외쳤다. “너 뭐냐..누구냐?” 휘안이 키라이스트를 경계하며 물었다. 지금 휘안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후후 형은 좋겠어? 에이라나 누누에게 이런 선물도 받고?” 키라이스트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월아를 잡았다. 그리고 주저없이 뽑았다. 소름돋는 한기가 느껴졌다. 월아는 키라이스트가 자신의 주인을 적대시한다는 것을 알고 무섭게 공격했다. 하지만 키라이스트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월아를 휘둘러 보았다.
  “에이라나 누나의 드래곤 본으로 만든 이 검...후후후 형에게 너무 과분한 물건이야.” 에이라나가 드래곤이란 것 까지 알고 있었다. “너 뭐냐 정말...정체가 뭐냐?” 당황한 휘안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키라이스트가 더욱 차갑게 웃었다. “난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는 성미야.” 키라이스트가 그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제로라도!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에이라나 누나만큼 가지고 싶은 존재도 처음이야.” 기세가 피어오른다.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가 설마하니 저런 기세를 가지고 있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휘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내가 가진다!” 키라이스트가 월아를 휘안에게 겨누었다.
  스오오오오오 콰가가가가강!
  월아에 무시무시한 기운이 서리더니 그대로 휘안에게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엄청난 폭음이 일어났다. 저 정도면 웬만한 인간은 뼈도 못 추린다.
  하지만 키라이스트는 월아를 본 주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퍼억! 턱! 키라이스트의 코앞에 나타난 휘안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작렬하고 키라이스트가 휘청하는 사이 그의 손에서 월아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내놔! 그건 내거야!” 중심을 잡은 키라이스트가 어린아이 떼쓰듯 양손에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고 덤벼들었다. 콰가가가강! 엄청난 폭음이 데르나 저택가를 강타했다. 정원에서 휘안을 기다리던 에이라나는 표정이 굳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을 가진 두 존재가 방안에서 대결한다. 하나는 휘안이고 하나는 알수없는 기운! 기세를 보니 휘안이 위험하다. “누구야 도대체!” 그렇게 소리친 에이라나가 저택 안으로 막 달려나가고 있을때 털썩!
  그녀는 자신 앞에 떨어지는 물체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그리곤 눈을 크게 떴다. 카,카프라스!
  거의 피떡이 되어버린 카프라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에이라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쿨럭! 소,소교주님...당했습니다. 완벽하게 뒤치기 당했습니다.”
  “어떤새끼한테!”에이라나가 소리를 빽 지르며 상처치유마법을 걸어주었다. 그런데 치유가 더디다. 이상하다 “저새끼한테요” 몸은 다쳤어도 입은 살았는지 자신이 날아온 쪽을 가리켰다. 그쪽에서 카프라스에게 상처를 입힌 존재가 얼굴을 찡그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마나양으로 따진다면 에이라나의 두배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마나를 가진 존재. 카프라스가 이렇게 당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저 개새끼는 뭐야?” 에이라나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카프라스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망국 데프론의 황태자였던 새끼입니다.” “ 뭐? 데프론의 황제?” 에이라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불경한 소리를! 대륙을 지배할 데프론 제국을 망국이라 하다니 네놈이 정신을 못차렸구나!” 다바이스투오가 카프라스에게 호통을 쳤다. “미친놈, 마족과 계약해서 힘을 얻은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 치고 난리야?” 카프라스는 그딴 호통에 눈 하나 깜짝 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 말에 드바이스투오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크하하하! 네놈은 나의 힘이 두려운 것이냐! 그렇겠지. 두려울 것이다. 드래곤을 뛰어넘는 나의 힘을 말이다!” 드바이스투오가 광소를 터뜨렸다. “미친 병신 또라이 같은 새끼 아냐? 씨발! 지 애비는 멋진 인간이었는데 아들이란 새끼는 왜 저래? 데프론 제국이 대륙을 통일했어도 저놈 때문에 망했겠군.” 에이라나가 콧웃음을 치며 욕을 날렸다. “마음껏 떠들어라 재물아.” “ 재물?” 드바이스투오의 말에 에이라나의 이마가 꿈틀했다. “그렇다. 너를 마족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영생과 강력한 힘을 손에 넣고 대륙을 지배하는 강력한 황제가 될 것이다!” “허...미친놈” 에이라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누구에게 넘긴가? 먼 개소리를 지껄이는거냐? 겨우 마나가 많아진 정도만 믿고 그렇게 떠드는거냐?” “이놈!” 에이라나의 말에 드바이스투오가 분노를 표출했다. 에이라나가 콧웃음을 치며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 올렸다. “너같은 쓰레기는 칼도 아깝다. 손과 발이면 충분해!” “이 빌어먹을 년! 감히 누구한테!” 에이라의 도발에 드바이스투오가 달려들었다.
  “누구보고 지껄이는 거냐 이 씹새끼야!” 화난 것은 에이라나 역시 못지 않았다.
 
  쾅!
  “크윽”
  한편 키라이스트와 휘안의 격돌에서는 휘안이 밀리고 있었다. 이미 방 안은 초토화 된 지 오래다. 키라이스트는 상관없다는 듯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고 휘안은 그것을 막기도 벅찼다. ‘이놈 에이라나보다 강하다.’ 에이라나보다 강했고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 키라이스트는 휘안을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었다. 키라이스트의 힘은 에이션트급 드래곤에 맛먹는 정도였다. “역시 대단해. 성룡급이면 벌써 나가떨어졌을텐데 형은 거의 웜급 드래곤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가보네?” 키라이스트가 싱긋 웃었다. “역시 누나가 맘에 들어 할 만 해” 휘안이 물러섰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에 안들어.” 키라이스트가 주먹을 크게 내뻗었다.
  콰가가가강!
  그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저택 한 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힘의 여파로 인해 휘안도 튕겨나가 버렸다.
  쾅! 쾅! 쾅!
  에이라나와 드바이스투오가 계속해서 격돌하고 있다.
  “크하하 큰소리 치더니 역시 별 것 아니군!”
  드바이스투오는 에이라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에이라나는 드바이스투오가 친 결계를 깨지 못하고 있었다. “크크크 생각같아서는 내년의 팔하나쯤 자르고 싶지만 마족이 온전한 상태의 네년을 원해서 말이야.” 그 말에도 에이라나는 묵묵히 결계를 내리 칠 뿐이었다. “큭큭 소용없다 난 최강이다.” 에이라나가 멈칫하자 포기한 줄 알고 미소지었다.
  콰앙! 콰앙!
  방금 전보다 더욱 매섭게 변한 에이라나의 손에 은빛이 아는 흑빛의 권강이 맺히기 시작했다.
  쩌적! 쩌적!
  “이, 이럴수가!”
  바로 자신의 결계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병신같은 놈. 마나양이 늘면 뭐하냐 사용할 줄도 모르면서!” 그 와중에 에이라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결계가 거의 무너지는 것을 보고 드바이스투오가 외쳤다 “그, 그만!” “지랄하고있네!” 콧웃음을 친 에이라나가 쌍권을 내질렀다. “천마광폭권!” 쾅! 굉음과 함께 결계가 깨져버렸다. “천마수라참권!” 이번에는 에이라나의 주먹이 드바이스투오의 몸을 갈기갈기 찟어발겼다. “끄아아아아!” 엄청난 고통이 엄습하자 드바이스투오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마각!” 퍼억! 고통스러워 하는 드바이스투오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이런 병신같은 놈에게 힘을 준 마족이란 놈의 면상을 좀 보고싶네.” 에이라나가 드바이스투오의 시체를 툭툭 차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가가강!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저택 한쪽이 무너져 내리고 그쪽으로 달려가려 할 때 “후후후 여기있지않습니다 그 마족이.”
  흠칫!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위잉!
  에이라나의 발 아래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허억!”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당혹감에 눈을 크게 떴다. 털썩!
  에이라나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소,소교주님!” “인간! 움직이면 죽인다.” 아까 들려왔다. 차가운 목소리에 카프라스가 흠칫했다. 핏빛 머리와 핏빛 눈동자의 아름다운 사내. 스러져 있는 에이라나를 보며 차갑게 웃고있는 사내는 바로 투르스코아.
  “마나봉인 마법진입니다. 반항할 생각하지 마십시오”
  “너 뭐하는 개새끼야?”
  에이라나가 살기를 피우며 노려보았다. “저는 마계8공작중 하나인 파멸의 대공 투르스코아입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와 카프라스가 굳었다. 마황과 삼대 마왕을 제외한 최강의 힘을 가진 8공작중 가장 강력한 거물이었다.
  “크윽!”
  에이라나는 몸안에 속박당한 마나를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마계에 원수진 것이 있나?” 그 말에 투르스코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없습니다. 있다기보다 마계의 힘 있는 분들이 소유하고 싶은 존재중 수위를 다투고 있다고나 할까요?” 투르스코아의 말에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씨발!” “후후후 그런 강렬한 말투 또한 매력을 느끼는 마족이 많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다가온 투르스코아가 에이라나의 턱을 어루만졌다. “후후후 저도 당신을 가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분께 주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얼굴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소리 하지 말고 넌 왜 나한테 존대를 하냐?” “아아 당신을 원하는 분이 내 소주인이라서 그분의 안사람이 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감탄사와 함께 에이라나의 빈정거림. “호오? 그 소주인이란 새끼 면상한번 보고싶네?” 투르스코아가 웃으며 말했다. “크크 걱정마시길 잠시후면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에이라나도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어쩌지? 못볼 것 같은데..” “그건 무슨소리십니까?” 그 말에 에이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나한테 건 마법은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봉인하는 마법이군 그런데 그것뿐이라면 네놈은 실수한거다!” 순간 에이라나가 손들 들어 올리자 마비증상이 풀렸다. 동시에 방심하고 있던 투르스코아를 향해 검을 날렸다
  콰가가강!
  뒤로 밀려난 투르스코아가 당황했다 “ 어떻게?” 에이라나가 검강을 사용하자 놀란 듯 크게 눈을 떴다. 그가 모르는 것! 그것은 바로 에이라나에게 있는 제 2의 마나 집합체인 단전이었다. “천! 흑아! 은아!” 에이라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눈동자가 각각 은빛과 흑빛으로 물들고 머리카락도 두 빛이 섞여 신비로운 모습을 하게 되었다. 천과 은아 흑아의 주인이라는 표시가 된 문신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힘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천은 거의 웜급 드래곤에 필적히는 힘을 빌려주고 있었다. 에이라나가 신기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힘이 없어 사용할 수 없으리라 생각 한 투르스코아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다시한번 검강이 날아오고 그것을 막는 동안 에이라나의 한 손에는 카프라스가 들려 있었다. 아무리 평소의 몇배의 힘을 지니고 있더라도 상대는 마계 8곡작이다. 중간계로 내려와 힘이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세이션트급 드래곤들 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다. 싸워봤자 승산 제로다. 차라리 자신의 부모님이나 드래곤 로드에게 어서 가서 이 일을 알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워프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어디로 도망간다는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이라나가 굳었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기척. 하지만 뿌려대는 기운은 순수한 마기. 자신을 쫓던 투르스코아도 놀란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에이라나는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눈앞의 투르스코아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이 싸운다면 한방에 나가 떨어질 만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존재. 에이션트급 드래곤의 힘이랄까?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 키...라이스트?”
  자신의 뒤에 있는 존재는 바로 키라이스트였다. 털썩! 에이라나의 발 앞에 떨어진 물체는 바로 휘안이었다. 옆구리가 너덜너덜하고 칼을 잡는 손은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너 정체가 뭐냐?”
  에이라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키라이스는 갑자기 카프라스를 빼앗아 멀리 던져보리고는 에이라나를 껴안아 버렸다. “누나! 헤헤헤 이제 누나는 내거야!” 마치 어린아이 처럼 순진하게 웃는 키라이스트 때문에 소리지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마기에 에이라나는 굳어버렸다.
  “크윽!” 겨우 키라이스트를 떨쳐낸 에이라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대로 잡혀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지금도 몸속을 돌아다니는 마기에 마나가 거의 제압된 상태였다. 키라이스트에게 칼을 겨누자 “난 누나랑 싸우기 싫어!” “닥쳐!” 에이라나는 그대로 키라이스트에게 달려들었다. 키라이스트와 에이라나의 싸움을 보고있던 투르스코아가 달려들어 에이라나의 검을 막았다.
  쿨럭!
  이미 마나가 거의 제압된 상태에서 신기의 사용으로 인해 피를 토하는 에이라나. 그것을 보고 키라이스트, 아니 유희를 위해 중간계에 나와있던 마황의 하나뿐인 아들 레텐티에스는 눈을 부릅떴다. “누,누나!” “꺼져라!”
  스러져서도 칼을 겨누는 에이라나의 모습에 당황하는 레텐티에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에이라나의 몸은 더 위험한 상태가 될 것이었다.
  “더이상의 반항은 그만두십시오” 투르스코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으드드득!
  이를 소리가 날 정도로 가는 에이라나. 레텐티어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누나 내것이 되어주어야겠어!” 욕망으로 가득 찬 레텐티어스의 눈이 빛났다. 순간 에이라나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무시무시한 한기! “폴리모프 해제!” 실버 드래곤의 본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아아아앙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릅다운 실버드래곤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은 레텐티어스. 하지만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에이라나는 브레스를 레텐티어스와 투르스코아를 향해 쏘아내었다. 모든 마나를 사용하여 뿜어낸 브레스가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했다.
  마나를 소모한 에이라나는 공중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추락하는 에이라나는 받아든 존재가 있었으니. “앙탈좀 그만 부렸으면 좋겠아 누나.”
  바로 레이텐티어스였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해 보이는 그였지만 얼굴은 질려있었다. “누나를 광룡으로 만드는 일은 쉬워 8공작을 모두 불러 누나 가족을 죽여버리면 되는거야 이렇게나 저렇게나 내 것이 될텐데 그게 그거잖아.”
  레이텐티어스의 말에 에이라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빨리 좀..’
  지금 저쪽에서는 강력한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투르스코아가 8공작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이보에 키라이스트. 내 손녀 돌려줬으면 좋겠어.”
  차분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스오오오
  그와 동시에 마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8곡작의 소환이 임박했다는 증거!
  콰가가강!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온 브레스에 8공작 중 다섯만 소환되고 나머지는 실패했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썩을! 다섯이나 넘어왔잖아?” “위험하겠는걸요?” 격분한 남자와 여자의 고운 목소리.
  “이 빌어먹을 새끼야! 너 지금 누구 딸을 안고 있는거야?” “어머 저건 데르나 공작가의 애송이잖아? 왜 저게 내 딸을 안고 있는거지?”
  역시 격분한 목소리...
  엘란카넌, 레랴니스, 라칸, 에랴나니스, 카랴만.
  에이라나의 가족이 총출동한 것이다.
    데빌존
  "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마계 8대 공작이면 다냐? 왜 남의 딸을 납치하려고 난리야!"
카랴만이 이제는 6명으로 늘어난 마계 8대 공작들을 행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소리쳤다.
  "내 말이! 개 같은 것들! 동족들을 광룡으로 만들어 자기들 소유로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맨정신인 나의 손녀까지 납치하려고 하다니!"
  라칸도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이럴 때 보면 참 부자(父子)라는 것을 잘 느끼게 해 주는 라칸과 카랴만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잘 맞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야 이 병신아! 내 딸 내놔!"
  "거기, 내 손녀 안고 있는 놈! 내 손녀 내놔라!"
  레냐나스와 에랴나니스 역시 죽이 척척 맞고 있었다. 그녀들이 엘란카넌에게 뚜껑 열렸을 때 빼고 저렇게 잘 맞았었던 적이 있었던가? 당연히 없었다.
  한 부자와 한 모녀가 그렇게 놀라울 정도로 죽이 잘 맞고 있을 때 이들과 다르게 점잖은 어투가 들려왔다.
  "키라이스트, 내 손녀를 돌려줬으면 하네."
엘란카넌만이 유일하게 차분한 어투로 레이턴티에스에게 말했다. 그런 엘란카넌의 말에   코웃음을 치는 레이텐티에스였다.
  "흥!"
그렇게 코웃음을 한번 쳐준 레이텐티에스가 에이라나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저를 키라이스트가 아니라 마계의 마황자 레이텐티에스라 불러주셨으면 좋겠군요."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엘란카넌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자네… 마황자였나?"
  "예."
  레이텐티에스의 여유로운 말에 엘란카넌이 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그래서 내게 마족인 것을 들키지 않은 것인가?"
  엘란카넌은 영홍의 향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 에이라나를 처음 보고 영혼이 인간의 것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엘란카넌이다. 그런 엘란카넌이 상대가 마족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러했다. 마족이든 천족이든 정령이든 말이다.
  단! 마황, 천황은 그것에서 예외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본질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마황의 피를 이어받은 레이텐티에스가 자신의 본실을 숨기도록 엘란카넌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다.
  엘란카넌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 어쨌든 내 손녀를 돌려주게."
  엘란카넌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렇게 친구나 아내나, 딸이나 딸의 남편처럼 길길이 날뛰어서 바뀔 것은 없다. 자신도 화가 나기는 하지만 상대는 마계 8대 공작 여섯과 마황자다.
  마황자가 아직 어리다고 하나 그의 힘은 에이션트급 드래곤과 맞먹는다.
마족은 드래곤과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 그들은 성마식을 치르고 나면 자신의 레벨에 맞는 완전한 힘을 가지게 된다.
성마식은 더 고위 마족일수록 늦게 하는데 마황자일 경우에는 5.000살에 성마식을 치른다고 한다. 드래곤들보다 오래 사는 마족들이기에 가능했다.
  엘란카넌의 말에 레이텐티에스는 자신의 품에 안겨 숨을 헐덕이는 에이라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레이텐티에스가 소중한 것을 품에 안듯 헤이라나를 더 꽉 안으며 말했다.
  "싫습니다."
  "으음……."
  침음을 흘린 엘란카넌이 의아한 듯 레이텐티에스에게 물었다.
  "그렇게 떼를 써봤자 안 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는 걸 잘 알지 않는가? 네가 그렇게 때를 써도 에이라나의 마음을 가질 수 없어."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제 것이 된다면 마음을 얻는 일 같은 건 쉬운 일이니까요."
  그 말에 슬쩍 얼굴을 찡그리는 엘란카넌에게 살짝 미소 지은 레이텐티에스가 입을 열었다.
  "에이라나 누나가 제 것이 된다면 전 에이라나 누나에게 '영원히 저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식의 용언에 대한 맹세를 시키면 되는 것이죠. 그러면 에이라나 누나는 영원히 절 사랑하게 된답니다."
  그 말에 엘란카넌이 헛웃음을 지었다. 완전히 어린애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용언이라도 감정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법.
  용언이 완별하다고는 하나 사랑하지도 않는 상대를 백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용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의 소유가 되겠다고 맹세를 한다면 그것이야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어이없다는 듯 웃던 엘란카넌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말했다.
  "용언이 완벽하다고는 하나 감정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네가 강제적으로 에이라나를 가지게 된다면 에이라나는 평생동안 널 증오하고 원망밖에 더하지 않겠는가?"
  그 말에 레이텐티에서가 굳었다.
  "그런 협박은 마시죠. 그리고 지금 저를 걱정하는 것보다 렐란카넌, 당신의 일을 걱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밑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마력의 파동! 엘란카넌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아이스 해븐 더 크리스탈 프리징."
터져 나오는 13서클 마법!
  콰가가가가가강!
  "크윽!"
  "커억!"
  엘란카넌의 마법과 동시에 엘란카넌에게 달려들던 투르스코아와 절규의 공작 페티아스는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엘란카넌의 힘을 드래곤 일족 중 최강이다. 최대 9,000살 드래곤급의 힘을 내는 투르스코아와 페티아스라고 하나 엘란카넌은 상당히 힘든 상대다. 두 명이 달려들어도 제압하기 힘들 정도? 이 정도면 마왕과 맞먹는다.
  그런 엘란카넌에게 중간계에서 달려드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다. 그리고 엘란카넌과 맞먹는 힘을 가진 라칸도 있다.
  엘란카넌과 라칸에 비해 약한 레랴나스도 있었지만, 그녀 역시 레드 일족 최강자! 게다가 4,000살 정도인 카랴만과 에랴나니스도 있다. 이 싸움은 절대적으로 마계측이 불리했다.
  사실 아무리 마족이나 천족이 중간계에 오면 힘이 반감된다고 해도 그들이 무시무시한 존재들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족과 마족들이 천마전쟁을 하려면 꼭 중간계를 거쳐야 한다.
  두 종족이 싸운다면 늘 피해의 대상은 중간계였다. 하지만 중간계는 늘 평화로웠다. 그 이유가 바로 드래곤의 존재 때문이다.
  중간계를 지키는 것은 창조주가 그들에게 내린 사명이었다. 그렇기에 드래곤들에게는 마황이나 천황급의 힘을 가진 드래곤들은 없어도 마왕이나 천황급의 힘을 가진 드래곤들은  있었다.
  적어도 한 시대에 2~3명의 그런 존재들이 있다. 지금 엘란카넌, 라칸, 드래곤 로드. 이 세 드래곤이 마왕이나 천왕급의 히을 가진 존재들로 알려져 있다.
  9,000살이 넘어가면 힘이 무시무시하게 강해지는 것이 드래곤이다. 그 힘을 당연하게도 마왕과 필적하며 마공작들을 뛰어 넘는 힘이었다.
  마공작들은 드래곤으로 따지면 8,000~9,000살 사이의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9,000살이 넘어가는드래곤들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드래곤이 지금 둘이나 있다. 그것도 이곳 중간계에서!
  이대로 계속 붙는다면 미친 짓이다. 100% 진다고 보면 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염두 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흐음… 역시 이 상태로 세 고룡 분들을 이기는 건 무리 같군요."
  레이텐티에서도 일긴 아는지 그 사실을 인정하고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엘란카넌, 저에게 그냥 에이라나를 주면 안 되겠습니까?"
  "씹! 미친 새꺄! 내가 그걸 허락할 것 같냐!"
  헤이텐티에스의 말에 에랴나니스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에랴나니스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웃으며 말했다.
  "후후… 역시 에이라나 누나의 어머니답군요. 이제부터 장모님이라 부를까요?"
  "썅! 누구 보고 장모님이란 거냐!"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격분하며 바로 반발하는 에랴나니스. 그런 에랴나니스를 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레이텐티에스가 또 다시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어머님도 누나처럼 성격이 참 더러우시네요."
  "뭣? 너 뭐라 그랬어! 성격이 더러워? 이 새꺄! 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정도는 아냐! 남의 딸을 부모 눈앞에서 당당하게 납치하려는 주제에!"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바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에랴나니스를 레랴나스가 말렸다.
  그렇게 에랴나니스와 레이텐티에스의 대화가 끝났다. 대화가 끝나고 나니 다시 싸늘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에이라나 누나가 마계에서 생활하는 겁니다. 하지만 10년에 한 번씩 중간계에 나오는 것으로 합의를 보죠."
  잠시 후 정적을 깨며 레이텐티에스가 내놓은 타협안에 모두가 침묵했다.
  "미친놈! 우리가 그거 들어줄 것 같냐?"
  "이 새끼야! 내 딸도 내가 마음대로 못 봐? 10년에 한 번씩 저거 썩을 새끼 아냐? 그리고 에이라나가 네놈 물건이냐! 네 마음대로 하게!"
  카랴만과 에랴나니스가 격분했다.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바로 말하지 않고 약간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후회하실 겁니다."
  "흥! 닥치로 에이라나나 내놔!"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코웃음을 친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그것으로 대화는 완벽하게 끊겼다. 드래곤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마족들은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 싸움… 절대적으로 드래곤들이 유리하다. 그런데도 레이텐티에스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과 여유는…….
  뭔가 불안감이 드는 엘란카넌이었다.
  드래곤들이 마족들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데빌존."
  레이텐티에서가 중얼거려싿. 그 말과 동시에 지상에서 엄청난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아툰 제국 수도 전체를 감살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법진!
우웅!
  그 마법진이 시행됨과 동시에 마법진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뿜어져 나와 수도 전체를 감사기 시작했다. 흑빛 막이 아툰 제국의 수도 전체를 감싼 것이다.
  흑빛 막의 생선은 순간적인지라 누구도 반응할 수 없었다. 흑빛 막을 보며 드래곤들이 굳었다. 그와 동시에 아까보다 배에 해당하는 기운을 뿌려대기 시작하는 6명의 마계 공작들!
  데빌존!
  마신이 마황에게 선물한 마계의 신물로 중간계의 일부를 마계와 똑같게 만드는 구슬이었다. 이 데빌존이 발동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은 간단했다.
  바로 마황족의 피. 마황이나 그의 자식들의 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무식한 양의 피가 필요한 만큼 고귀한 피를 가진 마황족들은 거의 데빌존을 사용한 예가 없었다.
  마계에서는 자신의 피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을 고위 마족일수록 더더욱 그러한데 그 이유가 마족에게 있어 피는 곧 힘인 것이다. 피를 많이 흘리면 마족들은 체력을 잃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되었다.
  드래곤들은 피를 흘리면 체력이 빠져나갈 지언정 마나가 소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레이텐티에스가 펼친 데빌존은 손에 상처를 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시전자의 피를 뽑아간다.
  이만한 크기의 데빌존을 시전했으니 레이텐티에스는 지금 매우 약해진 상태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지금 에이라나는 마나 고갈 상태다. 단전도 텅 비었으며 드래곤 하트도 텅 비었다. 고로 흑아와 은아, 천에서 힘을 받을 수도 없었다. 무리하게 힘을 쓰려고 한다면 목숨이 위험했다.
  데빌존의 효과는 마족의 힘을 마계에서처럼 그대로 사용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천족이나 드래곤의 힘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된다면 마계 공작들보다 에이라나의 가족들이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데빌존."
  "젠장! 설마 이걸 쓸 줄이야!"
  데빌존을 쓰는 걸 생각하지 못한 듯 드래곤들이 당혹해했다.
  "커억! 쿨럭!"
  갑작스럽게 에이라나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갑작스럽게 피를 토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놀라서 소리 쳤다.
  "누, 누나!"
  힘겨워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 외에 이상이 없던 에이라나가 갑자기 피를 토했으니 기겁하는 것은 당연했다.
  "씹……."
  에이라나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자동적으로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유는 바로 마기로 충만한 공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에이라나가 갑자기 피를 토한 이유는 간단했다. 마나 고갈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공기의 변화, 그리고 그 공기의 변호를 일으키는 데빌존의 중심인 레이텐티에스의 바로 옆에 있다는게 에이라나에게는 충격을 먹인 것이다.
  그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 레이텐티에서였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데빌존을 사용한 것인디. 그것이 에이라나에게 독이 되고 만 것이다. 에이라나의 몸이 자동적으로 마기에 익숙인 블랙드래곤의 몸으로 전환시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위험했을 것이다.
  마기에 반응해 흑안에 흑발로 변한 에이라나. 에이라나의 변화에 레이텐티에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에이라나에게 물었다.
  "누, 누나. 괜찮아?"
  하지만 레이텐티에스의 말에도 에이라나는 반응 없이 그저 어지러운 속을 달래고 있을 뿐이었다.
  콰가가가가가강!
  에이라나가 속을 다스리고 시작함과 동시에 6명의 마계 공작과 드래곤들의 싸움이 벌어졌다.
  콰가가가가가강!
  쾅!
  그렇게 격돌하는 여섯 공작과 다섯 드래곤! 하지만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드래곤들이 밀리기 시작햇다.
  이유는 당연했다. 데빌존은 지영 자체를 마계화 하는 능력이었다. 한 마디로 지금 소마계에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마계는 마나 대신 마기로 충만하다. 그렇기에 블랙 드래곤인 라칸과 카랴만을 제외한 다른 드래곤들은 자신의 힘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기에 익숙하다고 하나 블랙드래곤도 결국 마나를 이용해 싸우는 드래곤들이다.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에이라나라면 모를까. 힘은 온전치 못했다.
  그렇게 마계 공작들과의 공방전이 계속 벌어졌다.
  크오오오오오오오!
  따라붙는 마계 공작들을 떨쳐낸 엘란카넌이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말았다.
  스오오오오오! 콰가가가가가강!
  그는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그대로 브레스를 날려 버렸다. 브레스를 모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본체로 돌아와 바로 브레스를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엘란카넌은 드래곤들 중에서 거의 최강자다. 그리고 8,000살 정도를 넘긴다면 인간의 몸으로도 브레스를 사용 가능하게 된다.
  날리기 편한 곳에 에너지를 모아 달리는 것이 브레스다. 본체 상태에서는 입속에서 날리는 게 편하니까 입속에서 날리는 것이다. 그리고 본체 상태에서 쓰는 브레스가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엘란카넌의 브레스에 시간을 번 나머지 에이라나의 가족들도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그리고 레랴나스와 라칸은 그대로 브레스를 날렸다. 카랴만의 브레스는 지상에 타격을 입혔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담긴 흑빛 마기의 라칸의 브레스가 스친 곳은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한편 이들의 싸움으로 인해 날벼락을 맞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발칵 뒤집힌 아툰 제이었다. 갑작스럽게 수도를 감싸는 이상한 검은빛 막으로도 놀란 지경인데 드래곤이 무려 다섯 마리나 나타났다!
  발칵 뒤집히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아툰 제국이 뒤집히든 말든 드래곤들과 마계 8대 공작은 그저 싸울 뿐이었다.
  -파이어 그레이트 포러디 포럴!
  레냐나스는 10서클 마법인 화염계 최강의 마법을 날렸다. 헬파이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하얀 불꽃이 피의 대공을 덮쳤다.
  “블러드 샤럴 테이크소오프런 실드”
  하지만 그는 피의 대공답게 블러드 계열의 10서클 마법으로 레랴나스의 공격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쐐애애애애애액! 쾅!
  바로 다음에 이어진 꼬리에 의한 공격 때문이었다.
드래곤은 육체적 힘도 무시무시하다. 특히 마나가 실려있는 드래곤의 꼬리치기는 한방 맞으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피의 대공이 튕겨져 나갔다.
  “블러드 다크 그랜드 캐논!”
  튕겨져 나가면서 마법을 날리는 피의 대공에 의해 레랴나스 역시 튕겨져 나갔다.
  -크으으윽… 이거나 처먹엇!
  구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아!
  레랴나스 역시 만만치 않은 듯 브레스를 날렸다. 가장 처지는 쪽은 에랴나니스와 카랴만이었다.
  그들은 가끔씩 레이텐티에스를 향해 마법을 날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8대 공작들에게 번번히 막히고 말았다. 물론 레이라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신경 써서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현신했다고 하나 엘란카넌들은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억!
  그렇게 밀리고 있던 도중에 카랴만이 파멸의 대공 투르스코아가 날린 묵빛 창에 전정으로 맞은 것이다. 창도 보통 창이 아니라 날아가면서 커지는 바람에 거의 카랴만 크기의 창이었다.
  쿵!
  카랴만이 그대로 지상에서 추락했다.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놀라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아, 아빠! 커윽…….”
하지만 아직 마나 고갈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이라나였다. 그렇게 발버둥을 칠 때마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고통을 호소하는 에이라나였다.
그런 에이라나를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누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누나 가족 모두를 죽일 수도 있어.”
  그 말에 에이라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심함을 탓하며…….
  번쩍!
  “쿨럭!”
  카랴만이 폴리모프를 하며 피를 한 움큼 토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멀쩡하지 못한 카랴만이었다.
  “딸 앞에서 쪽팔리게 가장 먼저 나가 떨어질 게 뭐람.”
  그렇게 투덜거리며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괜찮으십니까?”
  휘안이 절뚝거리며 다가와 물었다.
  “전혀.”
  휘안의 부축을 받은 카랴만이 갑작스럽게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그 마뇌라는 녀석은 어디 갔지?”
  카랴만의 물음에 휘안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예요.”
  휘안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카랴만이었다.
  “돌아온다?”
  “네.”
  에랴나니스가 충격을 먹었는지 비명을 질렀다. 그런 에랴나니스의 앞을 막으며 엘란카넌이 말했다.
  -폴리모프하고 쉬고 있어라.
  -더, 더 싸울 수 있어요!
  -마나가 거의 고갈된 거 안다.
  -…….
  엘란카넌의 말에 입을 다무는 에랴나니스였다. 사실 마나가 거의 고갈되어 더 싸운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런 에랴나니스를 보며 엘란카넌이 말했다.
  -에이라나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봐라.
  엘란카넌의 말에 에랴나니스가 지상으로 내려가며 폴리모프를 했다. 에랴나니스는 주먹을 꽉 지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흐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딸을 본 엘란카넌이 잠시 후 무시무시한 기세로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아직 체력이 남은 세 명의 고룡과 마계 공작들은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아툰 제국의 수도는 거의 초토화 된 상태였다. 인명 피해가 상당히 났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휴전 상태에 들어간 두 무리가 서로를 견제하며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흠칫 굳는 마계 공작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주위를 감싼 50여 명의 인영!
콰가가가가강!
  그 인영들이 그대로 칼바람을 6명의 마계공작들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려들었다.
  [공격하세요!]
  고룡들 귀로 울려 퍼지는 카프라스의 전음
그 50여 명의 인영은 바로 천마교의 혈천강시들이었다. 검강으로도 거의 베어지지 않는 혈천강시들!
  혈천강시들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마계공작들이 당황했다. 잠시 후 성격 급한 피의 대공이 소리치며 한 강시에게 검을 내질렀다.
  “언데드 따위가!”
  콰가가가가강!
  혈천강시 하나가 어마어마한 기운이 서린 피의 대공의 검을 정통으로 맞았다.
  “캬오!”
  하지만 피의 대공의 검을 정통으로 맞은 강시는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마계 공작들에게 달려들었다.
  죽음을 모르는 혈천강시다. 완전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때까지 계속 움직인다. 당연히 전투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다. 위협은 못되지만 이들로 인해 시간을 끄는 사이가 위험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강!
  역시나 어마어마한 양의 마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마공작들도 만만치 않았다.
다시 시작되는 싸움.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콰가가가가강!
  -크억!
  레랴나스가 땅으로 추락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눈빛이 흔들리는 엘란카넌과 라칸.
이젠 정말 한계다. 대단위 10 서클 이상의 마법들을 난사했다. 자신들도 슬슬 마나가 고갈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심축인 레랴나스가 쓰러졌다는 것은 싸움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쾅! 쾅!
  -크억!
  -젠장!
  라칸과 엘란카넌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계 8대 공장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결국 싸움은 마계 공작 여섯의 승리였다.
  그들도 상당히 지쳐 있기는 했지만 아직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데빌존 안에서 마족들의 회복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마족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결국 엘란카넌들이 패한 것이다.
  폴리모프하는 세 고룡.
  아니, 레랴나스는 기절하는 바람에 폴리모프도 하지 못해 엘란카넌이 대신해주었을 정도다. 레랴나스를 꽉 안으며 엘란카넌이 레이텐티에스 품에 안긴 에이라나를 쳐다보았다.
졌다. 이제 자신들은 싸울 힘도 없었다. 마계공작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그들 앞에 섰다. 레이텐티에스 역시 에이라나를 안은 채 그들에게 다가왔다.
  “누나, 끝났어.”
  레이텐티에스가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는 에이라나를 보며 말했다.
  “닥쳐.”
  레이텐티에스는 으르렁거리며 말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레이텐티에스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조금 전부터 계속해서 들리는 에이라나의 독설과 원망 섞인 시선, 모두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각오한 일이었다.
  “누나가 용언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누나의 가족들은 전부 죽어.”
그 말에 에이라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에이라나가 레이텐티에스를 뿌리치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레이텐티에스는 갑작스러운 에이라나의 행동에 에이라나를 다시 잡으려고 했다.
  탁!
  하지만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손을 치는 에이라나를 보며 멈칫해야 했다.
  “좋아. 네놈의 것이 되어주지. 빌어먹을 네놈의 물건이 되어주마! 하지만 각오해라. 언젠가 내 가족들을 상처 입힌 복수는 하고 말 테다.”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에이라나를 보며 마계 공작들은 얼굴을 찡그렸다. 반면에 레이텐티에스는 담담할 뿐이었다.
  ‘이것으로 된 거다.’
  레이텐티에스가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용언에 대한 맹세를 해줘.”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에랴나니스가 그녀를 불렀다.
  “에이라나!”
  에랴나니스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에이라나가 말했다.
  “히히히! 난 언제까지나 엄마 딸이야, 잊지 마.”
  장난스럽게 웃는 에이라나. 하지만 그런 에이라나의 웃음은 힘이 없어 보였다. 에이라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막 용언을 사용하려고 할 때였다.
  두근!
  ‘응?’
  갑작스럽게 심장에서 느껴지는 충만함.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갑작스럽게 빨리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충만하게 차오르기 시작하는 드래곤하트와 단전의 마나!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이라나가 경악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마나가 드래곤 하트와 단전의 용량을 넘겨버렷다.
  “쿨럭!”
  그러자 바로 피를 토하는 에이라나.
  갑작스럽게 에이라나가 피를 토하자 용언에 대한 맹세를 기다리던 레이텐티에스가 놀라서 곁으로 다가갔다.
  “누나!”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심장을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에이라나를 부축하려고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에이라나의 가족들도 당황했다.
부축하기 위헤 레이텐티에스의 손이 에이라나의 몸에 닿았을때였다. 그는 에이라나에게서 흘러 나오는 섬뜩한 마기에 그대로 굳었다.
  펑!
  “커억!”
  에이라나의 몸에서 나온 섬뜩한 마기가 그를 튕겨내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겨우 마기만으로 튕겨져 나갔다? 마황자인 자신이? 하지만 레이텐티에스는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쿵!
  바로 자신의 바로 밑에서 들리는 발소리 때문이었다. 의아하여 밑을 바라보니 에이라나가 섬뜩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바로 자신의 턱을 가격하는 에이라나의 주먹!
  빠악!
  턱과 주먹이 만나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레이텐티에스가 마기로 자신의 턱을 보호해서 다행이지. 이정도의 파괴력이면 레이텐티에스는 지금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에이라나의 전신에서 서서히 무시무시한 마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마계공작들의 마기는 어린애 장난이라는 듯 펼쳐지는 무시무시한 검붉은 핏빛 마기!
에이라나의 공격에 쓰러진 레이텐티에스가 그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마계공작은 물론 엘란카넌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건 드래곤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마족이 가질 수 있는 기운도 아니었다.
레이텐티에스를 날린 에이라나가 똑바로 서기 시작했다.
  그제야 보이는 붉은 눈동자. 흑발과 잘 어울리는 붉은 눈동자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끌~ 건방진… 감히 노부의 후인을 가지네 마네 지껄이는 태도가 참 오만방자하구나.’
그 말과 함께 에이라나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의 에이라나의 말투와 많이 달랐다. 늙은이의 말투라고나 할까? 그리고 뭔가 힘이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노부는 나의 후인이 남에게 고개 숙이는 꼴은 죽어도 보지 못하지.”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천마강림
  천마도.
  이것은 아주 오래 전, 리샨 대륙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9,000년 전에 한 존재가 리샨 대륙으로 왔기에 만들어진 칼이다.
  그때는 리샨 대륙에는 천마전쟁이 일어날 당시여싿. 전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도 다쳤다.
  실제로 그 당시 중재자인 드래곤들이 말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일시적으로 드래곤들의 힘이 약해진 상태라 말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중간계는 초토와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죽어나갔다.
  그럴 때 유유자적 나타난 여섯 명의 인간.
  그중 다섯 명의 인간은 거의 웜급 드래곤의 힘을 가지고 잇는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천마전장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히 인간으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일 뿐. 천마전쟁 당시에 그들의 힘은 미미한 것이라 보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우두머리는 달랐다.
  혼자만으로 천마전쟁의 판도를 뒤집어엎어 버릴 강자!
  강했다! 그리고 무차별적이었다. 걸리는 대로 모두 싸워 모두 이긴 절대강자!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간!
  그 당시 마왕 셋과 천왕 셋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천황은 그와 싸우다 그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죽고 말았다.
  이상한 인간이었다. 인간이면서 마기를 사용했으며, 마기를 사용하면서도 마족들과 대적했다. 그 당시 그는 천족과 마족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아직도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힘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닌 신의 것이었다.
  그의 힘으로 끝이 나 버린 천마전쟁. 무신과 마신은 그의 무력에 경의를 표하며 한 자루의 검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바로 천마도였다.
  처음에는 무신이 만들어 준다고 했지만, 마신은 마기를 사용하는 인간이 흥미롭다며 자신의 힘을 불어 넣어 천마도를 탄생시켰다.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한 검이었다. 천마도는…….
  당연하게도 이 이상한 인간은 바로 중원 무림에서는 천마대제라 불리며 중원인들 위에 군림했던 천마였다. 이름도 알 수 없다. 그저 천마라 불릴 뿐.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상급신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던 천마. 우화등선을 눈앞에 두고 우연치 않게 리샨 대륙으로 넘어오게 되었던 그는 지금 중원의 신선이 되어 중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마는 리샨 대륙으로 돌아올 때 천마도에 하나의 안배를 만들어 놨다. 바로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천마도에 봉인시키는 것. 거의 일만 년 후의 일을 읽은 천마의 작은 안배였다.
  그것이 그에게는 작다고 하나 지금 에이라나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잇었다. 물론 에이라나의 몸을 천마의 영혼의 조각이 차지했지만 말이다.
  에이라나, 아니 천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물었다.
  “크윽… 당신은 누군데 누나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거야!”
레이텐티에스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런 레이텐티에스를 향해 천마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본노는 천마라 불리는 인간이다.”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해 했다. 상태를 보아하니 누간가가 에이라나의 몸을 빼앗은 것 같았다. 그런데 천마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드래곤의 몸을 빼앗았다면 고위지성체일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손녀의 몸에서 빠져나와 줬으면 좋겠군요.”
  엘란카넌이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 엘란카넌의 말에 천마가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당신의 손녀든 아니든 상관없다. 난 나의 후인인 이녀석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고. 그렇기에 도와주려 하는 것 뿐이니 말이다.”
  천마의 말에 엘란카넌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 당신 정말 천마가 맞습니까?”
  그때였다. 남궁휘안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천마! 중원 무림에서 이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마교의 시조이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존재! 그와 싸워 살아남은 자는 없다고 전해질 정도로 강한 존재.
  …하지만 중원 무림으로 따지면 1,000년 전의 인물이다. 리샨 대륙으로 따지면 9,000년 전의 인물이고. 그런 인물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경악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끌끌. 너는 리샨의 아이가 아니라 중원의 아이구나. 그래 난 천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영혼의 조각이겠지.”
  그 말에 카프라스가 말했다.
  “그럼 천매대제이신 것이 확실한 것입니까?”
  카프라스의 말에 천마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악가의 아이로구나.”
  그 말에 카프라스가 멈칫했다.
  “천마교의 미천한 악가의 자손이 천마교의 시조이신 천마대제께 인사 올립니다.
  정말 정중하게 말하는 카프라스를 보며 천마가 껄걸 웃었다.
  “악가가 애 교육 하나는 잘 시켰구나. 지 조상과 다르게 정말 예의바른 아이로다.”
  흐뭇하게 웃던 천마가 이번에는 휘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이채를 띠었다.
  “재미있는 무공을 익히고 있구나.”
  “예? 아, 예…….”
  천마의 말에 휘안이 당황했다. 잠자코 지켜보지 못하고 에랴나니스가 카프라스를 불렀다.
  “지금 에이라나의 몸속에 들어가 잇는 저 자 정체가 뭐야?”
  에랴나니스의 물음에 카프라스가 돌아보며 답했다.
  “…소교주님이 속해 있으셨던… 천마교의 시조이십니다.”
  그 말에 에랴나니스가 경악했다.
  “에엑? 그 작자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리고 왜 에이라나의 몸을 차지하고 저 난리야?”
  에랴나니스의 말에 카프라스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마도에 무슨 안배를 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도와주실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만…….”
  “크윽! 나를 무시하는 건가!”
  레이텐티에스가 격분하며 말했다. 마계공작들도 여차하면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마가 웃으며 말했다.
  “건방지다. 마계공작 따위가 감히 노부에게 대적하려는가?”
  그 말에 꿈틀하는 마계공작들. 하지만 그런 마계공작들을 보며 코웃음만 칠뿐인 천마였다.
  “흥! 전대 천황도 노부에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못했거늘. 이번 대 마황자는 간이 부었나 보군.”
  천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소리쳤다.
  “당신 정체가 뭐야!”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히죽 웃은 천마가 말했다.
  “클클클… 그 건방진 주둥아리를 당장 다물게 해주마.”
  천마가 그대로 팔을 휘저었다. 그리고 일어났다. 마기의 파도가! 검붉은빛 마기가 흑빛으로 변해가더니 레이텐티에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천마의 공격을 피의 대공이 막았다.
  퍼억!
  “커억!”
  그가 펼친 베리어를 가볍게 찢어버린 그 검은빛 마기는 그대로 피의 대공의 가슴을 때렸다.
  쿵!
  아무리 지쳐 있었다지만 마계 8공작 중 하나다. 그런 마계공작을 장난치듯 손을 휘젓는 동작으로 쓰러트렸다?
  잠시 후 피의 대공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끌끌~ 제법이구만.”
  예상 외로 자신의 공격을 맞고도 일어서는 피의 대공을 보며 천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럼… 잠시 놀아볼까?”
  콰앙!
  중얼거림과 동시에 이번에는 파멸의 대공 앞에 나타난 천마!
  “어디 노부를 즐겁게 해 보아라.”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는데, 그 주먹을 막은 파멸의 대공이 그대로 뒤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공격해 오는 절망의 대공과 죽음의 대공이 머리를 향해 점프해서 발을 내지르는 천마.
  퍼억! 퍼억!
  “크억!”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마는 직접 몸을 움직이며 하나하나 차례로 처리해갔다.
  “노부를 꽤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천마는 완전히 마계공작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철저하게 마계공작들을 유린하면서 그들을 향해 히죽 웃는 천마.
  그런 천마를 보며 마계 공작들은 치를 떨었다. 완전히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지 않은가? 분노가 일긴 하지만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이를 부드득 갈 때였다.
  콰직! 콰드드드득!
  “커억!”
  갑자기 순식간에 파멸의 대공을 뒤를 접한 천마가 그대로 마계공작의 배에 바람 구멍을 뚫었다. 파멸의 대공을 배속을 헤집은 천마가 씨익 웃은 다음 손을 뺏다. 마족. 그것도 상급 마족이 이 정도에 죽을 리 없다. 하지만 충격은 받았으리라.
  철푸덕!
  제자리에 주저앉은 파멸의 대공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천마가 발로 파멱의 대공의 턱을 가격했다.
  뻐억!
  그리고 그 충격으로 파멸의 대공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어느 틈에 투르스코아의 곁으로 다가온 천마가 그의 멱살을 잡고는 얼굴 가까이 잡아당겼다.
  “노부의 이름을 이곳 식으로 바꾸어 가르쳐 줄까?”
  무방비 상태의 천마였지만 마계공작들은 감히 그에게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뭐하는 자란 말인가?
  갑작스럽게 드래곤의 몸을 탈취하지 않나. 마황보다도 강해 보이는 그자를 보며 몸이 저절로 떨리는 마계의 공작들이었다.
  “클클클~ 노부의 이름은 이곳 식으로 하면 간단하느니라.”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테사이스.”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엘란카넌, 라칸, 레랴나스… 그리고 마족들도…….
  “커억!”
  “데, 데사이스!”
  “전대 천황을 죽여 버린 괴물!”
  “그 시대에 있던 마왕들과 천왕도 모조리 죽였다는…….”
  데사이스는 신어다. 뜻을 풀이하자면 데는 죽음을, 사는 절망을, 이는 공포를, 스는 절규를 뜻하는 말이다. 죽음과 절망과 공포와 절규를 부르는 존재.
  당시 마족과 천족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불렸었다. 자신들의 전쟁을 막을 신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드래곤들 역시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레랴나스 정도의 나이만 되어도 그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어느 종족인지 알 수 없다. 얼굴도 알 수 없다. 이름도 알 수 없다. 그저 그와 적으로 부딪친 존재는 살아남지 못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굳었다.
  “끌끌끌. 이제 노부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느냐? 신계 4대 신들도 노부에게는 너희들처럼 싸가지 없게 굴지 않느니라.”
  신계 3대 신. 마신, 천신, 무신, 주신
  마신은 마족을 다스리며, 천신은 천족을, 무신은 인간들을, 주신은 신들을 보호하는 존재들이었다. 마신은 말 그대로 마의 신이고, 천신은 신성의 신, 무신은 인간들이 창조한 무술의 신, 주신은 신들을 탄생시킨 존재이다.
  이 네 신들의 힘은 거의 비슷하다. 직분으로 따진다면 마신, 천신, 무신도 주신 밑의 신이나 힘이 너무도 강해 제외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직위로는 주신보다 낮은 마신, 천신, 무신이지만… 힘으로는 주신과 동급이라는 소리였다.
  다들 경악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마가 딱닥하게 굳어 있는 투르스코라를 짐짝 던지듯 던지며 말했다.
  “덤벼라.”
  하지만 마계 공작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죽는다. 그들의 머릿속에 그 생각만이 지매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여 슬쩍 얼굴을 찌푸린 천마가 말했다.
  “근성 없는 것들.”
  그런 천마의 말에 움찔만 하는 마계공작들이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왜, 내 일을 방해하는 겁니까!”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 마계 공작들을 보며 레이텐티에스가 답답한 마음에 자기가 나섰다.
일단 상대의 정체를 알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존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사이스라는 존재는 리샨 대륙에서 마신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인물이다. 마황의 아들인 마황자라고 하나 한낱 마족이 반말을 쓸 상대는 아니었다.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천마가 말했다.
  “말했지 않는가? 이 아이는 나의 후인이라고.”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에이라나 누나가 어떻게 당신의 후인이라는 겁니까! 도대체 어디가!”
  레이텐티에스의 태도에 깜짝 놀란 마계 공작들이 달려와 그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상대는 까딱하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존재다. 자신들이야 상관없지만 장차 마계를 이끌어갈 레이텐티에스가 죽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 말했다.
  “거 생각보다 대갈빡 안돌아가는 놈일세.”
  혀를 차며 중얼거린 천마가 입을 열었다.
  “내가 창시하고, 내가 살아 숨 쉬는 무공을 익힌 이 아이가 왜 나의 후인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게 무슨 뚱…….”
  버럭 소리치려던 레이텐티에스가 멈칫했다.
  “혹시 무, 무공?”
  레이텐티에스의 머릿속에서 천마교란 이름이 떠울랐다.
  ‘천마교’
  마지막으로 에이라나의 최고의 공격 수법 중 하나의 이름이 천마라는 것까지도.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서, 설마.”
  “끌끌끌. 다시 말하지만 내 이름은 천마. 중원 무림 천마교의 시조이자 이 아이가 사용하는 무공의 창시자다.”
  “크윽! 그렇다 하여도 왜 나의 일을 방해하는 겁니까!”
  “말했지 않는가? 난 나의 후인이 남의 것이 되는 꼴 죽어도 못 본다고. 그리고 이 아이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말한 천마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톡톡 쳤다. 물론 몸은 천마의 것이 아니라 에이라나의 것이지만.
  천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에게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분한 모양이군.”
  천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고함을 질럿다.
  “당신이면 안 분하겠습니까! 다 잡았던 고기를 노친 기분! 당신도 잘 알… 커억!”
  뻐억!
  고함을 지르던 레이텐티에스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바로 자신을 머리에스 느껴지는 충격 때문이었다.
  “무, 무슨!”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가격한 천마를 보며 소리치려던 라이텐티이스가 멈칫했다.
  뻐억!
  “커억!”
  다시 한 번 날아오는 천마의 주먹. 연거푸 레이텐티에스의 머리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격하기 시작하는 천마였다.
  “끄억!”
  마지막 가격 이후 레이텐티에스는 정신이 몽롱해 지는 것을 느꼈다. 주먹만으로 마황자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것도 반항할 사이도 없이 말이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레이텐티에스를 보며 천마가 말했다.
  “쯧. 병신 같은 놈. 영락없이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며 가지고 싶은 걸 못 가져서 안달이 난 애구만?”
  천마의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이를 꽉 깨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잇다면 무조건 가지려 들지만 말고 그 사람의 눈 안에 들도록, 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도록 노력하고 보는 게 우선이다.”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지고 싶다고 떼쓴다고 가지게 되는 것도 있고, 못가지는 것도 있다. 만약 내가 이렇게 나오지 않고 그대로 이 아이가 용언으로 네 것이 되었다면 이 아이는 평생 널 원망하고 살았을 거다. 넌 그걸 각오했다곤 하나 과연 버틸 수 있었을가?”
  “…알 수 없죠.”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넌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방법이 틀린 것인가?
  “뭐, 결국 무슨 짓을 대해도 안 된다면 마지막에는 너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취하고 봐야지. 네가 틀렸다는 건 아냐.”
  쿨럭!
  “아니, 잘 나가다 뭔 소리야!”
  …괜치 천마교 시조가 아니다 잘 나가다가 삐딱선을 타는 천마의 말에 마뇌를 제외한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잘 타일러야지 그것이 맞는다고 하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렇게 모두가 어이없다고 소리쳤지만 천마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다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이어갔다.
  “아이야, 알겠느냐? 네가 취한 행동은 해볼 거 다 해보고 하는 거란다.”
  …그나마 가지고 싶다고 무조건 달려들라고 말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사실상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한 천마.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에 에이라나의 왼쪽 손등에 있는 검붉은 문신을 향해 천마가 말했다.
  “천, 그동안 잘 지냈느냐?”
  -까약!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난 천마 네가 있는지도 몰랐단 말야!
천이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번태! 색마! 어떻게 숙녀의 몸속에 들어와 있을 수 있어!
천이 천마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천마도에 심어져 있던 천마의 영혼의 조각. 그것은 천마도의 정령인 천도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천마가 잠시 동안 묵묵히 떠들어대는 천의 말을 듣고… 아니, 듣는가 싶었다.
  쾅! 쾅! 쾅! 쾅! 쾅!
천마도를 꺼낸 다름 무차별적으로 천마도를 바닥에 내려치기 시작한 천마였다.
  -꺅! 뭐, 뭐얏! 난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인사를… 그, 그만해!
이놈의 정령이 입 열었다 하면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지 천마는 잘 안다. 지금도 면태, 색마부터 시작해… 오랜만, 반갑다 등 한순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말을 떠들어대는 천이다.
  오랜만에 자신을 봐서 반가워서 저러는 건 알겠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끝이 없다. 순식간에 천마도를 수십 번 바닥에 내려친 천마가 잠시 후 천이 조용해졌다.
  “시끄러운 건 벌로라서.”
  싱긋 웃으며 말하는 천마.
  -흥, 하나도 안 무섭다 뭐! 난 신나게 땅바닥에 매려쳐 봤지 흠집 하나 안 생긴다고!
천의 말에 천마가 생각났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그랬었지?”
  -그래!
  “그럼…….”
  싱긋 웃어준 천마가 천마도를 그대로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어어?
  갑작스러운 천마의 행동에 천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생각났다. 예전 일이! 9,000년 전, 자신도 천마를 따라갈 거라고 생 난리를 부렸었다. 때를 부리는 천을 장로들도 막기 어려웠다.
  그때 선택한 천마의 생동은 바로 힘으로 천마도를 내려 누르는 것이었다. 천마의 힘에 둘려 정신을 잃은 천은 그대로 봉인당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떠나고 없었다.
  그때 얼마나 울었던가? 자신에게 있어 아주 소중한 존재였던 천마가 사라지고 얼마나 슬퍼했는가? 뭐, 지금은 그런거 훌훌 털어버린 상태였지만.
  “천마.”
  그때와 똑 같은 상황!
  -꺄울!
어마어마하게 모여드는 천마의 기운을 느끼며 천이 비명을 질렀다. 자신을 봉인시켰던 힘보다는 약하지만… 저것도 상당히 아플 것이 뻔했다.
  고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
  천마. 그것은 천마라는 존재를 뜻하는 명칭이기도 하고, 그 천마의 최고 초식을 뜻하는 병칭이기도 했다. 천마가 천마라 불리게 된 이유는 여기 있었다. 천마, 하늘이 내린 악마.
  그런 천마가 천마를 사용할 때는 정말 오싹할만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무시무시하게 휘몰아치는 마기! 장난으로 사용했다고 믿을 수 없는 기운! 그리고 생성되는 마귀의 형상.
  캬오오오오오!
  마귀가 표호한다! 표호했던 마귀가 그대로 천마도를 행햐 날아갔다.
  -꺄악~ 너무해!
  기운으로 자신을 보호한 천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천마와 데빌존이 충돌하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챙그랑!
  “헉!”
  콰아아아아아!
  천마는 그대로 데빌존을 뚫고 지나갔으며, 그 여파로 레이텐티에스가 들고 잇던 데빌존의 아티팩트가 발살나 버렸다. 데빌존을 박살낸 악귀의 현상은 위로 계속 올라가더니 결국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천마 최고의 비기 천마.
  이 초식이 천마라 불리게 된 이유는 사용할 때마다 나타나는 악귀 형상 때문이었다. 완성된 천마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천마교의 교주들이 사용했던 천마는 모두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두가 멍해졌다.
  휘리리릭! 푹!
  -끼약! 천마!
  땅바닥에 박힌 천마도 속에서 천이 소리 질렀다. 천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천마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천마를 사용했더니 힘이 크게 줄었군. 시간이 된 듯하이.”
  자신의 절규를 그대로 씹어버린 천마였지만 천은 다른 뜻으로 그 말에 굳었다. 저 말뜻은 즉 천마의 영혼의 조각이 힘을 다했다는 증거였다. 이는 그럼 천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쉽다.
자신을 바라보는 천을 보던 천마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이텐티에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이야, 기억하렴. 네가 취한 행동은 맨 마지막에 취할 행동이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라. 어차피 드래곤이나 마족들에게는 썩어 넘치는 것이 시간이 아니더냐?”
  그 말에 레이텐티에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반항해 봤자 뭐가 남겠는가? 그리고 천마와의 만남에서 느낀 것도 많았다. 모습은 에이라나이지만, 느낌은 꼭 할아버지에게 혼나는 느낌잉었다.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왔다.
  “끌끌끌. 가야 할 듯 하이.”
  그렇게 말한 천마가 마지막으로 카프라스를 보며 말했다.
  “악가의 아이야.”
  “예.”
  “난 영혼의 조각일 뿐이라 중원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저희들의 상황을 보아하니 저기 있는 청월 놈의 후인을 제외한 너와 이 아이는 죽어 환생한 듯 하구나.”
  “…그렇습니다.”
  “죽은 이유가 억울하여 그 분을 풀기 위해 중원으로 가는 것이고?”
  “예.”
  그 말에 피식 웃은 천마가 말했다.
  “그럼 천마도가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천마신교 초대 장로들과 똑 같은 말을 하는 천마였다.
  “그래, 청월의 후인인 아이야. 너는 궁금한 게 없느냐?”
  그 말에 휘안이 물었다.
  “청월이란 분이 누구죠?”
  “네 무공을 창시간 창시자지.”
  “네?”
  “끌, 내 청월 놈이 그 무공을 후대에 남기지 않은 걸로 안다만, 그것을 익힌 아이가 있었을 줄을 몰랐어.”
  유쾌하게 웃는 천마.
  “청월이란 분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휘안의 물음에 천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중원으로 돌아가면 알게 될 것이다.”
  “하, 하지만…….”
  “중원으로 돌아가 호수 위에 파란 달과 은빛 달이 겹치는 곳을 찾아가라. 그곳에 청월이 있을 것이야.”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마기는 공중에서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다.
  “끌끌끌. 헤어져야 할 시간이군.”
  천마가 주위를 둘러보며 짧게 인사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중 몇몇은 나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천마를 향해 카프라스가 절을 하며 말했다.
  “위대하신 천마교의 시조이신 천마대제를 뵐 수 있어서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그 말에 천마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중원의 후인들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네.”
  그 말을 시작으로 천마의 기운이 점점 사라져 갔다.
  “노부가 바로 천마이니라.”
  그렇게 사라져 가는 기운과 함께 천마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리며 완전히 사라졌다.
    무릎 꿇어 용서를
  탁탁탁!
  “거기, 판자 좀 줘!”
  “벽돌이 모자라잖아!”
  “거기 그거 이쪽으로!”
  아툰 제국의 수도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보수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약 한 달 전, 갑작스러운 드래곤들의 출현으로 한바탕 뒤집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쿤 제국이 발칵 뒤집어졌을 때 대마법사 엘로난이 마계공직급의 마기를 느꼈다는 증언에 모두가 한 번 더 경악했어야 했다.
  그렇게 마계공작들의 등장에 발칵 뒤집혔던 아툰 제국은 드래곤들이 마계로 돌려보냈다는 말에 안심했다. 그리고 아툰 제국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드래곤과 마계 8대 공작들의 싸움은 화려하게 마무리를 맺었다.
  드래곤과 마계 6공작들의 싸움으로 혼란스러웠던 분위기는 차츰 안정이 되기 시작하며 아툰 제국들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이 초토화 된 데느라 공작가는 비어 있는 처택으로 이사를 한 상태였다.
  솨아아아아.
  복도의 한 방에 방문이 열리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며 커튼이 휘날리고 있는 방. 그 방 안에 있는 침대에서는 한 여자가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은발에 은안을 가지 아름다운 여자. 남자가 봤더면 누구나 홀릴 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는 바로 에이라나였다.
  그 사전 이후 죽은 듯 잠만 자고 있는 에이라나.
  “아악! 좀 들어갑시다!”
  “에이라나가 아프다면서도!”
  “으악! 장인어른!”
  에이라나가 죽은 듯 잠들어 잇는 그 시각 저택의 상곡
  사람의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높이에서 은발의 노인과 흑발을 가진 남자. 그리고 흑발을 가진 청년이 무뚝뚝한 얼굴로 바글바글 모여 있는 남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 장인어른, 아버지. 저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잘 처리했다고 소문날까요?
흑발의 청년이 한숨을 쉬며 은발의 노인과 흑발의 남자에게 물었다. 그 말에 흑발의 남자가 말했다.
  “그냥 브레스 먹여줘라.”
  이번에는 노인이 말했다.
  “묻어버리게.”
  두 사람의 말에 흑발의 청년이 말했다.
  “브레스를 먹인 다음 묻어버리죠.”
  그렇게 말한 흑발 청년, 카랴만이 사나운 눈으로 자신들의 앞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드래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악~ 우리는 에이라나가 걱정되어서.”
  “커억! 이러지 마. 카랴만!”
  “내가 나이가 많아도 너보다… 케엑!”
  카랴만이 달려들자 모두가 식겁하며 피하기 시작했다.
  “닥쳐! 다 죽어!”
  그런 드래곤들을 추격해 격파하는 카라먄. 그리고 그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보는 엘란카넌과 라칸이었다.
  “아… 완전 초토화 되었구나.”
  휘안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휘안의 말에 카프라스가 말했다.
  “후우, 그렇죠. 그런 존재들이 싸워댔으니 말입니다.”
  카프라스의 말에 휘안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반송 좀 해라.”
  “쳇.”
  휘안의 말에 그의 뒤에서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레이텐티에스, 키라이스트였다. 다시 키라이스트 데르나 소공자로 돌아간 레이텐티에스.
  천마에게 실컷 맞은 다음 마공작들을 돌려보내고 키라이스트로 남은 상태였다. 물론 그런 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에이라나의 가족들이지만, 그나마 휘안과의 관계는 이전처럼 돌아온 키라이스트였다.
  “그리고 너 내 검 돌려줘.”
  휘안이 키라이스트에게 자신의 검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지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싫어!”
  “이놈이 진짜!”
  “흥이다! 메롱!”
  “캬악! 나이 400살이나 처먹은 놈이 유치하게 그럴 거나!”
  “마족으로 치면 어린애지!”
  “이놈이 진짜!”
  “자자, 진정들 하시죠.”
  조금 성격이 난폭해진 키라이스트 때문에 휘안과 싸울 때가 많았다. 물론 두 사람은 연적(?)이니깐.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을 카프라스가 말렸다.
  “유치하게들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키라이스트 님, 남의 물건을 가지고 치졸하게 뭐하는 겁니까?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누나의 본으로 만들었잖아! 나도 누나 생각나게 하는 물건 하나 정도는 가지고 싶다고!”
  “캬악! 닥치고 내놔!”
  다시 싸우시 시작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카프라스는 결국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그들을 외면한 채 걷기 시작했다.
  딱칵!
  방문이 열린다. 그와 함께 은발에 은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여인의 이름은 에랴나니스, 지금 이 방의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에이라나의 엄마였다.
  에랴나니스는 방문을 닫은 다음 에이라나가 누워있는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의자에 앉은 에랴나니스는 침대 옆에 있는 선반 위의 물수건으로 에이라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마 바람에 헝클어진 에이라나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 일 이후 한 달 동안 자신의 딸은 깨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엘란카넌의 말에 의하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천마라는 자의 영홍이 사용해 몸에 무리가 가 오랜 잠에 빠졌다고 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지켜주지 못할 뻔했던 자신의 딸.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지킨 것이 아니라 에이라나가 익힌 검술을 만든 사람이 지켜주지 않았던가? 그때 지신의 무능함을 얼마나 한탄했던가?
  “쳇! 빌어먹을 딸 같으니라고. 이 엄마를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에랴나니스가 한 번 가볍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에이라나를 돌봐주는 그녀의 손길은 다정하기 그지없다.
  한 일행이 데르나 공작가가 이사한 곳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키라이스트의 친구들이었다. 루이스, 루리아, 아레인, 에르인, 아르카스. 이 다섯은 얼마 전에야 에이라나가 한 달 동안 잠들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그 원인은 대충  마족들과 맞서다가 다친 상태라고 알려진 상태였다.
  걱정이 되어 바로 와보려고 했지만 드래곤의 등장으로 주위가 너무도 복잡한 상태라 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야 오게 된 드글이었다.
  그들이 데르나 공작가 저택으로 발을 들이려는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희들 왔냐?”
  일제히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휘안, 키라이스트, 카프라스가 서 있었다. 결국 키라이스트에게 은월을 돌려받지 못한 휘안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키라이스트의 말에 아레인이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야! 키라이스트 너!”
  그리고 바로 키라이스트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너! 이 자식! 누나가 아프다는데 우리한테는 한마디 말도 없냐! 캬악! 네놈이 그러고도 친구냐!”
  키라이스트가 아레인의 손에서 벗어났다.
  “캭! 왜 멱살을 잡고 난리야!”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는 키라이스트와 아레인.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잇는 두 사람이었다.
  “키라이스트, 누나가 아픈 거 왜 말 안 해줬어?”
  지금 키라이스트 편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 루이스 또한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타하듯 말했다. 그런 루이스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툴툴거렸다. 지켜보던 휘안이 나섰다.
  “일단, 에이라나도 안정을 취해야 하고, 너희들도 바쁜 것 같아서 말 안 했다.”
  그 말에 아레인이 말했다. 방금 전보다 화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누나가 아프다는데, 한번쯤 와야 했었는데…….”
  그 말에 휘안이 빙긋 웃었다.
  “자, 이러고 있지 말고 들어가자.”
  휘안의 말에 모두가 저택으로 들어갔자.
  데르나 공작가의 저택 위.
  “에이라나는 어떠니?”
  “똑같아요. 아직 못 일어나고 있어요.”
  레랴나스가 에랴나니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에랴나니스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한 달 동안 죽은 듯 잠만 자는 에이라나. 그런 에이라나의 방은 아무도 다가가깆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들락거리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알려진 바로 휘안, 카프라스, 키라이스트가 다였다.
  에랴나니스나 다른 가족들도 들락거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에이라나의 가족들이 이 저택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에랴나니스의 말에 옆에 있던 카랴만이 말했다.
  “후… 저대로 놔둬도 괜찮을까요? 레어로 옮기는 것이…….”
  “제 말이요!”
  에랴나니스와 카랴만은 지금 에이라나를 레어로 옮기자고 적극 강요하고 있었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성룡의 유희에 간섭하는 것도 뭣하지. 에이라나가 정말 위험하다면 모를까, 위험하지 않지 않느냐?”
  그 말에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그놈이 옆에 붙어 있는데 뭐가 안 위험해요!”
  에랴나니스의 말에 엘란카넌을 제외한 두 고룡도 좀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엘란카넌은 그저 빙긋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거라면 괜찮을 거다. 심성이 나빠 보이는 아이는 아니었으니.”
  그 말에 에랴나니스가 반발했다.
  “또 어떻게 알아요! 마계로 데려가느니! 아니면 소유하겠다느니! 이런 소리를 지껄이면!”
  그 말에 한숨을 푹 쉰 엘란카넌이 말했다.
  “그걸로 따지자면 저기 있는 파리 떼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느냐?”
  엘란카넌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족으로 모였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에랴나니스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솟아올랐다.
  “꺼져, 이 새끼들아!”
  어느새 다시 몰려운 드래곤들을 행야 마법을 갈려대는 에랴나니스였다.
  “후우”
  침대 휘에서 죽은 듯 누워 고른 숨만 내뱉던 에이라나가 갑자기 큰 숨을 내뱉었다.
  움찍!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서서히 떠지는 눈. 맑은 은안이  세상에 나왔다.
  -앗! 주인 일어났다!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에이라나의 배 위에서 약간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뭔가가 올라온 듯했다. 바로 귀여운 새끼 고양이었다. 에이라나가 살며시 고양이를 보여 중얼거렸다.
  “은아?”
  야옹~ 야옹~.
  그 말에 만응하듯 은아가 울었다. 그리고 에이라나에게 다가와 볼을 핥았다. 애정 표시였다. 은아의 행동을 지켜보던 에이라나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힘을 줄 수가 없어 다시 겨우겨우 침애 위에 걸터 않은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는 피식 웃으며 팔에 매달려 있는 은아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백은빛 털의 새끼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에이라나의 모습은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꺄~ 나도~ 나도 귀여워 해줘~!
  그와 함께 한 새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와 에이라나의 어깨 위에 앉았다. 이번에는 천이었다.
  “네 동물형 모슴은 새였냐?”
  붉은빛 깃털을 가지 새. 전설 속의 불사조가 있다면 천의 모습과 비슷할 터. 에이라나의 물음에 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동물형 형상은 새야.
  쪼루루루루루~.
  그와 함께 신비한 소리로 울어대는 천이었다. 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에이라나가 이번에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흑아가 유일하게 인간 형상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넌 왜 인간 형상을 하고 있냐?”
  그 말에 흑아가 대답했다.
  “내가 만약 은아나 천처럼 동물형으로 변한다면 이 방은 부서질 것이다.”
  그 말에 인정한다는 듯 에이라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흑빛 비룡인 흑아는 크다. 아마 방이 무너질 것이다. 어색하게 웃어 보인 에이라나는 자신의 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하트는 물론 단전 역시 텅 비어 있는 상태.
  “후우… 설마 천마대제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리고 그 힘… 오싹하군.”
  거기 있던 자들 중 누구보다도 천마의 힘을 절실히 느낀 건 에이라나였다. 단지 영혼의 조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힘은 뭐란 말인가? 생각만으로도 오싹할 정도였다.
  “으음… 도대체 진짜는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괴물.”
  에이라나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떤 다음 중얼거렸다.
  -그건 천마의 힘을 괘 담고 있는 영혼의 조각일 걸? 아마 마황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을 거야.
  에이라나의 어깨에 앉아 잇던 천이 말했다.
  “그러냐?”
  그 말을 들은 에이라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천마의 영혼이 소멸하고 난 뒤의 기억은 없지만 천마가 자신의 몸을 접수하고 난 뒤 있었던 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천마가 천마도에서 올라오는 것부터 엄청난 양의 기운이 던잔과 드래곤 하트를 채우는 기분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의 통재권이 천마에게 넘어가버리고, 자신 멋대로 몸과 입이 움직이고 자신이 직접 무시무시한 힘을 사용하는 그 느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 느낌이 다시 생각나자 슬쩍 얼굴을 찌푸린 에이라나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어?”
  에이라나는 궁금하다는 듯 묻는 말에 에이라나 품에 안겨 있던 은아가 입을 열었다.
  -한 달.
  “오래 잤군.”
  은아의 말에 다시 얼굴을 찡그린 에이라나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나를 단전에 채우시 시작했다.
  잠시 후 고갈된 드래곤 하트와 단전에 서서히 차오르는 마나를 느끼며 에이라나가 살펴시 눈을 떳다. 하지만 마나가 차오르는 속도가 느리다. 그만큼 몸이 무리를 했다는 증거다. 하긴 한 달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다고 하니.
  “아… 배고프다.”
  실로 오랜만이 느껴보는 배고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도 있지만 마나가 텅텅 비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다. 잠자코 있던 흑아가 무언가를 에이라나에게 내밀었다.
  “여기.”
  흑아가 내민 것은 바로 빵 바구니였다.
  “어, 빵이네.”
  흑이가 다시 에이라나가 앉아 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주망에 있는 걸 들고 왔다.”
  흑아가 이번에는 허공에 대고 손을 한 번 휘저어 만들어진 구멍에서 따스한 스프도 꺼냈다. 그것을 보고 에이라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공간 같은 거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거다. 내 고유 능력이지.”
  그 말에 에이라나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 듣지도 못했는데?”
  “안 물어 봤잖아?”
  흑아의 말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하긴 안 물어 봤으니 흑아도 말 안 한 거겠지.
  흑아가 스프를 에이라나에게 넘겼다. 에이라나는 스프 그릇을 받아 들고 그걸 그대로 마셔버렸다. 그리고 빵을 찢어서 입에 넣기 시작했다.
  “고맙다.”
  그 말에 흑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인의 상태를 아는 것은 기본이다. 대책 없이 하염없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녀석들과는 난 다르다.”
  그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잉, 그거오 그러에(하긴, 그것도 그렇네).”
  에이라나의 공감에 은아가 빽 소리쳐싿.
  -윽!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맞아! 우리가 얼마나 주인 걱정을 했는지 알아?
  천도 만만치 않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두 정력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 에이라나가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알았으니 열 내지 마.”
  에이라나가 들고 있던 빵 바구니를 흑아에게 넘기며 말했다.
  “너도 먹어.”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던 흑아도 빵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에이라나 역시 빵을 먹으면서 은아와 천에게도 빵을 나누어 주었다. 먹을 게 필요 없는 몸이라지만, 미각을 느끼지 못하는 몸들도 아니었다. 그렇게 대충 배를 채워 갈 때쯤이었다.
  “왔네.”
  에이라나가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흑아의 시선도 방문 쪽으로 향했다. 은아와 천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식의 반응들이었다.
  딸칵!
  방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
“에이라나, 아직도 자냐?”
  흑아는 검의 정령이라고 하나 정령이나, 그렇기에 신경 써서 느끼려 하지 않으면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휘안의 오감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천과 은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들어온 휘안은 에이라나와 흑아 그리고 은아와 천이 빵을 먹고 있지 조금 당황했다. 그건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이 흑아를 보고 더욱 놀란 듯했다. 하긴 웬 남자가… 그것도 잘 생긴 남자가 여자가 머무는 방에 들어와 있는데 놀라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흑아의 정체를 아는 이라 해봤자 휘안, 카프라스, 키라이스트 이 셋이 다였으니 말이다.
  “어어어.”
  에이라나와 흑이들을 보며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에이라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다들 단체로 몰려와서 뭐하냐?
  그렇게 쭉 일행을 둘러보던 에이라나의 눈에 키라이스트가 들어왔다. 헤이라나의 눈이 차가워졌다.
  “흥!”
  코웃음을 친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휘안을 보며 말했다.
  “저놈 안 갔나?”
  그 말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휘안의 대답에 다시 키라이스트를 바라본 에이라나가 예상외로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꺼저라, 새끼야.”
  웃고 있지만… 눈은 차갑다. 에이라나의 차가운 말에도 불구하고 키라이스트가 묵묵히 에이라나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미모햔 상황에 그 일을 모르는 이들은 모두 당황했다.
  “오지 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키라이스트를 저지하며 메이라나가 경고했다. 그 말에 키라이스트라 멈칫했다.
  “너랑 난 이제 남이다. 친한 동상, 누나 사이도 아니다. 인연 끊은 거다.”
  에이라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한 에이라나가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려고 했다.
  “흑아, 부축 좀 해줘.”
  그 말에 흑아가 묵묵히 에이라나를 부축했다.
  “이 짐에서 나가지. 너랑 이제 인연이 없으니.”
  그 말에 에이라나와 키라이스트의 냉랭해진 분위기를 이해 못하고 있던 루이스가 붙잡았다.
  “누, 누가!”
  그 말에 에이라나가 멈칫했다. 그리고 슬쩍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키라이스트와는 안   어울렸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일단 인연 끊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만날 이유도 없다. 자신을 바라보는 키라이스트를 무시한 에이라나가 루이스와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 인연이 된다면 또 보지.”
  “누나!”
  “으윽! 정말 가는 거야?”
  “가지 마세요!”
  루이스, 아레인 아르카스가 기겁하며 말렸다.
  “어, 언니…….”
  “갑작스럽게 가는 것도…….”
  루리아와 에르인도 마찬가지였다.
  “휘안, 카…….”
  “이제는 악안영이라고 부르시지요. 카프라스라는 이름은 버릴 것입니다.
  에이라나가 카프라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려고 하자 카프라스가 정정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에이라나가 말했다.
  “휘안, 안영. 가자.”
  에이라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안영은 흔들림 없이 에이라나를 따랐다. 반면 휘안은 조금 흔들린 듯 하더니 잠시 후 한쉼을 쉰 다음 뒤돌아보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보지.”
  일단 월아를 키라이스트가 들고 있기는 했지만 나중에 받으러 오면 되니 별 상관은 없었다.
  “저, 정말 가는 거야?”
  아레인이 소리쳤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거리고 생각했냐?”
  냉정하게 말한 에이라나는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에이라나 옆에 다가간 카프라스가 워프 마법을 막 사용하려고 할 때였다.
  “누나!”
  그때 침묵을 지키던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를 불렀다. 그 부름이 카프라스가 멈칫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제, 제발… 가지 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키라이트스가 소리쳤다. 저게 키라이스트에게 어울린다.  하지만, 에이라나의 눈에는 연기처럼 보인다. 왜 그런 것일까?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에이라나가 차갑게 냉소했다. 그 말과 함께 안영이 워프 시전을 했다.
  번쩍!
  그외 동시에 사라지는 에이라나, 흑아, 휘안, 안영.
  그렇게… 대륙전쟁의 영웅이자 최고의 검사로 역시에 길이 남을 은빛 가면의 여검사와 흑안의 검사, 그리고 최고의 지략가 카프라스가 리샨 대륙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번쩍!
  에이라나 일행이 도착한 곳은 바로 에이라나의 가족들이 있는 데르나 공작 저택의 상공이었다. 에이라나가 흑아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의 가족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에이라나! 정신 차렸구나!”
  에랴나니스가 흑아에게 다가가 에이라나를 받아 안으며 말했다. 슬며시 에이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에랴나니스의 마음을 느끼며 에이라나는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에고… 내 새끼,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니?”
  레랴나스 역시 에랴나니스 옆에 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에이라나에게 말했다. 그런 레랴나스에게도 한 번 어색하게 웃어 준 에이라나였다.
  자신이 전생에 인간이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대해주는 가족들이 정말 고마웠다.
  “자, 일단… 에이라나의 레어로 워프하지.”
  그 말과 동시에 엘란카넌이 손가락을 튕겼다.
  번쩍!
  그와 동시에 그들이 사라졌다.
  “도련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한 시녀가 키라이스틀 불렀다.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지 못했다.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너무 미안했다. 자신이 저주스럽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눈물이 났다.
  “허억! 허억! 허억!”
  아레인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 댔다. 그녀가 없으니 알겠다. 자신은 그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 곁에 없다.
  “젠장!”
  다시 섬검을 휘두른다.
  그날 이유로 모른 채 키라이스트에게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은 루이스 그날 이후 루이스는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잇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에이라나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루이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루리아였다.
  “에이라나 누나의 행방은?”
  아르카스가 묻는다.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아르카스의 눈이 흔들렸다.
  “누나… 어디 갔어요?”
  그 역시 하염없이 에이라나를 찾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직 네 사람은 에이라나의 공백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 때문에 주위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상태가 호전되기는 했지만 키라이스트는 처음 그대로였다. 겨우 에이라나라는 존재 하나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 손실이 너무 컸다.
  키라이스트, 아레인, 루이스의 사이는 극도로 나바신 상태였다. 특히 아레인과 루이스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었지만, 키라이스트는 두 사람과 거의 만나지도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키라이스트에게는 루리아와 에르인만이 유일하게 아레인과 루이즈를 이어줄 사람이었다.
  이제 아툰 제국 황립 아카데미에서 최고 학년으로 졸업을 앞두게 된 그들.
  오늘은 졸업식이다. 아레인과 루이스, 루리아, 에르인은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반면 키라이스트는 거의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 때문에 데르나 공작 부인과 아르카 공작은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레인은 미남으로, 루이스는 아름다운 남자로, 루리아와 에르인은 숙녀로, 3년이라는 시간이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졸업식이 진행되어 가면서 최고 학년들 중 대표가 연설을 앞두고 있었다. 그 대표자가 키라이스였다.
  “학생대표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키라이스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단상 뒤로 올라 갔다. 다섯 중 제일 작지만 제일 강한 키라이스트다.
  “학생 대표 키라이스트 데르나입니다.”
  소리 확장 마법이 달린 마법 기구에 입을 대고 말한 키라이스트가 졸업할 때하는 레퍼토리를 읽기 시작했다.
  “…잘 놀다 갑니다.”
  한창 연설을 하던 키라이스트는 무표정하게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연설을 끝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조금 튀어나왔다. 한참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잘 놀다 갑니다 라니, 웃길 만도 했다.
  키라이스트가 단상 위에서 내려가다가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갑작스러운 키리아스트의 행동에 졸업생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당황하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라이스트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키라이스트가 달려가자 모두가 의아해 했다.
  키라이스트가 달려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들 모두 굳었다. 세 명의 인물이 태연하게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병은 은발에 은안을 가진 조금 무표정한 얼굴을 아름다운 십대 후반의 여인이었고, 한 명은 역시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흑발에 흑안을 가진 아름다운 미남자, 나머지 한 명은 깉은 남색 머리카락에 흑빛 눈동자를 가진 이십대 후반처럼 보이는 미남자였다.
  그들의 외모도 외모였지만 다른 이유에서 굳은 이들이 많았다. 바로 은발의 여자 때문이었다. 허리에는 두 자루의 검을 차고, 등 뒤에는 커다란 대도를 매고 있는 여인, 그리고 은발에 은안. 대륙에서 너무도 유명한 사람.
  아직가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존재. 그녀는 은빛 가면의 여검사와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역시 루이스를 비롯한 나머지도 놀랐다.
갑작스럽게 그들이 왜 나타난단 말인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키라이스트는 뛰고 또 뛰었다.
  충분히 찾아갈 수 있었다. 에이라나의 레어에. 하지만 찾아가지 않았다. 염치없이 찾아가기에는 자신은 에이라나에게 너무 큰 죄를 저질렀다.
  자신은 강제로 에이라나를 가지려고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에이라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자신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상처받았던 에이라나를 보고 절망한 자신을 고보, 그제야 알아차렸던 키라이스트였다.
  언젠가 찾아갈 생각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에이라나가 조금이나마 용서할 때까지.
적어도 1,000년을 잡았던 일. 하지만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에이라나였다. 물론 그 2년도 자신에겐 죽을 만큼 괴로운 나날이었다. 에이라나가 없으니 다시 한 번 그녀의 공백을 느끼게 되었던 키라이스트였다. 그런데… 찾아왔다, 이곳으로.
  “누, 누나!”
  키라이스트가 에이라나를 크게 불렀다. 하지만… 그를 반긴 것은 에이라나의 말이 아니었다.
  “이 자식아! 월아 내놔!”
  바로 휘안이었다. 갑작스러운 휘안의 진로 방해에 키라이스크가 달려가다가 말고 멈칫했다. 어느새 뒤따라오던 루이스, 아레인, 루리아, 에르인도 키라이스트의 뒤에 서 있었다.
  “누나!”
  루이스가 에이라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변함없는 에이라나.
키라이스트를 제외한 자신들은 3년이란 세월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에이라나는 그대로였다. 바꾸니 것 하나 없이 당당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보며 왠지 자신과 에이라나만 딴 세상에서 살다 온 것처럼 느껴졌다.
  “야, 월아 돌려줘.”
침묵을 깨고 휘안이 키라이스트에게 말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키라이스트에게 향했다.
  휘안의 검 월아, 차가운 빙기를 품고 있으며, 만지를 것조차 어려운 월아를 키라이스트가 들고 있다?
  휘안의 말에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월아는… 내 방에 있어.”
  그 말에 휘안이 한숨을 쉬며 키라이스트에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제 방으로 가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휘안이 키라이스트를 낚아채듯 잡아버렸다.
  타앗!
  경공술을 이용해 3년 전에 이사했었던 데르나 공작가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에이라나와 카프라스 역시 다시 경공술을 사용하려고 할 대 아레인이 에이라나의 앞길을 막았다.
  “누나! 좀 멈춰봐!”
  막 경공술을 사용하려던 에이라나가 아레인의 외침에 멈춰 섰다.
  “도대체 어디 갔었어! 3년 동안! 연락도 없었어!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조금 흥분한 듯 소리치는 아레인의 말에 에이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너희한테 걱정 살 만큼 약한 놈이었나?”
  에이라나가 남에게 걱정을 살 만큼 약한 이였던가? 지금이라도 당장 아툰 제국과 싸움을 벌여도 될 만큼 에이라나는 강했다. 하지만… 소식이 끊겼다.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 그래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알겠지만 일단 저희는 휘안 님을 쫓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안영이 그대로 경공술을 사용하였다.
  “나중에 보지.”
  에이라나 역시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경공술을 사용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입을 꽉 깨문 아레인이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데르나    공작가를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건 루이스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졸업식장 난데없이 태풍이 휘몰아쳤다.
  “자, 월아 들고 와.”
  데르나 공작가의 저택에 다 온 휘안이 키라이스트를 내려주며 말했다. 그의 말에도 곧장 달려가지 않고 뜸을 들였다.
  “누나는…….”
  “그 녀석? 너랑 말도 안 할걸? 월아 때문에 내가 끌고 온 것뿐이야, 네가 안 주겠다고 버티면 도움 받으려고.”
  역시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쓴웃음을 짓고 키라이스트가 월아를 가지고 오기 위해 저택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무조건 빌어봐. 엘란카넌 님에게 몇 마디 들었으니 혹시 아냐? 용서해줄지?”
  그 말에 키라이스트가 멈칫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벅.
  처름 봤을 때처럼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나가 휘안 옆에 있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쓰잘머리 없는 소리를…….”
  에이라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에이라나에게 다가간 키라이스트가 말했다.
  “누나.”
  “난 너란 동생 둔 적 없다.”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바로 대답했다. 차가웟다.
  “미안해”
  “뭐가?”
  “정말… 정말 미안해.”
  “닥치고 월아나 내…….”
  월아를 달라고 하려고 했던 에이라니는 다음에 취하는 키라이스트의 행동에 멈칫했다.
  “야, 일어나.”
  에이라니가 차갑게 말했다. 마계의 황자다. 그런 그가 무릎을 꿇는 건 보기 좋지 않다. 마족들이 무릎 꿇을 때는 바로 자신의 주인을 만났거나 패배했을 때뿐이다.
  그 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릎을 꿇은 일은 거의 없다.
  그런 키라이스트가… 지금 무릎을 꿇고 있다. 고위 마족… 그것도 마족들의 정점에 선 키라이스트가 무릎을?
  “미안… 정말 미안해… 용서 안 해줘도 되니까.”
울먹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무릎 끓고 용서를 빌게… 제발… 떠나지마, 떠나지만 말아줘…….”
  키라이스트의 말에 에이라나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조금 전보다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가지고픈 마음에 그랬던 건 잘 안다. 그게 너무 과했다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착한 아이다. 이런 말 하는 것도 뭣하지만 처음 몇 달 간은 원망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어지는 건 또 뭐고, 키라이스트를 이해하는 건 또 뭔지.
  ‘자네의 마음은 깨끗해, 그렇게 악한 이가 아니야.”
언젠가 천마교의 초개 장로였던 한 사람인 마천검 살강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심성이 착하다고 했었던가?
  피식!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입은 자신에게 배신을 때려버렸다.
  “뭐, 정 그렇다면 나 따라다니면서 내 마음 풀어보든가?”
  에이라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키라이스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에이라나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무안한지 뺨을 긁적였다.
  벌떡! 덥석!
  “야, 이새끼야! 떨어져! 누가 너 용서한 줄 아냐!”
  “고마워.”
  키아이스트가 에이라나의 품에 안겨서 중얼거렸다. 막 난리를 치던 에이라나도 그이 진심을 느끼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피식 웃으며 카리이스의 마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를 용서한 것이다.
  “이런, 이런… 숨어서 뭐 하시는 겁니까? 두 분?”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리는 말에 흠칫하는 루이스와 아레인.
  “그렇게 숨어 있어도 들킨 텐데… 왜 숨어 있으신지들?”
  바로 안영이 등 뒤에 있었던 것이다.
  “카프라스… 언제 등 뒤에…….”
  아마 적이었다면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카프라스가 아닌 안영이라 불러주셨으면 감사하겠군요.”
안영이 싱긋 웃었다.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루이스와 아레인이 잠시 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린 누나랑 친한 누나, 동생 사이밖에 안되려나?”
  아레인이 씁쓸하게 중얼거렷다. 에이라나가 키라이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자신들과 에이라나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아레인의 말에 안영이 피식 웃었다.
  “제가 예상하기에는 저희들은 아마도 소교주님이 사랑이란 걸 하시는 걸 보지 못할 듯합니다.”
  ‘저희가 죽어서 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그건 좀 많이 씁쓸하군요.’
  에이라나도 아마도 언제가 사랑을 하겠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살아 있을 때는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죽고 난 뒤… 1,000년 후가 될지, 2,000년 후가 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거 안 봐서 속은 안 쓰려서 좋겠군요.”
  안영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 말뜻을 아레인과 루이스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루이스, 아레인.”
  에이라나가 루이스와 아레인을 불렀다. 에이라나의 부름에 두 사람이 에이라나에게로 재빨리 다가갔다.
  “일단… 오랜만에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난 다시 떠난다.”
  그 말에 두 사람이 굳어버렸다.
  “벌…써?”
  “그래”
  무심한 에이라나의 대답.
  “아레인과 키라이스트에게는 처음 말하는군.”
  그렇게 한 번 말을 멈춘 에이라나가 다시 말했다.
  “저번에 루이스에게도 말햇지만… 날 좋아는 해도 사랑하지난 말아라. 그것은 너희에게 상처만 될 뿐이야. 난 이성을 사랑하는 것을 모른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한테 너무 매달리지 마.”
  그 말에 아레인과 뒤에 있던 키라이스트도 굳었다.
  “월아 찾으러 가지.”
  일방적으로 통보하다시피 말한 에이라나와 휘안이 점프해서 3층인 키라이스트 방이 있는 베란다 난간으로 들었갔다.
  “넌, 이 소리 몇 번째 듣냐?”
  “두 번”
  아레인의 물음에 루이즈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잊으려 했던 말이 다시 가시가 되어 마음속에 박힌다. 키라이스트 역시 묵묵히 에이라나가 들어간 바을 주시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어려운 사람이다.
  월아를 찾은 에이라나와 휘안, 안영은 바로 자리를 떳다.
  일방적으로 다음에 또 보자라는 간단한 말과 함게 워프를 사용하고 가버린 것이다. 목적지는… 에이라나의 레어였다.
  말릴 틈도 없이 사라진 에이라나. 그리고 다음 날, 키라이스트도 사라졌다.
  ‘누나를 쫓아갑니다.’라고 적힌 쪽지 하나를 두고 말이다. 그렇게 키라이스트라는 인물 역시… 아툰 제국에서 사라져 버렸다.
    중원 무림으로
  “와!”
  키라이스트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니, 이제 ㅋ라이스트가 아니라 레이턴티에스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키라이스트라는 이름은 버렸다. 마황자 레이텐티에스만이 남아 있을 뿐.
레이텐티에스가 감탄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복잡한 마법진. 처음 보는 수식어까지 줄줄이 있는 그 마법진은 자신도 처음 보는 마법진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계를 중간계와 이어주는 마법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이게 설마?”
  “차원이동 마법진이지, 그것도 좌표가 중원으로 설정된.”
  “헤에~ 그런거야?”
  갑작스럽게 휘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전혀 놀라지 않은 레이텐티에스가 감탄했다.
  이곳은 에이라나의 레어. 바로 레이텐티에스가 워프해 온 곳이다. 마법진 중앙에는 천마도가 꽂혀 있었다.
  지난 3년 동인 에이라나는 차원 이동 마법진을 풀어내는 일로 바빴다. 신성제국으로 갈 필요도 없었다. 천마의 강림과 동시에 천이 다시 차원이동 마법진을 기억해 낸 것이었다. 그 복잡한 마법진은 에이라나, 휘안, 안영 이 셋이 달려들어 풀었다.
  물론 에랴나니스에게도 도움을 청하기는 했지만 ‘이년아! 이 엄마랑 그렇게 떨이지고 싶으냐! 못된 년!’ 이렇게 외치며 마법을 갈겨대는 에랴나니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셋이서 풀어야 했다.
  에랴나니스의 맘을 이해하기에 한숨을 쉬며 자신들끼리 풀수밖에 없었던 에이라나 일행.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벽하게 풀었다. 완벽한 차원 이동 마법진이 완성된 것이다.
  “바로 가도 되겠지?”
  에이라나가 물었다. 그 말에 안영이 말했다.
  “당연하죠.”
  “자! 빨리 가자고! 키라이스트, 더도 준비 다 했냐?”
  “나야 뭐, 할 필요도 없지. 그리고 키라이스트라고 부르기 보다는 레이텐티에스라고 불러줘.”
  그렇게 서로가 준비가 다 된 것을 느끼며 에이라나도 말했다.
  “다녀올게요.”
  에이라나가 뒤돌아보앗다. 그곳에는 다섯 명의 인영이 있었다. 엘란카넌, 라칸, 레랴나스, 카랴만, 에랴나니스였다.
  자신들의 가족들을 보여 인사를 하는 에이라나.
  이쉽고 말리고 싶었지만 에이라나의 일이다. 하지만… 하유연의 일이기도 했다. 에이라나의 전생에 관한 일을 자신들이 개입할 수는 없었다.
  “빨리 돌아올게요.”
  에이라나의 말에 에랴나니스가 말했다.
  “빨리 안 돌아오면 엉덩이 때려줄 거야!”
  그 말에 어색하게 웃는 에이라나.
  “빨리 돌아와야 한다.”
  “이 할애비 너무 걱정시키지 말고.”
  “말을 들어보니 인간들만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강한 인간들이 많은 곳 같으니 조심하렴.”
  “딸아, 이 아빠 너무 걱정시키지 마라.”
  엘란카넌, 라칸, 레랴나스 순으로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에이라나는 마지막으로 미소와 함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 가자!”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가 소리쳤다.
  -주인! 간다!
  그와 동시에 천도 기운을 끌어 올리기 시작햇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앗! 파지지직! 파지지지지직!
  마법진이 빛을 뿜으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휘안이 손에 상처를 조금 냈다. 피 몇 방울을 마법진에 떨어뜨렸다. 중원인의 피. 차원 이용할 때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완화시키는 역할과 매개체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에이라나도 자신의 손에 상처를 내었다. 이번에는 시전자의 피가 필요해서였다.
  똑.
  마법진에 스며드는 에이라나의 핏방울.
  우웅! 우웅! 우웅!
  마법진이 공명한다.
  번쩍!
  엄청난 빛과 함께 네 사람이 사라졌다.
  “흐윽! 빨리 안 오면 진자 혼내줄 거얏!”
  아무도 없는 마법진을 보여 에랴나니스가 소리쳤다.
  “크윽… 여기가 어디냐?”
  레이텐티에스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나무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응? 마나의 밀도가 리샨 대륙보다 낮다?”
  그렇다는 것은, ‘중원이란 곳인가?’레이텐티에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생각난 듯 에이라나, 휘안, 안영을 찾았다.
  안영은 자신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 있었다. 휘안은 어느 호수에 둥둥 떠 있었다. 이름 모를 호수. 바로 휘안을 리샨 대륙으로 보내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호수다! 그 호수에 휘안이 쓰려져 있었다.
  “크윽.”
  휘안 역시 신음성을 터뜨리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차가운 기운이 몰려든다. 그것을 느끼며 호수 위에 수상비의 수법으로 뜬 휘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리샨으로 가기 되기 전 왔었던 호수.”
  이렇게 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니다.
  “형! 누, 누나가 안 보여!”
  그때 레이텐티에스의 다급한 말이 들려왔다.
  “뭣?”
  그 말에 놀란 휘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없다!
  “어, 어디로 간거야!”
  휘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으욱… 크윽.”
  십대 후반의 은발의 여인이 아무도 없는 산 속에 누워 있다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 보았다.
  익숙한 풍경.
  “여긴…….”
  그리고 확 줄어버린 대기 중의 마나 농도를 느꼈다. 문득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만약 내가, 내가 다시 환생한다면… 장로들 목 다 따버리겠다고 전해줘.’
  “내가… 죽은 장소로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곳곳에 자신이 죽기 전 추격자들의 목을 따는데 사용했던 천잠사들의 흔적들이 보였다.
  “후욱… 돌아… 온 건가?”
  드디어 중원에 돌아왔다. 하유연, 아니 이제 에이라나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되어 천마교의 소교주였던 존재가… 중원 무림에 귀환한 것이다. 그래, 소마검의 귀환이었다.

        무림드래곤
    무림맹, 사황성, 마교 그리고 혈교? 무림 4대 세력?
  중원.
  그 드넓은 땅에 무림이란 하나의 세계가 있다.
  무림인들이 살아가는 세계.
  무림에는 문파가 있으며 세가가 있다. 세력은 정파와 사파, 마도로 나뉘며, 정파의 최고봉은 무림맹, 사파의 최고봉은 사황성이었다.
  여러 정파와 사파의 세력들이 각각 모여 만든 무림맹과 사황성.
  이들은 진정 강했다. 하지만 그런 무림맹과 사황성이 힘을 합쳐야만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중원 무림 단일 세력으로 최강인 곳!
  약육강식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곳!
  천마교!
  천마교가 그러했다.
  그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 천마교의 발호가 있을 때면 늘 무림맹과 사황성은 힘을 합쳐 마교를 막았다.
  평소에는 만나기만 하면 늘 으르렁거리는 사이지만 그때만큼은 서로 자존심을 죽였다. 그래야만이 천마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철저하게 두 집단과 적대 관계에 있는 천마교.
  3년 전, 그 천마교에서 한때 피바람이 불었었다.
  바로 반란의 세력들이 천마교의 소교주를 죽인 것이다.
  무림에서 유명한 천마교의 소교주 소마검 하유현!
  그의 얼굴을 본 자는 많지 않았다. 아마 그가 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소문에 의하면 무림의 오화라 알려진 다섯 여인보다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있었다. 남자라도 사랑하게 될 얼굴이라나?
  하지만 그의 잔혹한 검술을 본다면 그런 생각을 할 때쯤이면 자신의 목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도 이어졌다.
  아름답고 잔혹하다. 그리고 마교의 소교주.
  그래서 이름 붙이길 소마검이라 불렀다.
  작은 악마의 검.
  소문에는 마교의 교주와 그의 아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교주가 죽었다.
  오대 장로들의 짓이란 것이 알려졌으며 그 결과 마교의 사할 정도의 힘이 사라졌다.
  살아남은 장로들의 세력은 그대로 마교 밖으로 도주해 나갔다.
  그 결과 비어버린 다섯 장로들의 자리를 셋은 전대 장로들이, 둘은 그의 아들들이 자리를 이어 나가게 되었다.
  아무리 분노했다 하나 천년을 이어온 장로들의 집안의 씨를 모조리 말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괘씸하기는 하지만 지금 장로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은 진심으로 소교주의 죽음을 슬퍼했던 이들이었다.
  마교는 소교주를 죽인 일에 연루된 자들을 모두 쫓아냈다.
  마교의 특성상 적으로 인식이 된다면 대상이 핏줄이라도 상관없다.
  오로지 적일 뿐!
  마교의 교주는 소교주인 하유현을 죽인 장로들만큼은 철저히 죽이기 위해 그들을 추격하라 명했다.
  하지만 교주의 명을 받고 그들의 뒤를 쫓던 추격자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다.
  벼랑 끝까지 몰린 장로들의 뒤에는 한 무리가 있었다.
  붉은색 무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
  장로들이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추격자들은 패했다.
  마교의 정예 중에 정예만이 들어갈 수 있는 마혈대가, 구파 일방 중 일파와 싸워도 지지 않는 마혈대가 그냥 패배도 아닌 그야말로 전멸했다.
  무림이 경악했다.
  천하가 경악했다.
  스스로 혈천교라 칭하며 피의 교리를 전파하는 자들!
  붉은색의 무복을 입고 온갖 사이한 수법과 사술을 사용하는 자들!
  그리고 마교의 추격자들의 전멸.
  마침내 혈천교가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혈천교의 힘은 마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금 힘이 약해진 천마교의 힘은 무림맹과 사황성과 비슷한 정도다.
  그런데 그런 천마교와 맞먹는 세력의 등장으로 무림은 한동안 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신흥 세력인 혈천교의 사이한 수법과 그 악독함에 무림맹과 사황성은 혈천교를 천마교보다 더 악독한 무림 공적으로 칭하고 그들을 혈교라 부르기 시작했다.
  천마교 역시 혈천교를 응징하기 위해 힘을 키우고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소교주 하유현이 죽음을 당한 이유의 배경이 혈교였기 때문이다.
  혈천교 역시 그에 비례하여 힘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들은 200년 정도 전부터 음지에서 활동을 해 나간 자들이라고 전해진다.
  역사는 짧지만 그 힘만큼은 절대적으로 강했다.
  그 일로 인해 무림의 3대 세력이 4대 세력으로 늘어버렸다.
  무림맹, 사황성, 마교, 혈교.
  무림은 화약고!
  언제 터져 피바람이 불지 모를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젠장!"
  한 무리가 경공술을 이용해 달리고 있었다.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혈포를 입은 무리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쫓기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젊은이들이었다.
  "젠장! 당 형, 저들을 어떻게 할 수 없겠소?"
  한 남자가 맨 앞에 도망가는 이에게 물었다.
  "크윽.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남은 암기가 없소!"
  "젠장!"
  당문기.
  그는 바로 유명한 사천당가의 핏줄이었다.
  오대세가 중 한 세가를 차지하고 있으며 암기와 독으로 유명했다. 핏줄에 대해 다른 세가보다 더욱 민감하여 그들의 핏줄을 건드린 이들은 절대 살아남지 못하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한마디로 독한 곳이었다.
  그리고 방금 당문기에게 말을 건 이는 도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도로 유명한 하북팽가의 자제였다.
  팽가려!
  하북팽가 역시 오대세가의 일가로 그들의 도는 패도적이며 날쌔고 무서웠다.
  그 밖에 쫓기는 다른 이들 역시 정파에서는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이었다.
  용봉지회의 일원들.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용봉지회의 일원들이 지금 쫓기고 있었다.
  상당한 실력을 가진 그들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감히 거대문파의 일원들이 대거 가입해 있는 용봉지회를 건드린 간 큰 이가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추격하는 이들의 정체를 안다면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혈교.
  쫓는 자들은 바로 혈교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분명 오대세가 중 당가와 팽가의 자제들이 있으며 다른 세가나 문파들의 뛰어난 인물들이 이곳에 있다.
  하지만 혈교는 무림맹과 맞먹는 힘을 가진 곳이다.
  그런 혈교 앞에서는 그들의 세력도 무의미할 뿐이다.
  젊은 패기를 앞세워 혈교의 분타가 있다는 곳을 친 것이 잘못이었을까?
  혈교의 고수들 앞에서 그들은 그저 고양이 앞에 생쥐 꼴이었다.
  안 된다고 말리던 제갈세가의 제갈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죽도록 후회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이미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을.
  이제 더 이상 돔아칠 힘도 없어 다들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크윽. 응?"
  팽가려의 반응에 모두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렸다.
  한 무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두 명은 잘 모르겠으나 한 명은 확실히 시선을 끌었다.
  백금발을 가진 색목인!
  중원에 많지 않은 색목인을 이런 곳에서 만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만난 것이 당혹스러웠다.
  자신들은 쫓기고 있었다.
  그런 자신들을 발견한 것 같음에도 태연하게 걸어오는 세 사람을 보며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젊어 보이는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실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나란히 다가오던 세 일행 중 한 남자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휘안, 안영, 레이텐티에스.
  참 묘한 조합이다.
  한 명은 이곳 중원 사람이고, 또 한 명은 중원 사람이었으나 리샨 대륙에서 환생하였고, 다른 한 명은 인간이 아니라 마족, 그것도 마계의 황자.
  좀 어이가 없어도 많이 없는 조합이다.
  특히 휘안은 정파, 안영은 마도로 서로 으르렁거려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그런데 태연하게 나란히 걷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안휘성.
  바로 남궁세가가 있는 곳이었다.
  중원의 시간을 얼마나 흐른 지 알 수 없으나 일단 휘안은 세가로 돌아가야 했다.
  레이텐티에스는 모르겠지만 안영이 따라가는 것은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안영이 알려진 적은 거의 없었기에 마교의 인물이 아니라면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으응?"
  "어?"
  휘안과 레이텐티에서가 동시에 반응했다.
  "흐응~ 저보다 먼저 알아차린 모양이십니다."
  안영도 느낀 모양인지 둘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반응이 조금 늦긴 했지만 그 역시 고수였다. 리샨으로 따진다면 소드마스터 최상급이고, 이곳으로 따진다면 화경과 현경의 중간이었다. 마법 또한 8클래스까지 익혔다.
  휘안이 먼저 말했다.
  "한쪽은 정파 같고, 한쪽은? 뭐지, 이 사이한 기운은?"
  "꼭 마족 같은데? 그것도 하급마족들 중에서도 아주 하급마족들이 뿜는 기운이야."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잠자코 있던 안영이 정정해 주었다.
  "...천마교와 비슷한 듯하지만 아닙니다. 천마교는 패도적이라면 이들은 너무도 사이합니다."
  마교에서도 사이한 무공이 몇 가지 있다. 하지만 이만큼 사이하지는 않다.
  멀게만 느껴지던 기운이 가까워지면서 일단의 무리들이 홍포를 입은 자들에게 쫓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 저들은?"
  휘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쫓기고 있는 이들. 그들이 누군지 잘 알았다.
  "용봉지회 떨거지 분들이군요."
  안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휘안이 울컥했다.
  "떨거지라니?"
  "떨거지들을 떨거지라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용봉지회.
  정파에서는 우러러볼 집단이지만 마교에서는 그저 떨거지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각 세가나 문파의 잘나가는 이들이 모여서 서로 실력을 뽐내는 곳.
  그곳에는 실력은 쥐뿔도 안 되면서 배경만 믿고 날뛰는 것들도 상당히 많았다. 마교 입장에서는 상당히 같잖게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안영이 용봉지회를 칭하는 말로 떨거지를 사용한 것이다.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휘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그래, 그래. 아무튼 저들을 좀 도와주자."
  그 말에 안영이 화를 냈다.
  "왜 제가 정파인을 도와야 합니까? 휘안 님은 조금 특별할 뿐, 제가 떨거지들을 도울 거라 생각하십니까?"
  "나도 싫어. 저들은 쉽게 말해 누나랑 적대관계에 있는 이들이잖아?"
  레이텐티에스도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을 쫓고 있는 자들, 난 휘안 형 혼자서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이텐티에스도 내심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쫓기는 자들이나 쫓는 자들이나 상당히 강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리샨 대륙의 인간들을 기준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 젊은 인간들이 저렇게 강할 수 있다는 건 역시 놀라운 일이었다.
  '헤~ 정말 재미있는 곳인데?'
  인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도 없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상당히 강하다.
  레이텐티에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크윽! 알았다, 나 혼자 한다!"
  결국 휘안 혼자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와 동시에 휘안의 신영이 꺼지듯 사라졌다.
  용봉지회 일원들은 당황했다.
  분명 셋이었던 이들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둘로 준 것이다.
  땅으로 꺼지듯 사라진 인영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놀라고 있을 때였다.
  촤악!
  "끄억!"
  갑자기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와 당시에 용봉지회 일원들이 멈칫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은빛 검을 들고 혈교의 인물 하나를 베어가는 이의 모습!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전방에 있었던 이가 순식간에 자신들의 뒤에서, 그것도 자신들을 쫓고 있는 자들을 베어가고 있었다.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혈교의 인물 하나를 벤 그가 또 움직였다.
  서걱! 퍼억!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를 베고 뒤를 공격하는 이의 가슴을 발로 차 함몰시키고 거리를 벌렸다.
  그의 실력에 도망치는 것도 잊고 지켜보던 용봉지회의 일원들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였다.
  아니 좀 더 어려 보였다.
  그런데 저 놀라운 무위라니!
  자신들도 감당불가였던 혈교의 인물들을 여유롭게 처리해 나가는 모습에 모두가 멍해져 갔다.
  혈교의 인물 30명 중 10명이 순식간에 당했다.
  혈교인들이 그제야 섣불리 덤비지 않고 휘안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료 10명을 처리한 상대다.
  어려보이지만 저기 도망가던 용봉지회의 일원들보다 더 무서운 적임을 인지했다.
  "당신들은 누군데 용봉지회의 일원들을 쫓는 거야?"
  휘안이 겉으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서른이다. 그리고 중원으로 따지자면 그 나이가 스물일곱이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고 리샨 대륙에서 2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상당히 경험이 많고 전투의 흐름을 잘 읽는다.
  사람도 많이 죽여 봤다. 그의 손에 죽은 이가 수만이 넘을 것이다.
  그리고 에이라나와 같이 생활했다. 행동거지가 거칠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전 같았으면 반 존대를 사용했을 이들에게 반말부터 날렸다.
  휘안의 말에도 혈교인들은 그저 달려들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휘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말할 생각 없나보지?"
  혈교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럼 죽어."
  파앗! 콰가가가가가가!
  말과 동시에 사라진 휘안의 신형이 이번에는 혈교 무리들의 정중앙에 나타났다.
  휘안이 360도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자 검기가 몰아쳤으며 그것과 동시에 모든 것이 쓸려져 나갔다.
  순식간에 20명의 혈교인들이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휘안은 정말 강하다.
  아마 현 무림에서 에이라나를 제외하고 제일 강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만약 에이라나의 스승이자 양아버지였던 사혈사와 붙는다 해도 휘안은 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휘안은 강해져 있었다.
  휘안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검기를 날렸다.
  더 이상 뽑아낼 정보가 없다면 죽이는 게 최선이었다.
  무심한 눈으로 쓰러져 있는 혈교인들을 바라본 휘안이 검을 꽂아 넣었다.
  스륵. 탁!
  월아가 검집에 들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은월을 검집에 넣은 휘안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봉지회 인물들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멍해진 용봉지회 일원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분명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물.
  그리고 엄청난 무위로 순식간에 30여 명의 혈교인들을 처리해버렸다. 자신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꿈쩍도 안 했던 혈교무사들을 말이다.
  그들이 휘안의 무위를 넋을 잃고 보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리고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좀 더 적은 나이로 보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신선했다.
  "고, 고맙습니다."
  팽가려가 휘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일단 구해주었으니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방금 전 공격을 보아하니 엄청난 고수처럼 보였다.
  자신들을 구해주었다면 필시 정파의 인물일 터, 보답 정도는 해야 한다고 그들은 그렇게 배웠다.
  휘안에게 인사를 하던 팽가려가 순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다가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헉!"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랐다.
  팽가려의 반응에 휘안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지 않은 듯하군."
  중얼거리던 휘안이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팽가려에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팽가려."
  "나, 남궁휘안 형!"
  휘안의 말에 너무 놀란 팽가려가 소리쳤다.
  그 말에 용봉지회 일원들 모두의 눈이 커졌다.
  행방불명 된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휘안!
  사라진 지 3년이 지난 지금 그가 자신들의 눈앞에 있다.
  팽가려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팽가려의 나이는 이제 22살.
  팽가의 소가주이자 자신의 형인 팽가인과 친구 사이인 남궁휘안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서로 교류가 원만한 남궁세가와 하북팽가.
  그렇기에 두 집안의 자제들은 어릴 때부터 원만한 교류를 쌓고 있었던 것이다.
  팽가려의 외침에 당문기 역시 눈을 크게 떴다.
  "휘, 휘안 형 맞으시오?"
  당문기 역시 나이는 23살.
  소가주는 아니지만 그의 형 역시 소가주다. 그렇기에 휘안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당문기, 너도 있었구나?"
  보통이면 하오체를 쓰겠지만 황태자에게까지 반말을 썼던 그다.
  물론 그전까지는 높임말을 썼으나 에이라나와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안면이 있고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에게는 반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예법에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반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친분이 있다는 뜻이니 잘 사용되지 않을 뿐이었다.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을 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헤에~ 휘안 형이랑 아는 사이?"
  레이텐티에스였다.
  "보아하니 사천당가와 하북팽가의 자제들 같군요."
  안영 역시 중얼거리며 다가왔다.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그들을 보며 용봉지회 일원들 모두가 놀랐다.무엇보다 색목인으로 여겨지는 레이텐티에스의 자연스러운 중원어에 놀랐다.
  사실 레이텐티에스는 중원어의 '중' 자도 몰랐다.
  마족이라는 그의 신분ㅇ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에게는 온갖 아티팩트가 다 있다.
  그중에 모르는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케 해주는 아티팩트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두가 살짝 긴장하며 소리도 없이 다가온 둘을 경계했다.
  그들의 반응을 눈치채고 휘안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나랑 친한 이들이니 그렇게 경계 안 해도 될 거요."
  휘안이 당문기와 팽가려를 보며 말했다.
  "자! 일단 물어볼 게 있는데?"
  그의 은근한 말에 인순 당황하는 당문기와 팽가려였다.
  객잔 안.
  지금 휘안은 당문기와 팽가려에게 현재 중원 무림의 상황을 듣고 있었다.
  "흐응. 그러니깐? 마교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고, 혈교라는 곳이 등장했다고?"
  "그래요, 휘안 형."
  휘안의 중얼거림에 그와 친분이 깊은 팽가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너희를 쫓은 녀석들이 바로 혈교라는 곳이고?"
  "네."
  대답은 들은 휘안이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에이라나 이 녀석. 당장 혈교로 안 쳐들어간 것만 해도 다행일 텐데."
  에이라나가 언급되자 잠자고 있던 레이텐티에스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장 그곳으로 날아가 메테오 스트라이크 몇 방은 뿌릴 거라 보는데?"
  "..."
  "..."
  레이텐티에스의 말에 휘안과 안영이 침묵했다.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겠군."
  "아직 혈교라는 곳의 위치를 알지 못하니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아주 심각하게 대화했다. 하지만 레이텐티에스는 실상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역시 그런 면이 누나의 매력이라니깐?"
  태연하게 에이라나의 매력을 들먹이고 있었다.
  휘안과 안영의 시선이 레이텐티에스에게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누가 마족 아니랄까 봐."
  "사악하시군요."
  "흥이다!"
  레이텐티에스가 에이라나와 같이 중원으로 넘어오면서 어린 애처럼 변한 면이 많았다.
  세 사람의 대화에 팽가려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저, 휘안 형."
  "응?"
  "이 사람들 누구에요?"
  팽가려가 레이텐티에스와 안영을 보고 물었다.
  한 명은 색목인이 맞았다.
  백금발에 녹안을 가진 이가 어떻게 중원인이란 말인가?
  남색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중원인에 가까워 보이는 나머지 한 사람.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이들 모두 엄청난 고수였다.
  휘안의 무위 역시 놀라웠지만 이들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팽가려는 잘 알고 있었다.
  팽가려의 말에 휘안이 그들을 소개하려고 할 때였다.
  "내 이름은 하유한. 누나를 찾아서 중원에 왔고요, 그리고 이쪽은 유안영."
  레이텐티에스가 먼저 대꾸했다.
  어느 새 중원어에 대해 머릿속에 어느 정도 감이 들어오자 아름다울 '유'자에 날개 '한'자를 사용해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중원에서 에이라나의 성인 하자를 사용했다..
  이름도 비슷했다.
  참 치밀한 녀석이었다.
  레이텐티에스. 아니 이제는 유한인 그도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안영을 악 씨라고 떠들지는 않았다.
  유한의 활기찬 말에 휘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이쪽은 유한이고 저쪽은 안영이야."
  그 말에 팽가려가 포권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하북팽가의 팽가려라고 합니다."
  팽가려의 인사에 안영이 말했다.
  "천하의 드높은 하북팽가의 자제분을 만나 영광입니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안영의 모습에 휘안과 유한은 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
  '가증스러운 놈.'
  '가증스러운 인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용봉지회를 떨거지라 칭했던 안영.
  그리고 용봉지회 일원들과 만나는 동안 정파와 사파에 대해 유한에게 각인시켜 주던 안영이었다.
  정파는 위선자들, 사파는 떨거지들.
  물론 그 말에 휘안과 말다툼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휘안이 안영을 말빨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떠들던 안영이 능글맞게 오대세가를 칭찬하는 모습은 정말 가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휘안과 유한이 저거 뻥치고 있네, 식의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안영을 그런 걸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안영의 칭찬에 팽가려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하지만 유안영 님의 무공도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하북팽가의 핏줄들은 고집이 세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을 좋게 보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단순하다고나 할까?
  "아뇨, 전 무인이 아니라 진법가입니다. 그래서 괜찮은 신법을 익힌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안영은 또 다시 싱긋 웃으며 자신을 낮추었다.
  '웃기고 있네.'
  '웩! 저 가증스러움. 속이 울렁거려.'
  휘안과 유한은 그저 속으로 안영을 씹을 뿐이었다.
  휘안은 안영을 대놓고 씹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독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에이라나의 욕설보다 무서운 게 그의 독설일지 몰랐다.
  유한의 경우는 그냥 착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안영의 겸손함에 팽가려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칭찬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분은 색목인이 맞으시지요?"
  팽가려가 조심스럽게 유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용봉지회 일원들도 호기심이 동한 듯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중원에서 잘 볼 수 없는 색목인.
  백금발에 녹안을 가진 그는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이 동할 만한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팽가려의 말에 유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색목인?"
  "그러니깐 이 중원에는 머리가 검고 눈동자 색이 검은 사람들밖에 없거든?"
  "에엑~ 그런 게 어딨어?"
  휘안의 말에 유한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객잔까지 오면서 검은 머리카락의 사람밖에 없는 것이 이상하긴 했는데 흑발에 흑안을 가진 이들밖에 살지 않는다?
  참 황당한 곳이라고 유한은 생각했다.
  유한의 말에 휘안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서역에 금발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하는데 서역인은 거의 중원에 없지. 교류가 잘 없거든? 그래서 너같이 백금발에 녹안을 가진 이들은 잘 없어. 그런 이들을 보고 이쪽에서 색목인이라 지칭하는 거야."
  그 말에 유한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 나 같은 머리색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겠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말에 유한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머리카락 색 바꿔버릴까?"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팽가려와 용봉지회 일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예에? 머리카락 색을 바꾼다고요?"
  팽가려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 말에 유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어떻게 머리카락 색을 바꿉니까?"
  "그냥 마법을 써서..."
  "마법을 써서 바꾸려고 라고 말하려던 유한이 휘안과 안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중원이란 곳에 마법 같은 거 없다고 했지?"
  "그래."
  "그러면 바꾸기 힘들겠네?"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 특별한 무공을 익히면 바뀌게 되지만.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이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그 말에 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있는 이들은 아직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그럼 염색해서 바꾸죠."
  그 말에 팽가려가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염색이라고 하면..."
  "머리카락 물들인다고요, 검은색으로."
  "..."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게 가능하십니까?"
  좀 어이없다는 듯 묻고 있었다.
  그런 팽가려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유한이 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하나를 꺼냈다.
  바로 검은 액체가 가득 담긴 유리였다.
  "유리?"
  "그 귀하다는?"
  유한이 꺼낸 유리를 보며 근처 사람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중원에서 유리는 굉장히 귀하다.
  아주 비싸게 팔릴 정도로.
  그런 유리병이 나왔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유리병에 든 검은 액체는 또 뭐야?"
  휘안의 의아해하며 물었다.
  유한을 대신해 안영이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염색약이로군요."
  "염색약?"
  "예."
  유한이 꺼낸 건 바로 염색약이었다.
  리샨 대륙에는 염색약이 있었다.
  연금술사들이 만든 것으로 귀족들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색이 있었는데 자신들을 치장할 때 즐겨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만 사용하면 머릿결에 좀 나빠지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한이 웃으며 말했다.
  "염색약으로 물들이면 끝이라고."
  그때 안영이 끼어들었다.
  "유한 님, 염색약이 유지되게 만드는 약은 있으십니까?"
  안영의 말에 유한이 침묵했다.
  "없는데?"
  안영이 유한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염색이 일주일도 못 가 다 빠져나갈 게 분명한데요? 만드는 법 아세요?"
  "아니."
  "그럼 해도 소용없겠군요. 염색약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 말에 유한이 좌절했다. 안영과 유한 사이에 대화가 끊기면서 침묵이 흐르자 팽가려가 나섰다.
  "염색약이라고요? 서역에는 신비한 것이 많이 있나 봅니다."
  마침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휘안을 보았다.
  "참! 휘안 형, 지금까지 어디 가 계셨던 것입니까?"
  그 말에 휘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남궁세가가 난리가 났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소가주가 사라지니 엄청난 혼란에 빠졌지요. 성휘와 휘연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남궁성휘와 남궁휘연.
  이란성 쌍둥이인 두 남매는 둘 다 나이가 올해 20살로 휘안과는 7살 차이가 났다.
  휘안의 갑작스러운 행방불명에 남궁세가가 발칵 뒤집혔었다. 그 당시 유독 휘안을 따랐었던 성휘와 휘연은 순식간에 망연자실했다. 휘연은 자신의 오라비를 찾아내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댔고 성휘는 그저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휘안 또한 가족 걱정을 많이 했었다.
  "헤에~ 동생들이 있었어?"
  유한이 감탄하며 던진 말에 휘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끄응~ 참 이 문제를 깜빡하고 있었군."
  "해, 나쁜 사람이잖아? 휘안 형."
  유한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빠직한 휘안이 유한을 노려보았다. 가뜩이나 가족들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 휘안이었다. 그런데 비꼬는 듯한 유한의 말투가 신경이 거슬린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안영이 말했다.
  "일단 선물 같은 걸로 꼬셔보십시오, 휘안 님처럼 단순해서 넘어올지 혹시 압니까?"
  "캭! 내 어디가 단순하단 거야!"
  "농담과 진담도 구별 못하십니까?"
  티격태격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팽가려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 저. 주문하신 음식이 나왔는데요?"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점소이에게 향했다.
  "와아! 드디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겠네?"
  유한이 웃으며 소리쳤다.
  "이 두 사람은 영 아니더라, 어떻게 요리 하나 못해?"
  유한이 한심하다는 듯 말하자 휘안과 안영이 따졌다.
  "그럼 넌 요리 잘하냐?"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도 며칠 동안 육포로 때웠습니다."
  휘안 일행이 차원이동을 한 지 이미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산속을 헤맸다. 일단 근처 산에 에이라나가 떨어졌나 싶어 탐지마법을 이용해 계속 찾아다녔던 것이다. 결과는 허탕이었지만 말이다.
  에이라나의 물건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에이라나의 뼈로 만든 은월이 있었지만 그건 이미 소유주가 휘안에게 넘어간 상태이기에 에이라나를 찾을 수 없었다.
  에이라나를 찾아 헤맸던 그 며칠 동안 육포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셋 다 육포로 식사를 처리하면서 당연히 세 사람 사이에 음식문제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휘안과 안영의 말에 유한이 대꾸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못한다고 따지겠어?"
  그렇게 말한 유한이 또 투덜거렸다.
  "쳇, 누나랑 같이 다녔으면 이런 일 없는데."
  유한의 투덜거림에 안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 같이 다니면 이런 일이 없다뇨?"
  안영은 음식을 먹다 잠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고 있었고, 휘안은 이제 막 만두를 하나 집어 입에 넣으려던 중이었다.
  그런 두 사람은 다음에 들린 유한의 말에 그대로 초토화 되고 말았다.
  "누나 요리 잘해, 이전에 잠시 여행했을 때도 누나가 요리해 줬는걸. 누나가 요리한 음식 엄청 맛있어."
  "켁! 쿨럭! 쿨럭! 쿨럭!"
  "푸웁! 쿨럭! 쿨럭!"
  유한의 말 한마디에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두 사람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그런 두 사람을 주위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레가 들렸는지 계속해서 기침만 해댈 뿐이었다.
  "켈록! 켈록! 크억. 뭐, 뭐라고 했냐? 에이라나가 요리를?"
  휘안이 이제는 진정이 됐는지 기침을 몇 번하고 유한에게 물었다. 한참 동안 기침을 했기에 휘안의 얼굴은 벌개져 있었다.
  휘안의 물음에 유한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누나가 요리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
  "당연하지!"
  "전 그분이 요리에 '요'자와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에이라나가 요리를 한다는 게 이상하다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소리친 휘안과 아주 진지하게 에이라나와 요리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며 아주 괴리감 있다는 듯이 말하는 안영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유한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누나 요리 잘한다고, 실력으로 따지면 1급 요리사 저리 가라일 걸? 그리고 누나 나이를 생각해. 그 나이에 그런 거 하나 안 배웠을까 봐?"
  그 말에 휘안과 안영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도 그렇다. 에이라나의 나이는 500살(정확하게 말하면 506살). 헤츨링 시절에 지루해서 요리를 배웠을 지도 몰랐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에이라나는 헤츨링 시절 지루함을 참지 못해 이것저것 다 익힌 드래곤이다. 500년이라는 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고나 할까? 잡다한 면에서 잘하는 것이 많았다. 그 잡다한(?) 것에 당연하게도 요리도 들어갔다.
  "은근히 여자애 같은 면이 있었네?"
  휘안의 혼잣말에 안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러다가 그들은 상상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식칼로 요리를 하고 있는 에이라나의 모습을.
  상당히 어색하고, 생각만 해도 웃겼다.
  "킥!"
  "큭!"
  갑작스럽게 두 사람이 웃자 유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유한을 보며 휘안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에이라나가 앞치마 두른 모습이 생각나서."
  그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유한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와! 잘 어울리겠다."
  "하지만 앞치마 입을 위인이 아니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우리에게 칼 들이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않을까?"
  그 말에 팽가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휘안 형, 무슨 생각해요?"
  "아니, 그런 게 있어."
  휘안의 말에 팽가려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한 은발의 여인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서 있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어떤 놈이 내 이야기하나?"
  바로 에이라나였다.
  에이라나가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것들 어디 갔냐?"
  휘안과 안영, 레이텐티에스(하유한이란 이름을 사용하는지 모름)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밥이나 먹자."
  휘안, 안영, 레이텐티에스가 며칠 동안 먹었던 식사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에이라나였다.
  "헤에~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봐."
  유한이 감탄하며 음식 하나하나를 손으로 집어 먹어보고 있었다.
  그런 유한의 모습은 상당히 귀여워 보였다. 백금발을 가진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저것 먹고 있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객점으로 몰려와 유한의 모습을 구경했다.
  유한의 외모는 십대 후반으로 아직 앳된 티가 많이 남아 있었다. 안 그래도 상당히 귀여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는데 신기한 듯 이것저것 음식을 먹어보고 있으니 상당히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아~ 참 오랜만에 입에 넣어보는 중원음식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것은 휘안과 안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이라나와 떨어졌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에이라나가 유한도 아니고 중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남궁세가로 찾아올지 몰랐다. 정 안된다면 마법 몇 번 사용하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의 말에 팽가려가 확신하며 다시 물어왔다.
  "역시 중원이 아닌 곳에 갔었나 봐요?"
  팽가려의 말에 휘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렇지, 저 녀석만 봐도 알지 않겠어?"
  휘안의 말에 팽가려가 신기한 듯 음식을 먹고 있는 유한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하긴 유한 소저만 봐도 휘안 형이 서역에 갔었던 것이 예상됩니다."
  그 말에 음식을 마구 집어먹던 유한이 멈칫했다. 휘안과 안영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셋이 멈칫하자 모두가 의아해 했다. 특히 유한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유한이 팽가려를 보며 말했다.
  "제가 여자 같아요?"
  "예? 아, 예."
  휘안, 유한, 안영. 지금 셋은 리샨 대륙식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는 했다. 리샨 대륙의 옷 치고는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유한의 얼굴은 예쁘장하다. 멋진 게 아니다, 예쁘다.
  그렇다는 소리는?
  "크크크크큭. 킥킥킥킥킥."
  휘안이 소리 죽여 웃기 시작했다. 안영 역시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 웃겨 죽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유한의 표정 역시 좋지만은 못했다.
  "제, 제가 뭘 잘못했나요?"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팽가려가 당황했다.
  "야, 유한. 너도 에이라나처럼 나가는 게 어떠냐?"
  "으윽! 뭐야! 난 남자라고!"
  휘안의 말에 유한이 소리쳤다.
  "뭐 어때? 폴리모프 해서 에이라나처럼 밀고 나가는 거야."
  "크윽! 누나야 원래 여자였잖아! 난 남자라고!"
  에이라나의 사정을 대충 들어 알고 있는 유한이었다. 그렇기에 왜 에이라나가 중원에 왔는지도 잘 안다. 전생에 남자였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뭐 유한이 그런 거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유한의 외침에 불씨를 던졌던 팽가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밤을 객잔에서 머물기로 한 그들 모두는 객잔에 방을 잡아 들어갔다.
  휘안 일행은 3인실 방을 잡은 상태였다.
  "사일런스."
  만약을 대비해 안영이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다.
  "후. 혈교라는 곳이 생겼단 말이지?"
  휘안이 턱을 잡고 중얼거렸다.
  그런 휘안의 말에 안영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장로 그들이 뭘 믿고 설친다고 했더니 뒤쪽에 보호막이 있었군요."
  "그 혈교란 곳, 결국 누나랑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겠네?"
  혈교.
  그들에게 있어 지금 혈교는 적이었다.
  특히 안영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안영은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당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천마교의 오대 장로들이 붙었다는 그 혈교란 곳에 썩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었다.
  안영이 입을 열었다.
  "일단 에이라나 님과 합류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에이라나 그 녀석, 중원에서는 아마 하유현이라는 이름을 쓸 거야, 그러니 수소문해보자고."
  "으음. 누나라면 흑발에 흑안을 하고 은아와 흑아를 메고 다니겠지?"
  "천마도는 너무 크니 눈에 띌지도 모르겠군."
  "개방에 부탁해보지요."
  안영의 말에 유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개방?"
  "아아. 그건 휘안 님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러고 보니 중원 무림 구도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군요."
  유한은 대화만 가능하지 중원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안영의 말에 휘안이 입을 열었다.
  "일단 저번에 중원은 정파, 사파, 마도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는 걸 말했었나?"
  "응."
  "일단 사파에 대해서는 알 필요 없고. 마도라고 해봐야 에이라나와 안영이 속했던 마교라는 곳을 제외하고는 잡다한 곳밖에 없어. 그럼 정파에 대해 설명해주지."
  말을 잠시 멈춘 휘안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파는 무림맹이란 곳을 주축으로 모여 있지. 정파의 기둥이라고 하면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그중 오대세가는 각각 남궁세가, 모용세가, 제갈세가, 하북팽가, 사천당문 일렇게 다섯 가문으로 나뉘지. 내가 속한 남궁세가는 내가 사용하는 검과 다르게 중검으로 유명한 곳이야. 모용세가는 나의 외가 쪽이기도 한데 날렵하고 빠른 쾌도술 위주의 검술을 구사하는 곳이지. 제갈세가는 오대세가 중에서 무공이 가장 약한 곳이야. 하지만 오대세가 중에서 그들의 권각술은 중원에서도 유명해. 그리고 그들은 무공이 약한 대신 진법과 전법에 강하지, 정파에서는 최고라고 보면 돼. 하북팽가는 도로 유명한 곳이야, 아까 팽가려 봤지? 그 사람이 하북팽가의 핏줄이야. 그리고 마지막 사천당가. 이들의 독과 암기술은 중원에서도 수위를 다투지,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암살하는 건 아냐. 단지 비도술, 독공 같은 것이 발달해 있는 곳이야."
  오대세가의 설명이 끝났다. 잠시 말을 멈춘 휘안이 이번에는 구파일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파일방. 이들은 각각 문파야. 일단 구파로 말하자면 소림, 무당, 화산, 종남, 청성, 곤륜, 아미, 공동, 점창파가 있지. 이들은 각각 불교와 도가 계열의 문파들이지. 소림사와 아미파를 제외하고 모두 도를 추구하는 곳이야. 그리고 일방의 개방, 이들은..."
  휘안이 잠시 멈칫하자 안영이 히죽 웃으며 대신 말했다.
  "거지소굴이지요."
  "거, 거지소굴?"
  조금 당황한 유한을 보며 휘안이 한차례 한숨을 쉰 다음 말했다.
  "그래, 하지만 거지도 보통 거지들이 아니지. 만약 개방이 리샨 대륙에 떨어진다면."
  "리샨 대륙은 그대로 끝장이지요. 거지들이라도 상당히 강한 거지들이 모여 있으니. 아마 리샨 대륙의 인간들 수준이라면 그대로 쓸려나갈 겁니다."
  개방이 거지소굴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도 그들만의 무공이 있다. 그리고 그 무공은 절대 무시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다. 개방의 특징은 거지소굴이라는 것 말고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이 개방은 온갖 정보에 능하지."
  "정보?"
  "그래, 개방은 정파에서도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주는 곳이야."
  개방. 소위 말하는 거지들의 집단이지만 이들의 정보력은 중원에서 하오문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들의 정보력은 마교에서도 인정해주는 수준이랄까? 중원 무림 정보를 다스리는 두 개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곳이 개방이었다.
  기다란 정파의 설명이 끝나자 유한이 신기한 듯 말했다.
  "헤에~ 나라도 아닌데 집단 같은 게 있어?"
  "중원은 넓으니까요. 사실 지금 중원을 통일하고 있는 명의 크기는 상당히 큽니다. 리샨 대륙으로 따지자면 리샨 대륙의 1/3 정도의 크기죠. 그리고 통일 국가입니다. 그러니 그 안에 무림이란 세계가 존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죠."
  유한도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리샨은 크다. 하지만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에 무림과 비슷한 곳이 만들어질 리가 없었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마탑, 용병길드, 정보길드, 어쌔신길드 같은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힘이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다. 무림이란 곳은 통합된다면 나라와도 붙을 정도로 강한 세계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공격할 리 없다. 쉽게 말해 황궁과 무림은 서로를 돌 보듯이 한다랄까? 서로가 불가침인 것이다.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정파에 대해 정리한 유한이 입을 열었다.
  "그럼 크게 무림은 정파란 곳과 사파란 곳이 있으며 마교라는 곳과 혈교라는 곳이 있다는 거네?"
  "그래. 나머지는 뭐, 지금 무림의 흐름은 우리도 잘 모르니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없고 대충 말해서 그 정도야. 넌 우리랑 같이 움직이니까 앞으로 정파인들과 같이 움직일 일이 많을 것 같아 정파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이고."
  "일단 정파를 돕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본교로 돌아가 봤자 귀신 취급받을 게 뻔하니 일단 정파를 돕기로 하지요."
  "에이라나는 일단 우리랑 합류한다면 정파를 돕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지금 무림은 크게 정파, 사파, 마교, 혈교 이렇게 네 개의 세력으로 나뉜다. 이들이 서로를 끝없이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중원의 판도를 뒤집을 어마어마한 존재들이 모두 정파 측에 하나둘씩 붙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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